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국내에서 영화 《코다》가 개봉했다. 영화 《코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인 코다가 겪는 차별과 단절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많은 코다들의 찬사를 받았다. 주인공 루비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루비와 가족의 소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루비는 가족과 수어로 장난을 주고받기도 하고, 청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몰래 흉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한다. 루비는 공부할 때 큰소리로 칼질을 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가족들의 의존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경험들은 코다의 정체성과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코다의 삶과 코다와 청사회의 공존을 위한 방안을 톺아봤다.

코다는 누구인가
코다(CODA)는 ‘child of deaf adult(s)’의 약자로, 농인의 자녀를 통칭한다. 코다의 90%는 청인이기에 ‘농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라고 말해지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의다. 청인 코다인 한민지 수어통역사는 “코다 본인이 농인인지 청인인지,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코다를 정의하는 요소의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코다는 농문화의 영향 아래 성장한다. 농문화는 농인들의 행동 양식과 언어를 바탕으로 한 농인 고유의 문화를 말한다. 농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수어다. 시각 언어인 한국 수어는 음성언어인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로, 농인들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와 같다. 한국어가 조사와 어순에 의해 주어, 목적어, 동사의 관계를 표현한다면, 한국 수어에서는 손의 모양과 방향 등 수지적 요소들과 몸의 방향, 시선, 표정 등의 비수지적 요소들에 의해 의미를 전달한다. 한국 수어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몸의 방향, 시선, 이목구비의 움직임 등을 동시에 포착하고 해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시각 언어인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은 시각적 정보를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고, 그에 따라 청인들과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 ‘얼굴 이름’이 그 사례다. 농인들은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지 않아 한국어 이름만을 소개할 경우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따라서 외관상의 특징과 이름의 한글 지문자를 결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얼굴 이름’을 지어 사용한다.
코다는 어린시절부터 농문화를 접해 수어에 익숙하며, 다수가 수어통역사나 수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다. 한민지 수어통역사는 코다들이 수어 관련 진로를 주로 택하는 것은 “(수어가) 코다들이 높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며,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농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청사회와 농사회의 경계에서
하지만 코다가 농문화를 정체성으로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코다는 청인이라는 이유로 농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농문화의 영향을 받으므로 청사회에 온전히 속하지도 못한다. 어느 사회에서도 충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많은 코다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코다의 정체성 혼란은 청사회의 농인 배제와 관련이 있다. 한민지 수어통역사는 “부모는 코다가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대상이므로 농인에게 가해지는 몰이해와 차별은 코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한 수어통역사는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농아는 듣지 못하니까 말을 못하고, 말을 못하니까 지능이 낮다’고 말했다”며 “이런 잘못된 인식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농인과 코다는 끊임없이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하고 견뎌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민지 수어통역사의 일화와 같은 직접적인 차별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농인은 음성언어 중심의 의사소통에서 여전히 배제된다.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좋은 예시다.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서는 스피커와 마이크, 즉 음성을 통해서만 직원과 소통할 수 있다. 지난 3월 농인들은 스타벅스 고객센터에 문제를 제기했고, 고객센터는 ‘필담을 이용하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농인에게 한국어 필담으로 주문하라는 것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영어나 중국어로 소통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수어와 한국어는 문장 구조나 전달 방식이 완전히 다른 별개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 수어는 대한민국의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공용어로 지정됐지만, 한국 수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복지대학교 허일 교수(한국수어교원과)는 “(글로벌 기업에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어만 거부하는 것은 농인의 소통 방식에 대한 명백한 배제”라고 꼬집었다.
