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덜룩한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정치경제학

근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패러다임이자 연구 프로그램
박지훈 교수(중앙대학교 접경인문학 연구단 연구교수) 서강대학교 경제학과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영국 랑카스터대학교에서 밥 제솝과 나일링 섬의 지도 하에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접경인문학 연구단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겸임연구원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소개한 문화정치경제학과 동아시아 자본주의, 그리고 패권경쟁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 혹은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 내에서 혹은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자본주의를 해명하려는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관심을 혹은 최소한 호기심 정도라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글에서 소개할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정치경제학(A Cultural Political Economy of Variegated Capitalism, 이하 문화정치경제학)’도 바로 그 자본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사안들을 해명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 질서들을 모색하기 위한 이론 패러다임이자 연구 프로그램이다. 영국의 밥 제솝(Bob Jessop)과 나일링 섬(Ngai-Ling Sum)이 2000년대 들어 주창하기 시작한 문화정치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적 정치경제학 분야의 여러 이론적 자원들과 비판적 문화연구의 그것들을 결합한 형태를 갖는다. 좀 더 상술하면, 그것은 (1)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2) 조절접근, (3) 비판적 거버넌스 연구, (4) 국가론, (5) 비판적 담론분석과 친화적인 비판적 기호분석, 그리고 (6)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적 접근을 (7) 사회과학철학의 영역에서는 비판적 실재론, 그리고 (8) 사회이론의 영역에서는 전략관계적 접근에 입각하여 이론적으로 일관성 있게 절합·접합한 통합적 이론 패러다임이다.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각 구성요소들에 대한 세부적 설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대신 그것의 몇 가지 기본적 특징에 대해서만 간략히 지적하도록 하자. 첫째,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이론 기획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르크스를 신성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르크스를 19세기 유럽의 뛰어난 이론가들 중 한 명으로 간주할 뿐이다.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마르크스의 통찰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의 모든 주장이 옳은 것도 아니며, 오직 마르크스만 가지고 현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나아가, 문화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자체가 미완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이 맥락에서 그것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전통에 속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완하고 극복하려 한다. 그것이 정치경제학 비판과 현대의 비판적 사회과학 이론들을 결합하려는 것도 바로 이 맥락에서이다. 둘째, 문화정치경제학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현상을 보편적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reduction-ism)를 거부한다. 동시에 그것은 환원주의를 거부한다는 명목 하에 서로 양립불가능한 이론적 자원들을 마구잡이로 섞는 절충주의(eclecticism)도 거부한다. 문화정치경제학의 지향은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종합이며, 이 때문에 그것은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이론적 자원들을 동일한 메타이론들, 즉 비판적 실재론과 전략관계적 접근에 입각하여 절합하려 한다. 

  셋째, 위 맥락에서 문화정치경제학은 횡단분과학문적(transdisciplinary) 탐구를 지향한다. 실제로 그것의 구성요소인 조절접근은 최초 프랑스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국가론은 정치이론이고, 거버넌스 연구는 행정학이나 정치학의 주요 분야이며, 얼룩덜룩한 자본주의적 접근은 방법론적 영토주의(methodological territorialism)와 초지구화 테제(hyper-globalisation thesis) 모두를 거부하는 인문지리학자들이 고안한 개념이다. 나아가 비판적 담론분석과 기호분석은 상당 부분 언어학자들의 작업에 기초하고 있으며, 전략관계적 접근은 사회학 분야에서, 그리고 비판적 실재론은 최초 철학의 영역에서 등장했다. 요컨대 그것은 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언어학, 지리학, 그리고 (이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역사학 등에서 이론적 자원을 결합한 결과물이다. 끝으로, 문화정치경제학은 비판적, 특히 해방적 학문을 지향함을 숨기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모든 가치로부터 중립적인 사회과학이론의 존재가능성을 부정한다. 그것은 관찰이 이론부과적(theory-laden)이며, 이론은 가치부과적(value-laden)임을 인정한다. 때문에 그것은 가치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위치와 지향을 은폐하려기 보다 그것들을 솔직히 드러내고 그 자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특히, 문화정치경제학은 그것이 해방적 사회과학임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해방이라 함은 사회 속에서 겪는 인간적 고통(suffering)으로부터 웰빙(well-being)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 맥락에서 그것은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관심을 갖지만,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행해지는 젠더, 인종, 세대 간 불평등, 지배, 그리고 착취를 간과하지 않는다.

  이상의 맥락에서 문화정치경제학은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에게 매력적인 이론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상대적으로 최근 출현한 이론이기 때문에, 그 내부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의 결여들이 있다. 또한, 그것의 종합적 성격 때문에 그에 대한 학습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가령, 그것을 개괄적으로라도 이해하기 위해 여러분은 사회과학철학에서 실재론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갖추어야 하고, 구조와 행위성 등을 다루는 사회이론의 영역에서도 나름의 학습을 해야하며,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대한 복수의 해석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도, 국가, 문화와 담론, 그리고 자본주의의 시공간성을 다루는 논의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 문화정치경제학과 관련된 문헌들 중 국내에 번역된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학습의 노력과 수고는 배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관련된 현상들이 복잡다단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나아가 그러한 현상들을 일면적으로만 파악하려는 이론들에 실망한 적이 있다면, 문화정치경제학은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일 것이다. 적어도 오늘날의 비판적 사회과학계 내에서 이 정도의 이론적 엄밀성을 가진 나아가 경험적 사례를 종합적으로 다루려는 이론 패러다임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훈 교수(중앙대학교 접경인문학 연구단 연구교수) 서강대학교 경제학과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영국 랑카스터대학교에서 밥 제솝과 나일링 섬의 지도 하에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접경인문학 연구단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겸임연구원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소개한 문화정치경제학과 동아시아 자본주의, 그리고 패권경쟁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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