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징병제, 왜 지금 문제인가

20년 전부터 시작된 논쟁,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나

  여성징병제는 왜 지금 이야기되고 있을까. 청년들의 인터뷰를 되짚어보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라고 본다”는 의견에서부터, “20대 초반 징병으로 인한 무기력감을 동년배 여성에게 떠넘기는 것”, “남성이라는 특정 집단이 겪는 어려움과 불합리함에 대한 억울함의 표출”이라는 진단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의 부상과 그에 대한 반발로 역차별 담론이 대두되며 성별 갈등이 커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성징병제 논의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징병제 자체를 없애는 것이 이상적 방향이지 여성도 징병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거나 “군 복무로 발생한 차이에서 불공정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논의가 여성징 병제로 넘어가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징병제 논의가 활성화됐다는 점에는 인터뷰이 모두 공감했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여성징병제가 지금 문제로 떠오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징병제 주장은 이미 과거에 여러 차례 제기돼왔으며, 지금의 논의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여성징병제 논의를 훑어보고, 왜 우리 사회가 다시금 여성징병제를 말하게 됐는지 살펴보자. 

사진 설명 시작. 숲 한가운데 한 여성 군인이 거울을 보며 위장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있다.

훈련 중 위장크림을 바르는 군인의 모습 ⓒ국방일보 국방사진연구소

22년 전에 시작된 논란 

 

  여성의 군 복무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1999년 헌법재판소(헌재)가 군가산점제, 정확히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부터다. 1961년 도입된 군가산점제는 20여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1980년대 후반 성장한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1998년 군가산점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두 차례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헌재가 ‘제대군인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가산점제도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나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로 인한 불평등의 효과가 극심하므로 그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군가산점제를 규정한 법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병사로 입대할 수 없는 여성과 장애인은 자의와 무관하게 군가산점제의 혜택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단서 조항과 변형을 통해 군가산점제를 부활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뤄졌지만 번번이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면서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여하는 병역법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지기도 했다. 2006년 김 모 씨는 남성만을 징병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행 병역법이 위헌이라며 병역법 제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여성도 병사로 복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4년 뒤 헌재는 헌법소원을 각하하며 ‘남성이 여성에 비해 전투에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특성상 여성이 병력 자원으로 투입되기에 부담이 큰 점 등에 비추어 남성만을 병역 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인 차별 취급이라 보기 어렵다’는 기각의견을 덧붙였다. 이후 2011년에도 헌재는 같은 판결을 내렸고, 결정적으로 2014년에는 재판관 전원 일치의 합헌 의견이 나오면서 사실상 헌재가 현행 남성징병제를 공인한 모양새가 됐다.

  군가산점제와 같은 남성의 군 복무에 대한 보상 논의가 어떻게 여성징병제 논의로 옮겨온 것일까? 서울대학교 강인화 BK조교수(국사학과)는 “군가산점제로 대표되는 군 복무에 대한 보상 요구와 여성의 군 복무 의무 부여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1999년 헌재의 군가산점제 위헌 결정 이후 20년 동안의 논쟁이 ‘여성의 군 참여’를 주장한 것으로 요약될 수 없다”며 “지난 20년간의 논쟁에서 20대 남성으로 대표되는 목소리는 군 복무에 대한 보상과 인정 요구인 ‘군가산점제’ 부여 주장에서 의무의 부담 경감 요구인 ‘여성 징병’ 주장으로 이동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논의의 축이 여성징병제로 넘어온 이유에 대해 “1999년 이후 군대에 대한 논의 구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 대결, 또는 젠더 갈등이라는 고정된 방향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징병제는 왜 지금 다시 대두됐나 

 

  여성징병제 논의는 2017년 ‘여성도 군대 가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10만여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인 공론화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현행 병역제도를 모병제로 전환한 후 남녀 모두가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였다. 같은달 18일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9만 명의 동의를 끌어내면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청년들의 생각은 얼마나 달라져왔을까. 성공회대 시민평화 대학원 김엘리 외래교수(실천여성학)는 “언론과 정치권이 지금의 논의를 성대결로 몰고 가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다”며 “‘남성은 가라, 여성은 안 가겠다’라는 구도는 현상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 조사 결과 “여성들은 2005년이나 2019년 모두 50% 정도가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 반면 남성들의 경우 해당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이 2005년에는 25% 정도였다가 2019년 60%대로 치솟았다”며 “바뀐 것은 남성들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여성도 군대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여론 조사가 제시돼 있다. 데이터리서치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징병에 대해 국민의 48.8%가 찬성, 44.9%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 공명미디어연구소의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52.8%와 44.9%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찬성 62.5%, 반대 37.5%로 응답결과가 나타났다.

