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나를 교정하는 공간이었다

학교가 배움의 터전이 될 수 있으려면 – 청각장애인의 교육 현실을 살펴보다
ⓒ박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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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솔 씨는 7살이 되기 전까지 아무 것도 듣지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7살 때 인공 달팽이관장치(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이후 다솔 씨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인공와우에 적응하긴 생각보다 어려웠다.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기계를 던져버리는 날이 많았다. 인공와우에 익숙해지고 한국어를 습득하는 동안 초등학생 시절이 지나갔다. 수술을 받았다고 모든 소리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앞자리에 배치된 것만으로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비슷한 시간이 중학교에서도 계속됐다. 부단한 노력으로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대학교에서도 수업 속기 지원 요청이 거부되는 나날이 이어졌다.

  정의진(가명) 씨는 농인 부모에게 수어를 배우며 자랐다. 이후 농학교에 진학했으나 의진 씨는 생각과 다른 학교 수업에 당황했다. 수업은 구화 중심으로 진행됐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는 건 불가능했다. 선생님은 구화로 설명하며 그에 대응하는 수어 단어를 드문드문 사용했지만, 선생님이 구사하는 수어는 매끄럽지 않아 의진 씨와 친구들이 이해하기어려웠다. 하루의 수업을 전부 이해하는 날은 드물었다. 학습 진도가 도무지 나가지 않았다.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도 제자리걸음인 경우도 있었다. 성인이 돼서야 의진 씨는 비로소 당시 자신이 받았던 수업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다솔 씨와 의진 씨는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지만 마주한 문제점은 같았다. 원하는 만큼 배우고 공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각장애 학생이 교육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이를 떠받치는 구조에대해 살펴봤다.

같이 있으면 통합교육?

  교육부의 특수교육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청각장애인 교육대상자 3,132명 중 약 78.9%가 일반학교에 진학했으며, 이중 약 71%는 일반학급에 완전 통합돼 비장애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과거에 비해 인공와우 수술비가 저렴해지며 대다수의 고도 난청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통합교육을 선택했다.

  높은 통계는 청각장애 교육에서 통합교육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처럼 착각하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각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을 한 교실에 앉히는 ‘물리적 통합’이 대부분의 일반학교에서 실시하는 통합교육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학습하는 건 통합교육의 최소한의 전제일 뿐, 올바른 통합교육을 위해선 적절한 지원체계와 장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강남대학교 강창욱 교수(중등특수교육과)는 “통합교육의 철학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학교 현장에서 통합교육이 실효적으로 이뤄지고 있나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거나 보청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인공와우·보청기와 함께라면 청각장애인이 청인과 똑같이 학습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와우 수술 후에도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은 의사소통 시 청각 정보 외에 다양한 정보를 함께 이용한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이론과 김다솔 씨는 “타인의 표정과 입 모양 그리고 일상적인 어휘 등을 예상하며 대화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청각장애인은 인공와우나 보청기를 사용하더라도 의사소통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사렛대학교 윤병천 교수(수어통역전공)는 “현재 재직 중인 학과에 전화도 잘 사용하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있는데, 이들조차도 수업 시간에 귀 뒤에서 말하면(귀로만 정보를 들으면) 전혀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청각장애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은 이런 특성을 고려해 진행돼야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는 청각장애학생을 앞자리에 앉히는 등의 손쉬운 시도만 있을 뿐이다. 생활 소음이 존재하는 교실에서 청각장애학생의 정보수용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게다가 교사가 멀리서 이야기하거나 판서를 하느라 뒤돌아 학생이 교사의 입 모양을 보지 못할 때면 대부분의 수업 내용을 놓치게 된다.

  교육부에서는 특수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한국수어 및 문자통역 지원 사업, 특수보조공학기기 및 교육보조인력 배치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청마다 구체적인 사항이 다르며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안내가 주어지지도 않아 이를 모르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김다솔 씨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입 모양을 봐도 설명이 들리지 않아 학교 진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으나, 한 번도 편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김 씨는 “나는 편의 지원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아무도 나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간적인 통합에 치중한 일반학교 교육에서 청각장애학생은 학습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 학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고,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김다솔 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와 어울리기 어려워 제 의지와 상관없이 반에서 왕따가 됐다”며 “학교 생활이 항상 외롭고 쓸쓸했다”고 말했다. 일반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워 농학교로 역통합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윤병천교수는 “중고등부의 경우 역통합의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역통합의) 이유는 다양하나 농학생 사이 대화가 가능하고 농학교 환경이 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반학교에서 물리적 통합 그 이상의 궁극적인 통합교육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우리의 언어, 수어로 배울 수 있다면

