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에 대한 불온한 진실들

서울대학교미술관 『밤을 넘는 아이들』展

※본 기사는 가정폭력과 관련해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가정을 ‘따뜻한 보금자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보금자리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폭력으로 얼룩진 공간을 넘어 가정은 건강한 관계맺음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밤을 넘는 아이들』展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고백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그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유년 시절의 조각들

  전시는 먼저 관람객들에게 각자의 가정과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게끔 한다. 민진영 작가의 설치작품 「그날」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남몰래 경험하곤 했던 감정의 소요를 상기시킨다. 원통형 구조물의 겉면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아파트의 외벽으로 감싸져 있다. 구조물의 내부에선 LED 장치로 구현된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친다. 집의 안팎을 대조함으로써 민진영은 부모와의 갈등, 형제자매와의 다툼 등 가정의 불화로 속앓이한 기억을 형상화한다. 꾸지람을 듣거나 체벌을 당해도 집 밖에서 티 낼 수 없었던 심란한 마음을 대변한다.

사진설명 시작. 민진영 작가의
▲민진영 「그날」 ⓒ서울대학교미술관

  김수정 작가의 「The war: 가장 일상적인」은 집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관람객의 구체적인 기억을 건드린다. 김수정은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들은 천장에 매달고, 그 아래 우산·야구방망이·배드민턴 라켓 등의 생활 도구들을 늘어놓는다. 유년 시절의 일상 속 사물들은 부모의 사랑과 폭력을 동시에 상징한다. 인형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을 때 주어지던 보상인 동시에,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을 때 빼앗기던 인질이었다. 야구방망이는 ‘사랑의 매’로 둔갑하기 일쑤였다. 김수정은 생활 도구에서 통제와 억압의 기억을 포착해 은폐된 전쟁터로서의 집을 드러낸다. 가정폭력은 집이라는 벽에 가려진 일상의 전쟁이다.

사진설명 시작. 김수정 작가의
▲김수정 「The war: 가장 일상적인」 ⓒ서울대학교미술관

가정폭력의 여러 얼굴들

  왕선정 작가의 「에덴 극 연작」은 가부장제의 그늘이 가정폭력의 한 양상임을 고발한다. 연작 중 「즐거운 나의 집」은 권위적인 아버지, 수동적인 어머니, 억압받는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을 묘사한다. 이 집에서 아버지는 악마의 모습을 한 채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어린이를 칼로 찌르려 위협한다. 어머니는 바라만 볼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에덴’이라는 이름의 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은 이곳이 과연 누구의 지상낙원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사진설명 시작. 왕선정 작가의
▲왕선정 「즐거운 나의 집」 ⓒ서울대학교미술관

  연작 중 「The day when my sister was born」은 에덴에서의 그로테스크한 출산 장면을 그린다. 여전히 악마의 모습을 한 아버지는 아기를 낳은 후 바닥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옆에서 팝콘을 먹고 있다. 어머니의 배에 달린 여러 개의 유두는 도살장의 돼지를 연상시킨다. 작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붉은색 배경은 정육점을 연상시킨다. 「에덴 극 연작」은 아버지의 무관심과 가부장의 권위가 아내·아동폭력과 맞닿아 있음을 고발한다.

  한편 고경호 작가는 가정 내에서 재생산되는 이분법적 성역할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다. 그의 회화는 아들에게 강요되는 역할 수행이 주는 심리적 위압감을 표현한다. 「미술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 태권도」에서 고경호는 거센 붓질로 도복을 입은 소년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끔 흐트러뜨린다. 흐릿한 소년의 모습은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미술 대신 운동을 선택하길 강요받아 흠집 난 자아를 표현한다. 심해와도 같이 검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흰 기둥을 그린 「넌 이 집안의 기둥이다」에는 아들에게 강요되는 책임감이 주는 중압감이 담겨있다.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성역할에 아이들을 가두는 것을 포함한 정신적 억압 역시 가정폭력의 한 얼굴이다.

사진설명 시작. 고경호 작가의 미술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 태권도
▲고경호 「미술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 태권도」 ⓒ서울대학교미술관

사진설명 시작. 고경호 작가의
▲고경호 「넌 이 집안의 기둥이다」 ⓒ서울대학교미술관

상처를 외면하고 또 회복하기

  전시는 가정에서 받은 상처를 견디지 못해 결국 도망친 아이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신희수 작가의 「네버랜드 – 경계의 아이들」은 탈가정 청소년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신희수의 사진은 아이들의 초상과 그들의 소지품을 담아낸다. 비닐봉투, 슬리퍼, 산부인과 약봉지는 가정의 테두리 밖에서 위태로운 아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사진 옆의 휴대폰에서는 가출 계기를 고백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의 음성은 관람객들이 가정폭력 생존자와 그들에게 남은 상흔을 직면하게 한다.

사진설명 시작. 신희수 작가의
▲신희수 「네버랜드 – 경계의 아이들」 ⓒ서울대학교미술관

  나광호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존중받아 마땅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를 드러낸다. 「Postman Joseph Roulin」는 어린이들과 나광호의 합작품이다. 나광호는 어린이들이 따라 그린 명화를 다시 따라 그리면서 아이들을 자신과 같은 예술가의 지위에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어린이는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거듭난다. 그의 작업 방식은 부모와 자녀가 통제하고 억압받는 위계적 관계를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때 가정폭력을 멈추고 공동체의 회복을 모색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설명 시작. 나광호 작가의 Postman Joseph Roulin
▲나광호 「Postman Joseph Roulin」 ⓒ서울대학교미술관

  가정을 폭력의 공간으로 호명하며 출발한 전시는 가정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정문경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Fort」는 마침내 상처의 회복을 이뤄 변화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사람의 옷과 책으로 완성된 집 모양의 요새는 건강한 관계맺음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옷과 책에는 여러 존재들의 온기와 기억이 묻어있다. 옷 무더기의 요새는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연대할 때 비로소 가정이 위로와 회복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사진설명 시작. 정문경 작가의
▲정문경 「Fort」 ⓒ서울대학교미술관

  「Fort」가 보여주듯, 가정이 진정으로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 위해선 전시 밖의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밤을 넘는 아이들』展에서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보금자리’를 목격했다면, 진정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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