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홈리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람들

여성 홈리스 지원정책의 방향성을 말하다

   홈리스 활동가들은 노숙인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일정한 주거 공간 없이 공원·역·거리 등을 거처로 생활하는 사람’을 뜻하는 노숙인은 쪽방과 고시원 등에서 비적정 주거생활을 하는 사람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홈리스’ 하면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이나 거리에서 노숙하는 남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마주치는 홈리스는 보통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여성 홈리스가 적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머물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 홈리스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홈리스가 어떤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는지, 나아가 여성 홈리스 지원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여성홈리스가 지낼 수 있는 거리는 없다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의 홈리스는 1만 1,340명이다. 그중 25.8%가 여성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여성 홈리스의 비율이 그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한다. 홈리스행동 박사라 활동가는 “전국의 거리, 쪽방, 시설을 조사하는 데만 국한된 실태조사엔 여성 홈리스가 주로 머무는 공간은 포함되지 못했다”며 실태조사가 여성 홈리스의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020년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인 열린복지디딤센터를 이용한 여성 123명 중 35%는 현재의 실태조사가 집계하지 않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공원이나 광장, 역 부근 등 공공장소에서 머무는 남성 홈리스와 달리 여성 홈리스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열린복지디딤센터 김진미 소장은 “홈리스라고 하면 주로 거리노숙을 생각하지만, 거리홈리스 중 여성은 5% 내외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여성 홈리스는 찜질방, 만화방, PC방 등 돈을 내고 이용하는 곳에서 주로 생활한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소수의 여성도 개방된 곳보다는 공원 후미진 곳이나 공중화장실 안에서 숨어지내는 경우가 많다. 박사라 활동가는 여성 홈리스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려면 “여성 홈리스의 주요 생활공간을 반영한 포괄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홈리스가 남성에 비해 거리 노숙에 취약한 이유는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성폭력 때문이다. 위험한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 홈리스는 각자의 대응방식을 모색한다.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점퍼에 달린 모자를 깊게 눌러쓰는 등 자신이 여성임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거친 욕설을 사용해 남성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자신을 보호해줄 남성을 구하기도 한다.

   성폭력의 위험은 여성 홈리스가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을 제한한다. 박사라 활동가는 “무료급식소에서 잠깐 줄을 서는 동안에도 여성 홈리스는 성희롱에 노출된다”고 말하며 “성희롱에 대한 공포로 급식소에 가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빵 같은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려는 여성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일상적인 성폭력이 여성 홈리스의 부실한 영양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 홈리스는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상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홈리스 지원단체들은 서울역, 용산역 등 주요 노숙지역에서 거리 홈리스에게 자활지원서비스를 연계하는 아웃리치 상담을 진행한다. 박사라 활동가는 “거리에는 남성 홈리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아웃리치 상담사도 남성이 많다”며 “남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진 여성 홈리스는 남성 상담사와 접촉 자체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홈리스 종합지원센터 중 하나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사진이다. 사진 설명 끝.

  홈리스 종합지원센터에서는 상담 및 임시 잠자리 등의 지원을 제공하지만, 여성 홈리스는 맘 편히 이용하지 못한다. 박사라 활동가는 “여성 홈리스가 수많은 남성 사이를 지나쳐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일자리 정보를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남성 홈리스가 주로 이용하는 종합지원센터를 꺼리는 여성 홈리스는 센터 화장실에 상시 비치돼있는 생리대 역시 가져가기 어렵다. 박 활동가는 “아웃리치 상담을 나갈 때마다 생리대와 속옷을 요청하는 여성 홈리스를 만난다”며 성별이 분리된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설 중심을 넘어 시설 너머를 바라보기

   홈리스 지원정책은 생활시설 입소자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아웃리치 상담을 통해 자활을 결심한 홈리스는 종합지원센터 상담으로 연계된다. 종합지원센터 상담은 홈리스에게 적합한 생활시설을 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홈리스 생활시설은 지원 내용에 따라 ▲장기적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요양시설 ▲자활에 앞서 질환에 대한 치료를 제공하는 재활시설 ▲건강상 큰 문제가 없어 시설 프로그램을 통해 주거 독립을 준비하는 자활시설로 나뉜다. 시설에 입소한 홈리스는 시설에 거주하면서 의료적 지원을 받거나 일자리 및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거 독립을 준비한다.

   그러나 여성 홈리스를 위한 생활시설은 여성 홈리스 수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2017년 기준 여성홈리스 시설은 수도권에 12개, 부산, 대구, 광주에 각각 1개로, 특히 비수도권에선 시설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남성 홈리스를 위한 생활시설 역시 수도권에 집중돼있지만, 지방 주요 도시에도 다수 분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진미 소장은 “여성 홈리스 인구가 수도권에 많기 때문에 시설이 수도권에 집중됐다”고 인정하면서도 “비수도권 대다수 지역에 시설이 없어 지원을 받고 싶은 여성은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인포그래픽 설명 시작. 서울시 내 홈리스 시설 분포 인포그래픽이다. 남성 홈리스 시설의 수가 25개인데에 반해, 9개인 여성 홈리스 시설의 수가 적음이 현저히 드러난다. 인포그래픽 설명 끝.

