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적 없이 ‘고기’가 되었다

배양육 기술의 도래 앞에서 짚어야 할 질문들
잇저스트의 배양육 '닭고기' ©잇저스트(Eat Just)

  지난해 12월, 미국 기업 ‘잇저스트(Eat Just)’가 개발한 배양육이 세계 최초로 싱가포르에서 식품으로 승인받았다. ‘실험실 고기’로도 불리는 배양육은 살아있는 동물의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를 근세포로 배양해 만든다. 흔히 콩고기라 불리는 식물성 대체육은 콩이나 밀 등으로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지만, 배양육은 실제 동물 세포로 만든 진짜 ‘고기’다. 배양육은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으며 세계 각국에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승인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마트와 편의점에서 배양육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양육의 가능성과 부작용을 가늠하기 위한 쟁점들을 짚어봤다. 

잇저스트의 배양육 ‘닭고기’ ©잇저스트(Eat Just)

떠오르는 배양육의 ‘가능성’ 

  배양육 기술은 우리 앞에 성큼 도래했지만 배양육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는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국내에서의 기술적·학술적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주류 미디어에선 배양육 산업의 성장 규모와 밝은 전망에만 조명을 비춘다.

  배양육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단연 뜨겁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 가축 전염병 발병 위험을 대폭 낮출 수 있는 데다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클린 미트’ 혹은 ‘청정 고기’라고도 불린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동물을 밀집된 곳에서 사육해 도축하는 재래식 축산업이 인수공통감염병 확산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잇따르면서, 배양육은 도축 고기 섭취에 따른 감염병 위험을 해소할 구원자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이론적으로 세포는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식량 위기를 해결할 주역으로도 주목받는 중이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 이들에게도 배양육은 중요한 관심사다. 축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과도한 물 소비, 목초지 파괴 등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은 매력적이다. 배양육 산업이 도축 고기 산업을 대체하게 된다면 도살되는 동물 수가 훨씬 줄어들 거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 역시 2018년, 배양육 시장의 확대를 전망하는 뉴스를 공식 SNS를 통해 공유하며 긍정적 입장을 게시한 바 있다.

장밋빛 미래가 토대한 모래성

  배양육 개발기업들이 미디어를 통해 홍보하는 배양육의 장점들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까. 배양육 산업이 축산업을 대체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2019년, 옥스퍼드대 존 린치 박사 연구팀은 축산업이 배출한 메탄가스와 배양육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영향력을 비교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배양육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가 축산업이 배출하는 메탄가스보다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배양육 생산이 축산업보다 오히려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톤당 온실효과와 더불어 누적 효과를 봐야 한다. 톤당 온실효과는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 86배 강하지만, 누적 효과는 대기에 약 12년간 잔류하는 메탄보다 약 1천 년간 지속하는 이산화탄소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축산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점점 가속화하는 기후위기를 막기 어렵지만, 축산업의 대안으로 등장한 배양육 산업도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되는 소비재들의 ‘대체품’과 ‘대안’을 개발하더라도 과소비 자체를 줄일 수 없다면 환경문제 극복은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대량생산 시스템 속 ‘대안적 소비’보단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양육 산업이 도축 고기 산업을 대체하게 된다 해도 가축 사육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배양육 생산을 위해 세포를 배양하려면 말이나 소의 태아혈청이 필요해 가축 사육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선대학교 최문희 연구원과 신현재 교수(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의 논문 ‘배양육의 최신 연구현황과 공학적 과제’에 따르면 태아혈청은 새끼를 임신한 암소를 도축해 얻어야 하기에 ‘배양육 생산이 증가할수록 가축 도축도 증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최근 잇저스트가 발표한 제품처럼 식물성 원료를 통해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경우라도 배양 과정에선 소 태아의 혈청을 사용한다. 잇저스트 측은 다음 생산 때부터는 식물성 배양액을 쓸 예정이라 밝혔으나 기술적으로 실현이 가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식량 위기 해결’이란 표어 역시 모호하다. 배양육의 현재 가격은 1파운드(453g)당 수십만 원에 달한다. 배양육이 전세계적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게 보급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식량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인구가 여전히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현실은 식량 생산의 부족이 아니라 식량 분배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영양 과잉으로 인한 성인병 환자가 증가하고 매년 570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진다는 사실은 결코 식량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잇저스트의 배양육 닭고기. ‘닭가슴살’이라고 표기돼있다. ©잇저스트(Eat Just)