‘여성도 군대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여론 조사. 조사마다 수치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찬성하는 응답이 반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데이터리서치 국민여론조사,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변화의 이유로 꼽히는 것은 극심해진 생존경쟁이다. 일자리를 두고 극심하게 경쟁하는 취업 전선에서 2년의 군 복무가 남성들에게 매우 큰 희생과 손실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이는 곧 억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엘리 교수는 “당연히 군대를 가서 군인이 되고, 그럼으로써 국민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아버지 세대의 인식이 지금의 남성들에게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군대를 가야 한다는 당위를 거부하고 징병의 억울함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정치권이 여성징병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씨는 “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여성징병제 담론이 나왔다”며 “취업과 학업, 주거 문제 등 청년들이 겪는 많은 문제들에는 눈을 감게 하고 젠더 문제로 관심을 빗나가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논의가 여성을 분풀이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라영 씨는 여성징병제 논의 뒤에 자리하고 있는 역차별 담론의 문제를 지적했다. 남성들이 20대 중후반의 짧은 시기 동안에 여성과 공정하게 경쟁하게 되면서 취업 성차별, 성별 임금 격차, 20대 여성 자살률 증가 등 수치로 드러나는 명백한 차별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남자가 역으로 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30대 이후부터는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인해 더는 남성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며 “이러한 모든 불평등을 외면한 채 역차별을 주장하는 것은 권력 행위”이라고 꼬집었다 .

  강인화 교수는 최근 여성 징병 논의의 대두가 경쟁사회의 맥락에 더해 크게 두 가지 차원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군 복무가 가지는 사회적 위상 및 그와 연관된 남성성의 지위와 내용이 변화됐다는 것으로, 과거 군인다움과 군대문화와 연계된 남성성의 습득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던 시대에서 탈권위적인 남성성이 요구되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민주화와 함께 불평등이 완화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고, 동시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된 인식이 완화되면서 경제활동을 포함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변화됐다는 것이다. 즉, 무한경쟁으로 점철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군인됨과 연관된 기존의 남성성이 지녔던 사회적 지위는 하락한 반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상승했고, 그 결과 남성들이 군복무라는 역할 이행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여성 징병 주장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여성 징병 논의,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대두된 여성징병제 논의가 과거의 군대 논쟁이 그랬듯 단편적으로만 소비되면서 젠더 갈등이라는 소모적인 싸움 으로 빠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논점이 여성징병제를 향할 게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강인화 교수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량 병력 유지를 위해 개인의 과중된 부담에 기초하여 운영돼왔던 징병제를 성 대결, 젠더 갈등 문제로 국한시킬 경우 사실상 사안의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 징병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군 복무 기간 동안의 열악한 처우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급여부터 개선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왕재 부소장 역시 “남성 청년들의 군복무가 개개인의 삶의 기회를 축소시키는 현실은 남녀 모두를 징병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며 최저임금 수준으로의 병사 월급 인상과 불합리한 군대문화와 구조의 개혁이 지금의 병역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은 “병역제도의 핵심은 국방정책에 있는 것이지 젠더 정책에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들은 현재와 같은 대량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군 문제를 개혁하자고 입을 모았다. 참여연대 평화국제팀 황수영 팀장은 “필요한 병력이 얼마인지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안보 환경과 위협분석, 군사 전략, 군 구조, 병역 자원 확보 방안, 군 복무 환경 개선 등이 복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은 “지금처럼 어떤 병역제도가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이냐, 또는 타당한 것이냐는 논의를 먼저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며 “적정 병력 수에 대한 토의가 먼저 사회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떤 병역제도를 선택할 것인가는 그 다음 논의”라고 지적했다. 표면적인 변화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의미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득표 전략, 취업 경쟁과 불공정, 젠더 지형의 변화까지. 앞서 청년들의 인터뷰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들의 말은 여성 징병 논쟁이 대두된 맥락과 배경, 그리고 놓치고 있는 일련의 문제들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이는 어떤 군대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관한 오랜 물음과 무관하지 않다. 피상적인 논쟁에 매몰되기보다, 왜 여성 징병 논의가 나오게 됐는지 그 구조적인 맥락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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