  활동가들은 비수도권 여성 홈리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지역별 홈리스의 수에 상관없이 전국적인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진미 소장은 “시설을 운영하기에 적정한 규모가 아닌 지역이면 응급거처나 적정 주거지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비수도권 여성 홈리스 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요양·재활·자활로 나뉘는 생활시설 분류체계가 홈리스의 복합적인 특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의 분류체계 아래서는 일자리를 찾고 싶은 의지가 강하더라도 치료가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요양시설에 머물러야 한다면 자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다. 김진미 소장은 “사람의 욕구와 특성은 요양·재활·자활의 세 분류로 나눠떨어지지 않는다”며 여성 홈리스의 특성에 맞춘 개별화된 지원을 강조했다.

   시설 입소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 홈리스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주거공간, 일자리 연계 등의 자활지원서비스는 시설을 매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설을 꺼리는 많은 홈리스에겐 자활을 시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다.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원장은 “시설에서 주거 독립을 준비하기까지 적어도 1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며 “몇 년 동안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시설의 엄격한 규율을 힘들어하는 여성도 있다. 박사라 활동가는 “시설 생활규칙은 식사, 일자리 활동, 샤워, 수면 등의 시간을 정해놓는다”며 시설의 통제적인 분위기를 설명했다.

   활동가들은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도 홈리스가 자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설 외의 다양한 선택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설 밖에서 홈리스가 자활하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주거 및 의료지원 연계가 필수적이다. 김진미 소장은 “모든 홈리스가 몇 년간 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며 “임대주택 중심의 주거지원을 통해 홈리스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 자활을 할 수 없는 취약한 건강 상태를 가진 홈리스도 시설 밖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요양시설이 홈리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진미 소장은 “정신질환자, 장애인, 노인 등은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요양시설로 가게 되는데, 이런 구조에서 복합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세부적인 치료를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요양시설의 여성 홈리스 중에는 거주 기간이 20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 김 소장은 “오랜 기간 시설에 수용되는 것은 결코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며 “지역사회와의 의료 서비스 연계를 통해 시설 밖에서 자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홈리스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으려면

    ‘여성’이라는 특성은 여성 홈리스의 실질적인 지원에서 고려돼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성폭력 등의 특수한 어려움 뿐만 아니라, 여성 홈리스는 홈리스 생활을 시작한 이유도 남성 홈리스와 크게 다르다. 2010년 ‘서울시 노숙인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홈리스의 대다수(67.2%)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다. 반면 여성 홈리스는 경제적 어려움(46.7%) 못지 않게 가정폭력, 가족해체, 정신질환에 의한 갈등 등의 비경제적 어려움(43.3%)이 큰 이유다. 박사라 활동가는 “단순 실직이 아닌 가정폭력, 정신질환 등의 문제로 홈리스가 된 여성은 필요한 자활 프로그램 역시 달라야한다”며 성인지적 지원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인지적 개편은 여성 홈리스 대상의 주거지원 정책에도 요구된다. 홈리스를 위한 임시 주거지원은 쪽방이나 고시원 제공으로 이뤄지지만, 쪽방은 여성 홈리스가 기피하게되는 공간이다. 박사라 활동가는 “성별 분리가 되지 않은 쪽방과 고시원은 남성 위주의 공간이 된다”며 “여성 홈리스는 아무리 더워도 문을 열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6년 기준, 쪽방 주민의 성별은 남성(80.8%)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박 활동가는 여성 홈리스를 보호할 여성 전용 임시 주거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홈리스의 자활을 위해선 공공일자리의 보완도 요구된다. 정신질환 비율이 높은 여성 홈리스가 민간일자리에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일자리는 홈리스의 건강 상태에 따른 맞춤형 일자리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족한 공공일자리의 다양성이다. 서정화 원장은 “현재 여성에게 제공되는 공공일자리의 대다수가 청소노동”이라며 여성의 욕구를 공공일자리에 반영해 공공일자리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일자리의 짧은 참여 기간 역시 문제다. 김진미 소장은 “1년 중 6개월은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나머지 6개월은 실업급여와 무료급식으로 버티는 홈리스가 적지 않다”며 “홈리스가 노동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적어도 1년은 지속할 장기적인 공공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여성 홈리스 지원정책이 일시적 지원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변해야하는 것은 홈리스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김진미 소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홈리스 시설을 하냐고 핀잔주는 사람도 있다”며 “홈리스는 시설에 격리돼 눈앞에서 치워져야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홈리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은 홈리스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 자활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정화 원장은 “안정적으로 노동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홈리스에게 가해지는 편견은 낙인찍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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