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연예인 A씨 실제 인성’, ‘[충격] 1군 아이돌 B그룹의 처참한 라이브 실력’… 유튜브에 접속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제목들이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자극적인 내용의 영상으로 많은 조회수를 얻으려 하는 이들은 ‘사이버 렉카’라고 불린다. 사이버 렉카는 사이버(Cyber)와 렉카(Wrecker)를 합친 말로, 교통사고 현장에 잽싸게 달려가는 렉카(견인차)처럼 온라인에서 화제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이슈 유튜버들을 가리킨다.
사이버 렉카의 영향력은 점차 커져 사회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1월 故 박지선 씨에 대한 부적절한 문구와 사진으로 영상을 올려 ‘고인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그 예다.
사이버 렉카가 만드는 악순환
사이버 렉카가 조회수를 올리는 데 필요한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영상의 빠른 업로드와 자극적인 내용이다. 남들보다 빨리, 더 자극적인 내용을 담을수록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 쉽다. 사이버 렉카는 기존 보도를 짜깁기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루머에 자신의 사견을 더한다. 사이버 렉카의 개인적인 의견이 객관적인 사실로 둔갑하는 셈이다.
자극적인 영상 내용은 댓글을 통해 확산된다. 댓글을 실시간으로 작성하고 읽을 수 있는 유튜브 플랫폼에서 댓글 창은 싸움판이나 근거 없는 몰아가기의 현장이 된다. 한 여자 아이돌 그룹이 다른 여자 아이돌 그룹을 흘겨보다 걸렸다는 내용의 영상에는 ‘생긴 대로 논다더니’, ‘못 뜨는 그룹은 이유가 있다’와 같은 댓글이 천 오백 개 넘게 달렸다. 학창 시절에 노는 학생이었던 연예인을 소개한다는 제목의 영상에는 ‘연예인 C도 일진이었다’, ‘D시 사는 사람들은 배우 E가 날라리였던 거 다 안다’며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댓글창에서는 영상에서 다루는 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억측이 난무하고, 루머가 실시간으로 재생산된다. 영상에 댓글이 더 많이 달릴수록 알고리즘에 의해 더 많이 추천되기에 사이버 렉카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시청자로부터 더 많은 댓글을 받기 위해 더 자극적인 내용의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자극적인 영상이 시청자의 격렬한 반응을 낳고, 이러한 반응이 더 자극적인 영상을 낳는 악순환이다.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자극적인 영상은 사회 전체에 피해를 불러온다.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영상 대상이 되는 당사자뿐 아니라 시청하는 이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고 지적했다. 영상에 담긴 오염된 정보가 이를 소비하는 대중과 여론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기대 홍성철 교수(미디어영상학과)는 “특히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내용은 사회적 해악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극적인 영상이 양산되는 배경
사이버 렉카 영상의 인기는 철저히 화제성에 기댄다. 최근 연예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사이버 렉카가 늘어나는 이유도 연예 이슈가 갖는 화제성에 있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연구해온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원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특정 시점에 화제인 이슈를 다루는 영상을 추천한다”며 “정치 이슈는 기성 언론의 영상을 더 많이 추천하지만 연예 이슈만큼은 당시에 가장 화제가 되는 영상을 집중 추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명 연예인의 학교폭력 행위를 다룬 영상이 특정 시점에 유튜브에서 화제가 될 경우, 해당 이슈를 다룬 사이버 렉카의 영상이 추천 목록에 오르는 식이다.
왜 사이버 렉카의 영상은 그토록 대중의 관심을 끄는 걸까. 홍성철 교수는 “한마디로 호기심”이라며 “기존 언론과 미디어가 충족시켜주지 못한 대중의 호기심이 사이버 렉카를 통해 일부 충족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최진봉 교수는 “대중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가십 정보를 선점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며 화제 인물의 관련 정보를 빠르게 얻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를 설명했다.