  청각장애인은 의사소통 시 구화, 수어, 필담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특수교사 A씨가 재직 중인 수도권 소재 농학교엔 수어만 사용하는 학생이 약 25%며, 구화와 수어를 섞어 쓰는 학생, 구화만 사용하는 학생이 고루 존재한다. 강남대학교 특수교육·재활연구소 곽정란 연구원은 “농학교엔 수어를 쓰는 학생과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학생, 중복 장애 학생 등이 공존해 이전에 비해 의사소통 환경 자체가 훨씬 다양하다”고 말한다. 청각장애 교육에 학생 개별의 특성과 요구를 파악하는 섬세한 접근법이 필요한 이유다.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특수학교인 농학교의 경우, 청각장애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청각적 정보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성이 낮다는 것을 고려해 정보를 시각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 예다. 교사는 수업에서 구화로 설명하는 동시에 설명 내용에 대응하는 수어 단어를 제시한다. 수업 중에 교사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자막으로 변환하는 자막 서비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방법들이 여전히 미진하게 수행되고 있다는 데 있다. 교사가 수업에서 사용하는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 체계인 ‘한국수어’의 문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으며, 단어를 부분적으로 번역한 정도에 그친다. 이는 구화와 수어 모두를 사용하는 학생에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수어만을 사용하는 학생에겐 분명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실시간 자막 서비스도 모든 학교에 구축되지 않았을뿐더러 정확성이 떨어진다. 특수교사 A씨는 “우리 학교는 (자막 서비스가) 잘돼있는 편이지만 선생님의 발음에 따라 틀린 말이 자막으로 나가기도 해 선호하는 학생이 많진 않다”고 말했다. 

2016년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명시한 ‘한국수화언어법’이 공포됐다. 한국수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고, 농인과 한국수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에서다. 그러나 실정은 법의 취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수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농인들이 구사하는 ‘한국수어’는 한국어와는 다른 문법체계를 지니며 얼굴 표정과 몸의 방향, 공간 등을 동원하는 독립된 언어다. 현재 농학교에서 사용하는 수어는 이와 달리 구화에 기반해 수어 단어만을 나열한 형태로, 전문가들은 이를 ‘수지한국어’ 또는 ‘한국어대응수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수어와 구분 짓고 있다. 농인들이 사용하는 문법적인 요소는 빠진 채 한국어에 대응하는 몇몇 수어 단어만을 한국 어순으로 배열하므로 한국수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늘 피곤해하는 아버지를 걱정한다’라는 문장을 수지한국어로 나타낸다면 ‘어머니+항상+피곤하다+아버지+걱정하다’가 되는데, 한국수어 사용자는 이를 ‘어머니는 항상 피곤해하시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가) 걱정이다’로 받아들이기 쉽다. 또한 ‘나는 너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을 수지한국어로 표현하면 ‘나+너+좋아하다’지만, 이는 ‘나는 너를 좋아한다’인지 ‘나를 네가 좋아한다’인지 모호하게 해석될 수 있다. 즉 수지한국어만으로는 의미 전달에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눈의 방향과 공간의 활용 등 수어 고유의 문법적 요소가 필요하다.

  수지한국어만을 이용해 교육하는 방법은 한국수어의 언어 체계와도 맞지 않지만, 한국어 단어에 대응되는 수어 단어 자체가 없는 경우 온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A씨는 “수어의 어휘는 말(구화)을 할 때 사용하는 어휘보다 더 적어서 언급된 (어휘 중 번역 가능한) 수어를 구사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단어는 약 50만 개에 달하는 데 반해 ‘한국수어사전’에 등재된 수어 단어는 약 15,000개에 불과해, 한국어 단어에 수어 단어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번역한다면 한계가 발생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어 단어에 대응하는 수어 단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농인들이 사용하지도 않는” 수어 단어를 새로 만들어 내는 방법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한국수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시각언어인 수어는 공간 가리키기, 몸의 방향 틀기, 눈의 응시 등 다양한 요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휘화된 경우가 많지 않고 사물, 개념, 사건 등을 수어 문법을 이용해 설명하기도 한다. 즉 한국어 단어를 직역하는 수어 단어가 부재해도 충분히 한국수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국복지대학교 허일 교수(한국수어교원과)는 “한국수어 단어 수가 많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시각언어가 갖는 특성”이라며, 한국어 단어에 대응하는 수어 단어가 없다면 농인들이 수어 문법을 통해 어떻게 의미를 나타내는지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수보다 다수를 위한 특수교사 양성

