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교대》에 관한, 기록에 대한 기록으로

기고2_사진.jpg

박건우(경영 16) pgw1592@gmail.com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실천하고자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2021년 하반기에 《교대》라는 제목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것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2교대 근무를 하는 경비노동자 두 분에 대한 기록이었다. 두 사람의 일상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24분의 러닝타임이 충분할 리 없지만, 끝내 영상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도 포용할 수 있는 다큐가 되길 바라며 신중히 제작했다. 

  제작 준비를 시작한 8월부터 최종 편집본을 완성한 12월까지, 작업은 약 5개월에 걸쳐 이뤄졌다. 서울대의 두 노학연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과 ‘서울대학교 학내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전하는 학생모임(빗소리)’의 합동 작업이었고, 아울러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서울대시설분회’의 큰 도움을 입은 작업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내가 《교대》를 만든 계기와 과정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노동자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2020년 가을이었다. 당시 3학년 복학생이었던 나는 군 복무를 포함한 2년 남짓의 어두운 침잠 생활로부터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성기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자기중심적인(닫힌 사람이 되기 쉬운) 시야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해야만 한다는 것. 깨달음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사소한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실천 수단의 하나가 어쩌면 영화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

  하지만 영상 제작의 경험도, 지식도, 용기도 부족했기에 우선 손에 닿는 일부터 실천하기로 했던 나는, 학내 노동자 선생님들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빗소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노학연대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이 내가 학생 구성원으로서 서울대 내 노동 인식과 노동환경 개선에 동참하는 데 있어 가장 장벽이 낮고 무던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상 이는 사실인 듯 싶다). 이후 일 년여 동안 꽤나 열심히, 노학연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비하고 해야 하는 일들을 계획하며 활동을 이어 나갔다. 종종 서울대학교의 노동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훗날로 기약하고는 했다.

  그러다 2021년 6월 26일, 925동 기숙사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결국 빗소리와 비서공에서 영상을 제작하게 된다. 당시 사망 사건 소식을 알게 된 나는, 노학연대의 일원으로서, 관악사의 노동 현장과 청소경비 직군의 노동 현황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서울대의 일원으로서, 2019년 8월 9일 공대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터무니없는 산재가 재발했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꼈다. 서울대의 후진적인 노동 현실의 (진작에 이뤄져야 했을) 개선을 위해 사건을 보다 정확하게, 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는 빗소리와 비서공의 다수 인원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었으므로 두 노학연대가 사안 대응의 하나로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협의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 기획에 임하게 된 것이다.

  그때 합작한 두 편의 유튜브 영상이, 내가 다음 영상을,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교대》가 된 다큐를 제작하게 된 발단이었다. 그중 하나는 내가 공동 기획 및 각본, 내레이션을 맡은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친구에게》였다. 이는 한 서울대 학생이 친구와 함께 사망 사건에 관해 대화하는 픽션 연출 구성을 통해, 사건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문제의 개선 방향성까지 고민해보는 영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공동 기획 및 연출, 촬영, 편집을 맡은 《내 몸으로 내가 한 노동》이었다. 이는 두 학생이 학생회관에서 925동 청소업무의 일부를 재구성한 노동을 직접 체험해봄으로써, 무더운 여름 날씨 속 열악한 노동환경과 높은 노동 강도가 중장년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하는 영상이었다. 요컨대 두 영상은 학생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었는데, 나는 노동 이슈의 직접 당사자인 서울대 구성원, 즉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이 그 가치와 힘의 측면에 있어 보다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 ‘이곳 서울대에서 이 노동자들이 이렇게 일했다’는 사실을 기록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보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주인공을 섭외하는 첫 단계가 가장 어려웠다. 청소노동자를 담고 싶었지만, 일찍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동료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영상에 출연하는 일은, 그 영상이 무엇에 관한 것이든지 간에, 그들에게 있어 많은 걸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비단 비상시의, 그리고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빗소리 활동에서 체감하게 된 것 중 하나는, 고용상 지위가 낮거나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란 절대 쉽고 편안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사나 동료, 혹은 학생들의 눈치가 보여서, 또한 생업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되어서, 노동자는 때로 학생과의 인터뷰조차 어려워하거나 인터뷰한 내용의 공개에 매우 신중해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런 시기에, 그것도 영상에, 그것도 흔쾌히 응해준 두 분의 경비노동자를 만나게 된 건, 그냥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과 경비노동은 분명 다르지만, 서울대 시설관리직으로서 그 둘이 공유하는 ‘무엇’이 있으리라 직감했으므로, 촬영은 시작됐다. 나는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경비초소에 수차례 머무르며 6시 교대시간부터 23시 취침시간까지 경비노동자의 하루 전체를 관찰했다. 그럼으로써 순찰, 식사, 휴식, 출입관리 등의 업무와 일상을 이해했고, 그것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촬영 기간의 처음과 중간과 끝에 두 분을 각각 세 차례씩 인터뷰했고, 이렇게 촬영한 일상과 인터뷰들을 토대로 다큐의 흐름을 구성했다.

  《교대》가 여차저차 완성되기까지 내 작업 방침이자 작업 윤리는 하나였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찍히는가’에 유념하는 것. 이는 곧 찍는 이가 아니라 찍히는 이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것이고, 촬영자의 욕심으로 피사체를 왜곡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카메라로 매개되는 관계는 직관적이고, 그래서 특별하다. 거짓된 촬영과 편집은 들통나기 마련이고, 딱히 매력도 없다.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찍느냐’는 촬영자와 피사체와의 관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기에, 서로 다른 두 분과 서로 다르게 친해짐에 따라 내 촬영의 질감은 달라졌고, 이를 알아챘을 때, 나는 두 분에 의해 채색된 영상의 매력을 받아들였으며,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쪽으로 작업을 끝마치려 노력했다. 그뿐이다.

 《교대》의 존재조차 모르는 독자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교대》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적지 않았다. 영화는 보임으로써 스스로 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영화가 궁금해지면 그냥 영화를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글을 읽고 《교대》가 궁금해진 독자 분이 계시다면, 부디 내 이메일(pgw1592@gmail.com)로 편히 연락 주시길 바란다. 영화는 관객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당신이 《교대》의 관객이 되어주길 바란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왕을 모시던 최고의 장군인 나, 왕을 수하에 둔 <킹스맨>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세계대전도 멈춰버린 걸지도...

Next Post

젠더 교과목의 순조로운 항해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