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만이다. 2019년에는 열악한 휴게 공간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2년 전 논란이 됐던 것은 좁은 면적에 에어컨도 설치되지 않은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번 사망 사건에선 높은 노동 강도와 직장 내 괴롭힘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 7월 30일 고용노동부는 관악사가 청소노동자들의 복장을 점검하고 시험 응시 등을 강요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두 차례의 사망 사건 후 서울대의 청소노동자는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쾌적한 휴게공간에서 쉬고 있을까. <서울대저널>은 관악캠퍼스를 돌아다니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노동, 2000㎡의 상대성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출근 시간은 새벽 6시다. 취재를 위해 찾은 건물 4층은 이른 시간에도 공기가 후끈했다. 청소노동자 A씨는 늦게 시작하면 더워진다며 서둘러 청소를 시작했다. “그래도 방학 중이라 이렇게 얘기도 하면서 (청소)하지 학기 중에는 절대 못 해.” 화장실 바닥에 걸레질을 하던 A씨는 허리가 아픈지 연신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도, 변기와 세면대 밑까지 꼼꼼하게 닦았다. 청소는 화장실, 휴게실, 복도 순으로 4층부터 1층까지 계속됐다.
청소노동자들의 청소 구역은 직원들의 개인 공간이나 업무 공간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공간이다. 학생이나 교수가 학교에 나오기 전 복도, 강의실, 화장실 등 공용 공간을 모두 청소한다. 학기 중에는 공용 공간이 금방 더러워지기 때문에 점심시간 이후에 한 번 더 청소해야 한다. 건물 바깥 청소도 이들의 몫이다. 가을에는 낙엽을, 겨울에는 눈을 치운다. 특히 더운 여름날 풀을 뽑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개인별 청소 구역은 어떻게 정해질까. 본부에서 정한 인당 청소 면적이 있지만, 모든 단과대와 기관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본부 캠퍼스관리과는 “인당 청소 면적은 약 2000㎡ 정도”이며 “단과대나 기관별 건물의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혔다.
면적에 맞춰 단과대 및 기관별로 인원을 배치하는 것은 캠퍼스관리과가 맡고 있다. 2018년 시설관리직 노동자가 용역업체 소속에서 총장 발령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후 이뤄진 조치다. 캠퍼스관리과는 “인원의 증감은 건물의 신·증축 상황에 따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건물이 신축될 경우 늘어난 면적에 따라 인원을 더 배치하고, 공사가 진행 중인 단과대의 인원은 노동력이 부족한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는 방식이다.

▲코로나로 인해 기숙사는 배달 쓰레기가 급증했다. 한 청소노동자는 주말이 지나고 오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했다.
그러나 면적을 기준으로 구역을 배정하는 방식은 실제 노동 강도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건물 특성, 엘리베이터 유무 등에 따라 같은 면적을 청소하더라도 노동 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이 노후한 기숙사, 체육관은 엘리베이터가 없고, 생활과학대는 실습 등으로 타 건물에 비해 쓰레기가 많아 노동자들의 체감 강도가 훨씬 높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관악사 925동은 엘리베이터가 없고, 코로나로 배달 쓰레기 배출이 많아 노동 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 정성훈 분회장은 “강의실이나 화장실의 개수, 복도의 길이와 형태, 엘리베이터의 유무에 따라 노동 강도는 천차만별”이라며, “본부에서 현장의 사정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수의과대학(수의대)은 본부의 행정과 현장의 사정이 일치하지 않는 예시다. 수의대 청소노동자의 인당 청소 면적은 1600㎡ 정도로 본부의 기준인 2000㎡보다 적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의대 특성상 실습 용품 등의 쓰레기가 많고, 개인 구역 외에도 청소 동선에서 떨어져 있는 85-1동을 일주일에 하루씩 맡아 청소하는 게 부담이라는 이유에서다. 수의대 행정실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작년 10월부터 인원 충원을 요청하고는 있지만, 본부는 면적에 따른 인력 배치가 원칙이라는 입장이라 설득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캠퍼스관리과는 “수의대의 경우 인당 청소 면적이 다른 단과대에 비해 적어 인원을 충원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이 근무여건의 개선을 본부에 직접 요구할 기회는 없을까. 본부 캠퍼스관리과는 1년에 4회 열리는 정기 노사발전협의회와 시설관리직원 면담을 통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과의 상호작용보다는 일방적 지시가 이뤄지는 데 그친다는 의견도 있다. 불만사항이나 의견을 개진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청소노동자 A씨는 “아직까지 해고가 쉽던 용역 때 생각이 난다”며, “애로사항이나 고충이 있어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단과대와 기관의 인원 배치와 노동환경 관리는 본부가 맡고 있다. 그러나 청소노동자 인사관리가 본부의 감독 밖에 놓여있는 기관도 있다. 관악사를 포함한 일부 기관의 청소노동자는 기관장이 고용한 자체직원이다. 이들은 본부의 인건비, 노동환경에 관한 예산 편성 및 관리 감독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이로 인해 단과대·기관마다 노동환경에 차이가 발생한다. 정성훈 분회장은 “총장 발령의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 본부가 관리 감독하면서 노동 환경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며 “여전히 단과대 사정에 맞춰 운영되는 기관장 발령 직원들의 휴게공간 및 노동환경 개선이 더딘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숨 돌릴 시간, 10분의 휴식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근로시간 가운데 부여하도록 정하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3시 반에 퇴근하는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12시부터 1시까지 휴게시간이 보장된다. 그들은 학교 곳곳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 청소노동자 휴게실 내부
A씨는 점심식사 후 휴게실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청소노동자 4명이 함께 휴식을 취한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곤할 수밖에 없다며 낮잠을 청했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등 휴게실 내부 설비는 양호했지만, 휴게공간이 길목에 위치해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들의 소음이 들렸다. “여전히 불편한 점이 있긴 해도, 이렇게 안에서 시원하게 쉴 수 있으니깐 좋아.”
