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운다는 건 내게 아무 잘못이 없음을 알아가는 것

성인문해교육이 일으킨 변화, “70이 넘어서야 나는 봄을 만났다”
한글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성인문해교육 현장 ⓒ노원여성교육센터 홍보 UCC 캡쳐

  “식당에 가서두 글씨를 모르니까 딴 사람이 시키는 거 그냥 같은 걸루. 안 좋아해도 어거지로 먹었지.” “은행을 가야 하는데 쓸 줄도 모르지 읽을 줄도 모르지. 그래서 어떻게 해, 이불 속에다가 돈을 넣어놓고. 장판 밑에다가 넣어놓고.” “병원에든 어딜 가믄 쓰라는데, 이게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혈압도 올라가지 얼굴도 씨뻘게지지.”

  노원여성교육센터의 성인학습자들이 펴낸 구술자서전 『글 몬 쓴다 깔보지 마라』의 구절들이다. 어디를 둘러보나 글자로 빼곡한 세상에서 비문해자들은 수많은 불편과 고충을 겪으며 살아간다. 성인문해교육 현장은 이들이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익혀 나가면서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여는 공간이다. 성인문해교육의 필요성부터 현황, 그리고 미래를 향한 고민까지 성인문해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한글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성인문해교육 현장 ⓒ노원여성교육센터 홍보 UCC 캡쳐

문맹이 아니라 비문해

  지난 11월 용산구의 문해교육 현장에서 만난 학습자 박광춘 씨는 1958년도부터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수놓는 일에 종사해왔다. 야간중학교에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어서 입학할 수 없었다. 혼자서 ‘아리랑 잡지’ 등을 갖고 독학을 하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글씨를 쓰는 것과 띄어쓰기가 모두 만만치 않았고, 글자에 받침을 붙여 적는 방법을 익히기가 유독 어려웠다. 박 씨는 “그 후로 가끔씩 딸들이 글자를 가르쳐줘도 그대로 따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글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채 간헐적으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론 글자를 익히기 역부족이었다. 

  글자를 공부할 시기를 놓쳐 비문해 상태로 살아온 것은 박광춘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인 비문해자는 극소수에 머물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2017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진행한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읽기와 쓰기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완전비문해에 해당하는 성인의 비율은 전국 성인 인구의 7.2%를 차지한다. 숫자로 따지면 311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간단한 문해는 가능하지만 관공서에서 서식을 작성하는 등의 일상 업무를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성인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23%에 육박한다. 

  수많은 비문해자들은 그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박광춘 씨는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못 배운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를 많이 마주했지만, 내가 못 배운 탓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문해교육에 첫 발을 들이는 것조차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 아들이 문해교육을 권유했을 때는 못 배운 게 창피해 안 가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은 문해교육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김인숙 대표는 “예전엔 대다수 학습자들이 (가족들에게) 문해학교에 간다고 말하기 어려워 등산 간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등산복 차림을 하고 오셨다”고 말했다. 

  비문해는 개인의 부족함으로 환원할 수 없는 엄연한 사회문제다. 전쟁과 가난이 개인의 삶을 뒤덮은 1950년대, 교육은 만인을 포용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전쟁통에 피난을 다니느라, 또 어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를 전전하느라 글자 공부에서 소외됐다. 

  노원여성교육센터 김수영 센터장은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을 못 받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원지역 문해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한림대학교 이지혜 교수(자유교양전공)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문해교육을 받지 못한 사유로는 ‘가난해서’와 ‘남자 형제를 뒷바라지하느라’가 압도적이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녀의 교육에 투자할 자원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인데 무슨 공부냐’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한 가운데 딸의 공부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되기 일쑤였다.