농인과 청인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코다는 어린 시절부터 통역을 맡게 된다. 코다 당사자인 이현화, 이길보라, 황지성의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에서는 청소년기에 은행에 전화해 적금과 빚에 대해 질문하거나, 아버지의 병원 진단 결과를 통역해야 했던 일화들이 소개된다. 코다 대신 수어통역센터를 통해 수어통역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없는 지역도 있다. 허일 교수는 “지역에 따라 수어 통역 수요 차이가 커 통역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이 있다”고 지적했다. 농인들이 처음 만난 수어통역사에게 자신의 내밀한 부분까지 내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비교적 친밀하고 접근성이 높은 코다에게 통역을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으로 통역에 임하는 코다들이지만 통역에 관해 의심을 받기도 한다. 코다는 어린 시절부터 통역을 하며 맥락과 문화적 차이를 반영해 통역하는 법을 체득한다. 코다 수어 통역사는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설명을 덧붙이거나 축약해 전달하곤 한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에서 국립국어원 이현화 주무관은 “이런 통역에 대해 코다 통역사들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내용을 바꾸거나 거짓 내용을 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코다가 성장한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코다들은 청사회에 정서적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청인 코다의 경우 농문화를 향유하고 이해하더라도 결국 청인이기에 농사회에 완전한 소속감을 갖기 어렵다. 한민지 통역사는 “같은 언어와 문화를 향유해도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들이 청인 코다에게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며 “‘너는 청인이니까’, ‘너는 그래도 들을 수 있으니까’ 라며 선을 그으면 움츠러들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에서 이현화 주무관은 ‘감정이 극단에 달할 때면 엄마와 아빠는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너는 청인이라 내 마음을 모른다’고 말했다’며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이야기했다. 농사회와 청사회 어디서도 온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많은 코다들이 외로움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코다 간의 연대다. 한민지 수어통역사는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청인이며, 혈연을 통해 농사회와 연결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코다들을 만났을 때, 코다인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며 “경계인으로서 갖는 생각과 고민을 공유함으로서 정서적 위안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같은 코다들과 유사한 경험과 고민을 나눈 일이 농사회와 청사회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소속감을 준 것이다.
코다 연대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기구는 코다 인터내셔널이다. 코다 인터내셔널은 코다의 국제 연대를 위한 공식 기구로, 코다를 위한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컨퍼런스는 워크숍, 토론회, 주제별 소모임, 건강 모임, 디스코 파티, ‘병원 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된다. 그중 ‘병원 방’은 코다들이 한 명씩 농부모 아래 성장하며 겪은 일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발화자가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자신의 부모님이 농인임을 밝히면 청중들은 야유를 보낸다. 청사회에서 농인의 자녀라고 밝혔을 때 늘 마주하는 놀람, 연민 등의 반응을 비튼 코다만의 블랙 유머다. 코다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원치 않게 연민의 시선을 받곤 한다. 코다만의 유머로 가득한 ‘병원 방’은 코다에게 자신의 경험을 즐겁게 풀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국내에서는 2014년 비영리단체 코다 코리아가 설립됐다. 코다 코리아는 국내 코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면·비대면 정기 모임을 개최한다. 최근에는 비대면으로 영화 《코다》 감상회와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 독서모임을 가진 바 있다. 코다에 대한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또한 미디어를 통한 홍보, 칼럼 기고, 강연, 인터뷰 등을 통해 코다와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 포스터 ⓒ코다 코리아
코다와의 공존을 위해
하지만 코다의 노력만으로 그들의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유년기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기는 어렵다. 이해와 공존을 위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코다에게 관행적으로 일상적 통역을 맡기고 있지만, 필요한 경우 공식적으로 수어통역사를 섭외하거나 청인들이 수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센터의 확대가 절실하다. 허일 교수는 “수어통역센터의 지역별 편차를 해결하기 위해 198개 수어통역센터를 광대역 혹은 중대역으로 통합하여 수어통역 공급과 수요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농인에 대한 청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에서 이현화 주무관은 “다양성이 공존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농인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된다”며 “대물림되는 가난과 농인 가족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 속에서 코다가 코다로 살아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농인과 코다가 청인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소통방식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허일 교수는 농인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의 예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조용한 택시 프로젝트’를 들었다. 농인 택시운전사는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해 생기는 오해와 높은 시각 의존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농인이 시각과 촉각에 예민하다는 점에 착안해 ‘소리 정보 변환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소리를 운전대 LED로, 도로 위 장애물과의 거리를 진동으로 변환해 청각적 정보를 전달한다. 허 교수는 “농인에게 청인처럼 살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보를 시각화·촉각화하는 등 농인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허락하고 권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민지 수어 통역사는 “농인과 코다의 소통방식은 교정하거나 치유해야 하는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라고 이야기했다. 서로 다른 문화인 농문화와 청문화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과 노력이 필요하다. 2017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88%의 농인은 청인과 소통하기 위해 음성 언어를 사용한다. 청인과의 소통을 위해 음성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독순술 등을 익히는 것이다. 코다는 농인과 청인을 연결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음성 언어와 수어 사이를 오간다. 이제는 청인이 노력할 차례다. 다양한 소통 방식에 대한 존중이 이뤄질 때, 청인, 농인, 코다는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