  청각장애 교육 현장에서 지식 전달에 한계가 발생하는 것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특수교사 양성 과정엔 문제점을 해결할 만한 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다. 청각장애에 특화된 교수법을 공부할 기회가 한정적인 것이 대표적인 문제다. 김다솔 특수교사는 특수교육과 재학 당시 청각장애에 관련된 수업으로는 3학점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현재 특수교육과에서는 장애영역 전반에 대해 포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각 장애영역별 교수법을 3학점씩 이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교사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교육 방침은 ‘2001년 교원자격 검정력시행규칙(시행규칙)’ 개정 이후부터 유지돼왔다. 기존 특수교사의 경우 장애영역 각각에서의 전문성을 위해 추가적으로 수업을 듣고 자격증에 장애영역(맹·농·정신지체·지체장애)을 표기했으나, 통합교육을 강화하고 특수교사 수급체제를 원활하게 하고자 시행규칙이 개정된 이후에는 장애영역을 표기하지 않게 됐다. 강창욱 교수는 “나는 (대학에서) 기본과목을 모두 이수한 다음 청각장애 관련 과목을 15학점 더 들었는데 지금은 교육과정이 바뀌어 각양각색의 과목을 다 듣도록 한다”며 “이것도 듣고 저것도 들었으나 막상 청각장애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전혀 준비되지 않은 교사가 양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특수교사 양성 과정에선 농인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수어 교육 이수 역시 필수가 아니다. 김다솔 특수교사는 “수어 수업이 의무가 아니었으며 저는 교양으로 수어 수업을 들으며 아주 기본적인 수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교양 수업조차 듣지 않은 학생들은 임용고시 때 지화(손가락으로 한글, 알파벳 등을 표기하는 것) 정도만 익히고 현장에 투입된다. 특수교사가 현장에서 수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건 예견된 일이다. A씨는 “현재 대학 과정에서 수어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특수교사들이 개인적으로 공부해서 수어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는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메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며 수어 교육이 대학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어 교육 연수와 수어 능력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문제를 해소하진 못하고 있다. 윤병천 교수는 “국립특수교육원에서는 100시간 이상 수어 교육 연수를 받게 하고 평가를 진행하나, 농아인 단체에서는 이러한 연수가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지금의 연수 과정만으로는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수어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로 수업에 수어 통역사가 동반되기도 하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과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해 학생의 성장을 도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김다솔 특수 교사는 “교육이라는 건 그 학생과 직접 대화를 하고 특정한 느낌과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진행돼야 하는데, 중간 단계에 통역사가 있으면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렵다”며 수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면 학생과의 ‘라포(rapport)’ 형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래서 (학생들이) 다들 농학교로 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교원 양성 과정에 수어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특수교사 양성 과정 전반에서 각 장애영역의 중요도를 다르게 책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발달장애 및 지체장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애 비율이 적은 시각·청각장애에 대해선 교육 계획과 대책이 충분한 수준으로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 자원을 투입하는 과정에서도 장애영역에 따른 차등화가 나타난다. 강창욱 교수는 “특수교육은 원래 소수자의 교육적 요구에 맞춰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인데, 현재는 양적 교육으로 변질돼 장애 비율이 높은 영역에 예산이 집중된다”고 말한다. 임용고시에서도 시험 범위 자체에는 청각장애가 들어가지만, 한 문항 정도로 출제돼 중요도가 낮게 인식된다. 김다솔 특수교사는 “평생 교직에 있으면서 (수가 적은) 청각장애학생을 안 만날 수도 있지만, 특수교사란 비주류를 가르치는 직업이기 때문에 청각장애학생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며 교원 양성 시 소수 장애에 대해서도 충분한 교육이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한편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전문성을 높일 기회조차 제한된다. 강창욱 교수는 “특수교육과에 진학한 학생 중 청각장애에 관심이 있어서 온 학생들이 더러 있지만, 이 학생들도 청각장애학교에 가지 못하고 다른 곳에 배치된다”며 청각장애 교육에 뜻이 있는 교사들에게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학사 졸업 후 석·박사 과정을 추가로 이수해 청각장애 교육을 위한 전문성을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역시 원하는 근무지에 배정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윤병천 교수는 “(처음에 농학교 발령이 되지 않아) 석사, 박사에서 청각장애 교육을 전공하고 다시 농학교 발령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공립학교의 경우 특수교사가 일반교사와 마찬가지로 근무지를 순환하는 시스템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강 교수는 “순환 배치를 시키니 전문성을 기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다년간 농학교에서 근무하며 청각장애 교육의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았더라도, 순환 배치에 의해 다른 장애영역의 특수학교로 배치될 수 있다. 소수의 전문 인력마저 청각장애 교육에 집중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각장애 교육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청각장애인 특수교사를 양성할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현재는 청각장애인이 교사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이다. 곽정란 연구원은 “수어로 교육하려면 그 수어를 아주 잘하는 농인 교사들이 많이 필요하므로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이 청각장애 교육을 희망해 임용과정을 거쳐 정교사가 돼도 농학교가 아닌 다른 장애영역의 학교로 배치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강창욱 교수는 “우리 학교엔 장애특례입학 대상자로 몇몇 청각장애학생이 입학하긴 하나, 순환 배치 시스템으로 인해 농학교가 아니라 무작위로 배정된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각장애 내에서도 장애의 양상과 개인이 놓인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청각장애 교육을 설계하고 운영할 때엔 복합적인 시각이 전제돼야 한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청각을 활용하는 학생들과,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농학생 각각에게 맞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다양한 의사소통 체계에 따라 교육 효과를 올리기 위해 FM 보청기, 문자·수어통역 등의 구체적 방법들이 제시된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는 교육은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곽정란 연구원은 “하나의 용어로써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각장애를 단일한 층위로 파악하고 모두를 한 집단으로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청각장애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교육부의 이념에 맞게, 청각장애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섬세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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