서울역 빌딩숲 아래, 파란 천막 하나가 그늘을 드리웠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로 방 한 켠에 움츠려있던 주민들이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 습한 바람을 맞았다. 천막 구석에는 복숭아 맛 아이스티가 준비돼 있었다. 주위를 기웃거리던 몇몇 주민들은 아이스티 한 잔씩을 받아 들고서 회색 간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주일간의 쪽방 소식’이라고 적힌 유인물도 함께였다.

“어르신, 체온 재셔야 해요.” 코로나19 방역 명부 작성을 돕는 활동가의 손길이 바빴다. 이름 왼편에 주소를 적는 칸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기자를 제외하곤 모두 ‘남대문로5가동’을 썼다. 활동가는 주민들에게 동 이름 대신 쪽방 ‘몇 동 몇 호’에 사는지를 물었다. 다른 활동가는 천막 아래 군데군데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근처 벤치와 천막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천막에는 주민 네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벤치와 남대문쪽방상담소 부근에 주민 스무 명가량이 모여 있었지만, 이들은 천막 가까이 오길 꺼렸다. 한 주민은 두 번이나 양손에 아이스티를 받아 들고는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 다른 주민은 여기 와보시라는 활동가의 부름에 황급히 뒤돌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쪽방 건물을 관리하는 아주머니들은 파란 천막에 걸린 현수막과 점점 채워지는 의자들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응시했다. 오후 6시 30분으로 예정돼 있던 다섯 번째 ‘수요 길거리 사랑방’ 행사는 15분 늦게 시작했다. 활동가 10명, 쪽방 주민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대문 쪽방촌에 활기와 긴장감이 어지러이 섞였다.
어르신, ‘양동 재개발’은 말이에요
서울역을 나와 남대문경찰서를 왼편에 끼고 곧장 올라가면 노후한 건물들을 금세 마주하게 된다. 정식 명칭은 남대문로5가동이지만 재개발 계획이 거론되면서 다시 옛 이름인 ‘양동’으로 불리는 동네다. 힐튼 호텔과 서울시티타워, LG서울역 빌딩을 병풍 삼은 이곳에는 쪽방 건물 20여 채가 밀집해있다. 쪽방은 2평 이하의 작은 방으로, 주민들은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낸다. 부엌과 화장실은 공용으로 쓴다. 길거리 사랑방은 쪽방으로 올라가는 골목 초입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된다.
“78년도에 박정희 씨가 대통령 할 때 이 동네를 재개발지역으로 만들었어요. 벌써 40년도 넘은 얘기죠.” 사회를 맡은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이렇게 운을 뗐다. “그동안 건물들이 나이 먹을 때까지 재개발이 안 됐는데 올해 1월에 재개발 계획이 최종적으로 변경됐습니다. 애초에는 여기가 공원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건물 짓는 계획으로 바뀌었어요.” 앞쪽에 앉은 주민들은 원래 공원 짓는 사업이었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남대문로5가동 주민들에게 재개발은 마치 양치기 소년 이야기 같다. 1978년 당시 양동 지역은 재개발사업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수십 년간 개발의 진척이 없었다. 차일피일 미뤄지는 계획에 주민들은 신뢰를 잃었다. 골목 오르막길 중턱에 걸터앉아있던 강홍열 씨는 재개발 관련해 취재를 왔다는 기자의 말에 무심히 대꾸했다. “재개발 확정만 나오면 뭐 합니까. 옛날에 서울시에서 재개발한다고 한 게 언젠데.” 강 씨는 말을 마치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쪽방이 모여 있는 이곳은 원래 공원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약 40년이 지난 2017년, 서울시는 계획을 바꿔 이곳에 건축물을 짓기로 했다. 쪽방 밀집 지역이라 공원부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계획은 올해 1월 16일,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확정됐다. 강홍열 씨가 앉아있던 골목을 경계로 왼쪽이 소단위정비지구(11지구), 오른쪽이 소단위관리지구(12지구)로 새롭게 지정됐다.
