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포장을 뚫고 균열을 일으키다

소비자, 생산자,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가 바꿀 우리의 미래
▲2020년 7월 2일, 서울 이마트 성수점 앞에서 활동가들이 플라스틱 어택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녹색연합

  지난 2018년, 중국이 플라스틱 등의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면서 국내에서 배출된 쓰레기가 수출되지 못한 채 쌓이기 시작했다. 폐기물 가격은 폭락했고, 수익을 낼 수 없게 된 재활용업체들이 폐기물 수거를 포기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0년 현재, 코로나19 유행으로 ‘언택트 소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배달음식 수요와 택배 물량이 급증했다. 연일 ‘쓰레기 포화 상태’라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 쓰레기 산을 마주하고 있다. 두려울 만큼 쌓인 쓰레기들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돼 자연과 동식물을 거쳐 다시 인간의 몸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정말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게 된 것이다. 

플라스틱, 안 쓸 수는 없나요
  눈 앞에 닥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나와는 무관하다’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백나윤 활동가는 “경제나 질병 등에 비해 타격감이 직접 느껴지지 않아서 환경 파괴의 영향이 인간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인간이 지구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환경문제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폐기물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단지 좋아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환경을 돌봐야 하는 ‘필(必)환경’ 시대가 됐다. 


  ‘필환경’이라는 구호 아래, 일상 속에서 환경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인이 환경 보호를 위해 기울일 수 있는 기본적 차원의 노력으로 일상 속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환경 캠페인인 ‘제로웨이스트’가 있다. ‘알맹상점’의 양래교 공동대표는 “제로웨이스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후 환경 운동의 장벽이 낮아졌다”고 봤다.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사기’를 원하는 제로웨이스트 행동가들의 수요에 발맞춰 ‘제로웨이스트 매장’도 등장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선 고객들이 일회용 포장재 대신 직접 가져온 용기에 물품을 담아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장기간 사용할 수 있고 폐기 후의 순환까지 고려한 제품들만 판매한다.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은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 매장이다. 이곳에선 친환경 세제, 화장품, 향신료 등을 포장재 없이 소분해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 재활용 이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내는 제품으로 바꾸는 업사이클링을 넘어 소비 단계부터 폐기물 감축을 헤아리는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을 추구하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일상에서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는 한편, 불필요한 포장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외부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알맹상점의 모태인 자원활동가 연합 ‘알맹’은 2018년부터 망원시장에서 손님들에게 비닐봉투 대신 에코백을 대여하는 사업을 펼쳤다. 비닐을 사용하는 데 익숙한 시장 상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알맹의 활동가들이 오랜 시간 상인들과 소통한 끝에 100여개의 상점 중 16~7군데 정도가 비닐봉투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는 데 합의하는 성과를 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사업은 잠시 축소됐지만, 망원시장에 시작된 변화의 물결은 멈추지 않았다. 양래교 대표는 “옛날엔 빈 용기를 들고 가서 담아 달라고 하면 귀찮아하셨는데, 이젠 오히려 음식을 덤으로 더 넣어주시기도 하고 칭찬하시기도 한다”며 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불필요한 쓰레기 생산 중단을 기업에 직접 건의한 사람들도 있다. 소비자단체인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은 지난 2월 유제품을 구매한 뒤 멸균팩에 붙어 있는 빨대를 모아, 빨대 없는 패키지를 건의하는 손편지와 함께 ‘매일유업’에 반납하는 ‘빨대는 반납합니다’ 운동을 펼쳤다. 소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남양유업’에 대해 2차로 진행한 캠페인에선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다. 남양유업은 소비자들을 초청해 제품 포장에 관한 의견을 듣고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혁신을 모색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고, 이후 서울시 새활용플라자와 합의해 빨대 반납함을 설치했다. 쓰담쓰담의 클라블라우 대표는 “나 혼자 기업에 건의한다고 바뀔까 의심하는 분들이 많지만, 숫자 0과 1은 무와 유의 차이”라며 소비자의 능동적 의사표현을 강조했다.


