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던 어느 날의 노동

발달장애인 고용 기업의 하루를 살펴보다
▲포장완료된 빵을 트레이에 정리하는 지원 씨

*르포에 등장한 모든 인물은 가명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베어베터: 곰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안녕하세요!” 아침 9시 30분, 베어베터의 하루가 깨어나는 시간이다. 졸리고 피곤할 만한 시간이지만 베어베터에서는 모두가 활기찬 목소리로 서로를 맞이한다. 직원들로 가득 찬 사무실이 복작복작하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몇 가지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간단한 조회 시간이 있다. “우산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묻는 매니저의 질문에 “다쳐요”, “물 떨어져요”, “미끄러져요”라고 곳곳에서 대답했다. 조회 시간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마무리됐다.

  베어베터 발달장애 직원의 근무시간은 일반적으로 4시간이다. 오전 혹은 오후반에서 각각 8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며 인쇄·커피·제과·화훼·배송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그 중 7층 베이커리 작업장을 방문하자 고소한 버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베어베터에서는 발달장애 직원들의 특성에 맞게 생산 과정을 최대한 분할해 진행한다. 베이커리 작업장에서는 빵을 포장지에 넣는 사람, 포장지를 접는 사람, 포장지에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 빵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리는 사람, 포장된 빵을 정리하는 사람 등이 세밀하게 구분돼있다. 

▲포장완료된 빵을 트레이에 정리하는 지원 씨

  안유진 씨는 내포장실에서 비닐 포장지에 빵을 넣는 업무를 하는 중이다. “봉투 안에만 만질 수 있어요. 밖은 기름 때문에 (만지면) 안돼요” 곧 트레이 하나가 잘 포장된 빵으로 가득 채워졌다. 빵을 넣기 전에는 표면에 이물질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 넣어야 한다. “민경씨, 여기 좀 부탁해요!” 일손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도움을 청한다. 시금치 카레빵, 베이컨 소세지빵, 머핀, 쿠키 등 다양한 종류의 제과가 담긴 트레이가 내포장실을 오갔다. 그 중 베이컨 소세지빵은 유진 씨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다. 베이컨 소세지빵은 특이하게 포장지 앞뒷면이 다르다. 유진 씨는 먼저 시범을 보인다. “이 부분을 잡고 빵을 이렇게 넣으면 돼요.” 

  베이커리 작업장에는 종일반으로 근무하는 발달장애 직원들이 많다. 종일반의 경우 아침 9시까지 출근해 4시간을 근무하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4시간을 근무한다. 근속연수가 긴 직원들도 눈에 띈다. 김민경 씨는 올해로 8년 차, 이지원 씨는 5년 차다. 오늘 지원 씨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일손이 필요한 곳 여기저기를 찾아 도왔다. 빵이 가득 찬 쟁반을 옮기기도 하고, 접힌 포장지에 스티커를 가지런히 붙이기도 했다. 칠판에는 직원들이 헷갈릴 만한 포장 방법이 적혀있었다. 머핀 포장은 ‘BETTER COOKIE’라고 적힌 스티커 위쪽에 다시 앙증맞은 동그라미 스티커를 두 시 방향으로 붙여야 하고, 스콘 포장은 ‘BETTER COOKIE’의 ‘OK’ 밑에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여야 포장이 완성된다.

  오후 1시가 넘어가면 8층 사무실에 오후반 직원들이 모인다. 점심시간 이후 2시 전까지의 여유시간 동안 직원들은 휴게 공간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하고, 서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후 2시, 오후반 조회 시간에는 5년 동안 일한 직원들에 대해 시상식이 열렸다. 상장과 꽃바구니, 축하금이 준비됐다. 이한솔 씨는 이미 올해 초에 5년 근무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는 대표님이 직접 상장을 주셨는데, 소감을 발표하라 하셔서 … 민망해서 고개를 못들었네.(웃음)” 한솔 씨는 기자의 나이를 듣더니 본인보다 어리다면서 어쩐지 피부가 좋아 보였다고 까르르 웃었다.

  소소한 조회 시간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오후반 업무 시간이 시작됐다. 베어베터의 배송은 지하철을 통해 이뤄진다. 배송 업무 담당 직원들은 배송 물품, 거래명세서와 인쇄된 지도가 들어있는 파일철, 위치를 알 수 있는 보조단말기기를 챙겨 길을 나선다. 김상호 씨는 오늘 베어베터의 커피 원두를 배송하는 일을 맡았다. 목적지는 효창공원역 부근이다. “(효창공원에 가려면) 신당에서 갈아타야 해요.” 역으로 향하는 상호씨의 걸음이 거침없다.

