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학번인 내가 학생회에 대학생활을 바친 이유

가능성을 만드는 학생자치, 학생자치를 만드는 학생회 : 생명

   나는 지난해에 입학해 5월부터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어정쩡했고 총학생회 선거도 무산이 되어 연석회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총학 연석회의 중앙집행위원회에 들어갔다. 연석회의 체제는 다른 말로 ‘무너졌지만 망하지는 않은 곳’이다. 무너졌기에 정해진 방향성도 확고한 리더십도 없다. 그러니 각자가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고, 또 그렇기에 자유로운 의견들이 충돌하고 타협된다. 그러나 동시에 망하지는 않았기에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보호 속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이제는 학생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학생회는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스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업을 굴리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노력은 노력대로 들고, 못하면 욕먹고, 대중에게 잘못 보이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스트레스도 피할 수 없다. 누가 이 일을 하려 할까? 그런데 나는 올해 1학기와 여름방학을 학생회 활동으로 가득 채웠다. 총학생회 기획국장, 반 학생회 집행부장, 사회대 학생회 TF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활동했고, 1주일에 회의가 적게는 5개 많게는 14개까지 있었다. 말 그대로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학생회 회의와 활동만 한 것이다.(참고로 1학기는 휴학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학생회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나의 연석회의 경험 속에서 찾았다. 연석회의에서는 내가 원한다면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사무, 소통, 교육, 문화, 복지, 자치, 인권 등 학생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하고 회의도 여러 번 진행하며 집단 운영의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한 명의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리 공동체에 크고 작은 성취도 남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학번인 나에게 학생회 활동이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동체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였다. 한편, 작년에 학생회 선배들이 연석회의라는 체제를 지탱해주었듯이, 이제는 내가 리더로서 활동가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처음 학생회를 시작한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전달해주고, 활동을 이끌어갈 기회를 주고, 그 과정을 함께하며 이들의 책임을 덜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 챙기는 사람들과 직접 챙기는 회의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리더를 길러낼 수 있었고, 멋진 동료와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잃은 것도 많았겠지만, 그보다 훨씬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학생회에 대학생활을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서울대 학생자치의 미래를 그린다.

   학생자치란 무엇인가? 학생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에게 학생자치란 ‘가능성’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학생자치인 것이다. 사실 이런 ‘가능성’은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임이나 동아리, 프로젝트에 참여해 활동하는 것도 각자의 가능성을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학생자치에는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생언론, 동아리, 소모임 등도 포함될 수 있으며, 이들이 각자가 원하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학생자치는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자치가 활성화될수록 우리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며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학생회는 학생사회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정치기구로서 공동체의 학생자치를 활성화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여러 원인으로 인해 오늘날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생자치의 약화는 학생사회에 치명적일 것이다. 만약 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고 대학과 기업, 정부 그리고 시스템에 의존해 살아간다면, 학생회 자체도 단순히 대학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정도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학생사회의 정치 과정은 사라지고, 학생들의 의견은 뭉쳐지지 않은 채 모래알처럼 흩날리게 된다. 학생회는 흥미로운 사업을 열면서 단기적으로 학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복지를 위해 자신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스트레스까지 받아 가며 활동할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결국 학생회의 정치와 복지 모두 사라질 것이며, 학생회는 무관심 속에 재생산에 실패하여 소멸할 것이다. 종국적으로 학생사회는 개인과 집단으로 파편화되어 대학, 기업, 정부와 같이 더 큰 권력 단위에 직접 영향을 받는 새로운 평형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물론 현실은 이 서술보다도 훨씬 복잡하겠지만, 오늘날 학생회와 학생사회의 경로가 이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학생사회가 이렇게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 반대의 방향으로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가능성’의 감소로 시작해 재생산의 실패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돌아가, 사람을 길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가능성’의 확대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한편, 복잡성이 붕괴하고 점차 무질서해지는 흐름(엔트로피의 증가)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을 물리학에서는 ‘생명’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런 생명의 불씨를 연석회의 속에서 느꼈다. 학생자치의 ‘가능성’이 작게나마 살아있음을, 이와 함께 할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에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존과 다른 것이 아니라, 학생자치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개인과 집단, 사회를 다시 바라보는 새로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고민과 행동을 더는 늦출 수는 없을 것이다.

김정우(정치외교학부 20)政佑 : 배우고, 공감하고, 실천하며 우리 공동체의 정치를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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