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소비자만 변하면 되는 걸까. 소비자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환경을 위해 편리함을 포기하고 쓰레기를 줄이려는 소비자의 실천도 지속가능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뭘 하든 다 쓰레기’가 되는 세상에서 포장재 관련 시스템을 책임지는 기업과 정부가 혁신을 꾀해야 할 이유다. 기업과 정부가 포장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배보다 큰 배꼽, 과대포장의 늪
최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샴푸를 주문한 A 씨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까도 까도 끝없이 나오는 포장 때문이었다. 택배 상자를 열자 비닐포장이 등장했고, 비닐을 뜯자 에어캡(일명 ‘뽁뽁이’)에 말려있는 종이박스가 있었다. 종이박스를 열자 비로소 플라스틱 용기 안에 있는 샴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과도한 포장재 사용으로 포장폐기물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6월 환경부는 ‘재포장 금지법(제품의 포장 재질·포장 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대형마트 등에선 할인행사를 진행할 때 여러 개의 제품을 비닐, 테이프, 박스 등으로 묶어서 재차 포장해왔는데, 재포장 금지법은 이렇게 이미 포장된 제품을 제품 판촉만을 위해 불필요하게 재포장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 재포장을 금지하면 할인행사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반발이 일면서, 정부가 업계와의 상의도 없이 할인판매를 금지하려 한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이에 환경부는 제조사, 유통사, 소비자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세부지침을 보완한 뒤 내년 1월부터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여성환경연대’ 김영희 시민참여팀장은 “업계에서 재포장 금지법에 대해 몽니를 부린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재포장을 하지 않더라도 편의점의 1+1 판매 방식처럼 소비자들이 직접 여러 개의 제품을 골라 계산 시 할인을 받는 형태라면 할인행사를 운영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재포장 금지법의) 핵심 규제대상은 할인이 아니라 과대포장이었는데 마치 할인까지 규제하는 법안인 것처럼 업계에서 꼬리를 잡으면서 오해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환경부가 업계와 상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김 팀장은 “재포장 금지법은 작년 1월에 입법예고된 후, 환경부와 업계가 1년간 20차례 정도 간담회를 하며 협의해온 법”이라며 반박했다.
기업들이 재포장 금지법에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린피스’ 김이서 활동가와 ‘녹색연합’ 허승은 활동가는 결국 매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 활동가는 “재포장을 통해 (상품을) 묶어놓으면 소비자는 한 개를 사려고 했어도 서너 개를 살 수밖에 없다”며 “제조사와 유통사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매출을 극대화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자사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행태로 인해 포장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치마저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기업들의 태도를 비판하며, 포장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재포장 금지법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재포장 금지법이 시행되기만 하면 소비자 A 씨는 샴푸를 ‘딱 필요한 만큼만’ 포장된 상태로 받아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과대포장 문제를 뿌리 뽑는 것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재포장 금지법에서 명시한 규제 대상의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재포장 금지법은 매장에서의 재포장만을 다루기 때문에 제품의 생산 및 제조과정을 포괄하지 못한다. 공장에서 라면 5개가 한꺼번에 재포장된 상태로 출고된다면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재포장 금지법은 오프라인 매장에만 적용되므로 온라인 주문 시 주로 문제가 되는 택배 포장은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A 씨는 직접 매장에 방문하지 않는 이상 샴푸와 함께 무더기의 포장재도 배송받게 된다.
따라서 재포장 금지법이라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넘어 과대포장에 대한 기존 규제의 구멍을 메우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2019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정책보고서를 발표하며 기존 규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은 불필요한 포장폐기물을 감량하기 위한 포장횟수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엔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포장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예외규정이 존재하는데, 이는 택배 물동량의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규정이다. 과대포장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에 대해서도 추가적 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어디에나 있지만 잡히지는 않는 일회용 플라스틱
A 씨는 샴푸를 꺼내고 난 뒤 종이박스뿐만 아니라 겹겹이 쌓여 있는 비닐과 ‘뽁뽁이’도 발견했다. 비닐과 에어캡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의 일종이며,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증가하고 있는 음식배달 용기 역시 일회용 플라스틱에 포함된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발간한 ‘일회용의 유혹, 플라스틱 대한민국’ 보고서에 따르면 과대포장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은 생활계 폐기물의 주축을 이루며 지속적으로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지난 6월 환경부는 커피숍 등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일회용 컵에 대해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2022년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02년 업계와의 자발적 협약으로 추진된 보증금제가 2008년에 폐지된 이후 12년 만에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업계와의 자발적 협약에만 기댄 기존 방침의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김영희 팀장은 “환경부와 일회용품 줄이기 협약을 맺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모니터링한 결과, 일회용품 사용량이 오히려 평균 이상인 경우도 많았다”며 “자발적 협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장에서 열 가지가 넘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진로이즈백’ 관련 사태는 업계의 자발성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는 점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하이트진로가 해당 제품에 표준 소주병과 색깔과 모양이 다른 병을 사용하자 그간 주류업계가 협력해 지탱해온 소주병 재활용 시스템이 무력화됐다. ‘환경운동연합’ 백나윤 활동가는 이를 “기업들 간의 자발적 협약에 대해 환경부가 어떤 규제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분석했다. 유명무실해질 위험이 있는 자발적 협약보다는 확실한 법적 조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2018년 환경부와 5대 대형마트가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을 위해 맺은 자발적 협약을 모니터링한 그린피스의 보고서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업체들이 협약 내용을 일부 이행하긴 했으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이행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자발적 협약이 적극적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다.