▲배송지로 향하는 상호 씨

  발달장애 직원 중 많은 수가 지하철을 좋아하고, 지하철 노선도를 다 외우고 있다. 상호 씨 역시 마찬가지다. 상호 씨가 가장 좋아하는 지하철 노선은 3호선이다. 장충체육관으로 갈 수 있는 동대입구역이 있어서다. 상호 씨는 장충체육관에서 각종 운동경기를 즐겨본다고 했다.  특히 배구를 좋아한다. “이번에는 흥국 생명이 이길 거 같아요. 잘해서.” 상호 씨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안혜진 선수의 사진이 있었다. 상호 씨는 야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었다. 야구팀 중에서는 LG 트윈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한때 한화를 좋아했다는 기자의 말에 상호 씨는 “한화이글스요?”라고 되묻더니 잠시 침묵했다.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낮이었다. “비가 오면 물건이 안 젖게 가방을 앞으로 메요.” 효창공원역에서 목적지까지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상호 씨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상호 씨는 배송 완료 후 거래명세서에 싸인을 받고, 보조단말기기를 통해 회사에 연락했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왠지 더 짧게 느껴졌다. 지하철에서 잠시 떨어져 앉게 된 동안 상호 씨는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었다. 평소에는 노래를 들으며 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역에 도착해서 상호 씨의 핸드폰을 보니 ‘슈가맨’에서 나온 장나라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한 시간씩 일찍 퇴근을 한다고 했다. 배송 업무가 끝나면 잠시 대기하다 퇴근한다. 일한 지 삼 년이 다 돼가지만 상호 씨는 단 한번도 출근하기 싫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냐는 기자의 물음에 상호 씨는 아직 이 일이 재밌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배송을 마친 후 회사로 돌아가는 상호 씨의 등은 축축했지만 발걸음은 홀가분해보였다. 

꿈더하기: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흐르는 습한 아침이었다. 일찍부터 상자 가득한 샌드위치와 멸치를 열심히 나르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오전에 제품 배송 업무가 있는 날이었다. 비장애 직원 지윤 씨는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발달장애 직원 창성 씨와 연석 씨가 그 뒤를 바쁘게 쫓았다. 

  오늘 꿈더하기의 첫 배송 장소는 여의도에 있는 이룸센터 회의장이다. 회의장에서는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모임이 이뤄지고 있었다. 상자들을 급하게 나르면서도 지윤 씨는 회의장에 있는 얼굴들이 낯익은 듯 인사를 나눴다. 창성 씨와 연석 씨 역시 밝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운 시간도 잠시, 세 명은 급히 뒤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배송할 곳이 남아있었다. 

  다음 배송지는 영등포구의 자원순환센터였다. 이곳은 예전에 꿈더하기 사무실이 있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 저희 친구들이 출퇴근을 했었죠. 큰 차들이 이렇게 다니니까 (친구들의) 부모님이 많이 걱정했어요.” 지윤 씨가 말하는 사이 쓰레기를 가득 실은 청소차가 옆을 지나쳤다. “쓰레기를 버리기 편한 곳이었다는 게 장점이죠.” 지윤 씨는 쾌활하게 웃었다. 

  오전 아홉시 반에 배송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더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나 꿈더하기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는 미리 만들어 두지 않아, 샌드위치 주문이 있는 날엔 아침 일찍 나오는 수밖에 없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직원들은 오늘 새벽 여섯시 반쯤 출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섯시 반 출근은 되게 양호한 거예요. 더 이른 시간에 주문이 들어오면 새벽 다섯시 반에 출근하기도 하죠.” 꿈더하기는 4층의 사무실과 1층의 카페를 함께 운영한다. 1층의 카페에서는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이 일하고 있다. 

  배송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에 올라가니 열 명 넘는 직원들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4층 사무실  한편에서는 누룽지를 만들고 다른 한편에선 행주를 포장한다.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의 행주들이 작업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낱장의 행주를 비닐에 하나하나 넣고, 색깔별로 100장씩 총 300장의 꾸러미로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다. 네모난 비닐에 꼭 맞게 들어간 행주들이 한쪽에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행주 작업을 하던 진아 씨가 카메라를 발견했다. “카메라로 저 찍어주세요.” 진아 씨는 웃으며 연신 손으로 브이 포즈를 취했다. 기자가 어설프게 비닐에 넣은 행주를 보고 현지 씨가 민규 씨에게 묻는다. “민규씨, 이거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어요.” 민규 씨의 단호한 대답에 한바탕 웃음꽃이 일었다. 

