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이 사회에 알려진 지 약 1년이 지났다. 주범들에 대한 재판은 진행되고 있지만, 사건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가해자 몇 명을 체포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디지털 성착취는 일상 속 젠더 폭력과 맞닿아 있다. 우리 사회가 N번방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젠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추적단 불꽃(불꽃)’은 강조한다. 불꽃은 기성 언론인이 아닌 대학생 신분으로 잠입취재를 통해 성착취 범죄의 실체를 알렸다. 이들이 밝히려 한 N번방 너머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불꽃은 취재하고 보도하며 기자로서 무슨 고민을 했을까. <서울대저널>이 불꽃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론인 ‘불’과 ‘단’, 기자로서의 고민
추적단 불꽃의 근황이 궁금하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출간한 이후로 일반 독자들과 함께하는 북토크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성폭력 예방 강사들과 성교육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고 있다. 강사분들에게 우리가 취재한 디지털 성범죄 현장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또 익숙하지 않은 텔레그램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 통신매체의 특성을 안내하고 디지털 성착취와 관련된 생소한 용어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강연이다. 2020년 말까지는 이 일들을 계속할 예정이다. 또 연말까지는 한 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사업을 함께했다.
대학 재학 중에 언론인을 지망했던 것으로 안다. 추적단 활동 이전에도 취재해 본 경험이 있나.
대학에서 기사 작성법을 다루는 강의를 들으면서 불법촬영 문제를 취재했다. N번방처럼 잠입 취재를 한 건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여성들이 불법촬영에 대해 느끼는 일상적 불안이 막중한데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배치된 불법촬영 탐지 장비의 수가 너무 적었고, 점검 인력도 많이 부족했으며, 수사기관에서도 불법촬영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적 실태들을 이야기하는 기사였다. 기사를 본 여성 친구들은 대부분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수긍했는데, 간혹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널렸는데 불법촬영이 대수냐’는 시선들도 느껴져서 위축되기도 했다. 불과 단이 함께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로 일한 적도 있다. 당시 한 남초 커뮤니티에 불법적으로 촬영한 여성의 신체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불이 이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가 나가자 ‘메갈이 쓴 기사’라는 식의 공격도 많이 받았지만, 불법촬영물이 소비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많은 여성 독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그 불법촬영 게시판은 폐쇄됐다.
기성 언론인이 아니라서 취재가 힘들었던 적은 없나. <서울대저널>의 기자들도 자주 겪는 고충이다.
기성 언론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 취재를 위한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쉽지 않다. 취재하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서 인터뷰를 따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N번방 사건으로 공모전 기사를 작성할 당시에도 취재원의 소속 대학을 통해 이메일 주소를 일일이 찾아서 연락해야 했고, 그마저도 몇 주 후에야 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기성 언론만큼의 사회적 파급력이 없다는 점이 취재에 어려움을 주는 것 같다. 파급력이 없으리라는 우려 때문에 N번방 기사를 공모전에 낼지 고민했다. 기사의 파급력이 범인 한두 명을 잡는 데 그친다면 성착취 영상이 유포되는 행태를 근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보도가 외려 N번방을 홍보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다만 취재 중에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수사를 진행한 게 고무적이었다. 경찰과의 공조 수사로 2019년 8월에는 ‘래빗’이라는 가해자를 잡았고 이어 ‘고담방’의 운영자였던 ‘와치맨’이 체포됐다. 공론화할 힘이 부족한 취업준비생들로서는 취재를 이어갈 힘을 얻었던 순간이었다.
기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추적단 불꽃의 활동은 취재 역량이나 기사 작성 솜씨가 탁월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끈기가 있어서 가능했다. 사건 하나를 취재하고 털어버린 후 다른 사건을 취재하고, 다시 이를 반복하는 게 한국 언론의 고질적 관행이다. 일회적 보도에 그칠 게 아니라, 보도를 통해 제기된 문제의식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착을 놓지 말아야 한다. SBS 데이터저널리즘 팀 <마부작침>과 뉴미디어 <닷페이스>는 성범죄, 성착취 사건을 두고 끈질기게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그런 방법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기자들은 “언론의 생태계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언론의 생태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기자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집요한 취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언론사가 지원해야 한다. 우리와 같은 독자들도 언론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지금도 언론인이 되기를 희망하는가.
