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8일,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왔다. 대법원의 리얼돌 통관 허가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며 리얼돌 수입·판매의 금지를 요청하는 글이었다. 해당 청원은 26만 명이 넘는 참여인원을 기록한 후 마감됐다. 이에 청와대는 ▲청소년의 접근을 막기 위한 리얼돌 판매 사이트 및 업소에 대한 지속적 단속 ▲아동형상 리얼돌에 대한 규제방안 강구 ▲특정 인물의 형상을 띤 리얼돌의 제작·유통에 대한 처벌 강화를 약속하겠다고 답했다.
청원 이후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리얼돌 체험방의 수는 대폭 증가했고, 규제 방안은 여전히 미비했다. 오히려 리얼돌 체험방들은 ‘합법’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합법이라는 주장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얼돌과 관련된 현행법부터, 입법체계까지 짚어봤다.
법망을 빠져나간 리얼돌 체험방
리얼돌 체험방은 기본적으로 풍속업소다. 여기서 풍속영업이란 ‘선량한 풍속을 해치거나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영업’을 의미한다.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5호에 따른 ‘청소년 출입·고용금지업소에서의 영업’ 또한 풍속영업에 속한다. 리얼돌 체험방은 풍속업소 중에서도 ‘자유업종’에 해당한다. 때문에 리얼돌 체험방은 관할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고서도 운영이 가능하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청소년 유해시설로 분류되긴 하지만, 단속 근거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 경계에서 직선거리로 200m 밖에 위치해야 한다는 조건 외에는 처벌의 근거가 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김재련 변호사는 “리얼돌 체험방이 일종의 신종 업소로 분류되다 보니 어느 카테고리에 넣을지 규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가를 받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관할 지자체에서 관리를 할 수 있지만, 자유업종으로 분류되다 보니 행정적으로 관여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리얼돌 체험방에 대한 규제 시도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2011년 11월에 이뤄진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시행령 (대통령령 제 23279호)의 개정이 대표적이다. 개정의 취지는 키스방·인형체험방 등 신종·변종 영업의 규제 근거를 마련하고 풍속영업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키스방, 유리방, 인형체험방 등을 풍속영업 업소에 추가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얼돌 통관 재판 이후 풍속영업 규제 법률은 리얼돌 체험방의 규제 근거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3호에 의하면 ‘음란한 문서·도화(圖畵)·영화·음반·비디오물, 그 밖의 음란한 물건을 반포(頒布)·판매·대여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리얼돌은 위 법률에서 규정하는 음란물로 취급되지 않는다. 2019년, 대법원이 리얼돌을 성기구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또한 리얼돌 체험방의 단속 근거로서 인정받기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현행법상 성매매 관련 법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행위만 처벌이 가능하다. 리얼돌은 인형이기에 단속 근거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리얼돌 체험방이 성장하기까지 ‘합법’이라는 프레임의 역할이 컸다. 체험방 운영자도, 이용자도 ‘합법인데 뭐 어때’라며 윤리적, 법적 고민으로부터 빠져나올 탈출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모호한 규제 근거를 노려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에 김재련 변호사는 “가장 좋은해결 방안은 관련 법률을 입법적으로 명시해 논란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구’라서 가능했던 일
리얼돌이 성기구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불과 1년 전인 2019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리얼돌은 수입품목 허위 기재, 밀수입 등의 방식을 통해 국내에 유통됐다. 수출입 금지 품목을 규정하는 관세법 제234조에 의해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 또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리얼돌의 판매, 제작과 관련된 법률은 없었으나 리얼돌을 ‘음란물’로 규정하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다.
