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복잡하다. 전통사회에서처럼 엄격한 혼인 의례의 준칙이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결혼을 위한 관행적 지침들은 세대와 집안 그리고 성별을 가로질러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결혼을 결심한 예비부부는 결혼식에서 부부됨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까지 이 지침들 중 많은 부분을 수행한다. 양가 가족이 모여 상견례를 치르고, 예단과 예물을 교환하고, 신혼집과 혼수를 마련하고, ‘스드메’와 웨딩홀을 준비하는 식으로 구성된 절차가 어느 정도 표준화돼 있는 것이다. 최근 결혼을 경험했거나 결혼을 준비 중인 당사자들의 경험과 실천 그리고 성찰을 이 표준 절차에 따라 장면별로 포착했다.

#S1. 상견례
지난해 9월 결혼한 정혁 씨(가명, 30세)는 결혼 준비 중 겪었던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상견례를 꼽았다. 정혁 씨와 배우자 혜원 씨(가명)는 재작년 10월 결혼을 마음먹은 후 12월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상견례를 치렀다. 처음엔 ‘맛있는 밥 먹고 오는 자리’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상견례 준비에 착수하니 잡다하지만 까다로운 문제들이 수두룩했다. 상견례 날짜와 시간, 지역과 차편부터 식사 메뉴와 자리 배치까지 조율하고 결정해야 할 항목이 많았다. 양가 부모님이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애교 선물’로 도라지정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와, 밥 한 끼 먹는데 이렇게 고려할 게 많구나’ 싶었어요.”
이 모든 항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일도 사뭇 복잡했다. 양가 부모님이 직접 소통하지 않고 정혁 씨와 혜원 씨가 사이에서 부모님의 의향을 전달했다. 정혁 씨 부모님에서 정혁 씨, 혜원 씨, 혜원 씨의 부모님으로 이어지고 또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가는 의사소통의 고리에서 정혁 씨와 혜원 씨는 양가의 전령이 됐다.
상견례는 결혼 준비를 본격화하는 기점으로, 양가가 결혼식 장소와 날짜부터 예단과 예물 등에 대해 상의하는 것이 상견례의 일반적인 목적이다. 상견례를 준비하는 과정에 ‘사소하지만 귀찮은’ 과제들이 수반된다면 상견례 자리에선 보다 무거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올해 초 결혼을 앞둔 예은 씨(가명, 28세)와 건우 씨(가명, 28세)는 상견례에서 결혼 준비를 위한 양가의 의사를 조율하는 일이 “마치 정상회담 같았다”고 회상했다. 건우 씨는 “정상회담을 하면 각국 정상들이 테이블에 앉아서는 이미 물밑에서 합의된 것만 얘기하고 합의서를 마무리하곤 하잖아요”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상견례 전 양가 부모님 사이를 연결하며 결혼 계획을 조율하는 이른바 ‘실무자’의 역할은 예은 씨와 건우 씨의 몫이었다. “부모님은 직접 대화를 나누긴 어려운 양국 정상 같은 위치에 있다고 느꼈어요.” 두 사람은 결혼이 당사자의 일인 동시에 부모님들의 행사이기도 하다고 여겼기에 기꺼이 실무자 역할에 임했다.
2018년 결혼한 주아 씨(가명, 30세)는 예식보다 1년 앞선 2017년 봄에 상견례를 치렀다. “남들은 상견례에서 결혼 준비에 대해 상의한다는데, 저희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하고 수다만 떨다 왔어요.(웃음)” 결혼 준비를 위해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구체적인 사항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양가 부모님끼리 초면이다 보니 툭 터놓고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주아 씨의 아버지가 세밀한 결혼 절차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라 상견례는 양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가까워졌다는 데 의의를 두고 갈무리됐다. 그날 이후 양가 어머니들이 따로 만나 주아 씨 부부의 상세한 결혼 준비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들끼리의 만남이 실질적인 상견례가 된 셈이다.
#S2. 예단
작년 11월 결혼식을 올린 기준 씨(가명, 30세)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발견한 부모님의 의외의 모습에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부모님과 저는 평소 친구 같고 편한 관계예요. 제가 유교적 형식을 따지는 분위기를 갑갑해 하는 것처럼 저희 부모님도 관례적인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기준 씨는 부모님에게서 “한국식 유교문화에 친숙하면서, 관례적 형식에서 벗어나는 걸 불편해하는 한국 어른”의 면모를 발견하게 됐다.
