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을 뚫고 취직에 성공한 성소수자는 무사히 직장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여성 혹은 남성으로 모든 것이 나뉜 세상에서 소리 없는 배제를 경험해온 트랜스젠더퀴어는 일터에서도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직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과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보이지 않는 트랜스젠더퀴어의 노동
트랜스젠더퀴어가 일상 전반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노동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층 더 세밀하게 드러난다. 직장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곽이경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노동은 생계유지의 수단임과 동시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노동현장에서의 차별과 제가 실질적이고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성소수자들이 일터에서 마주하는 현실의 심각성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 상황 속에서 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청년정의당 오승재 대변인은 “전반적으로 고용이 위축된 가운데 원래부터 열악한 위치에 있던 성소수자는 코로나19 이후 더 많은 구직 기회를 박탈당했을 것”이라며 “사회가 성소수자를 노동하는 존재로조차 인식하지 않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성소수자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캠페인과 PSB 리서치가 미국인 4천 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LGBTQ 노동자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직업을 잃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17%로, 전체 노동자의 응답 비율인 13%보다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관련 조사나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할 기회도 적어졌다. 월급쟁이 퀴어모임은 직장에 다니는 성소수자들이 모여서 자신을 드러내고 직장 내의 얘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다양한 정체성의 많은 성소수자가 모임에 참여했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월급쟁이 퀴어모임의 운영진이자 IT기업 직원인 긍정 씨는 “다른 모임들과 달리 퀴어모임은 대면으로 만났다가 동선이 공개될 경우 아웃팅의 우려가 크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트랜스젠더퀴어의 노동 문제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 중에서도 특히 알려지지 못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이드 활동가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이슈는 의료나 법률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며 “이들은 부모에게 절연을 당하거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강도의 일을 선택하거나 빨리 취직할 수 있는 콜센터 상담원, 배달업에 많이 종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일터에서는 성 역할 고정관념으로 인해 업무능력이 아닌 외모와 성별을 기준으로 업무가 분배된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인 이드 활동가는 “예전에 프랜차이즈 브랜드 등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여성은 손님을 응대하고 남성은 몸을 쓰는 등 업무 역할 자체가 지정성별에 맞춰 나뉘어 있었다”며 “유니폼 역시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돼 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성별 이분법에 가둬 규정하지 않는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커밍아웃하지 않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채 같은 모순을 계속 마주쳐야 한다.
직장이라는 물리적 공간도 성별에 따라 두 개로 구분된다.화장실이나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 직원 휴게실 등은 대부분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분리돼있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위한 제3의 공간은 없다. 자신을 FTM 트랜스젠더라고 소개한 행성인 정현 활동가는 “인권단체 활동가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왜 여기 들어오냐’는 말을 들었다”며 일터에 성중립 공간이 없을 때 겪는 고충을 전했다. 곽이경 조직국장은 “일을 하다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들도 있다”며 ‘젠더화된’ 공간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복지혜택도 퀴어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트랜스젠더퀴어는 정상가족의 생애주기에 맞춰 제공되는 기업의 복지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젠더퀴어이자 레즈비언인 긍정 씨는 “파트너가 있어도 같은 동료들처럼 회사로부터 축하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퀴어 노동자의 큰 고충이라고 얘기했다. 이는 금전적 혜택을 넘어선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다. 곽이경 조직국장은 “가령 파트너의 부모가 상을 당해 휴가를 쓰려고 해도 무슨 상황인지 회사에 설명할 수가 없다”며 “돈을 못 받는 것을 넘어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동료들로부터 느끼는 소외감도 크다.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주변인들의 일상적인 발언은 업무에 악영향을 미친다. 긍정 씨는 “노동자가 성정체성으로 주목받게 되는 순간 자기 직업에 충실한 모습은 사람들에게서 잊힌다”고 말했다. 업무능력과 무관한 외모나 말투, 사소한 행동이 불필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레즈비언이자 종합병원의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행성인 슈미 활동가는 “일터에 여성스럽지 못한 차림을 하고 갈 때면 지적을 많이 받고, ‘남자친구 있냐’는 식의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얘기했다.