공원을 짓기로 한 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니 이들이 거주할 건물을 짓자는 의도였을까. 서울시는 11지구와 12지구를 ‘일반상업지역 내 도입 가능한 용도’로 개발할 것을 권장했다. 상업지역에는 문화시설이나 숙박시설 등을 지을 수 있지만 주택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문화생활을 위해, 회사원들이 아이를 맡길 시설을 확충하고 관광객이 묵을 호텔을 짓기 위해 변경된 계획 속에 막상 쪽방 주민들이 ‘살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이동현 활동가는 주민들에게 재개발사업 진행 상황을 설명한 뒤에야 길거리 사랑방 행사의 성격을 밝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발 이후에 우리 주민에 대한 주거대책을 어떻게 세우라고 하는 게 좋을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 길거리 사랑방의 진짜 이름은 ‘양동 재개발지역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힘 모으기 뜻 모으기 수요 길거리 사랑방’이다. 주민들에게 재개발 사실을 알리고, 함께 힘을 합쳐 재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2020홈리스주거팀’이 나서서 기획한 주민 자치 행사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행사지만 주민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다. 쪽방 관리인의 눈치가 보여서다. 관리인들은 한두 평 남짓한 방마다 25만 원 상당의 높은 월세를 받아갈 뿐만 아니라, 세입자가 마음에 안 들면 곧바로 내쫓는다. 주민들은 혹여나 길거리 사랑방에 참여했다가 관리인에게 들킬까 두려워한다. 2년째 이곳에 사는 김송태 씨는 “관리인 때문에 사람들이 오라고 해도 안 온다”면서도 “다들 방세 주고 여기 사는 사람들 아니냐고. 관리인이 뭐가 무서워. 할 얘기는 해야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개발의 짙은 그림자, ‘사전퇴거’
김송태 씨는 벌써 두 번이나 길거리 사랑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길거리 사랑방에서는 ‘노래 하나 사연 둘’ 코너를 진행한다. 주민 한두 명이 나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고 그에 맞는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다. 김 씨는 바깥에서 술을 마시다가 활동가들에게 불려 나와 노래했다며 몇 번이고 말했다. 수요일마다 천막이 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김 씨를 마주쳤을 때도 그는 술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리모델링한다고 두세 달 치 방세 안 받고 내쫓았다고. 나도 억울해서 술 먹고 앉아 있잖아.” 김 씨가 살다가 내쫓긴 건물은 16-25(구 620번지), 그가 앉아있던 자리를 입구로 했던 곳이다. 지금은 자물쇠로 문이 굳게 잠겨있다.
문이 잠기고 폐쇄된 건 김송태 씨가 살았던 건물만이 아니다. 골목을 조금만 올라가도 곧장 ‘공사 안내문’이 걸려 있는 건물 하나가 나온다. 16-7(구 619번지)이다. 안내문에는 공사예정일이 2019년 10~12월이라고 적혀 있지만, 아직도 대문은 못 박힌 커다란 철판으로 막혀 있다. 공사 사유는 ‘건물 내부 노후로 인한 하자’다.


다른 건물들 역시 16-7처럼 건물이 노후화됐다며 폐쇄되거나, 리모델링 등의 이유로 철거 수순을 밟았다. 외벽에 금이 갔다며 주민들을 퇴거시킨 건물도 있었다. 12지구의 건물 13채 중 8채, 11지구의 건물 6채 중 1채가 그렇게 문을 닫았다. 11지구의 16-5(구 579번지) 주민들은 올해 6·7월 말까지 퇴거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아직 쪽방이 문을 닫진 않았다. 1층의 가게 주인은 9월 말로 퇴거가 미뤄졌다고 전했다.