  그 시절의 딸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했던 집안 어른들의 목소리를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문해학습자 이금자 씨는 구술자서전에서 “우리 아버지는 우리들을 안 가르친 거야. 기집애라고 안 가르쳤어”라고 증언했다. 정연숙 씨도 마찬가지다. 정 씨가 어릴 적, 할머니는 늘상 “여자들은 너므[남의] 집에 시집가면 그만인데 뭔 공부냐, 동생들 봐야지”라고 말하곤 했고, 집안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정 씨와 언니는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던 반면 남동생들은 계속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비문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것과 더불어 비문해자들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이지혜 교수는 “사회구조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비문해자를 불쌍한 사람들로 대상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문해자는 단지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놓치지 않고 살아온 적극적인 학습자들이다. 김수영 센터장은 “비문해자의 암기력과 눈치는 문해자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비문해자는 들은 내용을 통으로 외우거나 장면을 사진 찍듯이 기억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암호를 만들어서 거래 장부를 작성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문해자를 무능력자로 보는 시선이 반영된 ‘문맹’이 아니라 ‘비문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문해교육은 비문해자들이 자신의 삶의 궤적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지혜 교수는 “수업에서 ‘비문해는 개인이 아닌 사회의 잘못이며, 당신은 열심히 살았을 뿐 잘못한 게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자 한다”며 “문해교육의 진정한 효과는 비문해자가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까막눈’이 아닌 ‘주도적 학습자’로 정체화하게 된 학습자들은 더는 움츠리지 않고 자신감과 활력을 얻는다. 이 교수는 “처음엔 시장어귀에서 문해교사를 보면 도망가던 학습자가 1년 후에는 ‘선생님!’하면서 멀리서부터 달려오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장면이야말로 문해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국가가 미뤄온 오래된 책임

  비문해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는 관점이 정립되면서 국가가 성인문해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영남대학교 허준 교수(교육학)는 “비문해자들은 국가가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의무교육을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성인문해교육은 의무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에 대한 국가의 보상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국가가 성인문해교육에 지원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54년부터 1958년까지 시행한 문맹퇴치 5개년 계획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정부는 성인문해교육 사업에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40년이 넘는 공백을 채운 것은 민간 문해교육기관들이었다.

  2007년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부터 성인문해교육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생교육법에 추가된 문해교육 관련 조항에 의해 교육부는 전국 문해교육기관들에 약 18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김인숙 대표는 “전국의 모든 기관들을 운영하기엔 턱없이 적었지만 당시엔 국가가 관심을 보였다는 것만으로 놀라워 정부의 사업을 죽을힘을 다해 도와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해교육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김인숙 대표는 “이렇게 지지부진할 줄 몰랐다”고 운을 띄웠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프로그램과 학생 수는 몇 배씩 늘었지만, 올해도 정부의 성인문해교육 예산은 40억 원 정도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전체 교육부 예산의 0.1%에 불과하다. 문해교육기관을 운영하기 위해선 공간 대여료, 행정 인력부터 교재비까지 필요한 요소들이 많지만, 정부에선 ‘기관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것’이라며 약간의 강사비와 체험학습비만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만 초점을 맞춘 지원금 지급 방식은 공간 대여부터 교재 개발까지 크고 작은 업무를 단독으로 감당해야 하는 민간기관에게 치명적이다.

  정부가 문해교육을 지원하겠다며 2016년에 설치한 국가문해교육센터와 시·도문해교육센터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지혜 교수에 따르면, 현재 문해교육센터들은 “성인문해교육을 알리는 전국시화전을 열거나 몇몇 지역의 문해교육현황을 조사하는 최소한의 업무만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해교육센터가 적극적인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는 결국 예산 부족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예산을 국가문해교육센터와 민간 문해교육기관이 배분하다 보니 양쪽 모두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문해교육사업 지원을 통해 비문해자들의 생활능력 향상을 돕겠다는 취지로 문해교육 활성화 3개년 계획이 발표됐지만, 이는 개별적 지역 실정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해 문해교육 현장에 혼란을 안겼다. 김인숙 대표는 “계획의 내용은 국가 예산을 거의 그대로 둔 채 지자체 대응투자액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지자체로 책임을 떠넘기는 처사였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투자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지자체에 따라 지원 규모와 정도가 상이해 지역별 편차가 커질 뿐만 아니라 지원 여부 자체도 불확실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재난은 또 다시 약자의 삶을 덮친다

