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를 대하는 학교의 모습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2018년 용역업체 소속에서 벗어나 서울대학교 직원이 됐으며, 2019년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학교 곳곳에선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대대적 개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2년이 되지 않아 발생한 관악사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선 직장 내 괴롭힘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노동자들은 학교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이면에 특정 개인·기관의 일탈로 설명되지 않는 서울대의 차별적 노동체계가 자리한다고 말한다. 청소노동자를 향한 차별이 온전히 사라지기 위해서, 학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관악사에서 발생한 비극, 그 이후
이번 사건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건 청소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다. 지난 7월 30일 고용노동부는 관악사 안전관리팀장이 실시한 업무와 관련없는 필기시험과 복장 점검·품평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유족 대리인인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권동희 노무사는 “팀장의 의도와 상관없이 직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강요에 가깝다”며 청소노동자들이 모멸감을 느꼈음에도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게 만든 위계 구조를 비판했다.
8월 13일 서울대 본부는 고용노동부가 내린 행정지도 이행의 일환으로 전 직원 대상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과 관악사와의 정기 운영협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본부의 대응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송호현 지부장은 “한 번의 교육으로 서울대의 갑질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긴 어렵다”며 “본부의 소통 역시 전 기관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뿐만 아니라 높은 업무강도도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이재현 대표(서양사 18)는 “고용노동부 조사에선 각각의 직장 내 괴롭힘 혐의를 밝히는 것에 그쳤다”며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선 노동 강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일과사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2020년과 2021년의 건물별 쓰레기 봉투 사용량은 2019년과 비교할 때 최대 300장까지 증가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노후화된 건물 환경도 지적됐다. 권동희 노무사에 의하면, 고인은 사망 이전 925동의 고된 업무에 근무지 이동을 희망했다고 전해진다.
관악사는 청소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주말근무 폐지를 제시했다. 학생주거시설인 관악사는 주말 동안 쌓이는 쓰레기량이 많아 노동자들이 주6일제 근무를 해왔다. 이번 사건으로 노동 강도 문제가 불거지자 관악사는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9월부터 기존 직원의 주말근무 폐지를 결정했다. 주말근무 폐지로 생길 위생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선 일요일 오전에 외부 청소업체를 용역으로 고용할 계획이다.
주말근무 폐지로 노동 강도는 완화됐지만, 임금 감소라는 그림자도 생겼다. 민주노총 전국일반노동조합 시설관리분회(청소·경비) 정성훈 분회장은 “청소노동자의 임금 자체가 워낙 적어 1.5배의 주말근무수당이 하나의 임금보전 방법이었다”며 청소노동자의 실질적 임금 삭감을 우려했다. 반면 관악사는 “주5일제에 어긋나는 주말근무 폐지는 작년부터 논의돼오던 사항”이라며 “두 차례의 간담회에서 노동자들이 찬성 의견을 표했다”고 말했다. 직원 충원이 아닌 용역업체 고용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 관악사는 “직원 인력 확대는 정확한 청소업무량 측정을 바탕으로 본부 심사가 이뤄져야 가능하기에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본부와 관악사의 사건 대응에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가 배제됐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현재 서울대 시설관리직(청소·경비) 노동자 대다수가 가입돼있는 일반노조는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한 청소노동자는 “일반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기 전까지 학교는 청소노동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며 민주노총의 대응과 여론마저 없었으면 총장의 사과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오세정 총장은 사건 발생 한 달이 넘은 8월 2일 침묵을 깨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협의하겠다’는 사과문 내용과는 달리 6일 총장 주최의 청소노동자 간담회에서 노조는 참석하지 못했다. 정성훈 분회장은 “간담회 이후 학교 측에서 노조와 소통하는 자리를 제안한 적은 없다”며 본부의 소통 노력 부재를 지적했다.