  환경단체 차원에서 유통업계의 무분별한 과대포장에 경각심을 주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8년 3월 영국에서 시작된 ‘플라스틱 어택’은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에서 구매한 물건이 과대포장돼 있을 경우, 내용물만 준비한 용기에 옮겨 담고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투는 매장에 그대로 두고 오는 운동이다. 2018년과 2020년,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은 ‘플라스틱 어택’을 국내에 도입했다. 이들은 대형 유통업체 3사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기업 고객센터에 항의 이메일을 보내는 동시에, 제품을 구매한 후 포장재 사진을 찍어 SNS에 ‘#과대포장 아웃 #묶음포장아웃 #플라스틱어택’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하는 온라인 운동도 이끌었다. 환경단체들은 지금도 기자회견과 선언문 등을 통해 유통업체의 과대포장을 강력하게 규탄 중이다.

▲2020년 7월 2일, 서울 이마트 성수점 앞에서 활동가들이 플라스틱 어택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녹색연합

  이처럼 환경단체들은 개별 소비자들의 ‘필환경’ 의지를 보다 조직적으로 기업과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지난 5월 환경운동연합은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킹’ 사업의 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포장 쓰레기를 많이 배출한 제조업체 순위를 선정해 발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순위권에 오른 기업들에게 지금까지 폐기물 감축을 위해 노력한 내용과 향후 5년간 감축 계획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일부 기업은 요청에 성실히 답변했지만 아예 무응답으로 일관한 기업들도 있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지속적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폐기물 감축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에 변화를 촉구하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도 줄이고 싶어요
  점차 증대되는 소비자의 환경 의식은 포장재 생산자인 기업에 압력을 행사한다. 이에 일부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포장재 감축을 선언하고 혁신을 꾀하는 ‘환경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올해 7월 식품업체인 ‘동원 F&B’가 필환경 소비 트렌드에 맞춰 ‘에코챌린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제품 전반의 포장재를 감축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동원 F&B는 조미김의 플라스틱 용기를 없애고 포장의 부피를 줄인 ‘양반김 에코패키지’를 출시해 포장용 플라스틱과 비닐, 종이를 절감했다. 배송업계는 재사용 활성화에 나섰다. ‘헬로네이처’는 2019년 7월, 배송 박스를 재사용하는 친환경 배송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시행했다. PE 우븐 소재로 만들어져 재사용이 가능한 ‘더그린박스’에 상품을 담아 배송해주고, 다음 배송 때 ‘더그린박스’를 회수해 세척한 뒤 재사용한다.


  이런 기업의 시도와 더불어 ‘ESG’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시장의 추세는 고무적이다. ESG는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약자로, 환경, 사회공헌, 지배구조와 같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의미한다. 즉 ESG 투자는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경영을 지향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을 말하는데, ESG 투자가 확대될수록 환경경영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글로벌 ESG 상장지수펀드는 2015년 60개에서 2019년 270개로 증가했는데, 이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환경 보호’라는 공익적 차원의 목표만이 아니라 수익성 측면에서도 기업이 환경경영을 채택할 유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이상 환경과 경제는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이병욱 교수(환경경영 전공)는 “기업이 환경을 중시한다고 해서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컨셉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경영은 기업의 창의성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은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만 미치면서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태효율성(eco-efficiency)을 달성하기 위해 원료, 공정, 제품까지 모든 단계에서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나아가 근본적인 변화까지 상상해야 한다. 이병욱 교수는 국내 산업구조 전반을 개혁해야만 폐기물 감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의 생산 과정을 이해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플라스틱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부터 만들어진다. 원유에서 나프타를 얻은 후 나프타를 분해하는 ‘크래킹’ 공정을 거쳐, 이를 중합해 나온 고분자화합물 ‘폴리머’가 PE, PP 등 플라스틱의 원료가 된다. 한국은 중동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고 정제해 재수출하는 석유화학산업에 주력하고 있어 유독 플라스틱 원료가 많이 생산된다. 따라서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려면 애초에 석유화학업계에 대한 산업 의존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병욱 교수가 “애초에 지금의 산업구조에선 (플라스틱 절감을 위한) 과감한 변화를 감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석유 이후의 시대를 상상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자원순환 시스템을 지탱하는 두 축

