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가 일상화된 시대에 제 기능을 잃은 물건을 수선하는 이들이 있다. 킨츠키 강사 박혜윤과 ‘브링더북’ 이은정 대표는 각각 도자기와 책을 수선하며 이를 고치는 방법을 키트, 매뉴얼, 워크숍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알리고 있다. 이들은 수선의 의미를 자연 보호나 추억 간직 등 다양한 곳에서 찾으며 한 번 쓰고 버리는 삶보다 수선하는 삶이 도래하길 희망한다. 직접 작업 현장을 찾아가 ‘수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킨츠키 : 깨진 도자기를 보수하는 예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박혜윤 강사(윤) : 안녕하세요. 저는 깨진 도자기를 옻과 금으로 수리하는 킨츠키 기법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고 강의하는 킨츠키 강사 박혜윤입니다.
이주은 대표(은) : 안녕하세요. 저는 킨츠키 워크숍을 진행하는 알맹상점의 공동대표 이주은입니다.
(이주은 대표에게) 킨츠키 워크숍을 열게 된 계기는 뭔가요?
은 : 깨진 것을 재사용하는 게 저희 가게의 취지와 일치해서 워크숍을 열게 됐어요. 저희는 이음새가 부족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상품들을 팔아요. 그런 상품에 하자가 없다는 걸 사람들이 알고 나서 많이 찾으세요. 깨진 유리도 수선할 수만 있다면 일반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고쳐 쓸 수 있다는 게 저희의 취지와 잘 맞아서 앞으로도 계속 워크숍을 진행하려고 해요.
킨츠키가 인기 있어지는 걸 실감하시나요?
은 : 소비를 어떻게 하는지, 소비한 뒤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저희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내가 무심결 에 소비한 게 어떻게 될 지를 사람들이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 한 것 같아요. 일회성 소비보다 재사용이 가능한 소비를 지향 하면서 본인의 물건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은 사연이 있나요?
윤 : 대부분 그릇에 이야기가 있어요. 저도 선배가 결혼 선물로 준 그릇을 깨뜨려서 그걸 고친 게 킨츠키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는데, 저 같은 분들이 정말 많아요. 워크숍을 할 때, ‘결혼할 때 산 그릇인데 깨졌다’거나 ‘15년 동안 쓴 그릇인데 깨져서 고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요. 다들 그릇에 사연이 있고 애정이 있어서 어떨 때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해요.
직접 그릇을 수리하고 나면 그릇에 대한 애정이 생길 것 같아요.
윤 : 애정이 생기죠. 환경을 생각해서 그릇을 수리하기도 하지만, 이건 정말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에요. 품을 들인다는 것은 그 만큼 그릇에 쌓인 이야기가 많다는 거예요. 본래 그릇에 애정이 있고, 거기에다 킨츠키라는 수리 방법을 배워서 고치면 그만큼의 애정이 더 들어가는 거니까요. 애정이 대단히 커지는 게 아니라, 원래 좋아했던 그릇에 들인 수고만큼 애정을 더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은 : 공장에서 상품을 계속 찍어내는 건 기후 위기의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재사용하는 문화가 생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다시 사용하고, 깨진 것도 다시 보는 워크숍을 올해 조금 더 체계화할 생각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제본작업실 브링더북의 대표이자 도서관 책 보수와 예술 제본을 하는 책 보수전문가 이은정입니다.
책 보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제본이라 하면 보통 기계 제본을 많이 생각하지만 제본가의 수작업을 통해서도 튼튼하고 아름답게 책이 재탄생할 수 있어요. 기록물을 튼튼하게 보존하기 위해 책을 뜯어내고, 상처를 보수 하고, 다시 엮어내는 과정 전체를 예술 제본이라고 하는데 이 수많은 과정 중 하나가 책 보수예요. 그 중에서도 도서관이라는 특성에 맞춰 책을 고치는 과정을 도서관 책 보수라고 하고요. 책 보수를 포함한 예술 제본, 제본, 제책, 북 바인딩은 모두 같은 뜻을 가진다고 봐야죠.
파손된 책은 모두 보수하시나요? 고치는 책의 기준이 궁금해요.
도서관 책 보수를 할 때 모든 책을 고칠 수는 없고, 절판되거나 희귀본으로 등록된 책을 우선순위로 둬요. 또 사료로서 가치 있으면 최우선으로 고쳐요. 물성을 기준으로 하면 침수된 책은 고치지 않아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죠. 개인 소장 책을 보수할 때는 특별한 기준이 없어요. 의뢰해주시는 책들에는 개개인의 소중한 사연이나 이유가 있으니까요.
일할 때 언제 보람을 느끼시나요?
책이 고쳐졌을 때 엄청난 희열이 있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아무나 못하는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꽤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요. 제가 고친 책을 기쁘게 봐주시는 것이 좋아서 봉사로 책을 고쳐주기도 했어요. 나한테 의미 있는 책인데 이걸 맡기자니 돈이 들고, 안 하자니 아쉬운 분들의 책을 고치죠. 비싼 재료를 쓰는 건 아니지만 책의 기능을 되살려서 드리면 너무 좋아하세요. 그런 걸 보면 정말 보람차죠.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신지?
봉사로 보수했던 책인데, 재작년 겨울쯤에 옥편을 작업했어요. 며느리분께서 할아버님의 옥편을 고쳐달라고 하셔서 두 달간 작업해서 보내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셨대요. 70년대에 출판된 두꺼운 옥편이었는데 지금 시세로 15만 원 정도 하는 사전이었어요. 할아버님께서 얼마나 책을 많이 보셨는지 정말 낡고, 여기저기에 테이프 붙이시고 없어진 페이지도 있더라고요. 작업이 어렵긴 했지만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할아버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셔서 기뻤어요. 요즘 오래된 책 만나기 무척 힘든데 이렇게 봉사로라도 옛날 책을 만나는 건 소중한 경험이죠.
책 보수는 왜 해야 할까요?
책 보수는 옛 장서를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현재의 책들에 새 생명을 주는 일이기도 해요. 도서관에서 실습하다보면 책 보수가 어려우니까 “칠천 원짜리 책인데 나가서 칠천 원을 주고 새로 사는 게 낫지 않냐”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책 보수의 가치를 가격에만 둘 수는 없어요. 책 보수의 의미는 여러 측면에서 찾아야 해요. 개인적인 의미도 좋고, 자연 보호도 좋아요. 이미 인쇄된 책을 얼마나 보는 지에 따라 자연을 보호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어요. 책이 버려지면 쓰레기가 되지만, 제가 살리면 가치 있는 자료가 되죠. 저는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가진 걸 고치고 오래 쓰려 노력 해요.
계획하시는 미래가 있을까요?
책 보수 전문가로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누군가 시작해야 그 다음 사람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생기거든 요. 그 물꼬를 트는 사람이 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예전부터 바라왔는데 요즘은 제 세대에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상관없어요. 제 이후라도 전문 직업군으로 자리 잡아서 많은 분들이 책 보수에 참여하고 이걸 전공하거나 직업으로 삼으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