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의 그린캠퍼스

겉핥기식 행정이 되지 않으려면

  2019년 5월 서울대학교는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 주관의 그린캠퍼스 조성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향후 3년 간, 매 년 1억 2천만 원씩을 지원 받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데 나선다. 사업 1차년도인 2019년 6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서울대는 대기전력을 소모하지 않는 연구실 조성과 그린리더십 백서 발간 등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서울대가 그린캠퍼스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배경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이 주도한 2008년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 이후 10년 넘게 지속된 서울대의 그린캠퍼스 운동이 있다.

그린캠퍼스의 성과는 어디에

  서울대는 2008년 10월에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문을 발표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어 2009년엔 본부 직할로 ‘아시아에너지환경지속가능발전연구소(현 지속가능발전연구소)’를 설립해 관련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다. 2008년 선언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현재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치도 담겼다. 2008년 선언에 참여한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윤순진 소장은 “배출전망치에 대비해 얼마나 줄일지가 아니라 절대량으로 감축 목표를 정했던 만큼 서울대의 2008년 선언은 강력하게 설정됐다”고 회상했다.

  정작 서울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했다. 2019년 서울대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0년에 비해 22% 늘어났으며, 서울대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연속 서울시 내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기관을 차지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2018년엔 1만 5,620톤, 2019년엔 1만 8,757톤의 온실가스를 초과 배출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약 13억 원의 배출권을 구매했다. 2015년부터 실시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따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기관은 배출 할당량을 부과 받고, 할당범위를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백완종 사무국장은 “기관이 통제하지 못한 온실가스에 대한 배출권은 학생들 등록금으로 구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정혜진 연구교수에 따르면 서울대는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에 매년 10억 원 가량을 지출하게 된다.

  서울대 입장에선 몇 가지 억울한 지점이 있다. 윤 소장은 “사람이 몇 명이며 어떤 활동을 하고 건물이 몇 채인지 등 다른 요소가 고려되지 않는 서울시의 통계에서 서울대만큼 규모가 큰 기관이 없다”며 “배출량 비교를 위해선 단위면적당 또는 인당 배출량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의 단위면적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이후 감소하는 추세다. 정혜진 연구교수 역시 “서울대는 24시간 가동되는 연구실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5%를 차지하기 때문에 감축 잠재량이 많지 않다”고 짚었다.

  연구기관이라는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도 정혜진 연구교수는 “서울대가 전체 소비량은 물론 단위면적당으로도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편인 점도 사실”이라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대학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그린캠퍼스 사업엔 친환경을 지향하는 다양한 목표가 포함된다. 2008년 선언에도 2020년까지 캠퍼스 물 자급률을 80%로 높이고 그린리더를 양성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해당 목표들은 얼마나 성취됐을까. 2019년 서울대 상수도 사용량은 170만 3,841m³인 반면 재이용수 사용량은 9,123m³인데, 재이용수 사용량을 전체 물 사용량으로 나눈 수치인 물 자급률은 목표치인 80%에 턱없이 못 미친다. 학생 참여를 도모코자 지속가능발전연구소에서 개설한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의 참여율도 부진하다. 필수 과목인 ‘그린리더십 인턴십’의 경우 정원이 40명인데 작년 여름학기 8명, 겨울학기 9명, 올해 여름학기엔 7명이 신청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들의 그린캠퍼스 사업도 2011년 시작 이후 명확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환경공단 온실가스통계부 복진필 부장은 “그린캠퍼스로 선정된 대학을 3년 지원해도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아 국회에서는 예산을 삭감하려고 한다”며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연간 에너지 사용량이 2,000toe(어떤 물질에서 나오는 에너지양을 석유 발열량으로 환산한 에너지 단위)가 넘는 대학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학생 참여율 역시 저조해 온실가스통계부 윤다교 대리는 “2020년 그린캠퍼스 환경동아리 지원 사업에 40개 단체를 선정하려 했으나 34개만 지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있는 듯 없는 그린캠퍼스

  그린캠퍼스 정책에 별다른 성과가 없는 이유는 대학이 친환경을 부수적인 과제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윤순진 소장은 환경에 대한 고려 없는 무분별한 건물 건설을 지적했다. 그는 “건물이 늘어나면 에너지 소비가 늘 수밖에 없는데 총장이 바뀌면서 지속가능한 운영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단과대학들 역시 그린캠퍼스 사업에 무관심하다고 짚었다. 그는 “단과대학과의 연계를 위해 녹색생활담당자를 정했지만 관련 공문이 전달되고 나서야 자신이 담당자임을 깨닫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사업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인정했다. 정 연구교수는 “물을 재활용하는 중수 시설과 같이 기관별로 따로 운영하는 시설들이 많은데 본부가 이에 대한 통계를 수집하거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본부와 단과대학 간 연계성이 떨어지는 현실도 꼬집었다.

  대학 본부가 전담기관을 대하는 방식에도 무관심이 드러난다. 윤순진 소장에 따르면 총장이 바뀌면서 지속가능발전연구소에 배정되는 예산이 점점 줄었다. 윤 소장은 “지속가능발전연구소는 본부 직할인 만큼 본부 지원이 필요한데 다른 본부 직할 기관과 동일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지속가능발전연구소는 연구소지만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제공하기 때문에 당연히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본부는 ‘연구소니까 연구비로만 충당하라’는 입장”이라며 사업 범위와 예산 간 괴리를 비판했다.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백완종 사무국장