우리는 이미 스스로 기자이자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언론기관에 소속돼 활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하려고 한다. 기자라는 직업은 매력적이다. 우리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목소리를 내야 직성이 풀리고, 논쟁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성향이 기자의 특성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젠더 구조가 N번방을 만들었다
N번방 사건을 젠더권력과 구조의 차원에서 분석하기보다 ‘악마적 인격을 지닌 일부의 비행’이라고 선을 긋는 시각도 있다. 불꽃도 책에서 이를 지적했다.
디지털 성착취는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일상화된 성범죄가 디지털 매체의 확산과 결합하면서 벌어진 범죄이고, 기존에 횡행하던 성매매와도 연결돼있다. 조주빈, 문형욱 등 주범들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공범 몇 명을 처벌해서 끝나지 않는다. 소라넷, AVSNOOP, 그리고 N번방까지 성착취 산업이 돈을 벌 수 있게 된 데에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 크다. 언론이나 매체가 성범죄를 쉽게 소비하고 대중들은 이를 쉽게 잊어버리면서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뎌진다. 그 결과가 N번방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 속 편하겠지만, ‘지인능욕’, 딥페이크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나만 조심하고 내 아이만 잘 단속한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성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과거를 되짚는 시간이 필요하다.
추적단 불꽃의 활동으로 성범죄를 바라보는 미온적인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나.
2019년 9월에 공모전 수상한 기사가 뉴스통신진흥원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11월에는 <한겨레>에서 취재한 텔레그램 성착취 지면 보도도 나왔지만, 그해 말까지 공론화될 기미가 안 보였다. 사람들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듬해 2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사건에 대한 분노 여론이 확산됐고, 3월엔 <국민일보>에 N번방 기사가 나갔다. 일주일 후에 주범 조주빈이 때마침 검거됐는데, 주범이 체포되면서 사회적 분노가 시의적절하게 표출된 것이 공론화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 결과 디지털 성범죄가 ‘실재하는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길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분노를 표출하는 데 휩쓸려서 사건을 일상의 문제로 끌어오는 일에 미흡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가. 사건이 공론화된 직후 언론은 조주빈이 어떤 인생을 살다가 범죄를 터뜨렸는지 조망하면서 그를 악마화했다. 그런데 조주빈의 뒤에는 그를 움직인 실질적 동력인 수천, 수만 명의 가해자가 얽힌 성착취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이때 박사를 움직인 사람들은 공무원, 경찰, 교사 등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우리 주변에 N번방 가해자들이 있다는 데까지 인식이 미치지 못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내 지인이라고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당시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선 어떻다고 생각하나.
지금 시점에선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원래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계속 관심을 보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거나, 재판 방청 연대를 통해 사법부를 견제하거나 피해자 연대 단체에 후원을 한다. 반면 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계속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주변 사람들을 봐도, 워낙 코로나 19로 심기가 힘들어서인지 이 사건만큼은 일상과 분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강연을 들으러 와 주시는 분들을 보면 인식이 옳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
공론화 이후에도 피해자들과 계속 접촉하고 있나. 피해자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다.
피해자들과는 계속 교류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피해자들 중엔 여전히 무기력하게 지내는 분들이 많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뉴스에서 조주빈이나 텔레그렘 성착취에 대한 보도를 보면 트라우마가 떠오른다고 한다. 영상이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크다. 피해자들의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이들에게 심리적, 경제적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현재 성착취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범죄피해자 보호 기금은 고갈된 상태다. 상담이나 병원 치료에 필요한 비용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취재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이 질문이 가장 어렵다. 우리의 취재현장은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며 실시간으로 피해가 일어나는 현장이어서, 그곳에 서 목격한 모든 장면들이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4월에 박사방 피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핸드폰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얘기를 듣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살아있는 피해자의 목소리로 그 일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협박이 얼마나 숨통을 조였는지 듣고선 더 깊이 분노하게 됐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처음에 기자가 되기를 바랐던 이유도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내가 몰랐던 이들의 속내를 사회현상으로서 조명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꽃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안전한 사회는 일상에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호텔·모텔에 가는 것, 집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 성별만 일방적으로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전한 사회가 도래하지 않은 현재로선, 먼저 여성들의 불안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