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 2년간 운영이 중단되었던 채식 식당 ‘감골식당’의 문이 다시 열렸다. 대면 수업이 본격화되며 학생식당 이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학내 채식인들에겐 단체급식식당에 식사를 할 길이 다시 열렸지만, 학내 채식권이 수요 문제를 이유로 제한되는 것은 여전하다. 채식할 권리는 신념의 자유와 건강권의 차원에서 존중돼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서울대에서 채식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서울대저널>에서 학내 채식 인프라의 현황과 개선 방향을 살펴봤다.
학내 채식 인프라, 어떨까?
서울대의 채식 학식 제공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대학의 국제화 흐름이 계기가 됐다. 인도 등 아시아계 외국인 유학생이 다수 유입돼 이들의 식성에 맞게 채식을 제공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채식동아리 콩밭을 필두로 학내 구성원의 채식 요구도 늘어났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은 2010년 10월 제2식당 2층에 채식 코너를 열었다. 2012년 12월 제2식당 건물의 재건축으로 제2식당이 폐지되면서 채식 코너는 101동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것이 2013년 1월 문을 연 감골식당이다. 감골식당은 학내 식당 중 채식 메뉴와 할랄식을 제공하는 학내 유일의 식당으로서 식이소수자 존중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감골식당은 2020년 4월 잠정적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생협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매출 감소를 이유로 들었다. 올해 3월 7일이 되어서야 운영을 재개됐지만, 채식 뷔페와 일반식, 할랄 음식을 함께 제공하지 않고 오직 채식 뷔페만을 운영한다는 변화가 생겼다.

감골식당 운영에도 불구하고 학내 전반적인 채식 인프라는 열악한 실정이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학생인턴십 3기 팀 아보카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시적으로 채식 메뉴를 제공하는 감골식당 외에도 학내 7개의 민영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저렴한 식사를 제공하는 단체급식식당 11개소 중 채식 메뉴가 보장되는 곳은 감골식당 뿐이었다.한편 감골식당의 식사 비용은 구성원 7,000원, 비구성원 8,000원으로, 단체급식식당 중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채식 실천을 위해서는 정확한 영양성분 정보 제공이 필수적이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이더라도 육수, 양념장 등의 동물성 재료 함유 여부에 따라 채식이 아니게 될 수 있기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간 학식 식단표의 영양성분 표시는 정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상황이다.

생협 홈페이지와 서울대학교 포털 ‘mySNU’, 식당 앞에 부착되는 인쇄물
단체급식식당의 주간 식단표는 매주 생협 홈페이지와 서울대학교 포털 ‘mySNU’, 식당 앞에 부착되는 인쇄물을 통해 공개된다. 주간 식단표는 ‘(#)’, ‘(*)’기호를 통해 각각 ‘No meat’ 메뉴와 채식 메뉴를 별도로 표기하고 있지만, 홈페이지별로 기호 해석에 차이가 있어 일관된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동일한 식단표에도 게시 홈페이지에 따라 채식 메뉴 여부가 다르게 표기되는 것이다. 생협 홈페이지에 공개된 주간 식단표에서는 (*) 기호를 이용한 채식메뉴 구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mySNU의 게시물에서는 (#) 기호가 돼지고기를 포함하지 않는 메뉴를 의미했다.
채식 보장, 알면서도 안되는 이유
서울대 학식에서 모든 식단은 수요를 기준으로 구성된다. 생협 직영 식당과 위탁 단체급식식당의 주간 식단은 모두 현장 영양사가 구성한다. 학생들의 기호, 계절, 판매가 등의 요인을 고려해 영양사가 일차적으로 식단을 구성하면 생협, 삼성웰스토리 등 담당 사업장에서 메뉴가 중복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방식이다.
대량 판매를 통해 최대한의 수익을 내야 하는 단체급식의 구조상 상대적으로 소수의 학생들이 요구하는 채식은 배제되기 일쑤다. 서울대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모임(비지모) 김현지 전 대표(인류17)는 “학교 측에서는 매번 수요가 적어 운영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채식 학식의 확장을 불가능한 요구로 전제한다”고 말했다.
