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신림에 갔다. ‘유흥업소가 이렇게나 많다’는 걸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려면 신림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아가씨 00명이 대기 중’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업소가 수두룩한 곳 아니던가.

  일요일 늦은 오후, 김윤교 기자와 ‘포토 스팟’을 찾으려 신림 구석구석을 누볐다. 마땅한 곳이 없었다. 업소들이 한데 모여 있어야 사진이 ‘예쁘게’ 나올 텐데, ‘노래클럽’과 ‘데이트K’와 ‘대화방’은 횟집과 카페와 한의원 사이사이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못내 아쉬워하는 내가 참으로 우스웠다. 한국 사회의 탈성매매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쓰는데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업소가 많았으면 하고 바란다니.

  거리의 간판을 유심히 살폈다. ‘BAR’와 ‘노래바’를 눈 빠지게 찾다 보니 문득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이렇게 많은 업소를 얼마나 많은 성구매자가 이용할까, 이렇게 많은 업소의 월세를 걷는 건물주는 또 얼마나 많을까, 이렇게 많은 업소가 적나라한 업소 간판과 번쩍번쩍한 조명을 달고 있는데 왜 단속은 안 되는 걸까.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를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좁은 골목에 들어가 업소 간판 사진을 찍고 있자니 바로 옆에서 꾸물거리는 검은 차가 거슬렸다. 마치 우리를 지켜보느라 바로 출발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짙은 선팅 때문에 내부가 안 보였다. 선팅된 차는 이후로도 몇 대나 눈에 띄었다. 성매매 구인사이트에서 봤던 홍보글이 떠올랐다. 업소에 차가 여러 대 있으니 언니들 다리 아프게 걷지 말라고. 그 차는 업소 차였을까?

  노래‘빠’라는 곳이 있다. ‘빠’ 대신 ‘바’나 ‘밤’, ‘바+(하단)♥’ 등을 쓰기도 한다. 흔히 노래방이라고 부르는 노래연습장과는 달리 이곳은 유흥·단란주점이다. 저 수상쩍은 하트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암시한다. 은근한 암시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지, 대놓고 성매매 업소라는 걸 드러내는 곳도 있다. 간판에 ‘북창동식’이라는 성매매 은어를 써 붙인 업소도 있었다.

  신림에만 노래바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5년째 오가는 집 주변 골목 모퉁이에 00노래바+♥가 있었다는 걸 불과 며칠 전에 발견했다. 독자분들도 눈여겨보시라. 노래방처럼 보이는 노래바가 얼마나 많은지를.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준공 3년, 평창캠퍼스의 오늘은

Next Post

김영미 PD, 동트지 못한 진실을 깨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