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하잖아요. 꼭 그런 기분이야. 옛날로 치면 까막눈처럼 그래.” 70대 중반 김명옥(가명) 씨는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에 간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명옥 씨는 배가 고팠지만 주문도 못 한 채 가게를 나와버렸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뒷사람들 줄 서 있는 게 눈치보여서 그냥 나왔어. 억울했죠.”
각종 편의시설에 키오스크와 같은 무인주문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적지 않은 노인들이 김명옥 씨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들의 정보 소외는 더욱 심해졌다. 디지털 격차 해소의 방안으로서 노인정보화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다. 노인정보화교육은 세상의 빠른 변화에 노인들이 보폭을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디지털 세상과 함께하기 위한 마라톤에 뛰어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노인정보화교육의 현황과 미래를 살펴봤다.
언택트 시대, 사회는 노인과 거리두기 중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무인 서비스가 증가하며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는 전보다 일상 깊숙이 침투했다. 직접 직원과 이야기하거나 시설을 방문하지 않고도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 비대면·무인 서비스의 장점이다. 하지만 모두가 무인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기 활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낯선 기계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낯선 기계’ 중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도봉노인종합복지관 전윤정 강사는 “스마트폰 기초 활용반의 수업 목표는 스마트폰을 전화기로만 쓰지 않고 활용하는 것”이라 말했다. 오늘날의 수많은 서비스가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되지만, 아직 많은 노인에게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은 미지의 영역이다. 기능을 알지 못하니 쓰기는 더욱 어렵다. 그중 하나가 QR코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출입명부 작성이 의무화된 이후 대다수 시설이 QR코드를 통한 전자출입명부 작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QR체크인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지난 3월 10일 도봉노인종합복지관
의 스마트폰 기초반에서는 카카오톡을 이용한 QR체크인 수업을 진행했다. 앱에서 QR체크인 버튼을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버튼이 첫 화면에 바로 보이지 않고, 글씨도 작기 때문이다. QR체크인을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와 본인확인을 하는 데에는 강사의 일대일 설명이 필요했다. 개인정보 제공 약관은 글씨가 너무 작아 읽을 수 없었다. 본인확인을 위해 필요한 통신사 정보를 알지 못해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시간 초과로 화면이 초기화되기도 했다. 여섯 명의 수강생이 모두 QR코드를 형성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를 할 때도 노인들은 디지털 소외를 경험한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에 들어갈 경우, 격리자의 건강 상태와 격리장소 이탈 여부가 안전보호 앱을 통해 모니터링된다. 지난해 4월 <제주 뉴스1>은 제주도 내 자가격리 대상 중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을 설치하지 못한 13%는 노인과 유아, 2G폰 사용자 등이라고 보도했다. 80대 자가격리자가 격리장소를 벗어났지만 자가격리 앱이 핸드폰에 설치돼있지 않아 전담공무원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세계 1위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이용한 ‘K-방역’이 회자되는 가운데 노인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비대면 매체의 활용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물리적 단절은 더 큰 사회적 고립을 가져온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에 따르면 도시지역 거주 노인 중 50%는 경로당, 35.2%는 복지관을 여가시설로 이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18일을 기준으로 운영 중인 전국의 노인복지관은 전체의 2.5%, 경로당은 23.5%에 불과했다. 전윤정 강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르신들이 복지관에 못 오시고 집에 혼자 계신 경우가 많다”며 노인들의 고립을 우려했다.
노인정보화교육은 노인들의 비대면 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그 자체로 노인들에게 소통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센터 강소랑 박사는 “복지관이 (디지털 교육) 플랫폼이 돼 노인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복지관에 모이면 그 또한 사회활동이 된다”고 강조했다. 노인정보화교육은 노인들이 청년 봉사자들과 소통하는 기회기도 하다. 노인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한편, 디지털 기기의 활용 가능성을 인식하기도 한다. 현재는 코로나19 대응지침에 따라 비대면 봉사가 이뤄진다.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채서희 복지사는 “비대면 봉사는 간접적인 도움을 줄 뿐 보람이 적다는 인식 때문에 지원자가 매우 부족한 상태”라며 비대면 봉사를 향한 관심을 호소했다.