논의되지 않은 ‘동물’의 이야기

  배양육 이슈가 잠재적인 시장 가치로만 조명되는 가운데 윤리에 대한 논의는 슬그머니 지워진다. 비인간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말하며 비인간동물을 인간의 착취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바꿔내고자 하는 비거니즘의 관점에선 배양육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동물권을 이야기하며 비거니즘을 실천해 온 다연과 민연(베지미나), 유나, 이슬 네 사람에게 배양육이 판매된다면 먹거나 구입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네 명 모두 “먹지 않을 것”이라며 곧바로 부정적인 답을 내놨다. 아무리 도살하지 않았더라도 생산 공정에서 동물의 몸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미 비건이 아니며(‘비건’의 사전적 정의는 ‘동물 유래 성분을 배제한’이다), 설령 그 문제가 해소된다 해도 굳이 고기가 필요치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시각·후각적으로 고기와 닮게 만든 대체육에도 꺼림칙함을 느낀 적이 많다는 이슬 씨는 “이런 (꺼림칙한) 감정이 동물권 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동물권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동물의 고통에 공감했기 때문이고 저에겐 그 감정이 되게 중요했다”면서 배양육의 모습이나 냄새 역시 동물의 고통을 연상시킬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은 배양육을 먹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배양육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물어봤다. 유나 씨는 대체육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 같다면서도 “현실적으로 환경 문제나 동물이 겪는 고통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고기를 소비하지 않는 미래보다 배양육을 먹는 미래를 기대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민연 씨는 “배양육의 타깃은 채식인이 아니라 비채식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안 먹더라도 배양육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고양이와 같은 육식성 반려동물, 동물보호소의 동물에게도 공장식 축산의 부산물인 병든 가축으로 만든 기존 사료보다 배양육 사료가 더 나은 선택지가 될 거라 부연했다.

  배양육 소비가 얼마나 비거니즘의 가치에 부합하는 선택인지에 대한 판단은 도살의 문제와 직결된다. 배양육이 상용화됐을 때 실제로 도살이 감소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도살을 줄인다는 전제하에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제기된다. 더 많은 죽음을 막는다는 의의에 주목하는 측에선 수많은 동물이 ‘고기’로 만들어지기 위해 살해되는 현실의 급박함을 지적한다. 반면 도살의 양이 많든 적든 도살이 이뤄지므로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입장에선 배양육을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슬 씨는 “비인간동물을 ‘돼지’나 ‘소’라는 하나의 종 단위로 보지 않고 개개의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면, 도살되는 수가 많든 적든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연 씨 역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을 테고, 그 소비가 배양육으로 대체된다면 직접 도살되는 동물 수는 줄어드는 거니까 긍정적”이라면서도 “배양육도 동물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공장식 축산이 행하는 도살과 똑같다고 본다”고 강조한다.

  배양육이 비거니즘의 궁극적 지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인터뷰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비거니즘의 목적이 비인간동물의 죽음과 고통을 줄이는 데 있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인간동물을 인간의 식용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 자체를 전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유나 씨는 “두 입장 모두 공감이 가서 저도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면서 배양육에 관한 논쟁 속에서 비거니즘의 논점이 자칫 흐려지진 않을까 우려했다. 배양육이 생기면 비인간동물을 ‘착취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그대로 유지되는데도 외견상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세상이 나아졌다는 착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연 씨는 배양육 산업이 내건 ‘동물을 위한다’는 구호의 인간중심적 태도를 지적했다. 인간이 동물들을 포획해 관리하는 종차별적 구도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배양육이 만들어져서라도 동물들이 덜 고통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민연 씨 역시 “배양육이 최종 단계가 아니라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고, 궁극적으로는 동물의 살점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여겨질 수 있도록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네덜란드 기업 모사미트가 개발한 배양육 ©모사미트(Mosa Meat)

동물과의 공존을 향한 전진 혹은 퇴보

  최근 식물성 대체육 등 다양한 육류 대체품이 활발히 나오고 있는데도 ‘진짜 고기’라는 수식어와 함께 배양육이 훨씬 주목받는다는 점도 생각해볼 문제다. 배양육 출시에 대해 다연과 민연, 유나, 이슬 씨가 보인 반응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기가 필요하냐는 의문으로 요약된다. 이는 인간이 나머지 세계와 관계맺는 방법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배양육 기술은 어쩌면 더 많은 동물의 죽음을 예방할지 모른다. 그러나 동물을 먹고 입을 대상으로 보는 시선까지 바꿀 수 있을까. 물음에 답하는 건 기술 앞에 남겨진 인류의 몫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위버멘쉬들에게 전하는 단순한 진심

Next Post

여성들이 함께할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