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인 지방대학

  2021년 전체 대학의 충원률은 91.4%로, 대학 총 정원에서 약 4만 명이 충원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예견된 인구절벽에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그 칼날은 지방대학에 몰렸다. 일각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이 소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학 간 경쟁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방대학에게 불공평했다고 말한다. 대학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떻게 짜여있는지, 그리고 그 운동장에서 지방대학이 이대로 낙오해도 괜찮은지 살펴봤다.

‘우수한 대학만 살아남는다’는 환상

  대학의 수와 정원이 지금처럼 비대해진 것은 1990년대 들어 시작된 대학의 시장화 흐름에서 비롯됐다. 1995년 김영삼 정부는 대학 설립과 정원 확대 요건을 크게 완화하는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그 이전에는 대학설립심사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대학 설립이 인가됐지만, 개혁안을 통해 ▲대학부지 ▲교육용 건물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이라는 네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4년제 대학의 수는 1995년 131개교에서 5년 후인 2000년엔 161개교로 급증했다. 교원 수와 학교 건물 등의 최소 조건을 충족할 경우 자율적인 정원조정을 허용하면서 정원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 같은 대학정원 확대의 배경을 두고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대학 간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이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는 간편한 논리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질을 둘러싼 경쟁에서 도태된 대학은 문을 닫고, 우수한 대학만 살아남아 학생들이 더 좋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기대와 달리 대학의 시장화는 이미 공고하게 자리잡은 대학 서열구조에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임은희 연구원은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교육 여건이 아닌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수도권대학의 교육·연구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지방대학이 아닌 수도권대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학벌주의가 두터운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질을 두고 대학 간의 평등한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허구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대학의 시장화는 오히려 교육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대학들이 난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5.31 교육개혁안 도입 이후 설립된 61개의 사립대학과 전문대학 중 24개는 부실대학으로 선정되거나 통폐합·폐교됐다. 임은희 연구원은 “24개 대학들도 교육의 질을 둘러싼 경쟁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부정비리가 적발돼 강제 폐교된 경우가 많다”며 대학 설립 요건이 완화되자 대학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지적한다.

‘좋은’ 대학만 ‘좋은’ 평가 받는 구조

  정부의 재정지원 역시 대학 간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배분되면서 지방대학은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대학재정지원은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기준으로 하는 일반재정지원사업과 특정 분야를 중점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특수목적지원사업으로 나뉜다. 일반재정지원사업의 주요 평가기준은 학생충원율이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정태석 정책실장은 “지방사립대학은 학생충원율이 낮은 게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며 “평가를 통해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학을 선정해 지원하는 형식의 특수목적지원사업 역시 상위권 대학에 유리하다. 특수목적지원사업인 ‘4단계 BK21플러스 사업’은 기존 연구성과 평가가 선정 기준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가진다. 연구성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대학은 계속해서 밀려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4단계 BK21플러스 사업’에 예비선정된 전국단위사업 사업단 215개 중 상위 10개 대학이 차지한 사업단은 183개로, 전체 사업단의 85.1%에 달했다.

  정부의 차등적 재정지원은 대학 간 교육·연구 역량의 격차를 심화시킴으로써 대학 서열구조를 재생산한다.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는 대학이 받는 전체 연구비의 약 72%를 차지한다. 정태석 정책실장은 “재정이 부족한 대학은 학생연구 지원사업이나 연구장비 확충을 할 수 없다”며 수도권에 편중된 재정지원이 지방대학의 부실한 교육·연구 여건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교육 여건의 격차는 학생의 교육여건 조성을 위해 학교가 투자한 비용을 나타내는 1인당 교육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0년 수도권대학 학생의 1인당 교육비는 평균 1,786만원인데 반해 지방대학은 평균 1,428만원으로, 358만원이 적다. 재정지원이 적으면 교육‧연구 여건 역시 열악할 수 밖에 없다. 한번 재정지원 경쟁에서 밀려낸 지방대학은 이후에도 지원을 집중받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인포그래픽 설명 시작.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의 평균지원금과 연구개발지원금을 비교한 결과, 지방대학은 수도권대학에 비해 절반에 미치지못하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 인포그래픽 설명 끝.

