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일, 살리려는 마음

캠퍼스 내 나무돌봄을 들여다보다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갖가지 풀과 

나무를 만나게 된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행위자들이다. 이들은 때맞춰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며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캠퍼스 곳곳에는 십수 년은 족히 됐을 큰 나무들이 작열하는 햇빛 아래 한숨 돌릴 그늘을 드리워주기도 한다.

  우리가 풀과 나무를 스치는 순간 너머엔 이들을 돌보고 가꾸는 노동이 있다. 그 노동에는 풀과 나무를 향한 관심, 지속적인 관찰, 그리고 ‘살리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식물을 돌보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동이 이뤄지는지,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식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봤다.

풀과 나무를 돌보는 일

  캠퍼스 내 조경 관리는 서울대학교 본부학술림(이하 학술림)에서 담당한다. 20년간 관악캠퍼스에서 현장 작업을 해온 권순걸 선임주무관은 “사람 곁에 있는 나무면 돌봄이 필요하다”며 “조경 관리는 잔디부터 나무 꼭대기까지 모두 돌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식물들이 본격적으로 생장을 시작하는 4월부터 12월까지는 계속 작업이 이어진다. 봄철 비료 뿌리기부터 병충해 방제, 제초작업, 여름철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 베어내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작업들이다. 가지치기도 중요하다. 오래된 나뭇가지가 떨어져 사람이 다치는 것을 막고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다. 한 인부는 “나무끼리 엉키거나 한 나무의 나뭇가지가 겹쳐지면 숨이 막혀 (나무의 일부분이) 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운동장 가장자리의 잔디밭. 이동식 잔디 깎는 기계가 앞뒤, 좌우로 길을 내며  움직이자 풀이 잘려나간다.  
관악사 삼거리에서 태풍 마이삭으로 쓰러진 나무를 베고 있다. © 학술림

  구성원의 필요와 나무의 자연스러운 생장 중 무엇이 우선인지 고민할 때도 있다. 김솔이 주무관은 “가을철 은행 열매의 악취로 인해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며 “암나무를 제거하고 수나무만 심어두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암나무를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암나무에 열매가 덜 맺히도록 가지 일부를 쳐냈다. 김유미 학사운영직은 “자연에서 은행나무는 멸종위기종으로, 사람들이 심고 번식시켜 종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며 “우리는 노란 은행잎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은행나무의 번식에 열매가 필수적이라는 건 간과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학술림에서는 구성원의 안전을 우선시하면서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나무를 보존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학술림에서는 캠퍼스 내 식물을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활동도 진행한다. 수목 해설 프로그램은 캠퍼스를 돌면서 나무를 관찰하고 나무 이름의 유래나 자연환경에 대해 해설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대면 행사가 어려워진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학내 특정 장소에 피는 꽃을 소개하는 ‘서울대 꽃지도’를 게시하기도 했다. 김유미 학사운영직은 “일단 나무 이름을 알면 나무가 다시 보이고, 어디 있어도 눈에 띄어 관심을 갖게 된다”며 “이름을 알게 되면서 식물과의 연결고리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서울대 꽃지도’ © 서울대학교 소통팀 X 디자인과 김민지

  학

술림 직원들은 캠퍼스 조경 관리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관리 면적이 늘고 인건비가 올랐음에도 예산은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은 게 주된 이유다. 실제로 현장 노동자의 수는 20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김솔이 주무관은 “큰 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까지 (전문 인력이 아닌) 현장 노동자분들이 도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유미 학사운영직은 “기본적인 관리를 넘어서 장기적인 조경 계획을 수립하거나 캠퍼스의 미세환경을 조사해 수목을 심는 것에 관한 매뉴얼을 제작하고 싶어도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나무가 그 자리에 있기까지


  학술림에 따르면 관악캠퍼스에는 약 180종의 나무가 4만 그루 이상 서식하고 있다. 이 중에는 2003년 학술림이 수원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해오면서 조경 관리 업무를 맡기 전부터 학교에 있던 나무들이 대다수다. 관악캠퍼스는 관악산을 맞대고 있어 산림과의 경계지역에서 물오리나무, 낙엽송, 아까시나무 등의 수종을 찾아볼 수 있다. 캠퍼스의 식물 다양성은 일반적인 조경수 조성 공간보다 높은 편이다.

