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관 앞 천막이 18일간 스러지지 않은 이유

1년에 걸친 서울대 본부와 일반노조 간 단체교섭··· 주요 쟁점은?

  기계, 전기, 미화, 경비. 서울대학교에서 ‘시설관리직’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네 분야다.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없어선 안 될 일들이기도 하다. 실험실과 도서관의 불을 밝히는 전력 공급 시설, 하루면 다 차오르는 쓰레기통 모두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동을 두고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이유다.


  “학교는 일상을 지탱하는 우리의 노동을 천대하지 마라”
  작년 9월 24일 서울대 시설관리직과 생활협동조합(생협) 노동자 350여 명이 참가한 공동집회에서 터져 나온 구호다. ‘일상을 지탱’한다는 표현의 숭고함은 열악한 노동환경 앞에선 허상에 불과했다. 같은 해 8월엔 에어컨과 창문이 없는 한 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10월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못 이겨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지부(일반노조)가 파업을 선언했다. 행정관(60동) 앞에는 18일간 천막이 자리를 잡았다. 파업 이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을까. 본부와 일반노조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단체교섭이란 무엇일까


  모든 노동자는 헌법에 의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 노동자는 단결권의 내용에 따라 자주적으로 노동조합(노조)을 설립·운영할 수 있다. 이렇게 설립된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며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 즉 단체교섭권을 갖는다. 한 사업장에 복수의 노조가 있는 상황에서는, 노조 간에 자율적으로 결정되거나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게 된다. 이렇게 단체교섭을 통해 체결되는 단체협약(단협)으로 임금, 근로시간, 해고 및 정년제, 쟁의행위 등이 정해진다. 이는 사용자가 사업장에 적용하는 취업규칙이나 개별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이기에 그 중요성이 크다. 단협은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최대 2년의 유효기간을 가지므로, 단체교섭도 대개 2년마다 이뤄진다. 다만 단협 중 임금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임금협약(임협)은 매년 체결되는 경우가 많다. 단체교섭이 결렬된 경우엔 노조가 단체행동권을 발휘해 쟁의행위에 나설 수도 있다. 이 때 파업 등의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장관 소속의 노동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시설관리직 노동자들 중 대다수는 직군별 특성에 따라 기계·전기분회와 미화·경비분회로 나뉘어 일반노조에 가입해 있다. 따라서 현재 일반노조가 시설관리직의 교섭대표노조로서 본부와 2년에 한 번 단협을, 매년 임협을 체결한다.

대망의 직접고용, 그 이후 본부와 노조가 걸어온 발자취는


  2018년 3월부터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서울대에 적용되면서, 용역업체를 통해 학교에 간접 고용돼 있던 시설관리직 노동자 760여 명이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직접 고용됐다. 이에 일반노조는 용역회사를 거치지 않고 서울대 본부와 처음으로 단협을 맺게 됐다. 첫 단협은 향후 몇 년간의 단체교섭을 좌우할 기준점이 되는 것이기에 노사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양측은 2018년 말까지 이뤄진 11번의 교섭 내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에 이르러 2차례의 조정까지 거쳤지만 이조차 결렬됐다. 결국 2월 7일, 일반노조는 기계실 4곳을 점거하고 파업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중앙도서관 본관, 관정관, 행정관 등 학내 일부 시설의 가스 중앙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됐고 이는 곧바로 언론에 보도됐다. 2월 12일, 본부는 노조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파업 시작 6일 만에 2018년도 임협을 체결했다.


  결국 임금을 제외한 단협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단협은 5월까지 미뤄지며 2019년도 임금과 함께 논의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일반노조는 9월 24일 행정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일반노조 임민형 기계·전기분회장은 삭발과 함께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고 최분조 미화·경비분회장은 정년을 5개월 남기고 삭발을 했다. 서울대에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던 10월 10일에는 오전 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기계·전기분회 조합원 140여명과 미화·경비분회 조합원 290여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다음 날인 11일, 협상이 잠정 합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양측은 추가 교섭 끝에 12월 18일 교섭을 최종 타결했다. 21차례의 실무교섭과 6차례의 본교섭 동안 쟁점이 된 주요 사안은 ▲명절 휴가비 지급 ▲기본급 인상 ▲근로시간 중 노동조합활동 시간 보장 ▲정년 연장 ▲노동환경 개선 ▲본부 측의 성실하고 정직한 교섭 참여 등 6가지다.