▲행주 포장 작업 중인 민규 씨

  “더운데 물 드셔야 되는거 아니에요?” 물을 가지러 가던 창성 씨가 뒤돌아 다시 묻는다. “얼음물로 드릴까요?” 이내 얼음이 찰랑찰랑한 물 한 컵이 준비됐다. “물 많이 드시고 피부 더 좋아지세요.(웃음)” 지윤 씨는 창성 씨를 ‘작업반장’이라고 소개했다. 창성 씨는 직원 중에서도 단연 에이스다. 배송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창성 씨는 붕어빵 기계와 비슷하게 생긴 누룽지 기계 앞에 서서 누룽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붕어빵 기계처럼 칸칸이 나눠진 기계에 밥주걱으로 현미밥을 나눠담은 후 뚜껑을 닫고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다 되면 핸드폰 하나 정도 크기의 누룽지 과자가 완성된다. 뜨거운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숙달된 두 명의 직원만이 기계를 도맡아 누룽지를 만든다. 창성 씨는 그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꿈더하기에서 발달장애 직원들이 한 업무의 끝엔 비장애 직원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비닐로 포장된 행주를 열 개씩 세어 고무줄로 묶는 등 마무리 작업은 비장애 직원들의 몫이다. 꿈더하기에서 직원들은 각자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한다. “외부에서 보면 이런 면이 적응이 안 될 수 있어요.” 지윤 씨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게 그 친구에게 맞는 일인 거예요.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어떤 친구는 뚜껑을 닫는 게 편한 친구여서 그런 일을 도맡아 하고. 이건 직업이라는 걸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죠.” 

  올해로 꿈더하기는 4년이 다 돼가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성인 발달장애인 열 명을 데리고 무턱대고 시작해서 다양한 난관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속도가 안 났어요.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꿈더하기의 발달장애 직원들이 일을 익히기까지 비장애 직원과 직무지도사가 옆에서 지켜봐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발달장애의 양상과 층위는 다양하지만, 꿈더하기의 직원들은 중증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두어 명의 (직무지도) 선생님으로 (직원 모두를) 커버하기는 어려워요. 1:1로 계속 이야기를 해줘야 해요.” 황당한 일도 겪었다. 꿈더하기의 사무실을 주민센터로 이전할 생각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마주했다.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꿈더하기는 지금 사무실이 위치한 문래동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직원들을 봐왔기 때문일까. 지윤 씨는 발달장애 직원들의 특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아까 현우 씨 보셨죠.” 현우 씨는 행주 생산 라인에서 가장 속도감있게 작업을 수행하던 직원이었다. “현우 씨가 예전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옥상으로 스무 번 넘게 도망갔어요. 선생님들이 계속 올라가서 잡아 오고.” 지윤 씨는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도망가면서 본인도 힘들어해요. 계단 오르느라 다리 아프다고.(웃음) 그런데도 도망가요.” 지윤 씨의 희미한 웃음에 현우 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왔다. 이내 지윤 씨는 직원들 각각의 이야기를 몇 꾸러미 더 펼쳐놓았다. 모두 하나같이 각자의 개성이 분명한 이야기들이었다. 누군가를 오랜 시간 동안 찬찬히 알아가지 않는다면 모를 이야기기도 했다. 

  “만약 다른 곳에서 (발달장애 직원들이)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전 직장에서 뭘 배운거냐는 말을 들으면 안되잖아요.” 지윤 씨는, 그리고 다른 비장애 직원들은 계속 발달장애 직원들과 소통한다. 발달장애 직원들이 하기 힘든 업무는 비장애 직원들이 마무리를 짓는다. 지윤 씨는 오후에도 다른 배송 업무가 있는 듯했다. 정오가 아직 되지 않았지만, 1층 카페에서 대화를 하다가도 지윤 씨는 손목시계를 계속 내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시 십오 분쯤 1층에 도착한 상자들을 보며 지윤 씨는 먼저 일어서겠다며 총알같이 튀어나갔다. 지윤 씨가 떠난 탁자에는 지윤 씨가 살뜰하게 챙겨준 샌드위치와 커피가 놓여있었다. 지윤 씨의 하루는, 꿈더하기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하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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