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 걸치고 있는 당신의 바지가 사람의 허리를 옥죄어 피를 취하는 살인귀라면? 소름이 돋기보다는 우스울 것이다. 어린 시절 보던 공포 만화 같은 이 괴담을 다룬 영화가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2021 초청작 《살인 청바지》다. 피 튀기는 B급 호러 마니아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갈 법하다. 하지만 《살인 청바지》는 경쾌히 찾아온 관객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엽기 괴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급 영화와 청바지, 웃는 자에게 복수를
리비는 의류 브랜드 ‘CCC’의 신입사원이다. 그녀는 유기농 목화 사용,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를 슬로건으로 내건 CCC를 오래도록 동경했다. 그러나 꿈꾸던 직장에 입사했다는 기쁨도 잠시, 리비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직원들에게 치여 소외된다. 회사는 모든 사람의 몸에 꼭 맞는 청바지 ‘슈퍼 셰이퍼’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출시 전날 신제품 보완을 위해 매장은 봉쇄되고, 모든 직원들이 철야로 판매 개시를 준비한다.
모두가 정신없이 일하는 사이, 직원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각자의 일에 바쁜 직원들은 누가 사라지든 말든 관심이 없다. 상사 크레이그의 지시로 그들을 찾던 리비는 여기저기서 토막 난 시체들을 발견한다. 경악한 리비가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크레이그는 그녀를 말린다. 자신의 승진을 보장할 신제품 출시를 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급기야 제품 홍보를 위해 방문한 유명 유튜버까지 살해당한다. 리비는 유튜버를 찍던 카메라에서 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범인은 바로 회사가 애지중지한 신제품 “슈퍼 셰이퍼”였다.
‘슈퍼 셰이퍼’는 《살인 청바지》라는 제목 그대로 유혈이 낭자한 엽기 행각을 펼친다. 청바지들은 무자비하면서도 계획적이다. 신제품을 빼돌리려는 직원을 유혹해 바지를 입게 만든 뒤 허리를 졸라 죽이고, 물류 창고에 잠복해 사각지대에 놓인 직원을 물어뜯는다. 그러고도 피에 목마른 청바지는 바닥에 떨어진 혈흔까지 싹싹 핥아먹는다. 허무맹랑하다 못해 유쾌한 이 살인자의 모습은 장르적 쾌감을 충실하게 이끌어낸다.
폭력이 주는 말초적 자극에 관객들이 취해있을 무렵, 생존자인 리비와 인도계 직원 슈루티는 청바지의 원혼을 마주한다. 청바지는 마네킹을 숙주 삼아 움직이다 이마에 피로 점을 찍는다. 슈루티는 그것이 힌두교에서 이마에 착용하는 ‘빈디’임을 알아본다. 슈루티가 힌디어로 말을 걸자, 청바지는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청바지가 행하던 것은 무의미한 학살이 아닌 피의 복수였다.
괴담이 아닌 일상의 살인
청바지에 깃든 원혼은 13살의 목화밭 노동자인 키라트였다. 그녀는 CCC의 청바지 원료를 생산하는 인도의 목화밭에서 기계에 끼이는 산업 재해로 사망했다. 본사는 사고 발생을 알지도 못했다. 목화밭 운영부터 운영 계약까지 원료공급 과정 전체를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리비가 동경한 윤리적 기업은 어디에도 없었다. 직접 고용했다며 홍보물에 등장하는 목화밭 노동자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였다. “슈퍼 셰이퍼”는 키라트의 피로 물든 목화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노동 착취, 환경오염, 아동 노동 문제를 방치하며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CCC는 악덕 기업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연출되는 CCC의 매장은 어쩐지 익숙하다.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의 웃는 얼굴과 유색인종 모델들, 스피커에서 홍보되는 친환경 캠페인 광고. 소비자는 사회적 기업과 다양성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된다. 기업은 소비자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소비를 부추긴다.
윤리적 소비가 아닌 윤리를 소비하는 세상. ‘사람을 죽이는 청바지’는 괴담이 아니었다. 저가의 옷을 대량 생산하는 패스트패션 산업은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한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폐수에 그대로 노출된다. 청바지는 말 그대로 키라트와 같은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스파(SPA) 브랜드들은 끊임없이 새 옷을 구매하길 유도하면서 이 살인에 공모한다. 꼭 ‘슈퍼 셰이퍼’처럼 무자비하고 계획적이다.
산업은 살인의 책임마저 외주화한다. 크레이그는 이러한 기업의 비인간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동료 직원의 시체를 숨기고, 승진을 두고 경쟁하는 관리자를 살인 청바지가 있는 곳에 고의로 방치한다. 하지만 청바지의 살인이 과연 그만의 탓일까? CCC는 서로에게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개인들로 이뤄진, 이익의 추구만이 유일한 가치로 남은 공동체다. 동료들이 사라지는 데도 직원들은 무관심했고, CEO는 근무를 강행했다. 그런 공동체에서 일상의 지속은 종종 사람을 죽인다. 공동체 안에서도, 밖에서도 죽음을 대수롭지 않은 방해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욕망의 끝은 피투성이다
CCC와 같은 기업이 죽이는 것은 의류 산업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패션 산업은 지구와 그곳에 사는 인류를 천천히 죽이고 있다. 의류 산업의 폐수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20%다. 목화 재배 시 사용되는 농약은 전체 농약 사용량의 약 25%다.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 목화 재배를 위한 삼림 벌채도 심각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따라 옷을 사고 버리는 소비 습관은 우리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
영화의 끝에서 결국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리비와 슈루티가 키라트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하자 키라트는 살인을 멈춘다. 하지만 크레이그는 CCC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슈루티를 죽이고, 리비마저 없애려 든다. 그러다 청바지들에게 발각된 크레이그는 누구보다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홀로 살아남은 리비는 매장을 점령한 청바지들을 마주한다. 청바지들이 고요히 손님들을 기다리는 매장 너머로 모여든 손님들의 소리가 들린다. 리비는 손님들을 막기 위해 홀로 매장 문을 막아서지만, 개장 시간이 되자마자 물밀 듯 밀려오는 인파에 나가떨어진다. 쓰러진 리비를 밟고 달려든 사람들은 그대로 청바지의 먹이가 된다. 흐려진 리비의 시야에 피투성이가 된 매장이 들어오고, 리비는 절망하며 눈을 감는다.

▲살인 청바지를 마주한 리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살인 청바지》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을 죽이는 청바지도, 흉측한 시체도 아닌 매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이다.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이한 공포를 자아낸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들이 리비를 밟아 죽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욕망에 잡아먹혀 어떤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소비주의의 비극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가 있을 뿐 생존자는 없었다.
사람들을 죽인 것은 청바지가 아니라 윤리가 부재한 욕망의 추구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크레이그의 욕망,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CCC의 욕망, 끊임없이 소비하려는 소비자의 욕망은 청바지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이들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극악무도한 악당들이 아니다. 모두 우리 주변에 있다. 《살인 청바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다. 엽기적인 것은 B급 호러라는 장르가 아니라 그것이 표현하는 현실이다. 진짜 공포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