사이버 렉카는 주류 언론이 전달하지 않는 사소한 이야기의 영역을 파고든다. 홍성철 교수는 “기성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일반 시민이 알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만을 전달한다”며 “그 과정에서 일반 시민이 알고 싶어하는 내용과 언론이 전달하는 내용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한몫을 한다. 1인 미디어의 등장과 보편화로 인해 사이버 렉카는 일반 시민의 호기심을 정확히 충족하는 소자본 뉴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 시민의 욕구와 기성 언론이 전달하는 내용 사이의 간극에 사이버 렉카가 파고들 수 있게 한다.
사이버 렉카의 영향력은 점차 커져 기성 언론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사이버 렉카가 증폭한 논란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자 기성 언론이 이를 따라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기성 언론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불필요할 정도로 집요하게 조명하고, 유튜브에서 제기한 의혹을 그대로 기사화하기도 한다. 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을 내걸며 서로 경쟁하는 모습도 보인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배우 한예슬 씨의 애인에 대한 영상을 올리자 ,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들이 이를 그대로 보도한 것이 하나의 예시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던 개인 사생활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을 기성 언론이 기사화한 것이다.
선 넘는 사이버 렉카, 제재할 수 없나
사이버 렉카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허위 사실 유포와 비하 발언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홍성철 교수는 “문제가 되는 모욕적 표현이나 비하 발언에 대해선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법으로 사이버 렉카의 범죄 행위를 저지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이승기 변호사는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다 보니 신고를 당해 벌금을 내더라도 남는 장사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의 경우 전파 범위가 넓고 속도가 빠르다는 점 때문에 최대 징역 7년 또는 벌금 5,000만 원까지로 일반 명예훼손보다 더 높은 형량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에 따라 개당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사이버 렉카 입장에선 그야말로 ‘남는 장사’인 셈이다.
현행법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허위 사실 유포와 가짜 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지난해 7월 ‘인터넷 허위조작정보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인터넷 이용자가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손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국가의 법적인 제재는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홍성철 교수는 “법적인 제재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에 최소한의 접근이 중요하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균관대학교 김민호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가짜뉴스는 정보를 소비하는 수용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걸러내도록 해야 한다’며 ‘권력이 사전에 가짜뉴스를 걸러내도록 법을 만드는 것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플랫폼 측의 제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유튜브는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증오성 표현이나 폭력 등 유해성을 띠는 콘텐츠에 한해 3번까지 경고한 뒤, 시정하지 않으면 계정을 일시 정지하거나 영구 폐쇄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유튜브 측에서는 알고리즘과 연관된다는 이유로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자가 가이드라인에 대해 유튜브 측에 문의했으나 답변은 없었다.

유튜브는 영상 제재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키피디아
유튜브 측은 사실이 아닌 정보를 퍼트리는 동영상을 추천 목록에서 제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영상을 우선 노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유튜브 측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유튜브가 영상을 제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승기 변호사는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사기업인 유튜브가 영상을 함부로 제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버 렉카에 대한 법적인 조치와 플랫폼 측의 제재는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를 소비하는 대중의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성철 교수는 “개인의 소비 행위가 사이버 렉카의 수입이 되기 때문에, 사이버 렉카가 늘어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하는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노력이 사이버 렉카가 사라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승기 변호사 역시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으려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이버 렉카의 영상은 단순히 재밌는 하나의 콘텐츠가 아니다. 순간의 호기심을 좇아 가볍게 소비하기엔 영상의 파급력이 결코 작지 않다. 사이버 렉카의 영향력은 영상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넘어 영상을 소비하는 이들과 기성 언론, 사회 전체까지 미친다. 왜곡된 정보가 또 다른 왜곡을 낳고, 근거 없는 루머가 증폭되는 탈진실 시대의 중심에 사이버 렉카가 있다. 사람들의 심리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틈새에 기생하는 사이버 렉카, 이제는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