정말로 쪽방 건물들이 낡아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일까. 건물들이 얼마나 낡았는지보다, 언제부터 폐쇄됐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부터 건물들이 하나둘 문 닫기 시작해 올해 초 건물 폐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건물들이 낡은 지는 한참 됐지만 폐쇄되기 시작한 건 최근에 와서다. 이동현 활동가는 이를 재개발 계획으로 인한 ‘사전퇴거 조치’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재개발로 퇴거당하는 주민들은 법의 보호를 받게 돼 있다. 도시정비법 제61조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는 재개발로 철거되는 주택의 세입자에게 임대주택이나 주거이전비, 이사비를 제공하는 등 임시주거와 유사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 말은 거꾸로 세입자가 없으면 사업시행자의 의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건물주들은 이런 허점을 이용해 재개발 이전에 건물을 폐쇄하고 주민들을 내쫓는다. 이들은 건물의 노후화나 리모델링 등 각양각색의 폐쇄 이유를 대지만 정작 재개발이 진짜 이유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쪽방 건물들이 문을 닫으면서 남대문로5가동 주민 수는 빠르게 감소했다. 연말마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쪽방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곳 쪽방과 주민 수는 2018년 11~12월 510실·472명, 2019년 9~11월 470실·404명으로 조사됐다. 1년 새 70명 가까이 줄었다. 올해 3월 홈리스행동은 2019년 자료를 토대로 추가로 생긴 공실과 쪽방촌을 떠난 주민 수를 조사했다. 조사한 결과 431실·376명이 남아있었다. 약 4~6개월 만에 30여 명이 쪽방촌을 떠난 것이다. 이동현 활동가는 “3~4월에 주민을 퇴거시킨 건물도 있다. 지금은 3월 조사결과보다 100명 가까이 더 줄었을 거라고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내쫓기는 동안 개발업자들은 부지런히 재개발 밑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송태 씨가 살던 16-25 건물은 올여름 한 부동산 신탁업체가 손에 넣었다. 해당 업체는 같은 12지구에 위치한 ‘남산집’ 건물(구 623번지)도 차지했다. 12지구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622번지 토지의 경우 두 부동산 개발업체가 각각 21.1%, 7.7%가량의 지분을 매매했다. 그중 한 업체는 작년 여름 625번지 토지도 매입했다. 11지구의 경우 건물 두 채를 제외한 나머지 네 채 모두 부동산 신탁업체 두 곳의 수중에 들어갔다. 모두 작년 하반기부터 벌어진 일이다.
쪽방 건물들의 ‘손바뀜’이 빠르게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원보다는 건물을 지을 때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현 활동가는 “이윤이 창출될 여지가 생기니 건물주들이 주민들을 퇴거시키기 시작했다”며 “갑자기 건물주들이 건물에 금이 갔다거나 팔렸다며 주민들을 퇴거시키면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
쪽방 주민들에게 ‘주거권은 인권’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다. 그래서 길거리 사랑방에서는 노래를 부른다. 활동가들은 어렵고 낯선 구호를 쉽고 익숙한 노래에 담는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활동가는 민중가요 ‘청계천8가’와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정 활동가는 노래 중간에 주민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정치권에서도 누구나 자신이 몸 누일 수 있는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단지 나의 공간과 집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끝까지 마음 함께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공간과 집을 지키기 위해 홈리스주거팀과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재개발 계획이 공람공고된 이후로 꾸준히 공공재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홈리스주거팀은 63명의 주민이 제출한 의견서와 여러 연대단체의 의견서를 모아 중구청에 전달했다. 재개발이 이뤄질 동안 쪽방 주민들이 충분한 세입자 주거대책을 제공받고 이곳에 재정착하려면 토지 등 소유자가 아니라 공공에서 직접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올해 3월에도 남대문로5가동 주민들은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과 힘을 합쳐 각 구청장과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방식’ 요구 서명을 전달했다. 서명은 쪽방 일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영구임대주택을 건설하고, 공사 기간 중 거주할 가이주 단지를 건립하라는 등의 요구를 담았다.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방식은 ‘영등포 모델’로도 불린다. 올해 1월 국토교통부는 영등포 쪽방촌을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추진 태스크포스(TF)에는 국토교통부·서울시·영등포구·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이 참여한다. 기존 쪽방 주민들은 사업 기간 중 선이주단지에서 임시 거주할 수 있으며, 임대주택이 지어지면 보증금을 지원받고 월 3만 2천 원 정도의 주거비만 부담하면 된다.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영등포 쪽방촌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쪽방 주민이 개발 이후 재정착하는 사례가 된다.