기업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관리하기 위해선 구속력 있는 제도가 필수적이지만 정부는 아직 적확한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희 팀장은 “한국의 일회용 플라스틱 정책은 아직 일부 품목에 대한 건 단위의 규제에 머물러 있다”며 포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환경부에서 발표한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은 2022년까지 플라스틱 재질의 일회용 컵, 배달용기, 빨대, 비닐봉투 등에 대해 무상제공을 금지하거나 사용금지 업종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생활 속에서 쓰이고 있는 수많은 일회용 플라스틱이 누락됐다”고 말했다. 누락사항에는 ‘과일이나 채소를 소분 포장할 때 쓰이는 비닐 포장재나 제품 포장용 PVC랩, 과자 봉지, 음료 용기 등 대부분의 플라스틱 포장재’가 포함된다. 일부 품목에 대한 자발적 협약보다는 법적 정의를 통한 통합적인 규제 체계가 요구되는 이유다.

‘친환경’ 대체재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소비자 A 씨는 샴푸 통에 ‘이 용기는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제작됐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것을 보고, 택배의 산더미 같은 포장재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 샴푸 용기가 땅에서 썩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A 씨는 안심했다. 이처럼 늘어나는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생분해 플라스틱 사용을 홍보하는 친환경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친환경’을 표방하는 대체재가 정말 실속 있는 대책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허승은 활동가는 “생분해성은 원래 퇴비화 조건에서 땅에서 썩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작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의 설명서를 보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고 써 있는 경우가 많다”며 “대다수의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반쓰레기로 분류돼 소각장에서 태워진다”고 지적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자연스럽게 썩을 것이라는 소비자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논평을 통해 ‘생분해 플라스틱은 58(±2)℃ 조건에서 6개월 동안 뒀을 때 90% 이상 생분해됐는지 여부에 따라 생분해 인증을 받을 수 있지만, 자연에서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환경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자연에서 58도가 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생분해 개념 자체가 아직까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렇듯 생분해라는 개념엔 오해의 소지가 많지만, 광고에서 이를 엄밀하게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환경부에서 제작한 ‘분해성 관련 환경성 표시·광고 바로 알기’에 따르면 ‘100% 생분해’라는 표현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생분해 시험은 특정 퇴비화 조건에서 실현된 것이므로 ‘자연 분해’라는 표현 역시 금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터넷에 ‘100% 생분해’ 혹은 ‘자연 분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최소 수백 개의 상품이 검색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광고 문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등 거짓되거나 과장된 환경성 표시를 통해 소비자의 오인을 부르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이 바로 ‘그린워싱’이다. 최근 환경부가 그린워싱을 규제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모든 그린워싱 행태를 단속하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허승은 활동가는 “(정부가 그린워싱 광고를) 일일이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그린워싱을 근절하려면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나윤 활동가 역시 “정부가 그린워싱에 제재를 가하기는 쉽지 않다”며, “기업의 이중적인 태도는 시민들을 속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생분해 플라스틱 외에도 종이 역시 기업의 친환경 마케팅에 활발히 쓰인다. 종이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환경단체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영희 팀장은 “현재 포장에 쓰이는 종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코팅종이의 코팅재 부분은 플라스틱이고, 종이 자체도 숲을 해치면서 만들어진다”며 과도한 종이 사용도 환경에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직 코팅종이의 친환경성에 대한 사회적 숙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팀장은 “그럴듯해 보이는 대체재를 통해 상품을 많이 파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친환경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구호보다는 실천과 책임
소비자 A 씨의 일상은 결국 기업과 정부가 이끄는 거대한 시스템과 연결돼있다.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과대포장된 택배를 받고, 생분해라는 정보를 그대로 믿으며 제품을 구매할, 수많은 소비자 A 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환경을 경시한 채 매출에만 몰두하고, 정부는 핵심을 짚지 못하는 허술한 규제를 방치하는 상황에서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최근 정부는 이른바 ‘그린뉴딜’을 발표하며 환경 정책에 주력할 것을 천명한 바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린뉴딜의 목표가 분명하게 설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요사업에 폐기물 관리 시스템 개선 방침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환경부 예산안을 보더라도 폐기물 문제를 완화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환경부 예산 11조 777억 원 중 폐기물관리사업 예산은 127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0.1%만을 차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그 중 100억 원은 화석발전의 주축인 석탄 재활용에 배당됐으며, 다회용 포장재 재사용 촉진 지원에 투입될 예산은 4억 원에 불과하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뿐인 정부 정책에서 환경 파괴의 핵심인 폐기물 문제는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지고 지속가능한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매출을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혹은 ‘그린’이라는 허울뿐인 수식어로 환경문제를 무마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기업과 정부가 ‘친환경’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넘어 진정성 있는 실천과 책임을 보여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