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패션은 ‘찐’ 환경일까?

친환경 패션의 허와 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패션 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속 가능성이 트렌드가 되면서 여러 패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친환경’을 내세우고 있다. 이제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도 친환경 소재, 유기농 면화, 리사이클과 같은 홍보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친환경’만큼 자주 볼 수 있는 단어가 ‘그린워싱’이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에 대해 친환경적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패션업계의 ‘친환경’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친환경 패션의 허와 실을 살펴보고, 진정한 친환경 패션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알아봤다.

패션, 친환경을 말하다?

  지난 7월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나의 강변에선 소 떼가 건물 높이로 쌓인 옷 무더기에서 헌 옷을 먹고 있었고, 방글라데시의 강은 의류 염색 공장의 화학 폐기물로 시커멓게 물들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충격적인 광경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패션 산업이었다. 오늘날 패션 산업은 석유 산업 다음 가는 환경 오염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연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항해와 해운업보다 많은 배출량이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물의 20%가 의류 제작에 사용되고,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35%가 합성섬유 세탁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패션 산업의 환경 오염은 ‘패스트패션’이 패션업계를 주도하며 더욱 심각해졌다. 패스트패션은 저가의 의류를 유행에 따라 짧은 주기로 대량 생산·판매하는 패션 업종을 말한다. 추호정 교수(의류학과)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쓰레기 배출량이 시장점유율과 비례한다”고 설명했다. 패션 업계가 환경 문제에 둔감하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패스트패션 기업의 수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에 H&M을 비롯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들도 친환경을 내세운 제품군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교수(의류학과)는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친환경을 무시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명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인식, 산업을 유지하기 힘들 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친환경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국내 패션기업의 대부분은 소규모 브랜드로 운영된다. 지속가능 전략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대규모 글로벌 브랜드들과 달리 이들 소규모 브랜드는 당장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빈티지·세컨핸드 패션 오픈마켓 플랫폼 ‘브이룩’의 김지영 대표는 “업사이클링 제조나 친환경 원단 사용에는 대체로 일반 상품 제작 원가의 2배 이상이 든다”며 “기업의 입장에서 수요는 적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지속가능한 패션에 도전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추호정 교수 역시 “영세 기업들은 자원도 기술도 부족해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친환경 패션을 말하는데 있어 친환경의 기준이 세부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의류가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는 단계별로 다양한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 면 생산지에서 사용하는 화학비료, 생산 단계의 화력발전, 염색, 유통, 소비자의 세탁, 매립과 소각을 통한 폐기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저마다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대나무 섬유는 폐기 후 생분해가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캐나다 공정거래청은 “대나무 섬유를 부드러운 천으로 변환해 옷, 수건, 침구를 만드는 데 많은 양의 화학 물질이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어떤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 완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친환경 평가의 기준도 달라지는 것이다.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그린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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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을 실천하려는 패션업계의 노력이 있지만, 친환경 이미지를 악용하는 그린워싱 기업도 있다. 캐나다의 친환경컨설팅기업 테라초이스는 그린워싱의 7가지 유형으로 ①상충효과 감추기, ②증거 불충분, ③애매모호한 주장, ④관련성 없는 주장, ⑤거짓말, ⑥유해상품 정당화, ⑦부적절한 인증라벨을 제시했다. 이 기준은 현재도 각국의 그린워싱 단속 규정과 민간 환경단체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진설명 시작. 건물 옥상에서 세 여성 모델이 H&M의

지속가능 소재로 제작된  H&M의 ‘컨셔스 컬렉션’ 화보 ⓒH&M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H&M은 지난 2019년 지속가능 소재를 사용한 ‘컨셔스 컬렉션’을 런칭했다. 친환경 캠페인 기구 ‘체인징 마켓 파운데이션’의 조사에 따르면 ‘컨셔스 컬렉션’은 제품군 중 96%가 영국 경쟁시장청의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 영국의 온라인 패션기업 ASOS는 자사 제품이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졌다고 제품을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현재 기술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적발됐다. 친환경 소재의 비율이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의류라 홍보한 것 역시 문제가 됐다. 환경을 위해 합성소재인 폴리에스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홍보하면서 다른 합성소재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일부 제품군에서만 친환경을 표방하고 전체 생산 과정에서는 환경파괴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친환경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우는 동시에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경파괴를 일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에르메스는 친환경 화장품 패키지를 홍보하는 동시에 재고 소각을 계속해 환경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재고 소각이란 명품 브랜드에서 제품의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즌이 끝나고 남는 재고를 소각하는 관행이다. 자원 낭비일 뿐만 아니라 소각 과정에서 환경에 유해한 물질이 발생한다. 