기준 씨 부모님이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관례는 예단과 예물이다. 예단은 과거 신부 측에서 딸을 시가로 들여보내며 신랑 측에 보냈던 비단을 말하는데, 시부모의 이불, 반상기, 은수저 그리고 예단비를 준비하는 것이 관례지만 오늘날엔 현금이나 고가의 현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신부가 신랑 측에 예를 표하는 수단인 예단과 달리 예물은 신랑과 신부 간 서로 주고받는 성격이 강하다. 많은 경우 예단에 대한 답례 차원으로 신랑 측에서 예비부부의 결혼반지와 옷 등을 준비한다. 해외생활을 오래 했던 기준 씨에겐 이런 관행들이 생소하게만 느껴졌지만 기준 씨 부모님은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이를 처리했다.
관례적 절차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한 건 세영 씨(가명, 30)도 마찬가지였다. 세영 씨는 연인 재호 씨(가명)와 작년 3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코로나 확산 추세가 심각해지자 결혼식은 나중으로 미루고 양가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것으로 예식을 갈음했다.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세영 씨 부부의 결혼 준비에 잡음이 생긴 건 결혼식 두 달 전인 1월쯤이었다. 문제의 원인은 다름 아닌 예단 문제였다.
결혼 얘기가 본격화될 때부터 세영 씨 부부와 양가 부모님은 예단을 ‘안 주고 안 받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노파심이 들었던 세영 씨 어머니는 정말 예단을 안 해도 되는지 재호 씨 어머니에게 거듭해서 물었다. 재차 신랑 측의 의향을 확인하는 것이 신부 어머니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영 씨 어머니의 질문이 여러 차례 이어지자, 처음엔 ‘안 해도 된다’고 일관하던 재호 씨 어머니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러면 (재호) 조부모님 드릴 수 있는 정도라도 예단을 할까요?’라고 제안했다. 재호 씨 어머니는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지만, 그 한마디에 세영 씨 어머니는 예단을 준비하느라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예비 시댁에서 (예단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어떻게 조부모님 것만 하나? 시댁 식구들에게 다 해야겠구나’부터 시작해 ‘현물예단은 누구에게 뭘 할 것이며, 현금예단은 얼마를 해야 하나? 돈 보낼 때 수표 한 장 달랑달랑 보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구색을 갖추나? 보자기? 봉투?’까지, 세영 씨 어머니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세영 씨는 못내 안타까웠다. “왜 엄마가 중요한 행위자로서 저희의 결혼에 개입해야만 하는 건지 의아했어요.” 세영 씨가 보기에 어머니는 딸을 시집보내는 일종의 과업을 치러내고 있는 듯했다. “저는 자식이 결혼할 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고민은 ‘우리 아이들 이렇게 성장해서 짝을 만나 재미있는 행사를 꾸미고 있구나. 예식 날 나는 무슨 한복을 입을까?’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걸 넘어서 ‘예단이랑 봉채비가 어떻고, 예비 사위에게 양복을 해주고…’를 골몰하며 스트레스를 느끼시는 모습을 봤어요.”
이후 예단을 주고받지 않기로 했던 당초의 약속을 새삼 인지한 재호 씨 어머니는 ‘그냥 하지 말자’며 결정을 번복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세영 씨 어머니는 신랑 측에서 한 번 얘기가 나온 이상 꼭 해야겠다는 입장이었다. “(시댁) 어른들끼리 수다 떠는 자리에서 ‘며느리 들어왔다면서. 예단 뭐 해왔어?’ 이런 질문이 오가겠죠. 만약 (예단을) 한다고 했다가 하지 않으면 ‘신부 쪽에서 말을 바꿨어? 웬일이야’ 등의 부정적 반응들이 있을 것이고. 모두 허황된 목소리지만 당사자의 일이 되면 유력한 실체를 가진 목소리가 돼버려요.” 겉보기에는 예비신랑 어머니가 말실수를 번복했다는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세영 씨 어머니에겐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세영 씨는 예단을 둘러싸고 신부와 그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압박을 실감했다.