관악사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학교의 대응을 촉구하는 노동자들ⓒ홍원준 사진기자
사건 조사 방식에 있어서도 노조와 본부는 입장차를 보였다. 일반노조는 본부에 노동자, 학교, 제3기관이 참여하는 산재 공동 조사단을 꾸리자고 제안했으나, 서울대는 직장 내 괴롭힘 등 갑질에 대한 인권센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재현 대표는 “인권센터는 과거 교수 갑질·성폭력 사안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이력이 있어 조사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에서는 서울대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와 현장 조사 등을 바탕으로 9월 안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조사를 접수할 예정이다.
2018년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전환은 무엇을 바꿨나
기관 직원이 청소노동자의 인사 및 노무관리를 담당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이전까지 서울대는 기관별로 청소용역업체를 고용했으며, 학교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용역업체가 청소업무 관리를 전담했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용역업체 소속 시설관리직 노동자 760여 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서울대에 직접 고용됐다. 서울대학교 직원이 된 청소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 불안정에서 벗어나서, 용역회사를 거치지 않고 본부와 직접 임금 및 수당에 관한 단체교섭을 할 수 있게 됐다.
임금과 수당은 단체교섭을 통해 모든 기관의 청소노동자에게 일괄 적용된다. 하지만 세부적인 노동환경은 단과대별로 다르다. 통일된 관리기준 없이 단과대 학장과 시설관리직 직원이 업무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재현 대표는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은 대체로 청소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청소검열이나 통제적 노동관리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최근 본부는 업무 일과와 순서 등이 담긴 청소 매뉴얼을 노동자 및 노조의 참여 없이 단독으로 준비 중이었으나, 8월 일반노조와 본부 간 실무교섭에서 최종적으로 무산된 바 있다.
휴게공간 설비 역시 단과대별로 차이가 있다. 본부에서 단과대로 지급되는 기관 운영비에는 노동환경 개선 예산이 통합돼있다. 각 단과대는 노동자의 건의사항, 그 해 예정된 단과대의 사업지출 등을 고려해 휴게공간 설비 예산을 단과대 예산 내에 자체적으로 편성한다. 정성훈 분회장은 “본부 캠퍼스관리과에서 단과대별 노동환경을 일일이 감독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단과대별로 처우가 달라 노조에 항의하러 오는 노동자도 많다”고 말했다.
단과대별 노동자 처우가 조금씩 다르지만, 관악사의 자율성은 특히 강하다. 본부에서 지급되는 예산이 아닌 기숙사비 등 별도 재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2018년 청소노동자의 직접고용 전환 당시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이 ‘총장 발령’으로 고용됐지만, 관악사의 청소노동자들은 ‘기숙사 관장 발령’으로 고용됐다. 기관장발령 직원의 인건비 및 노동환경 개선비는 교육부에서 서울대로 지급되는 정부출연금에도 포괄되지 못한다. 이재현 대표는 “고용 및 관리 주체가 총장과 기관장으로 이원화된 구조”라며 “인력 충원 또는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할 때 관악사는 예산 부족, 본부는 고용 주체가 기관장임을 들어 책임을 서로에게 회피할 수 있다”며 비판했다.
