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됐습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네요.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코로나 19에 더위까지 겹쳐 힘든 계절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은 이어졌습니다. 처음 집을 나와 살게 됐을 때, 당연하다 생각했던 삶의 영역들이 사실 얼마나 많은 관심과 손길로 유지되고 있던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무더웠던 여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삶도 누군가의 돌봄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비록 그 가운데서 이어지지 못한 삶도 있었지만요.

   청소는 삶의 기본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노동입니다. 제가 살고있는 기숙사 건물에서는 날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됩니다. 저녁 무렵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러 가면 이미 쓰레기통이 꽉 차 있어 난감했던 적도 많습니다. 다행히도 날마다 청소노동자분들이 수고해주시는 덕분에 기숙사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청소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넓은 면적의 건물을 청소하고 날마다 대량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기자들이 기사 소재를 정하게 되면 기사를 어떻게 쓸지 ‘각’을 재는 작업을 합니다. ‘각’이 안 서면 포기하고 기사를 ‘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렵고 난감한 소재, 각이 잘 안 서는 소재라도 때로는 어떻게든 붙잡아서 살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취재는 힘들어지죠. 지겹도록 다뤄진 청소노동이 그랬습니다. 운동에서 소외돼온 여성의 이야기가 그랬고요. 문화비평에서 다루는 소재들은 보통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은 그래도 꼭 비평해보고 싶은 소재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기사가 독자분들에게도 의미있는 보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널이 독자분들에게 어떤 언론일지 항상 고민합니다. 저희의 보도가 어딘가에서 울림을 주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열정을 다해주시는 기자님들과 PD님들을 보면 그래도 어딘가엔 저희의 존재 이유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저널은 오늘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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