#S3. 예물
주아 씨의 결혼 준비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비 부부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를 주변에서 여럿 들었지만 주아 씨와 배우자 도현 씨(가명)는 서로 성격과 취향이 비슷해 비교적 순탄하게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예물을 선정하고 구입할 때 양가 어머니들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주아 씨는 딸이 좋은 예물을 받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대와 걱정을 느꼈다. “저희 집안의 경제상황이 남편 쪽보다 좋은 편이었거든요. 저희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평생 한 번 결혼할 때 넉넉한 시부모님 만나서 더 좋은 대접 받으면서 시집가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서 내심 서운해 하셨던 것 같아요.”
주아 씨 어머니가 딸의 예물을 사수하기 위해 취한 방법은 선제적으로 선물을 건네는 것이었다. 예물 반지는 신랑 측에서 예비부부를 위해 준비하는 게 보통인데, 말이 나오기도 전에 주아 씨 어머니가 ‘내가 사위 해주고 싶어’라며 커플링을 선물했다. “다이아 크게 박힌 걸로요. (엄마가) 선수 친 거죠. 이만큼 해주면 저쪽에서 맞춰서 (다른 예물을) 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아니나 다를까, 같은 수준의 예물을 해줘야겠다고 느낀 도현 씨 어머니는 주아 씨에게 패물 세트를 맞춰주겠다고 나섰다. “커플링이랑 똑같은 다이아로 맞춰주셨더라고요.”
이후에도 주아 씨 어머니가 먼저 어떤 선물을 해주면 도현 씨 어머니로부터 “너는 뭐 받고 싶니?”라는 질문이 대답처럼 돌아오는 방식으로 예물 교환이 이어졌다. 주아 씨 어머니가 예비 사위에게 건넨 다음 예물은 컴퓨터였다. 신랑에게 고급 시계를 선물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현 씨가 시계 대신 데스크탑 컴퓨터를 갖고 싶다고 하자 주아 씨 어머니가 고사양 컴퓨터를 선물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나 도현 씨 어머니는 주아 씨에게 이에 대응하는 선물로 명품 가방을 구입할 비용을 건넸다. 금액은 컴퓨터 값과 똑같았다. 가방을 사긴 부족한 금액이라 주아 씨가 좀 더 보태서 원하는 가방을 구입했다.
주아 씨는 이에 큰 불만이 없었지만 어머니에겐 시어머니가 가방 값을 전부 내주셨다고 둘러댔다. 어머니가 아쉬워하고 속상해할까 봐서다. 주아 씨 어머니에게 시댁에서 해주는 예물의 품목과 규모는 며느리에 대한 대접을 반영하는 척도였다. 먼저 비싼 예물을 전달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처럼 받아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좋은 예물을 받아야 면이 설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아 씨는 어머니의 이런 생각이 자식의 결혼과 연관된 사회적 체면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주변 분위기가 문제예요. 엄마는 주변에서 하도 얘기를 많이 듣잖아요. ‘뭐 받았냐, 얼마짜리 받았냐’ 하는 말들이요. 그런 자리에서 남들이랑 비교되면 속상하죠.”
#S4. 스드메와 예식장
결혼 프로젝트의 또 다른 숙제는 일명 ‘스드메’와 예식장을 정하는 일이다. 스드메는 웨딩업계에서 스튜디오, 메이크업, 드레스를 묶어 부르는 약어다. 스드메와 예식장을 물색하는 데엔 상당한 품이 들기 때문에 많은 예비부부는 웨딩중개업체의 손을 빌린다. 웨딩산업이 개입하면서 수많은 예복과 한복 업체, 스튜디오, 헤어와 메이크업 샵 그리고 예식장들은 진열대 위에 놓여 예비부부의 선택을 기다린다. 정혁 씨의 우스갯소리를 빌리자면 스드메와 예식장을 선정해 업체와 계약을 맺는 일은 “거대한 쇼핑”과 다름없다.
건우 씨는 2년 전 예은 씨와 함께 웨딩업체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면서 ‘스드메’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웨딩산업의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웨딩플래너가 스튜디오 관련 상담을 시작하자 건우 씨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스튜디오 촬영 얼마에, 원본파일을 주문할 경우 얼마 추가, DVD와 액자 요청하면 또 얼마 추가…. 무섭게 치솟는 숫자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건우 씨가 뜨악한 것은 단순히 비용이 비싸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결혼이라는 게 산업과 크게 연계돼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본질적이지 않은 게 너무 커져 버렸구나’라고 느꼈어요.” 건우 씨 생각에 결혼의 본질은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결혼 준비는 그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산업화된 결혼문화에 휩쓸려 남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소홀하게 될 것 같았다. “결혼식 준비에 수백만 원씩 쓰다가 진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놓치면 안 되겠더라고요.”