2019년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국정감사에 제출된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냉난방시설이 없는 곳은 33곳, 환기설비가 없는 곳은 9곳, 지하나 계단에 위치한 곳은 35곳이었다. 이후 본부 캠퍼스관리과는 고용노동부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에 맞춰 시설관리직 휴게시설 개선 계획을 수립했다. 캠퍼스관리과에서 공개한 ‘서울대학교 시설관리직 휴게시설 개선내용’에 따르면, 서울대 내 모든 휴게공간에 환기시설 및 냉·난방기를 설치했으며 2곳을 제외한 지하 휴게실도 지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캠퍼스관리과는 “연 2회 휴게시설 정기점검을 실시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현장의 의견을 청취해 미진한 부분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휴게실 관리 및 개선 방침을 밝혔다.
현장의 청소노동자들도 휴게실 개선 결과에 대부분 만족했다. 한 청소노동자는 “2-3년 전보다 휴게공간이 훨씬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성훈 분회장은 “휴게공간 개선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노동자가 냉난방기, 환기설비 등의 개선사항을 체감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온·습도, 일조량 등 휴게실의 내부 조건은 많이 개선됐으나, 아직 불편한 점도 있다. 근무지와 동떨어진 곳에 있는 휴게실이 많기 때문이다. “10분만 지나도 숨이 턱턱 막혀요.” 청소노동자들은 무더운 여름날 청소를 한 번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관절을 계속 움직이고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해 청소 중 잠깐의 휴식은 필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휴게공간과 근무지 사이의 거리가 멀어 근무 중 휴게실을 이용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중앙도서관 청소노동자들은 휴게공간과 근무지 구역과의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중앙도서관은 “7월 고용노동부 현장 실사에서 휴게공간 위치가 고용노동부 ‘휴게실 설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성훈 분회장은 “관정관 8층에서 관정관과 중앙도서관 사이의 휴게실까지 100m 정도는 되는데, 가이드라인을 준수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 거리의 휴게실을 얼마나 편하게 갈 수 있겠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청소노동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100L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내린다.
관절을 쉬지 않고 움직이다 보면, 잠깐의 휴식이 꼭 필요하다.
휴게실이 먼 노동자들은 건물마다 비어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면 수업 때는 빈 강의실이 거의 없고, 혼자 쉬다가 발생했던 지난 사망 사건 때문에 단과대 행정실에서는 모여서 쉬라는 방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많은 청소노동자들은 이같은 조치에 불만을 표했다. 청소노동자 B씨는 “함께 쉬는 게 불편한 몇몇 분들은 빈 방에서 몰래 쉬면서 행정실 눈치를 본다”고 말했다. 정성훈 분회장은 “덜 쾌적하지만 혼자 쉬는 것을 선호하는 노동자들도 있다”며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모여서 쉬라는 건 너무 단순한 해결책이 아닌가”고 꼬집었다. 캠퍼스관리과는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이 적은 연령이 아니기에, 함께 쉬게 하는 것은 위급한 상황일 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모여서 쉬라는 방침이 코로나19 방역에 해가 될 수도 있다. 작년 9월 중앙도서관 청소노동자 중 한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함께 휴게공간을 사용한 6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중앙도서관은 “근무지 휴게공간은 4인 집합 금지가 적용되는 사적 모임에 해당되지 않아 위법하지는 않다”며 “현재 본관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으며, 휴게실을 3~4인용 7개실로 재배치해 소규모 인원이 쉬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는 2018년 시설관리직 노동자 대다수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고, 2020년부터는 시설관리직 휴게공간 개선 계획을 특별 현안 사업으로 지정해 대대적인 지원에 착수했다. 현장의 청소노동자들은 고용 안정과 확충된 휴게공간 시설 등에 만족을 표시했지만, 여전히 본부 행정과 현장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노동자들을 본부 관리의 일원화된 구조로 편입하면서 전반적 환경 개선과 고용 안정을 이끌어냈다면, 이제는 현장과 밀착한 소통으로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일터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