▲명절 휴가비 지급


  명절 휴가비 지급액은 지난 교섭의 가장 주요한 쟁점으로 손꼽힌다. 노조는 명절 휴가비로 기본급의 60%를 설·추석에 나눠서 지급하는 안을 요구했으나 본부가 연 100만원 지급안을 고수하며 대립했다. 노조 측은 법인 직원에게 지급되는 명절 휴가비는 기본급의 120%라는 점을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애초에 연봉 6~7천만 원을 받는 법인직원과 2~3천만 원을 받는 시설관리직 사이에 기본급 차이도 매우 크다”며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법인직원이 받는 비율의 절반 수준만을 달라고 한 것인데, 이것이 결코 과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핵심은 이러한 차이를 ‘불합리한 차별’로 볼 수 있느냐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용자는 파견·용역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시 절감되는 이윤·일반관리비·부가세 등 전체 비용의 10~15%에 해당하는 예산을 전환 근로자의 처우개선에 활용해야 한다. 이때 복지포인트, 명절상여금 등 복리후생적 금품은 불합리한 차별 없이 지급할 것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말은 달랐다. 노조 관계자는 “간접 고용 때 들어가던 비용을 노동자 복지에 쓰라는 가이드라인이 뻔히 나와 있는데도 우리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받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하며 ‘기본급의 ‘120%’와 ‘100만원’은 명백한 차별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본부 측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용역업체로 귀속되는 이윤을 활용한 결과”라며, 타 국립대학의 지급현황 및 사회적 기준 등을 고려해 산정한 액수라고 설명했다. 양측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로 교섭에 임했으나 결국 노조 측이 연 100만원 지급안을 수용했다.


▲기본급 인상


  지난해 농성에선 미화·경비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2월 파업 이후 학교가 시중노임단가 수준의 임금을 약속했지만,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부의 주장은 달랐다. 개정된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범위에는 기본급뿐 아니라 정기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 중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부분까지가 포함된다. 다시 말해,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해도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 등을 합쳤을 때 최저임금을 넘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기본급을 지급하면서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니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는 태도는 본부가 노동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역설했다.

  기계·전기 노동자의 기본급 인상도 논의됐다. 본부는 이들의 임금 총액 예산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표한 제조부문 시중노임단가에 따라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부가 임금 예산 책정의 기준으로 설정한 ‘보일러설치정비원’ 직종의 시중노임단가가 비슷한 업무를 하는 ‘기계장치정비원’이나 ‘전기전자설비정비원’ 직종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노조 관계자는 “본부가 의도적으로 기계·전기 업무와 관련 있는 직종 중 노임단가가 가장 낮은 직종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국 ‘보일러설치정비원’ 직종의 2020년 시중노임단가가 상승함에 따라, 양측은 인상폭을 반영해 기본급에 합의했다.


▲근로시간 중 노조활동 시간 보장


  ‘노조 간부 회의 시간 월 6시간, 전체 조합원 교육 시간 월 1시간 보장’도 노조 측의 주요 요구안이었다. 반면 본부는 ‘간부 회의 시간 단축, 조합원 교육시간 삭제’로 응수하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회의 시간은 물론, 조합원에게 기본적인 노동권이나 안전에 대해 교육할 시간을 학교가 보장하라는 당연한 요구”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용역업체에 의해 간접고용된 당시에는 ‘주 2시간의 조합간부 회의 시간 및 월 2시간의 조합원 교육시간을 유급으로 부여’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본부는 이조차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본부 측의 입장은 노조의 계속된 요구에도 변하지 않았다. 근로시간 중에 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며, 그 시간을 일반노조에게만 특별히 더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근로자가 근로시간 면제 한도의 범위 내에서 근로시간 중에 임금의 손실 없이 노조 유지·관리업무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전체 조합원 규모가 1,000 ~ 2,999명에 해당돼 연간 최대 10,000시간의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적용받는다. 본부는 이 10,000시간이 서울대 내 노조들의 조합원 규모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에, 특정 노조를 우대해 시간을 많이 배정하는 것은 타 노조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본부 관계자는 “다른 노조와의 형평을 생각해 일반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고 노조 요구안 거부의 배경을 밝혔다.