“웨딩홀도 그래요. 웨딩홀 어디를 대관하면 나머지를 안 할 수 없게 되는 구조예요.” 건우 씨의 말에서 ‘나머지’란 폐백과 신부대기실 등이다. 건우 씨와 예은 씨는 폐백과 신부대기실이 결혼식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웨딩업체가 주선해준 기성 예식장의 경우 이것들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으로만 계약이 가능해, 신청하지 않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대기실이나 폐백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가격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예은 씨는 기성 웨딩홀을 예식장 후보에서 과감히 제외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들을 강권하는 웨딩산업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S5. 결혼식
결혼식 당일 신부는 주인공이 된다. 예식 직전에 신랑과 양가 가족들은 예식장의 초입에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신부는 신부대기실에서 하객들을 맞이한다. 예식이 시작되면 신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지나 신랑에게 다가간다. 신부의 손은 아버지에게서 신랑에게로 넘겨진다. 결혼식 내내 신부의 곁엔 드레스와 화장이 흐트러지지 않게 고쳐주는 도우미, 소위 ‘이모님’이 맴돈다. 결혼식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익숙한 풍경들이다.

“저는 스스로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예은 씨는 대상화되는 위치에 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혼예식엔 여성을 대상화하는 풍습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예은 씨는 신부의 외적 아름다움을 수호하는 데 결혼식 현장의 온 신경이 집중되는 경향이 문제라고 봤다. “신부가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혼자선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 누군가가 신부를 쫓아다니면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주는 광경, ‘신부 예쁘다’고 평가하는 하객들의 말과 시선들.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모든 것들이 늘 불편했어요.” 예은 씨는 그날 하루의 외적 아름다움을 위해 돈을 쓰고, 불편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예은 씨는 일찌감치 양가 부모님께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드레스 대신엔 정장 원피스를 구입했다. 양가 부모님은 예은 씨의 결정을 반기지 않았다. 예은 씨 어머니는 예은 씨가 마련한 예복을 보고 “옷이 너무 둔탁하지 않니?”라며 트집을 잡았다. “그러더니 몰래 인터넷에서 웨딩드레스 쇼핑몰을 둘러보고 계시더라고요.(웃음)” 건우 씨 부모님도 예은 씨가 드레스를 입지 않는 이유를 계속 의아해했다. ‘그래도 결혼식인데’라는 말과 함께 베일, 레이스 장식, 화관 등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예비 시부모님을 보며, 예은 씨는 결혼식 현장에서 ‘신부가 신부처럼 보이는 것’이 부모님들에게 중요한 문제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결혼식 날 신부의 위치성에 대한 고민은 세영 씨에게도 있었다. 세영 씨는 대학 시절 『여자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읽은 한 이야기가 아직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 신부의 공간인 신부대기실의 존재 이유를 질문하는 내용이었다. “신랑과 신부는 행사의 호스트로서 손님들을 환영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하객들이 신부를 보기 위해선 신부대기실로 별도로 발걸음해야 하고, 신부는 그 안에 꽃처럼 앉아서 하객들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지적한 거예요.” 세영 씨는 자신의 결혼식엔 신부대기실을 두지 않고 자신도 예식장 초입에서 신랑과 함께 하객들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거 하나를 (남들과) 다르게 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세영 씨가 넌지시 추측했다.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문화일수록 깨뜨리는 데 큰 저항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결혼은 일생일대의 행사라고들 한다. 그래서 결혼엔 이렇게나 많은 문화적 실천들이 수반된다. 본식 이후에도 신혼여행, 이바지·답바지음식 교환 등의 절차가 남아 있고, 축의금을 정산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당사자들은 이 절차를 밟아가며 부모님과의 관계와 체면, 웨딩산업, 성 역할 등 결혼문화에 한데 섞인 현상들을 체험한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다양한 만큼 이 현상들에 대한 입장도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의 본질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건우 씨의 생각은 현대 한국의 결혼문화가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지향과 가치를 담아내기 알맞은 그릇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남긴다. 결혼과 가정의 의미가 변화하는 오늘날, 결혼 당사자들을 둘러싼 총체적 결혼 관행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