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없는 문·이과 통합 입시 제도

문·이과 통합 교육과 입시 제도를 돌아보다

 

“친구들끼리 ‘(수학) 나형이 그립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해요”

  입시를 앞둔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말이다. 올해 시행될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적용될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도입된 통합형 수능이지만, 문·이과의 형식적 결합만 이뤄졌을 뿐 실질적 결합의 길은 요원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게 현실이다.

사진 설명 시작. 책상 위에
▲올해부터 시행되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 대비해 한 학생이 모의고사를 준비하고 있다. 

©박용규 사진기자

70년 입시 제도 변천사

  문·이과 구분의 역사는 광복과 함께 시작됐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입시 제도는 대학별 단독 시험제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자연과학계 학과와 인문과학계, 사회과학계 학과가 개별적으로 모집됐다. 1954년부터 1981년까지는 대학별 본고사만 시행되거나, 본고사와 예비고사가 병행됐다. 국가 차원에서 시행된 예비고사에는 문·이과 구분이 없었다. 반면 대학별로 시행된 본고사의 경우 계열에 따라 과목의 난이도가 달라 문·이과의 실질적인 구분이 존재했다.

  1982년부터는 전국 규모의 대학 신입생 선발 시험인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도입됐다. 당시 학력고사는 문·이과 계열별 구분이 엄격히 이뤄졌다. 전국 규모의 단일 시험이었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예비고사와 유사한 형태였지만, 자격 시험이 아닌 선발 시험이라는 점과 문·이과 계열 구분이 존재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다. 1993년부터 시행된 수능 역시 수학과 탐구 과목에서 문·이과 계열을 구분했다. 시험의 방식이나 세부 내용은 변했어도, 수학과 사회, 과학 탐구 과목에서의 문·이과 구분이라는 큰 틀은 변함이 없었다.

  문·이과 구분은 올해부터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2019년 교육부가 발표한 2022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따라, 수학과 탐구 과목에서 문·이과 구분이 없어져 학생들은 계열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수학은 가·나형의 구분을 없앤 대신 ‘수학Ⅰ’, ‘수학Ⅱ’의 공통 과목과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 과목의 형태로 전환됐다. 탐구 과목도 사회탐구 9과목 중 2과목, 혹은 과학탐구 8과목 중 2과목을 택하던 방식에서 사회, 과학 탐구 구분 없이 2과목을 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응시 과목을 선택할 때의 계열 구분도 사라진 것이다.

인포그래픽 설명 시작. 가장 윗 부분에는

문·이과 통합, 무늬만 통합?  융합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도입됐지만 여러 문제점이 제기됐다. 가장 큰 문제점은 목표와 달리 실질적인 문·이과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희망 계열이나 학과에 상관없이 응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상대적으로 수학이나 과학에 어려움을 겪는 인문사회계열학과 지망생이 난이도가 높은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 등을 굳이 응시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자연계열 학과 지망생 역시 사실상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이과 통합의 취지는 더욱 퇴색됐다. 각 대학이 자연계열 학과의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 등 많은 대학들이 2022학년도 수능 응시영역 기준에서 ‘수학 선택은 미적분과 기하 중 택1, 탐구 선택은 과학탐구 8과목 중 택2’를 자연계열 학과의 지원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자연계열 학과 지망생들은 ‘확률과 통계’나 사회탐구 과목에 응시할 수 없는 것이다. 서강대학교의 경우 2021학년도 정시에서는 문·이과 계열 구분 없이 모든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2022학년도 정시부터는 자연계열 학과에 수학과 과학탐구 필수 응시영역을 다시 지정하면서 실질적인 문·이과 통합이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냈다.

인포그래픽 설명 시작. 모집단위와 2022학년도 수능 응시영역 기준이 나와 있다. 모집단위. 자연과학대학, 간호대학, 공과대학, 농업생명과학대학(농경제사회학부 제외), 사범대학(수학교육과, 물리교육과, 화학교육과, 생물교육과, 지구과학교육과), 생활과학대학(식품영양학과, 의류학과), 수의과대학, 약학대학, 의과대학, 치의학대학원 치의학과. 수능 응시영역 기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 과학탐구 영역 응시 기준. 서로다른 분야의 1 + 2 및 2 + 2 두 조합 중 선택. 예. 물리학 1 + 화학 2, 생명과학 2 + 지구과학 2 등. 동일분야 1 + 2는 인정하지 않음. 수학선택. 미적분, 기학 중 택 1. 탐구선택. 과학탐구 8과목 중 택2. 인포그래픽 설명 끝.

서울대학교 2022학년도 수능 응시 기준.자연계열 학과(유형 II)의 지원 요건으로 ‘미적분, 기하 중 택1과 과학탐구 중 택2’를 명시하고 있다.©서울대학교 2022학년도 대학 신입학생 입학전형 주요사항

