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흥캠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3월 11일과 5월 1일 서울대 당국에 의해 자행된 ‘시흥캠 반대’ 학생 농성 폭력진압 행위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서울대 당국은 폭력진압 사건의 피해 학생들에게 도리어 5천만 원을 내놓으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학생들의 본관 점거가 ‘서울대학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실추’시켰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 소송 자체만 두고도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시흥캠퍼스 얘기를 좀 더 꺼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의 본질은 대학 당국의 무리한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에 대해 학생들이 강력하게 우려를 표했고, 이것을 대학 당국이 무시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우려는 거의 적중했지만, 대학 당국은 반성은커녕 해당 학생들에게 5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보복소송을 걸었다. 2016~2017년, 학생들이 본관 점거까지 해가며 시흥캠퍼스를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시흥캠퍼스 사업은 부동산 투기 사업이었다. 시흥캠퍼스가 들어선 위치는 시흥시 배곧신도시라는 곳인데, ‘서울대가 바로 앞! 투자수익도 맨 앞!’이 신도시를 상징하는 광고 문구였다. 참고로 이 광고는 지금 당장 구글에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사정은 이렇다. 시흥캠퍼스의 1단계 건물은 한라건설이 무상으로 지어준다. 그렇게 해도 한라건설에게는 ‘남는 장사’다. 왜냐하면, 시흥캠퍼스 주변 신도시 아파트 분양수익이 한라건설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서울대의 이름값을 팔아서 부동산 투자수익을 극대화했다는 뜻이다. 요즘 수도권 집값 문제로 연일 시끄러운데, 과연 학교 이름을 팔아서 건설사의 배를 불려주는 게 떳떳한 일인지 묻고 싶다.
두 번째로, 시흥캠퍼스 사업은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했다. 시흥캠퍼스의 용도가 무엇이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대학 당국의 대답은 매해 바뀌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국제캠퍼스가 될 것이라고도 했고, 기숙형 대학(RC; Residential College)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2016년 4차 산업혁명 유행이 불 때는 자율주행 자동차 연구 등을 위한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 ‘스마트 캠퍼스’ 등등…. 그때마다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였지만, 그래서 그 실체를 알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학부 1학년 전체가 시흥캠퍼스에 머물 것이라고도 했다가, 아니라고도 했다. 특정 계획을 발표했다가 학생들이 비판하면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대답이 반복됐다.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 당시 필자는 언론 대응을 담당했다. 당시 학생들의 시위를 가장 부정적인 논조로 보도한 언론은 〈한국경제〉였다. 그런데 그 〈한국경제〉에서 얼마 전, 서울대의 제2캠퍼스들이 “세금 먹는 하마”라고 비판했다. 이미 유령캠퍼스가 되어버린 평창캠퍼스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서울대가 시흥캠퍼스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왜 그런 캠퍼스에 국민 혈세를 낭비해야 하냐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다. 잠시 지면을 빌려 기사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흥캠퍼스] 추진 당시 서울대생들은 이 같은 이유들이 추상적이라는 점과 평창캠퍼스의 운영 부실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시흥캠퍼스 설립을 격렬히 반대했었다.뿐만 아니라 일부 서울대 교수들 역시 관악캠퍼스 과밀화, 4차 산업혁명 대비 등이 중요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 해결책이 시흥캠퍼스의 설립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대 측은 각 캠퍼스가 지향하는 기본 방향이 다르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 수천억 쏟고도 불꺼진 서울대 평창캠…그런데 시흥에 또? [세금 먹는 하마], 한국경제, 2020. 11. 8.
학생 시위를 비난하던 언론사마저도 지금은 앞장서서 시흥캠퍼스 사업을 비판하고 있다. 시흥캠퍼스 사업이 얼마나 무계획적으로 추진되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언급하자.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이 전개된 2016~2017년은 서울대에서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다. 2016년 음대 시간강사들이 부당해고되어 천막농성 끝에 원직복직된 게 2016년 말이다. 지금 학과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비학생조교 선생님들도 2017년 3월에는 해고자 신분이었다. 학교 당국이 돈이 없다며 계약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성낙인 총장을 상대로 반년가량 농성과 시위를 벌이고서야 복직할 수 있었다. 당장 관악캠퍼스조차 제대로 굴리지 못하는 대학 당국이 무슨 돈으로 시흥캠퍼스를 굴리겠다는 것인지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본관 점거 중에는 시흥캠퍼스에 키즈카페, 실버타운, 스파를 유치해서 캠퍼스 운영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검토 보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과 스파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대학 당국에 따져 물었더니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또 돌아왔다.
하기야 시흥캠퍼스 추진 계획 자체도 학생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고,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실시협약은 체결되기 3분 전에 ‘통보’받았다. 대학 당국이 학생들의 의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더구나 대학 당국은 시흥캠퍼스 반대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사찰해 민감정보를 수집하고, 수백 명의 교직원을 동원해 두 차례에 걸쳐 학생들의 농성을 강제 진압했다.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물대포를 직사 살수한 행위는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남을 것이다. 이제 3년 4개월 만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까지 나왔다. 이 대학의 총장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과거 학생들에게 가한 폭력에 대한 사과는 물론이요 엉성한 시흥캠퍼스 추진에 대한 반성 그리고 민주적인 대학 운영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세정 총장의 선택은 학생들에게 5천만 원 손배소송을 거는 것으로 귀결됐다. “학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실추시켰다”면서.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다. 학교의 명예를 누가 실추시켰는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스마트 캠퍼스에 스파를 유치하겠다던 대학 당국인지, 대학의 미래를 걱정하며 저항에 나섰던 학생들인지.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살수하고 폭력을 행사한 대학 당국인지, 대학 구성원으로서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다 인권침해를 당한 학생들인지 말이다.
고근형 (조선해양공학 15)
시흥캠 투쟁 당시 언론 대응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