지금껏 재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쪽방 주민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또 다른 쪽방이나 고시원, 여인숙을 전전했다. 길거리 사랑방에 참여한 주민 권영태 씨는 “84년도에 양동에서 퇴거당했고, 건너편 연세빌딩 부근에서 퇴거당한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연세빌딩 부근’이란 과거 쪽방이 있었던 남대문로5가 253번지 일대를 뜻한다. 2016년 남대문로5가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이곳 220개 쪽방이 철거되고 28층 높이의 SG타워가 세워졌다. 쪽방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빌딩이 빼곡히 들어차는 가운데 권 씨를 비롯한 수많은 쪽방 주민들은 갈 곳을 점점 잃고 있다.
이제까지 쪽방촌 정비사업은 모두 민간이 주도했다. 모든 개발을 민간이 주도한 가운데 쪽방 주민들 모두 살던 곳에서 쫓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간 조합 측에 있어서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사업성’을 떨어트린다. 2015년 민간 주도로 진행하려던 ‘영등포동4가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무산된 이유도 ‘쪽방 주민 이주대책 수립’이라는 인허가 조건 때문이었다. 공공 개입의 부재가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을 침해한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시와 중구청은 침묵하고 있다. 세입자 주거대책과 임시주거지, 공공임대주택 등을 마련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향후 정비계획을 토지 등 소유자가 제안해 오면’ 그때 검토하겠다는 단서를 달 뿐이다. 중구청은 추후 검토의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지금껏 재개발 과정에서 쪽방 주민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됐던 사례들은 흉터처럼 선명히 남아있다. 주민들이 중구청의 답변을 믿고만 기다릴 수 없는 이유다.
남대문로5가동 주민들의 소원
공공주도 개발의 목적은 결국 주민들의 재정착에 있다. 주민들 대다수는 개발 이후 재진입을 희망한다. 지난해 12월 ‘2019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11지구 주민 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개발 이후 재진입을 희망하는 주민의 비율이 83.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현재와 비슷한 주거도 재진입’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41.0%를 차지했다. 쪽방이라는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도 지금의 삶의 터전을 잃을 순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주민들은 다른 지역의 한층 쾌적한 임대주택을 마다하고 쪽방촌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정부는 쪽방이나 고시원 등 비주택 주민들의 주거 상향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고 있다. 주택물색을 돕고 냉장고와 세탁기 등 필수 가전도 제공하지만, 입주 포기를 막기는 쉽지 않다. 김송태 씨도 지난 6월 사회복지사로부터 중계동 소재의 임대주택 입주 제의를 받았지만, 쪽방촌에 남는 것을 택했다. “갈 사람이 누가 있어요. 다들 갔다가 도로 오는데. 가면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술만 먹고. 여기는 혜택이 많아요. 교회에서 반찬이랑 도시락 다 갖다준다고. 거긴 아무것도 없는데 뭐 먹고 삽니까. 주민센터에서 나오는 쌀 빼고 뭐가 나와요.”

주민들은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알고 지내는 이웃을 잃고 낯선 동네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나, 쪽방촌에 집중되는 각종 혜택 때문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재진입을 희망한다고 응답한 주민들은 가장 큰 이유로 ‘동네가 익숙’(24.3%)하다는 점을 꼽았다. ‘이웃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서’(15.2%), ‘지원서비스가 필요해서’(10.0%) 등의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쪽방 주민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여러 민간단체가 얽혀 사는 곳이 쪽방촌이다. 주민들에게는 더 나은 주거환경뿐 아니라 외로움과 허기를 덜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날 길거리 사랑방은 다 같이 ‘남대문로5가동 주민의 노래’를 부르고 끝났다. “한 평 방에 산다 한들 사람 아니냐. 하나 되어 외쳐보자 주거권은 인권이다.” 행사 내내 큰소리로 호응하던 정기영 씨는 이번 노래가 끝난 후에도 “가자!”라며 크게 외쳤다. 골목 꼭대기 건물에 사는 정 씨는 다음 주 길거리 사랑방의 ‘노래 하나 사연 둘’ 코너에 선다. 주민들의 이야기와 남대문로5가동 주민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