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뭐길래

《가짜사나이》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민낯
▲《가짜사나이》 1기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캡쳐

  올해 7월 시작한 웹 예능 《가짜사나이》는 특수부대식 훈련을 통해 유튜브 방송인(유튜버)들을 ‘정신 개조’시킨다는 기획에서 시작된 유튜브 콘텐츠로, 전술 컨설팅 회사인 ‘무사트(MUSAT)’와 인기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가 함께 제작했다. “4번은 개인주의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 숱한 유행어를 낳으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가짜사나이》는 2기 방영 도중 가학성과 출연진의 신상에 관련된 논란으로 방영을 중단했다.

▲《가짜사나이》 1기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캡쳐

  하지만 《가짜사나이》의 ‘진짜’ 문제는 단순히 출연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방영은 중단됐지만 《가짜사나이》 신드롬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가짜사나이》는 ‘특수부대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군대조직의 억압적인 문화를 정당화하고 이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며 비뚤어진 가치관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가짜사나이》 에 나타난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죽을 고생으로 ‘진짜’ 되기

 《가짜사나이》의 최초 기획은 일반적인 체력을 가진 출연자들을 섭외해 특수부대식 훈련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1기의 주제는 ‘각성과 감동’으로, 훈련을 소화하면서 출연자들이 나약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의미다. 논란이 된 2기는 ‘고생’이라는 보다 노골적인 테마를 앞세워 평균 이상의 체력을 가진 출연자들을 대상으로 혹독한 특수부대 훈련을 진행했다.

▲《가짜사나이》 2기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캡쳐

 《가짜사나이》 1기와 2기가 공통으로 표방한 것은 군대식 훈련을 통해 출연진의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관들은 공포 분위기를 연출해 출연진을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게 만들었다. 욕설과 인신공격성 폭언을 반복하는 것은 물론, 실제 군에서도 금지된 머리 박기(소위 ‘원산폭격’)를 비롯한 얼차려를 주거나 ‘긴급 비상 훈련’을 명목으로 자는 출연진을 깨우고 침대를 발로 걷어차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훈련 내용은 대체로 특수부대에서 진행되는 훈련을 모방한 것으로 군대식 체조, 해상침투용 고무보트 들기 등이다. 2기에선 참가자들을 해안가에 일렬로 눕혀 입수시킨 뒤 저체온증에 빠진 출연자를 기어 나오게 하는 등 강도 높은 훈련이 추가됐다. 여기서도 교관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여지없이 얼차려가 주어졌다. 팔에 힘이 풀려 무거운 고무보트를 들지 못하는 출연자에겐 ‘개인주의’에 ‘팀워크가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따라붙었다. 팀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교관들은 끊임없이 ‘협동심’을 강조하며 본인의 명령 아래 출연자들을 단합시켰고, 반복되는 얼차려 속에 출연자 개개인은 나약한 자신이 ‘민폐’라는 점을 반성하며 어느새 교관의 명령에 순응하는 ‘진짜’ 사나이로 거듭난다.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팀장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팀장은 “《가짜사나이》는 사람을 극한상황으로 내모는 것을 마치 인간개조인 것처럼 포장한다”고 비판했다. 방 팀장은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므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지,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사람에게 고통을 가해 원하는 성과를 뽑아내는 것을 우리는 ‘고문’이라고 부른다”며 “이런 훈련방식은 실제 군인들에게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박노자 교수(한국학)는 《가짜사나이》가 표방했던 ‘정신 개조’는 “하기 싫은 것도 잠자코 하게끔 만드는 훈련”으로, 이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를 “경쟁이 치열할 뿐이지, 든든한 경제적 배경을 가진 소수가 아니라면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어진 사회”라고 진단하며 “이런 사회 속에선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기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물리적·정신적 폭력까지도 묵묵히 견뎌내는 ‘투사’가 돼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가짜사나이》와 같은 군대식 캠프들은 이런 ‘투사’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정신 개조’라는 《가짜사나이》의 기획 이면엔 고통에 대한 무조건적 인내를 강요하는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진짜 군대’ 그리고 ‘진짜 남자’

  동시에 《가짜사나이》는 ‘진짜 군대’의 재현을 표방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가짜사나이》는 MBC에서 방영됐던 군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해 탄생했는데, 여기서 보여준 군대의 모습은 ‘가짜’고 《가짜사나이》가 새롭게 보여주는 군대의 모습이야말로 ‘진짜’라는 것이다.

  방혜린 팀장은 《가짜사나이》가 ‘진짜’ 군대의 모습을 표방하며 인기를 끄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지적한다. 방 팀장은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군대의 모습은 화목한 분위기에서 병사들이 서로 돕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인데도, 가혹행위가 난무하는 《가짜사나이》를 보며 ‘진짜 군대’라며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 팀장은 “지금까지 군에서는 폭력으로 인한 안타까운 사망사고들이 잦았다”며 “여러 사고를 겪으며 군 당국이 군대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가짜사나이》는 폭력을 마치 정신개조를 위한 좋은 수단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폭력에 대한 저열한 욕망을 끌어내고 폭력을 보편화했다”고 비판했다. 