긍정 씨는 “당신의 일 잘하는 부하직원이나 동료가 성소수자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故 변희수 하사도 마찬가지였다. 긍정 씨는 “변 하사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우수한 평가를 받았던 군인이었지만, 열심히 일하던 과거는 드러나지 못한 채 트랜스젠더라는 사실만이 주목받았다”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은 성소수자에게 열린 직장문화를 만드는 것이 기업에게도 이익이라고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배제당하지 않을 때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故 김기홍 전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에게도 직업을 회복하는 것은 활동의 중요한 이유였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자 전직 음악교사였던 김 전 조직위원장은 평소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자주 언급할 정도로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했지만, 그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드 활동가는 “교사는 어때야 한다, 남성은 어때야 한다고 규정해놓는 사회에서 정해진 역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직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고 비판했다.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을까
아웃팅은 성소수자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일터에서 아웃팅을 당하게 되면 일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긍정 씨는 “성소수자가 아웃팅 당할 경우 (직장에서) 대놓고 내쫓진 않지만 은근한 압박을 줘서 그만두게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웃팅에 대한 걱정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동료들과 대화하고 관계맺지 못하게 방해한다. 슈미 활동가는 “영화나 연극 관람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자칫하면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소통하게 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거짓말을 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른바 ‘거짓말 스트레스’다. 곽이경 조직국장은 “노동자가 자신을 감추고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지적한다. 정현 씨는 커밍아웃하지 않은 채로 한 동료에게 직장에서의 성소수자 배제 문제를 이야기했다가 ‘그게 그렇게 크냐’는 무심한 반응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정현 씨는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해 사회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용기 내 시도한 커밍아웃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커밍아웃은 당사자의 용기뿐만 아니라 동료의 열린 자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드 활동가는 “동료에게 커밍아웃하자 동료가 ‘트랜스젠더인데 이 직장에는 어떻게 들어왔냐’고 말하기도 했다”며 “‘내가 어떤 사람이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기 위해 커밍아웃할 뿐, 정체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커밍아웃이 숙제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현 씨는 과거 인권단체에서 일할 당시 “한 번 누군가에게 커밍아웃하자 다른 사람에게도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며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짐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적으로 퀴어와 관련해 활동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앞으로 직장에서는 커밍아웃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직장 전체가 커밍아웃을 지지할 때 비로소 노동자는 안전하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다. 긍정 씨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동료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며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슈미 활동가 역시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이 사회에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직장 공동체 전체가 이를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 성소수자를 끌어안기 위해
모두가 존중받는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운동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주노총 곽이경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행성인에서 활동하다 몇 해 전 민주노총으로 자리를 옮겼다. 곽 조직국장은 “소수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노동조합 안에 더 많아진다면 모두를 위한 노동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곽 조직국장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등 성소수자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과 노동운동가들이 손을 잡고 있다. 2018년에는 행성인 노동권팀과 민주노총이 함께 소책자 『성소수자와 함께 평등한 일터 만들기』를 제작했다. 곽이경 조직국장은 “변 하사의 죽음을 비롯한 사건들을 보고 조합원들은 하려고 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성소수자 의제에 대한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노총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2015년 민주노총은 사무총국 처우규칙을 개정해 동성 배우자를 둔 사무총국·지역본부 사무처 활동가에게 가족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슈미 활동가는 “노동자분들을 만나 보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노동조합’이라고 말한다”며 “완전무결하진 못하더라도 노동조합은 변화를 논의할 수 있는 조직이기에 함께 활동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은 2016년 이후로 서울과 각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공식 참여하고 있다.
여전히 숙제는 남았다. 곽이경 조직국장은 “110만 명의 민주노총 구성원들이 모두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진 않다”며 “노동운동계에서 (성소수자 노동권을) 발화하는 사람도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변화의 물결이 기업으로 확장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의 과제다. 고용주와 기업이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위한 차별금지규정을 마련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노동조합에게 남겨진 숙제다.
활동가들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일터가 모두에게 좋은 일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에게 일방적인 폭력으로 작용하는 성별 이분법과 성 고정관념 등은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강요는 성소수자를 포함해 그 누구에게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위해, 성소수자를 위해, 그리고 모든 노동자를 위해 성소수자에게 열린 일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