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지하철 1~8호선이 꿈꿨던 2022년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지하철 상업광고 개체 수의 최대 30%를 감축하고 전역에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는 서울문화예술철도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여파로 가속화된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은 지하철에 광고를 다시 들였다. 공사 측은 2021년 2월 상업광고 확대를 발표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역명 유상병기 사업을 재개했다. 2022년, 시민들의 일상을 지나가는 서울 지하철은 자본에 삼켜지고 있다.

서울문화예술철도사업은 지하철 역사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전환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5호선 영등포시장역은 사업의 첫 번째 시범 대상으로, 역사 내 공간에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과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지원하고자 했다.
지하 1층 지하철역 대합실은 ‘마당’이라는 이름의 작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기둥마다 붙어있는 미술 작품들 사이로 노란 불빛의 전광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업 이름이 크게 적힌 상업 광고가 작품으로 향하던 시선을 빼앗는다.

승강장 한쪽 벽에는 커다란 거울이 설치돼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아 ‘움직이는 작품(Art on the Move)’을 만드는 설치작품 ‘빅 미러’(Big Mirror)다. 그러나 거울 속 ‘움직이는 작품’의 한쪽에는 노란 광고판이 움직임 없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문화예술철도사업은 광고가 지하철 이용객들에게 주는 피로감을 덜어내고자 시작됐다. 그러나 광고 공해를 대신하기 위한 작품들 곁에는 ‘옥에 티’처럼 광고가 함께하고 있다. 시민들이 오가는 지하철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고 전광판이다.


2017년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지하철 광고 혁신 방안’에 따르면 공사 측은 피로감을 유발하는 광고 수를 감축하는 동시에 2022년까지 성형 광고를 전면 퇴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혁신 방안은 모두 실천되지 않고 있다. 여성의 얼굴이 전면 부각된 사진에 크고 명확한 글씨체로 성형외과 명이 쓰인 성형 광고가 지하철에 넘쳐난다. 상업 광고 역시 그 수가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연예인 광고의 급증도 서울 지하철의 재정난과 연결된다. 연예인의 생일, 데뷔일 등을 기념하는 광고를 게시하기 위해 팬들이 광고비를 내고 전광판을 대여한다. 광고 대행업체를 홍보하는 광고도 넘쳐난다. ‘광고문의’라는 문구가 적힌 대행업체 광고는 교통카드를 찍는 개찰구의 LCD 화면에서도 등장한다.



역명 유상병기 사업은 기존 역명 옆 혹은 아래 괄호 안에 입찰된 기관명을 표기하고 이용료를 받는 사업이다. 2016년 시작한 역명 판매는 2017년 5월 서울교통공사 출범 이후 잠정 중단되었지만, 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공사 측 재정난이 심각해지며 재개됐다.
역명 판매는 공개 입찰로 진행된다. 낙찰된 기관명은 3년간 기존 역명에 병기된다. 병기되는 기관의 종류는 공공기관, 학교, 병원, 다중이용시설 등 다양하다. 그중 을지로4가(BC카드)역은 7억 원, 을지로3가(신한카드)역은 8억 7,400만 원이라는 고가에 입찰됐다.
➀ 대학명, ➁ 기업체, ➂➄➅➆ 다중이용시설명이 병기돼있다.
➃ 을지로3가(신한카드)역의 역명병기 작업은 오는 3월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➇ 마곡(홈앤쇼핑)역 2번 출구 뒤로 보이는 홈앤쇼핑 본사 건물



코로나19로 가속화된 서울 지하철의 재정난은 더 크고 다양한 자본을 끌어들이며 광고 공해를 심화시켰다. 지하철 이용객들은 의식조차 못하는 모든 순간에 광고를 보게 된다. 열차를 기다릴 때, 내릴 역명을 확인할 때, 교통카드를 찍고 승강장에 내려갈 때도 광고의 홍수를 지난다. 시민의 공공재인 지하철은 난립하는 기업들의 홍보 수단으로 변질해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미 지하까지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