  통합으로 인한 부작용도 발생했다. 인문사회계열 학과 지망생들의 수학 등급이 크게 하락한 것이다. 지난 3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고사)에서 수학 1등급 학생들의 선택 과목 비율을 살펴보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6.3%였지만,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은 93.7%에 달했다. 인문사회계열 학과 지망생들이 주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학 과목에서 불리한 상황이다. 4월 모의고사에는 수학 1등급 중 ‘확률과 통계’ 선택 비율이 4.3%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면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수험생은 “문과에서 애매한 1, 2등급이었던 학생은 이제 2등급 혹은 3등급까지 등급이 내려갈 위기에 처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인문사회계열 학과 지망생들의 수학 등급 하향은 입시에서 어떤 문제를 낳을까. 등급 하향은 인문사회계열 학과 지망생들끼리 경쟁하는 정시 모집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수시 모집에서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와 달리 자연계열 학과 지망생들의 경우, 인문사회계열 학과로의 교차 지원이 수월해진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확률과 통계’ 과목의 난이도를 낮추고 ‘미적분’과 ‘기하’ 과목의 난이도를 높이는 형태로의 조정이 논의되고 있지만, 어려운 문제는 선택과목이 아닌 공통과목에서 출제되기에 이 또한 한계는 뚜렷하다. 김경범 교수(서어서문학과)는 “조만간 문과와 이과의 관계가 기존의 수평적 관계에서 이과 우위의 수직적 관계로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결국 상위권 대학이 이과 중심으로 전환되는 하나의 징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문·이과 통합의 필요성  실질적인 문·이과 통합이 난관에 부딪혔지만 통합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김경범 교수는 “문과와 이과의 분리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인력 육성 방식이었다”며 “오늘날과 같은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존 문과 학생은 수학, 과학과 컴퓨터를 더 많이 알아야 하고, 기존 이과 학생에게도 인문학적 사고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현재는 교육과정과 별개로 학생들이 알아서 융합형 인재로 성장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교육 시스템을 통한 융합형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문 세계에서도 융합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성균관대 배상훈 교수(교육학과)는 『행복한 교육』에서 ‘학문 세계에서 융합은 세분화된 학문 분야들을 연계하고 통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며 계열 간 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학문 체계는 지나치게 분화돼있다’면서 ‘개별 학문의 경계를 넘어 보다 종합적이고 창의적인 관점을 경험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맞춰 대학 역시 융합교육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문·이과 통합에 가장 적극적인 학교로 꼽히는 대학은 서강대학교다. 서강대학교는 다전공제도에 계열, 전공, 인원, 성적 등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아 학생들이 자유롭게 융합 학문을 배워갈 수 있도록 했다. 교양 과목에서 자신의 전공 계열과는 다른 계열의 교양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는 규정을 통해 융합 교육을 실현하는 곳도 많다. 서울대학교는 전공 이외의 학문을 경험하게 하는 취지에서 ‘학문의 세계’ 교양 과목 중 전공 계열과는 다른 계열의 과목을 수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강대 아트&테크놀로지 전공, 서울시립대 융합전공학부, 성균관대 글로벌융합학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한양대 심리뇌과학과 등 최근 신설된 융합 학과에서도 융합 학문에 대한 대학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교 교육의 현실은 다르다. 어느 전공으로 진학할지에 따라 그에 맞는 과목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문·이과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선택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변하지 않는 입시 제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입시 제도의 실질적인 변화 없이는 문·이과 통합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문·이과 통합 내용이 포함되어 ‘통합사회’나 ‘통합과학’ 과목이 신설되고 소프트웨어 교육이 도입됐지만, 수능 과목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김경범 교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교육과정과 수능이 연계되지 못한 사례라며 “교육부는 새로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어울리는 수능을 준비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교육과정과 입시정책의 괴리로 인해 고등학교 교육에서 실질적인 통합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논의의 중심 이슈는 교육과정이 아닌 수능의 변별력과 영역 구성이었고,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진정한 문·이과 통합을 위해서는  입시 제도의 통합 없이 실질적인 문·이과 통합을 이룰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다양한 대안이 등장하고 있다. 먼저 과거처럼 문·이과생이 함께 치는 시험 과목 자체를 늘리자는 주장이 존재한다. 한편 이를 두고 고려대 홍후조 교수(교육학과)는 교육정책네트워크의《이슈페이퍼》에서 ‘이러한 형태의 통합된 수능은 학교 교육과정을 획일적이고 빈곤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신입생을 뽑는 대학 입시 제도에서 획일적인 평가보다는 각자 자기 진로에 알맞은 실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의 모집 단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경범 교수는 “가능하다면 대학의 모집 단위를 단과대학이나 학과별이 아니라, 대학 전체를 하나의 모집단위로 선발하는 게 확실한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학과 및 계열별로 서로 다른 자격 요건을 요구하다 보니 문·이과가 구분되는 만큼, 모집단위를 하나로 통일하면 문·이과가 구분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란 예측이다.   교사 양성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이과 통합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한양대 정진곤 교수(교육학과)는 지난 2014년 YTN과의 인터뷰에서 통합 교육에 있어 교사 양성 문제를 지적했다. 대다수 대학의 사범대학이 과목에 따라 전공이 세분화돼 있고, 사회나 과학 과목의 경우 그 내부에서도 세부 전공이 나뉘기에 통합 교육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통합사회’나 ‘통합과학’ 교육을 위한 교사 양성에서 나아가 간학문적인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교사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문·이과 통합 교육의 핵심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문·이과 통합은 그동안 교육계에서 논의된 가장 크고 오래된 이슈 중 하나다. 수능에서의 형식적 통합을 이루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만큼, 실질적인 통합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이러한 난관들을 빠르게 해결할수록 수험생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고, 문·이과 통합의 긍정적 기대효과 또한 얻을 수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백년 후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운다는 의미에서다. 진정한 문·이과 통합에 성공한다면 백년대계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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