  학술림에서는 캠퍼스 내 나무 중 주요 수목 약 4천 그루를 선정해 나무의 위치나 수종 정보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단 벌목을 막고 나무의 이동도 모두 기록한다. 재해가 생기거나 수령이 다 해 나무가 고사하면 주로 칠보산 학술림 양묘장에서 수목을 분양해 그 자리에 새로 심는다.

  대규모 공사가 이뤄질 경우 원래 있던 나무가 다른 장소로 옮겨 심어지기도 한다. 최근 정문 진입로 공사 준비 과정에서 느티나무는 경영대 앞 잔디밭으로 이식됐고, 철쭉은 연건 캠퍼스에, 회양목은 관악캠퍼스 곳곳에 이식됐다. 모든 나무를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썩은 부위가 있거나 이식하더라도 다시 건강해지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나무는 베어내 폐기한다. 이식된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 권순걸 선임주무관은 “이식된 나무를 살리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며 “(이식 후) 적어도 3년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식물과의 관계 맺기


  풀과 나무를 잘 돌보기 위해선 대상을 꾸준히 관찰함으로써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권순걸 선임주무관은 “캠퍼스 안에서 운전을 하다가도 마주치는 나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가 눈에 들어온다”며 “매일매일 오랫동안 보는 나무니까 놓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를 돌보는 사람들은 돌봄의 과정에서 식물을 풍경의 일부를 넘어 개별적인 존재로서 인식하게 된다. 김유미 학사운영직은 식물과 대화는 할 수 없지만 계속 지켜봄으로써 식물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교내 초화류 중 맥문동이 있어요. 흔히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심겨 있어서 이름을 모른다면 스치기 쉬워요. 그늘진 곳에서는 큰 수목의 배경이 되어 존재감이 없는 듯 보이지만, 초여름에는 보라색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검은색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름을 안다면 ‘맥문동 꽃이 피었네’라고 하겠지만, 모른다면 그저 무명씨 식물 중 하나일 뿐이죠. 맥문동을 관찰하면서 맥문동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배경이 되면서 어느 때엔 또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도 멋있는 일이다’ 하고요. (다른 사람 중에는) 식물을 보면서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권순걸 선임주무관은 일할 때의 마음가짐을 묻자 “살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기울어진 소나무를 지탱하는 철근 지지대를 직접 제작해 설치한 것을 보람 있는 경험 중 하나로 꼽았다. “(그렇게 지지대를 만들어줘서) 쓰러진 1동 옆 소나무들 다 살았죠. 그때 뿌듯해요, 살렸을 때.”

철근 지지대에 받쳐진 채 자라고 있는 소나무

  학술림 직원들은 캠퍼스에서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키는 식물도 학내 구성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나무들은 어린나무로 캠퍼스에 입학해서 우리와 함께 성장하게 된다’며 ‘교육적 의미를 갖고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입을 모았다.


(나무는 선생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나하고 같이 살아있는 저거지, 나무는 우리를 다 지켜보고 있어요. 좋잖아, 나무가 얼매 좋아. 말 모해도 좋잖아 그늘에 있으면.” – 권순걸 선임주무관과의 인터뷰에서

학술림 직원들이 ‘최애 나무’로 꼽아준 캠퍼스 내 나무.  차례로 정문 경영대 옆 느티나무, 예술관 앞 소나무. © 학술림

  늘 만나는 평범한 풍경에서 다른 존재들을 발견함으로써 낯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풀과 나무를 돌보는 사람들의 경험을 따라, 우리와 더불어 사는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보는 건 어떨까.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차별의 시대 불태워라”...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열려

Next Post

나의 말로 세상을 옮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