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파는 곳 근처 지역을 의미하는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깔끔한 매장에서 쉽게 음식을 살 수 있는 시대지만, 노점에서 파는 따끈한 붕어빵의 정감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유행과 ‘레트로’ 감성이 만나 탄생한 ‘뉴트로(New+retro)’의 흐름을 타고, 을지로의 노점은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가 됐다.
그러나 노점상을 탈세를 일삼는 ‘세금도둑’으로 보는 싸늘한 시선 역시 존재한다. ‘야채 파는 할머니들 벤츠 타고 퇴근한다’는 말은 공공연히 나돌지만 실제 노점상의 삶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붕어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붕어빵 굽는 이를 아는 사람은 없다. 노점상의 삶과 이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알아봤다.
생계의 벼랑 끝에 선 노점상
노점상은 ‘길거리 가게’인 노점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노점은 번화가, 등산로, 철도역 등 다양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 길가에 물건을 펼쳐놓는 좌판, 포장마차, 지하철역 근처의 거리가게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노점상은 2년째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도시연구소)가 지난해 9월부터 10월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과 전국노점상총연합에 가입한 노점 운영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점상 중 96.1%가 운영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도심 관광지의 노점상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민주노련 김두환 조직실장은 “관광지의 노점상 품목들이 외국인 관광객 감소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때수건이 대표적인 예다. 김 조직실장은 “가장 적게 번 분은 한 달간 수입이 5천 원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줄어든 영업시간도 노점상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노점상 영업시간을 단속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점상 스스로 장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김두환 조직실장은 “장사가 안되는 상황에서 노점상 장사를 나가는 것 자체가 식사비용 같은 지출을 수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운영소득이 줄어든 노점상의 대부분은 사적인 방법으로 소득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노점상은 코로나19와 관련된 공적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점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다. 그러나 건설현장 일용직, 식당 아르바이트, 택배 분류작업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진입하는 게 대다수다.
도시연구소 김준희 연구원은 “고령층이 대다수인 노점상은 그러한 일자리를 얻는 것마저 어렵다”고 단언했다. 도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점상의 평균 연령은 61.5세로, 연령별 비중은 60대(37.7%), 50대(30.2%), 70대 이상(20.8%) 순이었다. 건강 문제도 걸림돌이 된다. 김 연구원은 “노점상은 거리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관절염 같은 질환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건강 상태의 노점상이 부업을 통해 소득 감소에 대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대출에 손을 뻗는 것이다. 도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소득감소로 인해 45.5%의 노점상은 식비를 줄였고, 30.3%는 월세·관리비·공과금 같은 주거비용을 못 내고 있다. 미납된 주거비용은 보증금을 차감하는 식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노점상은 23.2%에 달했다.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고정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지만, 고금리 대출은 노점상의 목을 또 다시 옭아맨다. 민주노련 조항아 사무처장은 “노점상은 대부분 신용등급이 낮아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노점상 지원을 위해 ‘노점상 소득안정지원금(재난지원금)’을 마련했지만, 노점상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 신청이 가능하다는 조건 때문이다. 김준희 연구원은 “사업자등록을 위해선 상점 주소지를 등록해야 한다”며 “거리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의 특성상 사업자등록증 조건은 오히려 노점상을 배제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을 기준으로 노점상 재난지원금 신청자는 861명으로, 정부가 추산한 전체 노점상 수(4만 7,865곳)의 1.8%에 그쳤다.
저조한 신청률로 인해 정부는 지난해 9월 사업자등록 조건을 폐기했지만, 이후에도 재난지원금 신청은 저조했다. 김두환 조직실장은 “신청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때 노점상이 지자체에 제공한 개인정보가 이후 과태료 부과의 꼬투리가 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 조직실장은 “재난지원금 신청을 담당하는 건설관리과는 노점상 단속을 집행하는 곳”이라며 “노점상이 재난지원금 신청을 포기했던 게 당연하다”고 비판했다. 노점상의 재난지원금 신청을 지자체가 거부하기도 했다. 김 조직실장은 “미허가 노점상이 지자체에 신청을 문의하면 ‘미허가 노점상은 안 받는다’는 답변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동
거리.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노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뻔뻔하다’는 비난은 노점상들이 재난지원금 신청을 망설이게 했다. 지난해 노점상 재난지원계획이 발표되자 ‘불법적으로 영업하는 노점상에 웬 지원금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두환 조직실장은 “노점상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불법’이라 생각하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재난지원금 신청을 주저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오해에 가둬지는 노점상
노점상은 지자체 측의 조례나 관리 대책에 따라 허가노점상과 미허가노점상으로 나뉜다. 지자체가 제시한 재산 기준상한선을 넘지 않는 경우, 사업자등록을 거치면 허가노점상이 된다. 허가노점상은 지자체 측에 도로점용세와 매대 제작비를 지불하게 된다. 도로점용세는 일반적으로 공시지가의 0.007%로, 신촌의 경우 1년에 120만 원 정도다. 도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허가노점상은 전체 노점상의 80.2%다. 이들은 도로점용세를 회피하기 위해 미허가 상태를 유지하는 걸까.
