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라이더들은 어쩌다 ‘도로 위 무법자’가 되었을까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에게 라이더의 노동 안전 실태를 묻다

  배달 앱을 통한 음식 주문이 일상이 된 오늘, 매일같이 출근하는 일터가 위험한 도로인 사람들이 있다. 배달 라이더들은 번개도, 치타도 아니지만 ‘번쩍 배달’과 ‘치타배달’이라는 이름에 부응하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도로 위 무법자’가 된 라이더에 대한 시민들의 눈초리는 따갑기만 하다. 그러나 라이더들이 속도 경쟁과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내몰리게 된 진짜 내막은 따로 있다. 라이더 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에게 배달 노동의 현주소와 ‘라이더보호법’이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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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 ‘라이더보호법’이란? 

  라이더보호법은 라이더들의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의 법으로 올해 8월 발의된 기존의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말한다. 라이더보호법은 (1) 배달대행업체 등록제, (2) 최소한의 배달료를 규정하는 안전배달료, (3)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규제할 수 있는 알고리즘협약의 세 가지 사항을 골자로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배달 주문 앱에서 뜨는 배달료가 가게마다 다른 데다가 전보다 비싸게 느껴진다. 가게별 배달료는 어떻게 책정되는 것인가? 

  라이더들이 받는 배달료가 그대로 앱에서 배달료로 표시되는 건 아니다. 실제 배달료 중 얼마를 앱에서 배달료로 표시할 지는 음식점 업주의 경영상 전략이다. 음식점에서 한 건의 배달을 위해 5천 원을 쓴다면, 업주는 앱에서 5천 원 전액을 배달료로 노출시킬 수도 있고, 일부를 차감하는 대신 음식 가격을 높일 수도 있다. 업주가 마음만 먹으면 소비자에게 배달료 0원을 보여주고, 음식 가격에 녹여낼 수 있는 것이다. 

  앱에 표시되는 배달료와 라이더가 받는 배달료가 다르다면, 라이더가 받는 배달료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배달의 두 가지 유형에 따라 라이더가 한 건당 받는 배달료가 다르다. 첫째는 앱에서 주문과 동시에 배달 라이더를 연결하는 배민1·쿠팡이츠 유형이다. 이 유형은 라이더들이 직접 배달 앱과 위탁 계약을 맺는다. 이때 라이더가 받는 배달료는 알고리즘에 의해 초 단위로 바뀐다. 주문이 얼마나 몰리냐에 따라 피크 시간에는 만 원에서 비(非)피크시간에는 2,500원까지 낮아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반대행’ 유형으로, 배달의 민족 전체 주문의 92%를 차지한다. 배달 앱을 통해서는 주문 접수만 받고 배달은 음식점 업주가 직접 동네 배달 대행사에 맡기는 방식이다. 이때 배달료는 배달 대행사들 간의 저가 입찰 경쟁으로 결정되기에 배민1·쿠팡이츠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된다. 대행사들이 음식점을 돌면서 ‘지금 3,000원에 하고 계시면 저희는 2,800원에 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떤 가게의 음식을 배달할지 라이더들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두 유형 모두 라이더 전용 프로그램 앱을 깔아서 배달료와 거리 등을 보고 선택한다. 이때도 차이가 있다. 배민1· 쿠팡이츠는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배차를 하면 라이더가 배달료, 거리를 보고 수락 여부를 정한다. 이때 배달은 단건 배달 시스템으로, 라이더는 한 번에 한 집만 배달한다.

 일반대행은 기본 배달료가 일정하고 거리별로 추가되기에 주로 거리와 주소지를 고려해 배달을 선택한다. 앱에서 출발지인 음식점 주소와 도착지인 손님 주소 여러 개가 순서대로 계속 뜨면, 콜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전투 콜’ 방식이다. 보통 일반대행 라이더들은 여러 콜을 잡아 한꺼번에 배달하는 ‘묶음 배달’을 한다. 

  동네 배달 대행사들은 저가 입찰 경쟁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이것이 일반대행 라이더들에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가? 

  저가 입찰 경쟁의 결과 배달료 단가가 낮게 책정된 일반대행 라이더들은 더 위험하게 일하게 된다. 배달료가 낮으면 건수를 최대한 많이 채워야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일반대행 라이더들이 여러 콜을 동시에 잡아 묶음 배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라이더가 배달을 가는 도중에 콜을 추가로 잡기 위해 핸드폰을 보고, 맨 처음에 담은 음식이 식지 않도록 속도를 높이면서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가로 경쟁하는 동네 배달 대행사는 소속 라이더에게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고가 났을 때 보호받기 어렵다. 

 일반대행의 저가 입찰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개인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어 동네 배달 대행사가 난립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라이더보호법’에 나와 있는 배달대행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 사업장 규모가 일정 기준 이상이고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관리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만 창업할 수 있도록 등록 허가 요건을 정하는 것이다. 등록한 대행사들은 사회보험 가입, 안전 교육 실시, 근로계약서 작성 등의 의무를 지켜야 하며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배민1·쿠팡이츠 등 한 번에 한 집만 배달하는 단건 배달은 사고 위험이 더 적은가? 