  일각에서는 일부 상위권 대학에 지원금이 집중되는 것은 정당하게 평가를 거친 결과라고 주장한다.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과 투자를 서열화의 대물림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이 불평등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은희 연구원은 “대학의 입지와 같은 불평등한 인프라 상황을 무시한 채 개별 대학의 역량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부실한 대학을 지원에서 전면배제하는 대신 개선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태석 정책실장은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갖는 공공성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차등적인 재정지원이 학생의 학업 기회에 차별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균등한 지원을 주장했다.

피라미드 꼭대기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학령 인구 감소에 맞춰 대학 정원을 감축하기 위해 대학구조개혁평가를 도입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교육 여건, 학사관리, 중장기발전계획, 특성화 등을 기준으로 대학을 5개(A~E) 등급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A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등급 대학은 차등적인 정원 감축을 강제받았다.

인포그래픽 설명 시작.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의 평균지원금과 연구개발지원금을 비교한 결과, 지방대학은 수도권대학에 비해 절반에 미치지못하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 인포그래픽 설명 끝.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도입되면서, 지금까지 보호 대신 방임돼왔던 지방대학은 생존이 걸린 심판대에 올려졌다. 정원 감축과 함께 재정적 불이익을 받는 D, E등급에 속한 대학의 65.6%(21개교)가 지방대학인 반면, 서울 소재 대학은 5개교에 불과했다. 교육부의 ‘2013-2015년 전국 일반대학 입학정원 현황’에 따르면, 대학구조개혁평가의 결과 전국 4년제 대학 192개교에서 감축된 정원인 21,867명 중 약 77%는 지방대학 정원이었다.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사실상 지방대 죽이기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교육부는 2021년 권역별로 차등한 기준을 적용한 새로운 정원감축안을 내놨다. 전국을 5개 권역(수도권, 충청권, 대구·경북·강원권, 호남·제주권, 부산·울산·경남권)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학생충원율 기준을 다르게 설정해 기준에 미달하는 하위 30-50% 대학에 정원 감축을 권고하는 방식이다. 정원 감축을 이행하지 않으면 일반재정지원으로부터 제한된다.

  아울러 교육부는 지방대학 정원이 대폭 감축돼 지역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원이 감축된 이후에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정원 비율을 현행 4대 6으로 유지하도록 감축안을 설계했다. 임은희 연구원은 “정원감축의 의무가 지방대학에만 부여되지 않도록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한 상황을 고려했다”며 권역별 평가의 긍정적인 지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권역별 정원 감축이 대학의 서열구조를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임은희 연구원은 “충원률이 100%를 넘는 주요 대학이 등록금 수입으로 직결되는 정원을 스스로 감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학생충원율이 높은 서울 소재 대학의 자율적 정원 감축이 저조하면, 수도권 권역에서 감축돼야하는 정원 할당량이 경기·인천 소재의 대학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권역 내에서 하위 서열의 수도권 대학에 부담이 지워지는 것이다.

지방과 대학이 모두 무너지지 않도록

  지방대학의 소멸이 가져오는 또 다른 문제는 지역 불균형의 악화다. 지방대학이 폐교되면 지역의 대학생 인구 유출과 대학가 상권의 몰락으로 지역경제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임은희 연구원은 “국토의 10%에 불과한 수도권에만 집중하고, 90%의 지방을 포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역의 대학 부재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교육권과도 관련된다. 수도권 학생들과 달리 지방 학생들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교육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임은희 연구원은 “고등교육을 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생활공간을 통째로 옮겨야 하는 것은 지방 학생들에게 큰 경제적·정신적 부담”이라며 고등교육의 기회가 모든 지역에서 공평하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과 대학이 함께 붕괴되는 상황에서, 둘의 협력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경아 교수는 “지역이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대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한다”며 “대학에서 생산된 기술과 지식으로 지역 산업이 만들어지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방대학을 통해 창출된 일자리가 학생들이 지방대학을 찾게 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지역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대학정원감축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보낸다. 문제는 어떤 대학을 감축할 것이냐다. 대학 서열구조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부실한 지방대학’을 위기로 몰았다. 지방대학의 무능만을 탓하며 정원감축의 부담을 지방대학에만 짊어지워도 되는지 질문을 던져야할 때다. 지방과 대학이 모두 무너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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