2017년, 국내의 한 성인용품 수입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며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소송의 목적은 리얼돌의 세관 통과였다. 1심은 수입업체의 패배였다. 인천 지방법원은 리얼돌이 성인 여성의 전신과 비슷한 형태·크기를 띠고 있을 뿐더러, 가슴·성기와 같은 특정 성적 부위가 실제 여성의 신체부위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 왜곡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리얼돌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규정이 유지됐다. 때문에 관세법 제234조와 제 237조에 의거해 리얼돌에 대해 수출입을 금지하거나 통관을 보류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2심에서 기존 1심 판결이 번복됐다. 리얼돌 수입업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리얼돌이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할 만큼 노골적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사용자의 성적 욕구 충족에 은밀하게 이용되는 성도구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사용할 성기구의 수입을 금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후 대법원이 2심의 판결결과를 받아들여 리얼돌 수입을 최종적으로 허가하면서 리얼돌은 ‘성기구’의 지위를 획득하게 됐다. 이 판례가 모든 리얼돌의 수입 합법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위 소송을 통해 수입이 허가된 것은 한 리얼돌 제작업체의 특정 모델 1건 뿐이다. 그러나 리얼돌 관련 법률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음란물’이 아니라는 판결은 단속 근거를 한층 약하게 만들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뒤바뀔 수 있던 것은 ‘음란물’의 개념과 범주가 현행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서다. 그동안 법조계는 1987년도의 대법원 판례를 따라 음란물을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게 하는 물품으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해왔다. 해당 판례는 음란물과 성기구를 구분 짓는 기준으로서 수차례 인용됐으며, 2019년, 리얼돌 판결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김재련 변호사는 “‘성적 수치심’, ‘성적 도의관념’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음란’의 객관성에 의문을 던진다. 비슷해보이는 자위기구마저 음란 여부를 두고 다른 판결을 받는 사례가 있었을 정도다. 남성용 자위기구인 모조여성성기를 두고 진행된 2003년도의 재판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03년 1월에 진행된 원심판결에서 흔히 ‘오나홀’로 불리는 해당 용품은 음란물이 아니라고 규정됐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용품점의 내부진열대 위에 진열돼 판매되는 경우라면 그 형태만을 들어 음란한 물건이라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반면 2003년 5월 대법원은 ‘형상 및 색상 등에 있어서 여성의 외음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나 진배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음란물로 규정됐다. 지나친 실제성으로 인해 ‘음란물’이라는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해당 예시에서 볼 수 있듯, 특정 물품의 음란 여부는 ‘실제성’이라는 기준에 크게 의존하게 되는데 이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리얼돌 통관 재판에서 1심과 2심이 다른 판결을 내린 이유도 이 실제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리얼돌 제작업체 ‘팀포유’의 김성식 대표는 “실제로 판사가 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며 음란물을 규정짓는 기준에 객관성이 부재함을 강조했다. ‘성매매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전국연대)’ 또한 “음란은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변화하며 그 사회의 소위 ‘건전한 성풍속’을 통제하기 위해 동원됐기 때문에 무엇이 음란한가는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리얼돌 수입 허가 분쟁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이 내렸던 판결이 실제 사회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성기구는 성적인 내용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일반적인 음란물과는 달리 사용자의 성적 욕구 충족에 은밀하게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리얼돌 체험방의 등장은 리얼돌 이용을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해당 판단을 무색하게 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에 대해서는 외부적인 요소들도 충분히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회적 영역 내에서 해당 물품이 어떻게 쓰일지 고려해서 판결을 내린다면 법적인 구속력은 없어도 판례로 남아 판결 후속 재판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 너머의 이야기
허술한 현행법만이 리얼돌 체험방의 성장에 기여한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법해석 또한 문제였다. 김재련 변호사는 리얼돌 체험방의 단속 근거가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예 단속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음란물’이 아닌 ‘음란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인형체의 리얼돌이 성인용품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사적으로 소지하거나 대여해 자신의 사적 공간에서 이용하는 것과 ‘체험방’에서 돈을 내고 체험을 하는 것은 달리 봐야 한다. 풍속영업규제법 제3조 제2호에서는 음란행위를 하게 하거나 이를 알선 또는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업주가 이용자에게 돈을 받고 음란행위에 사용할 리얼돌을 제공하여 음란행위를 하게 한 것은 동법에 의해 규제가 가능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법해석만 있다면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리얼돌 체험방을 단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사례를 고민 없이 답습하는 문화에 있다. ‘음란’, ‘건전한 성풍속’과 같은 용어가 그 예시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음란이라는 단어가 1960년대부터 법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배경에는 부녀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했다”고 말하며, “이는 굉장히 오래되고 낡은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판례를 따르기 급급해 이런 용어가 여성의 몸을 물화하거나 여성혐오적인 통념을 재생산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연대는 “‘건전한 성풍속’이라는 용어도 ‘음란’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며, 보수적이고 ‘정상성’을 강제하는 사회에서 여성혐오적이고 차별적 성 인식을 강화한다”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성적 착취 근절을 위해 위와 같은 법적 용어들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법절차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리얼돌 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입법이 어려워 구체적인 규제방안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아동 형상의 리얼돌 제작·판매·수입·소지 등을 막기 위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계류 끝에 폐기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입법 절차가 워낙 복잡·다양하고, 또 여러 의견을 다 조율해야 최종적으로 입법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법이 힘든 구조”라며 “사회적 합의가 된 부분부터 빠르게 규제를 마련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리얼돌 체험방 산업은 규제의 공백 속에서 자라났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결여된 법해석, 복잡한 입법체계는 침묵으로 리얼돌 산업의 성장을 용인하고 있었다. 이에 전국연대는 “한국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남성들의 성적 활동이 고도로 산업화돼 있다는 점”이라고 말하며 “리얼돌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성적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리얼돌을 단순 ‘성기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 다시 의문을 던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