노점상 활동가 측은 이러한 시각이 편견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김두환 조직실장은 ”노점상 삼진아웃제가 허가노점상이 되는 것을 막는 주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점상 삼진아웃제는 규정을 어겨 경고가 세 번 누적되면 허가를 철회하는 제도다. 이 규정에 따르면 매대 겉면에 무언가를 부착하기라도 하거나, 이유를 불문하고 장기간 영업을 못할 경우 경고가 부과된다. 주변에 새로운 미허가노점상이 생길 경우 허가노점상이 이를 단속해야 하는 의무까지 규정돼있다. 김 조직실장은 “이런 규정을 따르면서 1년 간격으로 허가를 갱신해야 한다면 허가노점상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현행 허가제가 ‘말뿐인 허가제’로 오히려 노점상을 옥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준 충족 여부에 관계없이 지자체가 임의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희 연구원에 따르면 노점상 관리정책의 근간은 총량제다. 노점상의 숫자가 기준총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허가노점상을 지정해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기존 허가노점상이 노점 장사를 그만두더라도 지자체는 그 자리를 채우지 않고 비워둔다”며 “새로운 노점상이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허가노점상이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행정에서부터 허가노점상의 진입을 막는 것이다. 노점상들은 도로점용세를 내지 않기 위해 미허가 상태를 유지한다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현실은 허가노점상이 되기도, 허가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노점상이 ‘퇴근하면 벤츠 탄다’는 말은 과연 진실일까. 김준희 연구원은 이는 낭설에 불과하다며, 2007년에 진행된 가로판매대 대상 실태조사가 그 원인이 됐을 것이라 설명했다. 당시 서울시 내의 가로판매대·구두수선대·교통카드판매대 운영자 3,62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조사대상 중 10억대 자산가가 7명 있다는 결과가 언론을 통해 잇달아 보도됐다. 김 연구원은 “(이로 인해) 노점상은 모두 세금을 탈루해 10억대 자산가가 된다는 것처럼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2020년 노점상의 월평균 운영소득은 131만 2천 원이었다. 전체의 54.9%는 월 100만 원도 벌지 못했다.
대다수의 노점상이 노점 장사를 시작하는 계기도 경제적 어려움이다. 김준희 연구원은 “사업에 실패한 분들, 여성의 경우는 남편이 실업하거나 돌아가셔서 가정주부였던 분이 노점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존 노동시장에서 퇴출됐거나 노동시장에 받아들여질 자본이나 경력이 없는 사람의 몇 안 되는 선택지가 노점상이라는 의미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도 노점상은 마지막 선택지다. 김 연구원은 “어디든 일을 하면 통장으로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낮은 신용등급으로 본인 명의의 통장이 없는 사람에게 ‘공장 가서 일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어 노점상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 돌봄을 전담해야 하기에 시간 활용이 자유롭지 못한 일반 직장이 아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노점상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점상 감축정책 아래, 노점상 생존권은 어디로
현재 노점 정책의 기조는 ‘노점 수의 점진적 감축’이다. 노점상을 없애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된다는 것이다. 도시미관과 시민 보행권 확보가 그 명분이다.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행사가 있을 때 노점상 단속이 집중되는 이유다. 김준희 연구원은 “정책으로 노점상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디자인서울 정책이 기점”이라고 설명했다. 도시미관 개선 정책인 디자인서울로 인해 노점관리대책 등의 강한 노점상 규제가 추진됐고, 규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서울시의 노점상들은 점차 설 곳을 잃게 됐다. 그 결과, 서울시 내 노점의 수는 2007년 1만 2,351개에서 2017년 7,718개로 급감했다. 10년간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노점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한편 서울시 노점관리대책은 2018년 노점상 가이드라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됐다. 노점상 가이드라인은 가로시설물 설치기준 준수 전매·전대 금지 도로점용료 납부·초과 점용 시 과태료 부과 등을 골자로, 기준에 부합하는 노점상을 허가하는 방침이다. 그러나 김준희 연구원은 “노점관리대책과 노점상 가이드라인은 이름만 바뀐 것이지 똑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점상 가이드라인 역시 궁극적으로는 노점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라는 게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노점상 가이드라인의 ‘도로점용 허가의 승계 불가 원칙’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원칙에 따르면 노점 운영자가 사망한 경우에만 배우자에게 허가가 승계될 수 있고, 승계를 받은 배우자는 다른 이에게 노점을 넘겨줄 수 없다. 김 연구원은 “정말 허가제라면 승계 불가 원칙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경제적 주체로 노점상을 바라보기
지난 1월 20일, ‘노점상생계보호특별법(생계특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동의 5만 명을 넘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회부됐다. 불법 프레임을 넘어 노점상을 하나의 직업으로 봐달라는 것이 청원의 핵심이다. 해당 법안은 노점관리대책 중단 과태료 금액기준 및 주기 제한 전통시장 노점상 보호 갈등해결 및 대안 마련을 위한 노점상생계대책협의회 신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노점상 단체 측은 “노점상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 스스로를 불법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을 것”이라며 “입법을 통해 불법이라는 낙인을 벗고 당당히 장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노점상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진 서울시 거리가게
노점상의 노동에 대한 욕구를 노점상 지원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준희 연구원은 “노점상을 없애는 것은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막아서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노점상을 몰아내기보다, 노점상의 노동에 대한 수요를 고려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점상의 문화적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리슨투더시티 박은선 활동가는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에서는 포장마차 노점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거리의 노점상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문화적 요소라는 것이다. 이에 노점상이 도시에 제공하는 서비스와 문화적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거리를 찾는 이유는 노점의 다양한 음식과 물건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해, 노점의 문화적 역할을 활성화하자는 얘기다.
노점상에는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 꼬리표는 노점상의 삶까지도 불법의 삶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김두환 조직실장은 “어느 누구의 삶도 불법일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노점상이 불법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선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 붕어빵 굽는 이의 삶을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