  부족한 정부예산과 지자체의 들쑥날쑥한 지원 속에서도 고군분투해왔던 많은 문해교육기관들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김인숙 대표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없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들어오던 지원과 후원이 끊겨 현재는 문해교사 개인의 대출로 연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내년에는 문해교육기관의 20% 이상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문해학습자들의 학습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육현장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안으로 쓰이고 있는 온라인 비대면 수업 방식은 성인문해교육 현장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이지혜 교수는 “성인문해학습자들 중 대부분은 디지털 리터러시 최하위층에 해당한다”며 “성인문해학습자는 전쟁 등의 사회적 위기 상황이 있을 때 최전선에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많은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예외 없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해학습자들에게 학습공백은 사회적 삶의 공백과 직결된다. 김인숙 대표는 “문해교육 현장은 문자를 배우는 공간을 넘어 학습자들이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사회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는 학습자들이 문해학습을 통해 누리던 소통과 교류를 단절시켰다. 김인숙 대표는 “지난해 초 4개월 정도 기관을 운영하지 못하다가 교육을 재개한 첫 날, 염색과 몸단장을 즐기시던 분들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활기 없이 나타나셔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소규모 대면수업 방식을 검토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코로나 시국에서 성인문해교육 현장의 상황을 반영한 정부의 지원이 요구된다.

성인문해교육은 디지털문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원여성교육센터 홍보 UCC 캡쳐

모두를 포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해

  미비한 지원에 재난까지 겹쳐 성인문해교육이 고충을 겪는 가운데서도, 성인문해교육 현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고령층 여성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한글 해득 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성인문해교육의 대상과 내용 모두를 확장하기 위한 고민이다.

  이지혜 교수는 문해교육이 결혼이민자, 외국인노동자, 북한이탈주민, 중도입국청소년 등 신문해학습층을 포함해야한다고 말했다. 허준 교수 역시 “현재는 노인학습자 위주로 교육이 진행되다보니 프로그램이 주로 낮 시간에 개설되지만, 이주노동자 등을 문해교육시스템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선 야간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령층 남성 비문해자에 대해서도 특별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지혜 교수는 “문해교육 현장에 나타나는 고령층 남성 비문해자가 현저히 적다는 문제가 있다”며 “남성 비문해자가 겪는 심리적 장벽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 교수는 “고령층 남성의 경우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 안에서 자라 자존심이 강한 경우가 많아 자신의 부족함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문해교육 현장에 찾아오는 극소수의 남성 비문해자 중 다수가 일대일 수업을 원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숨어있는 남성비문해자를 문해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이들의 특성과 맥락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학습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도 전개되고 있다. 허준 교수는 “성인문해학습자는 수십 년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다양한 요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표준화된 교육과정보다는 전 방위를 아우르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교육과정을 보다 유연하게 쇄신해야 한다는 분석에 따라 문해교육 현장도 변화하고 있다. 김인숙 대표는 “그동안 성인문해교육은 일차적인 한글 해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컸지만 이제는 그 범위를 디지털문해, 금융문해, 건강문해, 교통문해 등으로 넓히기 시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수영 센터장 역시 “문해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기초한자, 기초영어, 생활문해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나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성인문해교육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해 열린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지정순 씨의 시 ⓒ제 9회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전시

“세월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데/나는 매일매일 추운 겨울만 살았다//70이 넘어서야 나는 봄을 만났다/영원히 봄하고만 놀고 싶다”

  지난해 열린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문해학습자 지정순 씨의 시에서 우리는 ‘문맹’이란 말 뒤에 움츠리고 가려져왔던 이들이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했음을 목도한다. 비문해는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며, 문해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 성인문해교육이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다양한 꿈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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