  이런 무관심한 태도는 서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백완종 사무국장은 “그린캠퍼스 조직들의 경우 연구기관은 잘 운영돼도 사무실이 없는 등 행정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 연구교수는 “어떤 대학 교직원의 경우 낮에 친환경 사업을 집행하고 밤에는 본업을 하고자 야근한다”며 서울대 외엔 별도의 전담기관 없이 기존 업무에 겸업하는 형태라 상황이 더 나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린캠퍼스 사업을 집행하면서 대학과 긴밀하게 소통하진 못했다. 6년 간 진행된 기존의 그린캠퍼스 조성 지원금은 연간 4천만 원에 불과했다. 백완종 사무국장은 “4천만 원으로는 그린캠퍼스 취지에 걸맞은 규모의 연속성 있는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비판에 2019년에 들어서야 연간 1억 2천만 원으로 지원금이 증액됐다. 그린캠퍼스 선정 기준에 있어서도 대학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대학 자체적으로 어떤 그린캠퍼스 사업을 집행했는지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지금의 그린캠퍼스 선정 기준 하에선 예산 규모가 작은 대학이 선정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환경문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없어 정부와 대학 그리고 구성원 개개인을 통합하는 거시적 차원의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백완종 사무국장은 “대학이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지역사회의 실천을 담당하는 종합기관”이기 때문에 특수성을 살려 환경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정책적 연구를 통해 학내 구성원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역사회 환경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는 의미다. 대학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도록 국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윤순진 소장은 “대학 내부의 자발성에만 근거하면 동력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이와 동시에 국가가 외부에서 규제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정한 그린캠퍼스가 되기 위해

  진정한 그린캠퍼스 사업을 위해선 대학의 적극적인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해외 대학의 경우 그린캠퍼스 조성을 대학의 기본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며 “대학 자체적으로 그린캠퍼스 사업을 위한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본부가 친환경 사업을 부수적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그린캠퍼스를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친환경 사업 집행 역시 필요하다. 복진필 부장은 “분수대를 만드는 식의 사업 대신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시킬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친환경 업무를 정규화하고 이를 전담하는 담당자도 단위별로 마련해야 한다. 정 연구교수는 “단과대학의 입장에서 온실가스 감축 업무는 상시적인 업무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다”며 대학이 친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해 전담 보직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지속가능발전연구소와 시설관리국의 온실가스·에너지정보관리실

  체계적 협력이 필요한 환경문제의 특성상 본부 당국부터 구성원 개인까지 모두 포괄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환경보호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학 구성원의 협력을 이끄는 행정체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서울대에선 시설관리국과 지속가능발전연구소가 그린캠퍼스 정책을 담당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개인에게 친환경 사업의 존재와 당위성을 전달하지 못한다. 연구소도 이를 인식해 그린캠퍼스 조성 1차년도에 거버넌스를 구축코자 학생 캠페인을 실시해 거버넌스 구축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연구소보다 통합적 역할을 하는 기관을 설립해 상위의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지속가능발전원을 만들어 그린캠퍼스를 정착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학생들의 참여를 높일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지속가능발전연구소가 학생 대상으로 운영하는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으로는 부족하다.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의 15학점 중 12학점을 이수한 A씨(자유전공 17)는 “그린리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없다”며 “수업 내용은 친환경 의식과 능력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린캠퍼스라는 취지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을 들은 적은 없다”고 답했다. A씨는 “그린리더와 그린캠퍼스에 대한 강의를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의 필수과목으로 운영하고 해당 교과과정에 대한 홍보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진필 부장 또한 “일부 학생들만 참가하는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해도 큰 효과는 없고 지도교수 등이 동조해줘야 한다”며 학교와 학생이 별개로 움직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아리 단순 지원을 넘어서, 학생단체와 연대해 대학 사업을 진행하는 등 학생들이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주체가 되도록 행정체계가 개선돼야 한다.

  대학 간의 협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대학이 참여하는 그린캠퍼스 협의회가 활성화돼야 한다. 백완종 사무국장은 “그린캠퍼스 조성을 위한 관계자는 많은데 모두 산발적으로 분포돼 있다”며 “다른 그린캠퍼스 협의회와 연합체를 구성하는 등 조직들의 힘을 합쳐 공유 모델을 만들고 전파하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린캠퍼스 평가 단계에서 협의회원을 초빙하는 등 정부와의 연계가 강화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윤다교 대리는 “연구기관 관계자는 물론 협의회원도 포함된 30인 중 난수추첨을 통해 일부를 평가위원으로 모시되 대학 이해관계자는 제외한다”고 설명했지만 대학의 자발적인 참여가 독려되는 만큼 다른 부문에서라도 각종 협의회와의 긴밀한 연대가 요구된다.

▲한국환경공단 본사녹색관

  대학 차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관련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서울대가 2019년부터 그린캠퍼스 조성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배경엔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THE’의 평가기준에 포함된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여부가 있었다. 윤순진 소장은 “지금까지 서울대는 ‘THE’의 평가 대상조차 되지 못했고 본부에서 이 심각성을 인식해 올해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의 성과를 담는 보고서를 발간하게 됐다”고 전했다. 해외 대학 평가와 달리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엔 친환경과 관련된 지표가 없다. 백완종 사무국장은 “국내 대학 평가 기준에도 해외의 에코 평가와 같이 그린캠퍼스를 측정하는 지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대학은 ‘연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성역이 될 순 없다. 이번 여름 이례적으로 길었던 장마, 50년 후면 한국에서 사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계속해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개인의 의식 고취와 자발적 실천도 중요하지만 효과적 감축을 위해선 제도와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 그간 대학은 투자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린캠퍼스 사업을 외면했으나, 성과가 부진했던 데엔 대학의 무관심에 근거한 통합된 체계의 부재가 있다. 단기적으로 두드러지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린캠퍼스 사업이 무의미하진 않다. 윤순진 소장은 “(환경문제의 특성상) 다소 과감하게 설정된 목표치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수치화되지 않는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그린캠퍼스를 실현할 수 있도록, 환경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관련 업무를 일상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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