《가짜사나이》 속 진짜 군대를 구성한 것은 ‘진짜 남자’다. 특수부대 출신으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교관은 ‘진짜 남자’, 그렇지 않은 출연자는 ‘가짜 남자’라는 구분 아래, 진짜 남자들이 가짜 남자들을 ‘진짜’로 탈바꿈시키고자 한다. 방혜린 팀장은 이렇게 진짜 남자와 가짜 남자를 가르는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방 팀장은 《가짜사나이》가 표방하는 진정한 남성상을 “힘이 세고 건강하며 위계질서에 잘 적응하는 남자”로 요약하며 “실제 군대에서도 이런 사고방식 아래서 ‘남자답지 못한’ 소극적인 남성들, 성소수자, 여성들이 무수한 폭력과 차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중시하는 남성성의 전형이 군대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에 위계를 형성해 약자를 혐오·배제하는 문화를 유발해왔다는 설명이다.

  박노자 교수는 《가짜사나이》가 전시했던 마초적 남성성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은 힘을 위시하는 한국 사회의 군사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는 군사문화에 기대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힘’을 숭배하고 신뢰하는 사회가 됐다”면서 “힘에 대한 숭배가 물리적 완력을 지닌 남성들을 동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힘을 가진 상위의 남성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도 남성성의 조건이 됐다. 《가짜사나이》는 이런 마초적 남성성을 흥행요소로 활용하면서 ‘진짜 남자’라는 가상의 이미지를 생성해 확산시킨다.

▲《가짜사나이》 1기 스틸컷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캡쳐

  그래서 《가짜사나이》 속 ‘진짜 되기’ 과정에서 훈련을 견뎌내지 못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인 ‘가짜’ 남성들에겐 얼차려와 함께 대중의 비난이 쏟아졌다. 1기에선 체력이 달려 훈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출연자 공혁준 씨에 대한 인신공격성 댓글이 난무했다. 네티즌들은 공 씨를 “인간 실격”이나 “폐급(군대에서 ‘쓸모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까지 비하했다. 2기에서도 훈련 중 각막을 다쳐 훈련을 중단한 출연자 오현민 씨를 두고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사람들의 내면은 병들어왔고, 이런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약한 사람들은 ‘이지메’의 대상이 된다”고 분석했다. 《가짜사나이》가 제시한 ‘진짜’의 기준에서 배제된 출연자들은 손쉽게 비난의 대상이 됐고, 이런 집단적 비난 정서가 《가짜사나이》 신드롬을 만드는 데 일조한 셈이다.

자극적인 장면 뒤에는

  일부 언론과 문화비평가들은 《가짜사나이》가 방영 초기 흥행에 성공했던 원인으로 ‘리얼함’을 꼽았다. 지상파 방송에선 볼 수 없는 사실적인 경험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짜사나이》의 리얼함은 지상파 방송이 보여주지 않는 리얼함이 아니라, 보여줄 수 없는 리얼함이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직접적으로 적용받는 지상파 방송은 가학적인 내용이나 폭력을 조장·정당화하는 내용을 송출할 수 없는 반면 해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는 이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가짜사나이》의 리얼함은 폭력적인 내용을 지상파보다 생생하게 담아낸 데서 나온다.

▲《가짜사나이》 2기에 등장한 위험천만한 수중훈련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캡쳐

 2기엔 1기에서보다 가학적인 장면들이 더 많이 등장했다. 방혜린 팀장은 무엇보다 출연자들의 안전을 우려했다. 방 팀장은 “과거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해병대 캠프에서도 사망사고가 여럿 발생한 바 있다”며 《가짜사나이》 역시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설 트레이닝 캠프”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군대에선 엄격한 통제 아래 안전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제도화돼 있지만 《가짜사나이》에선 특수부대에서와 유사한 강도의 훈련을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감행했다. 그 결과 2기에선 출연자 오현민 씨가 훈련 중 각막을 다쳐 하차했고 조재원 씨도 시설물에 다리를 세게 부딪히는 부상으로 중도 하차했다. 이외에도 출연자들을 강에 반복적으로 입수시키거나 해안가에 일렬로 눕힌 후 밀려오는 파도를 맞게 하는 등 위험천만한 장면들이 무분별하게 등장했다.

  방혜린 팀장과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폭력이 오락거리로 소비되는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박 교수는 ‘가짜사나이 신드롬’에 대해 “사람들은 (《가짜사나이》를) 일종의 액션 영화처럼 재미로 소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 팀장은 “《가짜사나이》는 폭력적인 장면들을 전시해 사람들의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한다”며 그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방 팀장은 “콘텐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언젠가 우리에게 폭력의 정당화와 재생산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폭력적인 모습을 유흥거리로 여길수록 폭력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유

 《가짜사나이》는 출연자 개개인이 훈련 참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콘텐츠를 정당화했다. 인지도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기업과 유튜브 채널, 그리고 인기를 얻고자 하는 출연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프로그램 내용의 가학성은 ‘자발적 선택’이라는 핑계 아래 은폐됐다. 규제 없는 공간인 유튜브는 이 드라마의 든든한 뒷배경이 된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이 드라마에서 폭력은 전시되고, 출연자는 다치고, ‘폐급’은 왕따를 당했다. 《가짜사나이》는 우리 사회에 스며든 병리적인 문화를 여과 없이 재현해 대중의 심리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억압 기제를 ‘진짜’라는 명목하에 선망의 대상으로 포장했다. 이 ‘가짜’ 드라마는 언론에 의해 ‘리얼리즘의 정수’로 치켜세워지며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했다. 여러 논란 속에 《가짜사나이》는 방영을 중단했지만, 《가짜사나이》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들은 끝나지 않았다. 《가짜사나이》 신드롬에 대한 엄밀한 비평과 반성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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