  소비자와 기업의 움직임이 단발적인 시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이들을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재활용’과 ‘재사용’이라는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현재의 재활용 시스템은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결정적인 문제 중 하나는 국내 재활용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 통계다. 환경부는 2018년 기준 86.1%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재활용률을 발표했지만 이는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 수치다. 백나윤 활동가는 “환경단체에선 실질적으로 폐기물 10개 중 3개 정도만  재활용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86.1%라는 비율은 폐기물이 재활용 업체로 투입되기만 하면 재활용된 것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인 것이다.


  재활용 시스템이 가진 또 다른 허점은 재활용되지 못한 폐기물이 소각·매립된다는 것이다. 불순물이 묻어 있는 폐기물이나 PE, PP, PET 등이 섞인 혼합재질의 플라스틱의 경우엔 원료로 재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간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선별 작업을 거쳐 소각하거나 매립한다. 소각과 매립은 대기와 수질, 토양을 오염시키고 유해물질을 발생시킨다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재활용을 대신할 보다 지속가능한 대안은 ‘재사용’이다. 다회용기 사용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구체적인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녹색연합 허승은 활동가는 언택트 소비의 증가로 배달음식 일회용기 사용이 폭증한 상황에서 “내일 당장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며 “식품의 경우 포장재를 아예 안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개인 사업자가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중국음식점이다. 과거 중국음식점에선 용기 재사용이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오늘날엔 그렇지 못하다. 용기를 재사용하기 위해선 배달원에게 배달과 수거라는 두 번의 노동이 요구되는데,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현재는 다수의 중국음식점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 용기나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고 있다. 


  일회용기 낭비의 심각성을 절감한 창업가들은 이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행사나 축제 등에 식기를 대여하고 이후 수거해 세척하는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아직 배달 업계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진 않았지만, 활동가들은 다회용기 스타트업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에 기업과 정부가 해당 스타트업을 다방면으로 지원해, 수거와 세척, 재사용까지 이어지는 인프라 확립에 힘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활용과 재사용을 중심으로 한 자원순환 시스템으로 이행하기 위해선 정부기관이 리더십을 가지고 기업의 의식 있는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은 포장재 폐기물의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9년 1월 1일부터 ‘신포장재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안은 기업에게 포장재 등록 의무를 부과하고 기업이 포장재의 회수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강제한다. 또한 독일은 회수, 분류, 재활용을 관할하는 ‘듀얼 시스템’을 통해 모든 포장재를 중앙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 정부 역시 올해 5월 26일부터 시행된 ‘자원순환기본법’을 통해 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하고 자원 순환을 지향한다는 정책 목표를 밝혔다. 이에 따라 생산자인 기업에게 판매 이후의 재활용과 처리에 관한 책임을 물어 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수립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현행 EPR 제도는 아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0억 미만의 매출을 내는 기업에겐 분담금이 면제되고, 아직 재활용 의무대상 품목이 한정적이라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것이다. 백나윤 활동가는 “10억 이상의 매출을 내는 업체가 매출액을 조작해서 분담금을 피해간 사례도 있다”며 EPR 제도의 허점을 꼬집었다. 

  소비자의 관심은 포장재의 생산자인 기업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개별 소비자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산자 역시 환경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소비자에게 환경을 보호하는 선택지를 제공해야만 한다. 생산자가 환경친화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규제하는 인프라를 다지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결국 늘어나는 포장재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타성에 기대다보면 절대 포장재를 벗겨낼 수 없다. 우리가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환경을 후순위로 미루는 현재의 구조와 인식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에게 ‘PLAN B’는 있지만, ‘PLANET B’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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