삶의 활기를 주는 노인정보화교육
디지털 소외로 인해 일상의 불편함이 증가함에 따라 노인정보화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노인들이 늘었다. 도봉노인종합복지관 안현주 사회복지사는 “코로나 19 이후 어르신들의 스마트폰 이용 욕구가 확실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노인정보화교육 수강생들은 디지털 기술에 서툰 노인의 삶이 “글 모르는 사람과 다름없다”고 입을 모았다.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스마트시니어봉사단 교육을 수강하는 유상란 씨와 박신자 씨는 자신의 힘으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고 싶어 복지관을 찾았다. 가족들의 도움은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할 뿐 그들의 이해를 돕지 못했다. 신자 씨는 “(가족들의) 알아듣기 어렵고 빠른 설명에 오히려 위축된다”며 알맞은 정보화교육으로 노인의 자립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배움은 김명옥 씨에게 활기를 가져다줬다. “모르는 걸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즐거워. 배운 걸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안현주 복지사는 노인정보화교육이 노인의 사회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노인정보화교육 수료자들은 손자와의 카카오톡 채팅을 자랑하거나 직접 복지관 홍보영상을 찍으며 복지사들과의 교육 경험을 나눴다. 안 복지사는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을 어르신들이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게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직접 강사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정보화교육 강사 과정을 수료한 노인들이 수업을 직접 강의하는 스마트시니어봉사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시니어 강사 수업은 수강생들에게는 노인 당사자인 강사가 수강생의 상태와 욕구를 잘 이해한다는 장점이, 시니어 강사 본인에게는 노년 사회활동을 활성화한다는 이점이 있다. 강사 최순자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나이에도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강사로 활동하며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교육에 대한 노인들의 관심이 높다. 온라인 교육 알람을 발송하는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카카오채널의 구독자는 900명이 넘는다. 도봉노인종합복지관의 비대면 교육 역시 노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안현주 복지사는 “지난해 복지관이 휴관할 때 제공한 영상 녹화 강의의 조회수가 상당히 높았다.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영상은 ‘노래방 어플 사용하기’였다”고 말했다. 온라인 노인정보화교육은 코로나19로 막힌 노인들의 사회·여가생활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수강생 포화와 비대면 강의의 이중고
노인정보화교육의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지원자 수에 비해 수강정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강신청 단계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김명옥 씨는 지난해부터 수차례 정보화교육 수강을 신청한 끝에 수업에 등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복지관은 교육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추첨으로 수강생을 뽑고 있다. 수업 신청에 성공하더라도 수강생이 너무 많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윤정 강사는 “개별 지도가 필요하다 보니 인원수가 많으면 시간 안에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송파노인종합복지관은 현재 중복 수강을 금지하고 있다. 부족한 정원으로 최대한 많은 노인에게 수강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지만, 수강자가 다시 공부하기를 원해도 수업을 재수강할 수는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 번의 수강만으로는 수업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명옥 씨는 “3개월은 노인들이 편안하게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배우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데에 노인들의 수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2019년 서울시 전체 노인정보화교육 과정을 조사한 결과 노인들의 실제 수요와 교육과정 비중이 상이했다. 사업기획단계에서 수요조사가 실시되긴 하지만, 기반 시설과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실제 수요가 교육과정에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교육보다 스마트폰 교육의 수요가 높지만, 실제론 컴퓨터 교육 위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하다. 강소랑 박사는 “과거의 수요에 따라 이미 현장에 공급된 컴퓨터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채서희 복지사는 복지관의 자체 수요조사에 신뢰도의 문제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노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수요조사 문항을 작성하고 성실히 답변하도록 장려하는 것 모두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에 발맞춘 영상 녹화
강의와 실시간 화상 강의로 부족한 수강정원 문제를 해소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전윤정 강사는 비대면 강의는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줌(Zoom)과 같은 화상 강의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부터 진입장벽이 높다.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스마트시니어봉사단 김창옥 강사는 “줌(Zoom)은 쌍방향 소통을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기기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상수업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노인들에겐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듣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유상란 씨와 박신자 씨는 초기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대면 수강으로 전환했다. 상란 씨는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들으면 수업 중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없어 불편함을 느꼈다. 귀가 어두운 신자 씨에겐 스마트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채서희 복지사는 “수업 초반에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많은 수강생이 (온라인 강의에) 접속했지만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비대면 실시간 강의보다는 일방적인 녹화 강의가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녹화 강의는 반복학습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화 강의는 학생에 맞춘 개별 지도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인지 능력과 기억력이 저하된 노인들에겐 반복학습과 개별지도 모두 필수적이어서 녹화 강의 역시 충분한 대안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인정보화교육의 길

대면 강의의 확대 여부는 여전히 불
투명하고 노인정보화교육의 수요는 나날이 커져가는 가운데,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구에서 자체 개발한 음성안내 키오스크 교육용 앱 ‘서초 키오스크’는 이런 노력의 대표적인 예다. 서초 키오스크를 사용하면 집에서도 스스로 키오스크를 활용해 주문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다. 채서희 복지사는 “서초 키오스크 개발은 지자체에서 힘을 실어줬기에 가능했다”며 “복지관 사업은 지자체가 내려주는 예산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역할은 취약계층 노인들의 디지털 환경 접근성을 높이는 데도 중요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저소득층 노인들은 노인정보화교육에 참여할 수조차 없다. 스마트폰을 구매해도 데이터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공공 와이파이가 없으면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역시 교육 참여가 어렵다. 채서희 복지사는 “정부와 기업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기기 구매와 통신비를 지원하고 공공 와이파이를 확대하는 등 노인들의 온라인 접근성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의 지원과 더불어 온라인 매체의 비판적 수용 능력 함양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디지털 시민성은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민이 갖춰야 할 윤리적 역량이다. 코로나19 이후 노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인터넷 정보의 신뢰성을 파악하고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를 피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시민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저작권 윤리나 SNS·인터넷 커뮤니티 윤리 역시 교육 내용에 포함된다. 전윤정 강사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윤리에 관한 교육은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특강 형식으로 개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언택트로의 대전환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지금,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더욱이 코로나19 취약계층인 노년층은 언택트 문화가제공하는 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이 가장 절실하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방법과 더불어 온라인 매체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세대보다 느릴지라도 노인들 역시 시대의 변화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사려 깊은 교육 운영과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