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추가한 민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그간 있었던 동물 학대 사건을 떠올리면 동물을 생명으로 인정한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런데 소와 돼지는 어떤가? 소와 돼지 같은 축산동물은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왠지 다르게 느껴진다. 왜 어떤 동물은 가족처럼 느껴지는 반면, 어떤 동물은 소비의 대상으로 느껴질까. 이러한 인식차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까. 인간과 동물이 맺는 다양한 관계를 살펴봤다.

반려, 서로를 짝으로 여기는 관계다. 반려동물은 사람들과 일상에서 가장 끈끈한 교감을 나누는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개와 고양이가 으뜸이다. 직접 키우지 않더라도 유튜브 등에서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를 실컷 구경하고 귀여워할 수 있다.


유기 등의 이유로 길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살뜰히 보살피는 사람들도 있다. 도림천을 걷다 보면 다리 밑에 작은 나무 집이 있다. 관악구의 지원과 동물보호 활동가들의 성금으로 제작된 길고양이 대피소다. 이 근처를 지나갈 때면 행인들의 시선과 관심 어린 손길을 한몸에 받는 고양이 세 마리를 볼 수 있다.

재개발과 퇴거 명령으로 텅 비어버린 중계동 백사마을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얼떨결에 주인 행세를 하게 됐다. 아직 남아있는 몇몇 주민들은 고양이들을 챙기고 보살핀다. 청록색 이삿짐 상자로 만들어준 거처, 마을 골목골목에 마련해둔 사료 그릇은 길고양이와 사람 간의 느슨한 유대를 보여준다.


서울 마포구에는 동물복지지원센터가 있다. 끝내 입양이 되지 않아 안락사 위기에 처한 동물보호소의 동물들을 데려와 입양을 보낸다. 주인이 죽거나 장기 입원 등으로 긴 시간 자리를 비우게 될 때도 센터에서 동물들을 데려온다. 짧게는 일주일 만에, 길게는 3년이 넘어서야 센터를 떠나는 동물들. 2019년 교통사고를 당하고 구조된 강아지 샤베트는 센터에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다. 샤베트는 입소한 지 두 달 후에 자원봉사를 다니던 봉사자의 소중한 가족이 됐다. 센터 상근자 외에도 산책과 미용, 사진 봉사를 오는 자원봉사자들이 동물들과 함께한다.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어린 자녀와 함께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코끼리 친구를 보러 가자’라며 신나게 돌아다니는 동안 부모는 아이에게 동물을 설명하기 바쁘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동물로서 보전돼야 할 대상으로, 아이들의 사회교육 교재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전시의 대상으로 살아간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은 망아지에게 말을 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울타리는 동물을 관람객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그들을 가두기도 한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상호작용을 시도한 후 아이들은 다른 동물로 시선을 옮기고, 망아지는 정해진 공간 안에서 자리를 지킨다.

갇혀 있는 동물에게 영양성분을 고려한 식사가 제시간에 맞춰 제공되고, 그에 맞춰 진행하는 ‘먹방 라이브’는 관람객들에게 오락을 제공한다.
이 동물도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이라고 인식되지 못한 채 소비되는 동물도 있다. 사회에서 동물은 귀여운 이미지나 맛있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냉동 삼겹살 전문점은 얼음 위 묘기 부리는 돼지 캐릭터를 내세워 메뉴를 강조한다. 횟집 간판의 오징어가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다. 동물 캐릭터는 동물이 느꼈을 고통은 소거하고 인간 중심적인 이미지만 보여준다. 횟집 앞에 놓인 수족관에 각종 어류가 갇혀있다. 도마 위에 오르기까지 어류는 ‘싱싱함’이 강조된 채 갇혀있다 횟감이 된다.



먹거리를 사러 온 사람으로 가득한 시장 도처에 생명이 있다. 물속에서 헤엄치던 활어는 즉석에서 손질되고, 사람들은 가장 많이 꿈틀대는 생선을 신선하다 표현한다. 닭의 발, 가슴살, 다리살 등 부위별로 해체된 ‘고기’에 동물 본체의 생명력은 온데간데없다. 이곳에 동물은 없고 고기와 생선만 가득하다.


인간과 동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도축장 앞에서 동물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비질’의 현장, 돼지들이 트럭에 가득 실려있다.
ⓒ구민채 사진기자
지난 7월 동물을 물건이 아닌 동물 자체로서 인정하겠다는 민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그러나 법 개정의 취지가 반려동물의 복지 향상에만 국한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축산동물, 실험동물, 전시동물 등 산업적으로 동물들이 이용되는 현실에 대해선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 직접행동DxE(DxE) 정은영 활동가는 “축산법은 여전히 축산동물을 물건의 지위에 준용하도록 규정한다”며 해당 개정안의 모순점을 비판했다.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법 개정이) 반려동물의 영역에만 머문다면 동물 간의 종차별로 이어질 것”이라며 “인간의 필요에 따라 동물을 분류해 차별의 격차만 벌어질 것”이라 말했다.
동물 종차별은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DxE 섬나리 활동가는 “종차별이 사회에서 상업적으로 세련되게 포장된 채 침투해 있어 (도살장 등의) 현장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무뎌진다”며 종차별의 일상성을 비판했다.
인간과 동물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이지연 대표는 “인간 역시 동물이고, 동물이란 곧 지각 있는 존재”라며 “우리 모두 고통을 느끼는 존재기에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은영 활동가는 인간과 동물 간의 단절을 지적하며 “인간과 동물 모두 동물로서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섬나리 활동가는 “인간이 동물을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동물과 함께 저항하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양가적이다. 반려동물에 기꺼이 애정을 주는 동시에 동물을 음식으로 여기고 오락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비되는 동물은 반려동물과 다르지 않고,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이 동물도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