  단건 배달은 일반적으로 사고 위험은 덜한 대신 묶음 배달의 수입을 보장 받지 못한다. 건당 조리 시간과 배달 시간을 고려하면 단건 배달로 한 시간에 3건 정도만 배달할 수 있다. 배민1·쿠팡 이츠가 (일반대행보다) 배달료가 높은 것도 결국 피크 시간에만 해당한다. 피크 시간이 아닐 땐 최소 배달 단가가 일반대행과 비슷하게 2,500~3,000원 수준이다. 여기에 라이더가 부담하는 기름값과 오토바이 보험료 등을 계산하면 최저임금도 안된다. 결국 라이더들은 배달료가 확 뛰는 피크 시간에는 하나라도 더 배달하려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라이더는 생계 유지를 위해 빠르게 달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도로 위 안전 문제를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모두가 라이더의 빠른 배달을 원한다. 음식이 빨리 도착하길 바라는 소비자, ‘번쩍 배달’을 강조하는 배달 주문 플랫폼, 저가 입찰 경쟁을 벌이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이를 이용하는 음식점 업주 모두가 암묵적으로 빠른 배달을 합의한 것이다. 라이더에게도 빠른 배달은 최소한의 수입과 직결된다. 결국 모두가 빨리 배달하는 시스템의 ‘설계자’인 것인데, 책임은 라이더에게만 돌아간다. 라이더가 눈에 잘 띄는 도로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라이더의 준법 운전이 가능하려면 신호를 지켜도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가능할 만큼 배달료가 올라가야 한다. 

  라이더 안전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안전 배달료는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라이더보호법’에 명시된 안전 배달료는 최저임금을 정하듯 건당 배달료의 최소 단가를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안전 배달료는 신호를 지키며 배달할 때를 기준으로 평균 몇 건의 배달이 가능한지 를 계산해 산정된다. 라이더들이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아도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제도로 화물 안전운임제가 있다. 낮은 화물 운임 수수료로 인한 화물차의 과적·과속 문제를 해결하려 2018년에 도입돼 시범 운영중이다. 화물의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기사들의 과로·과속·과적·졸음운전 등이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안전 배달료 시행으로 최소한의 배달료가 보장되더라도, 배달료를 알고리즘이 통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낳는다는 의견이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배달료가 산정되는 배민1·쿠팡이츠 유형의 경우, 배달료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문제다. 알고리즘을 쥐고 있는 플랫폼 기업은 그들에 게 유리한 방식으로 배달료를 산정하려 할 것이다. 소비자에게는 높은 배달료를 받는 한편, 라이더에게는 최소수입을 보 장하지 않으면서 중개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초마다 바뀌는 배달료는 배달 노동의 불안정성과도 직결된다. 라이더는 마치 비트코인처럼 다음 콜이 얼마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배달 수락 여부를 45초 안에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2km, 5천 원’의 배차를 거절할 때, 다음 배차에 같은 2km여도 6천 원이 배차될 수도, 4천 원이 배차될 수도 있다. 피크 시간대의 배달료가 비피크 시간에 얼마나 내려 갈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라이더는 하루 일을 마치고 나서야 총 수입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수입이 예상보다 모자라면 더 길게 일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 시간도 정해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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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에 의해 초마다 바뀌는 배달료

  그렇다면 배달료를 산정할 때 알고리즘은 어떤 방식으로 짜여져야 하는가? 

  알고리즘을 기업의 손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개입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라이더보호법’에서 주장하는 ‘알고리즘 협약’이다. 실제 노동 현장에 맞도록 알고리즘을 재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는 출발지와 도착지의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배달료를 산정하는데, 라이더는 실제로 산정된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가야 한다. 배달료 산정을 실거리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초마다 변하는 배달료 산정 알고리즘에도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지금의 알고리즘은 라이더가 많이 필요한 피크 시간에 배달료를 높여 효율적으로 콜을 배당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라이더의 안정적인 노동을 위해선 어느 시간대에 일을 하든, 같은 거리라면 비슷한 수입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안전 배달료로 기본 단가를 책정하고 거리별로 할증을 두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다. 

  배달료 외에도 알고리즘이 개입해 통제하는 사항들이 있는가? 

  배민1·쿠팡이츠의 경우, 라이더 통제를 위해 배달료 외에도 알고리즘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대표적으로 라이더의 배달 선택권이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된다. 라이더도 선호하는 콜과 그렇지 않은 콜이 있다. 서울대는 워낙 넓고 건물 찾기가 어려워 라이더들이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배차를 거절하면 라이더 등급의 평점이 하락한다. 배민1 라이더 는 평점이 하락하면 배차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쿠팡이츠 라이더는 배차 거절이 계속되면 앱 정지를 당하기도 한다. 배달료가 너무 낮거나 가기가 힘든 배차를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사실상 제한되는 것이다. 등급제를 폐지해 라이더의 자율적인 배차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라이더보호법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라이더들의 난폭 운전을 막기 위해 노동자 개인에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한계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업주에 대한 단속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한 도로를 위해선 알고리즘과 안전 배달료 를 노동자와 함께 협상해 규정하고, 배달대행업체 등록제를 통해 사업주의 안전 의무 준수 여부를 감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라이더보호법 제정을 통해 라이더의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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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라이더들이 ‘라이더 보호법’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행진 시위를 하고 있다. ⓒ라이더 유니온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배달 라이더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2020년 2,225건으로 전년 대비 61%나 증가했다. 빠른 배달은 원하지만 빨리 달리는 오토바이는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라이더는 개인의 안전을 포기하며 ‘도로 위 무법자’로 살아야 했다. ‘라이더보호법’은 라이더 개인에게 돌아가던 비난의 화살을 멈추고, 라이더를 속도 경쟁으로 내몬 구조를 개혁하는 출발점이다. 문 앞에 도착하는 음식보다 사람에 시선을 쏟을 때, 위험한 도로는 안전한 일터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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