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벚꽃 피는 봄’이 오려면

지역과 상생하는 대학을 위한 길

  이미 현실이 된 인구 절벽 앞에서 대학 정원을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문제는 어떻게 ‘잘’ 줄이는가다. 정원 감축의 타격이 비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지방대학의 소멸을 막을 수 없다. 대학의 위기가 지역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경쟁의 장을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역과 지역 안 대학을 함께 살리기 위해서 대학과 고등교육 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대학을 살리는 공정한 재정지원

  정원 감축의 타격을 가장 공평하게 분산시키는 방식은 각 대학이 균등하게 정원을 줄이는 방안이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김병국 정책실장은 권역별로 균등하게 정원을 감축하거나, 재학생 1만 명 이상 대학의 정원을 더 감축하는 방식을 예시로 들었다.

  이 방안이 당장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서열화된 대학 입시 경쟁 때문이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각 대학이 비슷한 비율로 정원을 줄였을 때 수도권 대학 입학 경쟁만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정원 감축의 짐을 균등하게 나눠지기 위해선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격차가 우선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간 격차 해소의 첫걸음은 정부 재정지원의 균등한 배분이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최소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대학들까지 구제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는 한편, 재정의 균형 분배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상황과 각 대학의 고유한 역량, 지역별 고등교육 수요 등 지역균형을 고려한 지표로 대학을 평가해 지원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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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 지출과 GDP 대비 정부 고등교육 재정 지출 비율 ⓒ교육부

  기존에 쓰이던 곳의 예산을 줄이지 않으면서 균형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이 확충돼야 한다. 한국의 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은 0.6% 수준으로, OECD 평균인 1%보다 현저히 낮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현재 지원비 규모로는 각 지역 대학의 운영과 역량 강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소수 상위권 대학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지원비 규모를 지적했다. 

  올해 10월 국회에서는 대학 재정의 안정적 지원을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교부금법)’ 제정안이 발의됐다. 교부금법 제정안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고등교육을 위한 교부금으로 책정하고, 교부금 총액이 GDP 1.1% 이상이 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초등, 중등 교육의 경우 의무교육재정교부금법으로 일정한 예산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반면, 고등교육 재정은 매년 예산안에 따라 유동적으로 편성된다”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확충된 정부 지원금이 실질적으로 대학 역량 강화에 쓰이기 위해선 정부 재정지원의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정부 재정지원은 특정 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업비 형태로 배분된다. 반면 시설 증축이나 강의실 내 장비 구매 등 교육·연구 역량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비용은 경상 운영비에 해당한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현재 정부 재정지원은 대학이 정작 필요로 하는 곳에 정부 지원금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상운영비 형태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학교 법인에서 독자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경상운영비를 국세로 지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사립대학에 운영비 형태로 정부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대신 운영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공영형 사립대가 절충안이 될 수 있다. (<서울대저널〉 2020년 6월호 "사학 비리 척결 없이 교육 발전 불가능해" 기사 참조)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공영형 사립대’는 재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대학 운영 구조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꾸고 예산 편성의 근거를 상세히 공개하는 등 사립대학을 공립화하면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영형 사립대는 ‘부실 대학’을 지원한다는 반대에 부딪혀 현재 ‘사학혁신지원사업’으로 변형돼 추진 중이다. 사학혁신지원사업은 사립대학이 먼저 공공성을 강화하면 지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가고 싶은 대학’이 되려면

  대학 서열화를 해체하고 지방대학의 선호를 높이기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대학 기능별 특성화가 제시된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대다수 대학이 비슷한 커리큘럼과 연구 과정을 따르기에 거대 규모의 상위권 대학에 선호가 집중된다”며 “각 대학들이 고유한 특성을 집중적으로 강화한다면 해당 대학에 입학할 유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특성화는 재정지원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대학 기능별로 집중투자해 지원의 분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특성화의 좋은 예시가 KAIST나 포항공대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KAIST나 포항공대의 경우 연구 역량이 높기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선호가 높다”며 연구 기능의 특성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역의 특징을 살린 연구는 학문적 다양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은영 부회장은 “해양 연구는 바다 곁에 입지한 대학에서 더욱 잘 수행할 수 있다”며 “수도권 대학의 연구 독식보다 지역별 연구의 다양화가 국가 전체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특정 자격을 부여하는 직업 교육을 전문대학이 특성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안경광학, 뷰티, 조리 등 전문대학에서 최초 개설된 일부 학과는 4년제 일반대학에서 중복 개설돼있다. 전문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동일한 자격을 부여하는 직업 교육이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에 분산돼있다”며 이로 인해 “전문대학 진학의 유인이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관계자는 “실무 중심 대학의 수업 연한을 2-3년으로 제한하지 않고, 고급 훈련이 필요할 경우 4년 과정으로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직업 교육의 전문성 강화를 강조했다.

대학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려면

  지방대학이 살려면 ‘지방’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과의 상생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소득과 숙련자 비중 등을 반영한 ‘일자리 질 지수’를 측정한 결과 상위에 분포한 39개 시·군·구 중 31개가 서울과 경기도에 분포했다.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 부족은 지역 사회와 대학이 함께 맞닥뜨린 숙제라는 것이다.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역인재 할당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단기적 해결책에 그친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역인재 할당제란 지역 소재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의 30%를 해당 지역 대학 졸업생으로 채우는 제도다. 그러나 창출된 일자리가 지역 내에서 자체적인 일자리로 재생산되지 않고 공공기관에 한정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 대학 졸업생들을 역차별한다는 비판도 여전히 거세다.  

  대학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 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지역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학부 수업에서 지역 사회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는 ‘리빙 랩(living lab)’이 한 예시다. 경상국립대 산학협력정책연구소 장후은 연구교수는 “지리학, 도시공학, 사회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길거리 쓰레기나 주차 문제 등을 해결하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다”며 교육적 효과와 함께 창업 기회, 일자리를 제공하는 리빙 랩 수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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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국립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전경 사진 ⓒ경상국립대 창업보육센터

  현재 전국 206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창업보육센터는 지역의 창업자들에게 사업장과 기술·경영 지도 등을 제공한다.장 교수는 “창업보육센터를 활용해 ‘리빙 랩’ 교육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대학생 창업이 가능하다”면서도 “이외에도 대학 문화시설을 지역공동체에 개방해 지역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과 지역의 유기적 협력을 학생들이 경험하게 하면 졸업 이후에도 지역에 정착할 유인이 생긴다. 장후은 교수는 “학생들이 최소한 4년 내외의 시간을 머물다 간다는 점에서 대학이 입지한 지역은 학생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며 “지역 공동체의 필요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교육을 통해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 감축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장후은 교수는 “대학의 질적 혁신은 이제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과 대학의 자구적인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대학이 지역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곳으로 거듭날 때 대학에 벚꽃 피는 봄이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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