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대학원생 연구원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실은 기사를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대학원생 분들을 한껏 인터뷰해서 기사에 담아야지, 하고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변을 수소문해보니 한 분 인터뷰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지인을 통해 연락을 드려도 거절당한 적이 많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봐도 연락이 오질 않았습니다. 대학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생생히 담아내고 싶었는데,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각자의 현장이 너무도 치열해서, 혹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운이 좋아 학생연구원 네 분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인터뷰에서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해주신 문제들을 기사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까지 들 정도로요. 용기를 내주신 네 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실제 연구실 상황은 모른 채 붕 뜬 이야기들로만 기사를 적어 냈을 겁니다.
학교에서 기자 일을 하고 있다는 제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을 받고 현명하게 답함)의 숨겨진 의미를 아냐고, 그건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라고요. 저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어왔습니다. 기자는 현장에 있는 답을 충실히 옮기기만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정말 현장에 답이 있긴 했습니다. 사고가 나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일을 해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현장은 학생연구원도 근로자로 봐달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이 입을 떼게 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기자가 마이크를 갖다 댄다고 현장이 바로 답을 말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연구실에 한 번 와보지도 않고 편하게 답을 가져가려는 게으른 기자가 괘씸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더 뛰어다녀야겠습니다. 노트북 위 손가락이 아니라, 발로 뛰어 현장과 살을 맞대야겠습니다. 그래야 현장도 기자에게 답을 들려주겠지요. 그렇게 쓴 기사야말로 ‘우문현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