▲정년 연장


  단체교섭에서는 정년 연장에 관한 논의도 이뤄졌다. 현재 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년은 60세이고, 이를 상회하는 정년을 설정하는 것은 노사 간의 자율적인 합의에 달려 있다. 교섭 이전 기계·전기 노동자는 60세 이후에 1년 단위 계약을 5년 간 맺을 수 있었고(단, 2017.4.1. 이후 입사한 신입사원의 정년은 60세), 미화·경비 노동자의 경우 65세 이후 3년간 맺을 수 있었다. 노조 측은 두 직군의 노동자 모두 1년씩 계약을 더 맺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2월 교섭에서 본부가 미화·경비 노동자의 정년 연장을 약속했으나 이후에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지만 본부 측은 “정년 연장은 정부의 고령자 정책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문제”라고 반박했다.

  한편 노조 관계자는 교섭 당시 본부가 ‘법인직원보다 긴 정년을 요구하는 건 차별적으로 혜택을 받겠다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돌이켰다. 그는 임금, 명절휴가비, 복지 등에서는 법인직원과 차별을 두고 있는 본부가 정년에 있어서만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결국 본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며 시설관리직 노동자의 정년은 그대로 유지됐다.


▲노동환경 개선


  2019년 8월 302동 청소노동자의 사망 이전부터,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본부에게 휴게 공간과 샤워장 등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해왔다. 서울대가 국정감사 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노동자 휴게실 146곳 중 ▲냉·난방시설이 없는 곳은 33곳 ▲지하에 설치된 휴게실은 23곳 ▲환기설비가 없는 휴게실은 9곳 ▲내화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휴게실은 27곳 ▲침대·침구류 등을 비치하지 않은 휴게실은 56곳이었다. 농업생명과학대학 지하 휴게실, 수의과대학 여성 휴게실, 글로벌사회공헌단 여성 휴게실은 지하주차장과 가까워 자동차 매연이 그대로 들어오는 상태였다.

  본부 측도 단체교섭 당시 시설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본부는 시설관리직 노동자의 휴게시설 개선 계획안을 제시하고 단계적인 개선을 약속했다. 노조 관계자도 “이 부분만큼은 확실히 좋아졌다고 생각한다”며 “기존에 노동자들이 알음알음 구해서 사용했던 책상, 의자, 컴퓨터 등의 사무집기를 본부가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본부 측의 성실하고 정직한 교섭 참여


  노조 측은 “본부가 매 교섭마다 전에 했던 약속을 뒤집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교섭을 진행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이 요구안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21차례의 실무교섭과 6차례의 본교섭에 이르기까지 노사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책임이 본부의 말바꾸기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본부 측은 “관계법령이나 정부정책,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교섭에 임하다 보니 노조 입장에서는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노조 관계자는 “회의록을 만들어 교섭 내용을 성문화하자고 제안했지만, 본부 측은 그런 규정이나 전례가 없다며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결렬에서 합의까지, 멀고도 험했던 여정


  수많은 의견과 요구안, 때로는 고성과 불신을 주고받으며 노사 양측은 합의점에 도달했다. 행정관 앞을 지켜오던 천막은 사라졌고, 18일째 단식 농성을 해온 임민형 기계·전기분회장은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 입원해 일주일 간 치료를 받았다. 그는 “10월의 새벽은 정말 추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해 9월 24일, 일반노조와 생협 노동자들이 행정관 앞에서 공동집회를 열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속 임민형 기계·전기분회장이 18일 간의 천막농성과 단식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여동준 사진기자

  이 합의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더 이상 피해를 줄 수 없었고, 노조 내부에서도 농성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해 본부 측에 많은 부분을 내주고 도달한 합의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본부는 “정부정책과 관계법령의 범위 내에서 가급적 원만히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뤄내고자 했다”고 자평했다. 법이 정해놓은 범위는 꽤 넓었고, 그 틈 어딘가에서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받을 대우가 정해졌다. 노사 양측은 그 틈 안에서 작년의 쟁점을 발전시켜 내년 단협 교섭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들의 교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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