  문제는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친환경 기준의 부재 때문에 그린워싱을 방지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컨셔스 컬렉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추호정 교수는 “소재는 유기농이라도 대량 생산하여 의류 폐기물을 계속 만들어내는 H&M의 사례는 전체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박정희 교수는 “데이터가 부족한 현재로서는 기존 제품보다 한 가지 측면이 개선되면 친환경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체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과학적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설명 시작. H&M의 흰 니트 제품에 초록색 태그가 붙어 있다. 태그에는

H&M의 ‘컨셔스 컬렉션’ 태그 ⓒH&M     

이제는 정부가 나설 때

  영국 내 모든 패션기업은 2022년까지 상품과 브랜드 설명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허위문구를 지우고 정확한 정보를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친환경 소재 함유’라는 표기의 경우 ‘20% 유기농 면 포함’으로 명시해야 한다. 친환경 소재와 관련된 그린워싱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체인징 마켓 파운데이션’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과 영국의 패션 브랜드들이 명기한 지속가능성 관련 내용 중 59%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서구에서 그린워싱에 대한 처벌은 계속해서 엄격해지고 있다. 최근 아디다스는 대표 제품인 ‘스탠스미스 스니커즈’의 ‘최소 50%가 리사이클 소재’라는 표기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가 높아진 만큼 주요국들에서는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도 그린워싱 제품을 감시하는 법안이 있다.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각각 주관하는 두 가지 규제가 있다. 그러나 그린워싱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환경부 주관 규제의 경우 위반 건수 700건 중 625건이 시정권고 조치에 그쳤다. 2016년 국회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당시 의원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린워싱 적발 제품 4개 중 1개가 시정권고 조치 후에도 친환경 제품으로 판매됐다. 

  주요국의 규제 강화에 따라 수출을 위해 국내의 기준도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호정 교수는 “국내 의류 사업은 내수도 중요하지만 수출의 비중이 크다”며 “미국이나 유럽의 큰 기업들의 환경 규제 기준이 높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친환경 인증제도에 대한 교육 및 홍보도 요구된다.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 정규진 대표는 “같은 친환경 인증이라고 해도 다른 목표를 가지고 여러 인증제도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소재 관련 인증제도의 경우 소재의 지속가능성을 구별하기 위한 인증 제도도 있고, 지속가능한 소재의 사용 비율 증대를 목표로 만들어진 제도도 있다. 정 대표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만든 인증제도에 대한 시민 대상 홍보를 통해 인식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친환경 인증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박정희 교수는 “지속가능성의 평가지수는 각 국가가 처한 환경마다 다르다”며 “우리도 우리 환경에 맞고 영세 기업에서 실천하기 쉬운 평가 지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안적 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의 투자도 중요하다. 추호정 교수는 “규제로 억압하기 보다는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선도해 영세 기업이 더 친환경적 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규제로 인한 영세기업의 도태를 막기 위해선 정부나 연구 섹터, 학교에서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교수는 정부 주도의 연합체 형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정부, 기업, 학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하나의 통합된 전략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여력이 부족하다”며 “환경부가 나서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영 대표 역시 “제도적 측면에서 업사이클링이나 친환경 패션을 하는 기업들을 발굴·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논했다.

지속가능한 멋내기

  친환경 패션의 정착을 위해선 기업이 각성하는 한편 소비자들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저렴하고 유행에 착실한 패스트패션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환경을 위해 비싸고 덜 예쁜 옷을 사길 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연세대에서 의류환경학을 전공하는 허혜원 씨는 “산업 특성상 지속가능성이 아직 ‘멋지고 매력적인 것’이라는 가치보다 훨씬 후순위인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추호정 교수 역시 “패션소비의 특징은 자아를 구성한다는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너무 중요한 소비라 다른 이유로 소비를 안 하기가 힘들다”고 보았다.

  ‘슬로우패션’은 패스트패션이 유발하는 환경 오염과 노동 인권 문제 등을 지양하는 소비를 추구하면서 등장했다. 슬로우패션의 실천으로는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고품질의 옷을 생산·소비하는 것, 새 옷을 사기보다는 빈티지·세컨핸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 있다. 김지영 대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해 빈티지 거래 플랫폼 ‘브이룩’을 운영하고 있다. 새 옷을 소비하는 대신 빈티지 의류 거래를 통해 옷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중고 의류 시장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슬로우패션이 떠오르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김지영 대표는 소비자들이 저렴한 옷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의류 제작과 관리는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작업이고,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니 그 노동의 가치가 들어가는 것”이라며 “싼 가격의 옷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덜 사서 오래 입는다는 인식의 전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장려했다. 추호정 교수는 “일상 소비가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한다면 소비자들은 변화할 것”이라며 시장의 투명한 정보 제공과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보와 교육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에게도 필요하다. 자본도, 인력도 부족한 영세기업들이 자력으로 친환경 이슈에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소규모 기업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기 위해선 전체 제작 과정과 관련된 기술 교육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선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소규모 기업 간의 결속을 통해 이런 한계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소규모 브랜드들이 시장에 대응하고자 설립한 단체다. 국내외 윤리적 패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김지영 대표는 “관심을 가진 업체들이 교류하고 제도적·정책적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며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말했다.

사진 설명 시작. 회색 배경의 중간에 초록색으로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에서 개최한 지속가능패션 웨비나 포스터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  

  최근에는 대학 교육에도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고 있다. 허혜원 씨는 최근 지속가능성에 대한 수업이 증설됐다며 “학생들로 하여금 패션산업과 지속가능성을 연결짓게 하는 시도는 ‘패션산업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잡지 않게 해 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뷰이들은 “지금은 시행착오 단계”라고 입을 모았다. 허 씨는 업계의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다가도, 변화를 분명히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패션업계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달려나가고 있다. 넘어지더라도 멈추지 않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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