관악사에는 무기계약직이 아닌 기간제 및 용역 청소노동자들도 있다. 2019년 신설된 글로벌학생생활관(글로벌동)은 용역업체를 1년 단위로 계약한다. 관악사는 “구관 재건축이 이뤄질 경우 구관 시설관리직 직원들의 업무 공백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글로벌동은 용역으로 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관이 재건축될 동안 글로벌동의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구관 직원들이 글로벌동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다. 글로벌동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언제든 계약 해지될 수 있다는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글로벌동의 한 청소노동자는 “구관이 언제 재개발될지 모르는데, 재개발이 되면 글로벌동 노동자들은 다 잘린다는 말이 몇 번이나 오갔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과 달리 글로벌동의 노동자들은 주말에 근무하더라도 1.5배의 주말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임금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

관악학생생활관 글로벌학생생활관(916동) ⓒ김덕훈 사진기자
정성훈 분회장은 고용주체를 총장발령으로 통일하는 것이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총장발령 직원으로 통일해야만 채용부터 인사관리, 예산배정, 퇴직까지 일괄적으로 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현 대표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도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안이었으나 서울대가 선제적으로 수용했다”며 “현재의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서울대의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은 ‘2등 직원’
모든 청소노동자의 고용주체가 통일된다고 해서, 임금과 처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관악사를 제외한 대부분 기관의 청소노동자가 총장발령 무기계약직이지만, 이들은 스스로가 여전히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돌꽃법률사무소 김기홍 노무사는 “본래 노동법상 정규직의 정의는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지만, 근로조건에서 정규직과 차별이 있는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이 무기한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규직과 같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소노동자는 정규직 법인직원과 구분되는 ‘자체 직원’으로, 임금·수당 등의 처우에서 법인직원보다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
본부는 “시설관리직 직고용 전환 이후 본래 용역회사에 귀속되던 이윤을 처우 개선에 활용하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는 실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일반노조 시설관리분회는 본부와 매년 임금·단체협약(임협)을 체결하고 있지만, 매년 정해지는 청소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은 최저임금 인상률과 사실상 동일하다. 2020년 임협에서 타결된 시설관리직 임금은 2021년 최저임금과 동일한 8,720원의 시급이다. 정성훈 분회장은 “용역 시절에도 임금은 최저임금 이상이었는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최저임금으로 고정됐다”고 말했다. 2021년 임금교섭에서 시설관리분회는 연차가 쌓일수록 기본급이 3만원씩 올라가는 호봉제를 제안했지만, 본부는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 외 각종 복지수당의 경우 단체교섭을 통해 개선이 이뤄졌지만, 청소노동자들은 법인직원과 동등한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단체교섭에서 가장 주요한 쟁점으로 손꼽혔던 명절 휴가비가 한 예시다. 법인직원은 명절 휴가비로 기본급의 120%를 지급받는 반면, 단체교섭을 통해 상승된 청소노동자의 명절 휴가비는 연 백만원이다. 대학노조 송호현 지부장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복리후생비는 직무의 종류와 무관하게 차별 없이 지급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며 차별적 고용형태를 바로잡을 본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금 및 수당과 달리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은 휴게공간이다. 2019년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휴게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계기였다. 본부는 “휴게공간 개선을 특별현안사업으로 지정해 캠퍼스관리과의 실태조사 이후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훈 분회장 역시 휴게공간의 개선을 인정하며 “본부의 관여가 많이 이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재현 대표는 “건물 구조와 예산 부족을 들어 그동안 단행되지 않았던 공사가 의지만 있으면 가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본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우리도 동등한 서울대학교 직원입니다
노조 측은 더 활발한 처우개선을 위해선 단체교섭뿐만 아니라 학내 의사결정 전반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서울대의 운영방향을 결정하는 총장은 총장추천위원회 평가와 학내 구성원의 정책평가로 결정되는데, 정책평가 참여 기회는 교원, 법인직원(교원의 14%), 학생(교원의 9.5%)에게 각각 다른 비율로 주어진다. 송호현 지부장은 “2018년 총장선거 당시 후보 공약집을 살펴보면 선거 당락을 좌우하는 교원 및 법인직원의 처우 개선 약속이 적혀있지만, 청소노동자를 포함한 자체 직원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며 투표권이 없는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학교의 주요 의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대학 운영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는 평의원회에서도 자체 직원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한다. 평의원회는 서울대 정관 개정, 인력 및 복지수당 확대를 위한 예산 편성 등을 논의할 수 있다. 현재 서울대 평의원회 50인은 교원 45명, 법인직원 5명으로 구성돼있다. 현재 국회에는 서울대 평의원회의 직원 및 학생 비율을 늘리도록 규정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서울대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있다. 평의원회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자체직원의 참여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서울대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윤영덕 의원은 “대학 구성원의 학내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 “구성원 간 협의와 현행 제도상 한계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학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동등한 권리를 지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2019년 시설관리직 파업, 302동 사망 사건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학교는 사후적으로 청소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해왔다. 이재현 대표는 “또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선 학교가 평소에 노동조합과 적극적으로 교섭함으로써 노동조건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302동 사망 사건 이전부터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휴게 공간 개선을 요구해왔으나, 개선은 사건 이후에 이뤄졌다.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받을 때까지, 대학은 변화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