감골식당의 운영 중단은 수요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급식 구조와 그로 인해 선택적으로 보장될 수밖에 없는 채식권의 현실을 보여준다. 생협 FS사업본부 김태수 팀장은 2020년 감골식당의 운영 중단이 “(채식 학식 수요가) 식당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본 수요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과거 생협이 75-1동 3식당에서 채사랑 코너를 운영한 적 있었지만, 다른 세 코너에 비해 1/5 정도의 이용률을 보였다”며 “나머지 코너의 줄이 너무 길어서 왜 한 코너를 채식으로 소모하느냐는 민원도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감골식당 채식 뷔페의 모습
수익을 보장하기 어려운 학식의 특성은 채식권 보장을 더욱 어렵게 한다. 김 팀장은 “단체급식식당의 목표는 최대한 적자를 적게 내는 것”이라며 학식 운영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이윤은 고사하고 운영 자체가 버거워 채식을 요구한다고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재운영 후 감골식당 채식 뷔페 하루(점심) 이용자는 최소 100명에서 최대 250명으로 평균 130명 정도다. 김 팀장은 “7천 원씩 팔아도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이 되지 않아 부가세, 최소 인력비용, 전기세, 식재료비를 고려하면 적자”라며 “웰스토리의 경우 회사 차원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단체급식식당의 적자 때문에 채식 식당 운영이 중단되는 것은 비단 서울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국민대 학생식당에서는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매주 수요일 점심에 채식 코너를 운영했지만 수요 감소와 예산 문제로 운영이 중단됐다. 국민대 생활협동조합 관계자는 “코로나로 학생식당의 운영이 축소된 후 채식 코너의 수요가 일간 20명 정도로 확연히 적어져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비거니즘 동아리 비긴의 제안으로 2021년 채식 학식을 도입한 경북대 생활협동조합 관계자 역시 “초반에는 여러 비건 메뉴를 도입했으나, 수요가 적어 현재 비건 스테이크와 비빔밥만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단체급식에서 채식을 선택할 권리는 고질적인 학식 운영 적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부족한 예산 등의 문제로 제약을 받는 것이다.
본부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학내 민영 식당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16-1동에 위치한 ‘파란 코끼리’에서 판매했던 채식 메뉴 두부스테이크 덮밥은 현재 수요 부족으로 판매가 중단됐다. 팀 아보카도는 파란 코끼리에 비건 메뉴 개발을 요청하는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학내 민영 식당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내 민영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학내 식당 특성상 방학이 존재해 1년 단위의 지속적 수요가 보장되지 않고, 체감되는 채식 수요 역시 많지 않다”고 말했다. A씨는 “정식 메뉴는 식재료를 상시 준비해야 하나 팔리지 않으면 재고를 모두 버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학내 채식 수요가 적어 식당 측에서 채식 메뉴를 유지하기엔 손해가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온전한 채식이 필요한 이유
채식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전문가들은 채식 학식 제공을 개인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요 문제와 운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채식 학식이 필요한 이유다. 채식권 확장 운동을 진행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학교 내 채식권은 기본적으로 음식 선택권이며, 나아가 행복추구권이자 인권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수요에 따라 학내 채식권이 제약되는 현실에 대해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단지 기호나 취미가 아니라 철학, 신념,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학내 채식 식당이 “문을 닫는 것보다도 축소해서 운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식 식사 선택권의 보장은 개인의 생존권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모임(비지모) 김현지 전 회장(인류 17)은 “채식을 수요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성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며 “건강과 생존권의 측면에서 학교는 모두를 위한 공동체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식 식사 선택권 보장을 통해 식사 선택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대학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채식권의 보장을 설명하는 스누비건 부원들의 모습. 왼쪽에서부터 스누비건 유라(농생명과학 박사과정) 씨, 최지원 대표(경제 19)다.
채식권의 보장은 식사가 기본적인 사회적 교류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스누비건 유라(농생명공학 박사과정) 씨는 “밥 한 끼 먹자는 말이 사회적 교류의 기반이 되는 것처럼, 밥이 지니는 상징성이 크다”며 식사가 가지는 사회적 교류의 의의를 설명했다.
채식 학식이 온전한 식사로서 지니는 의의도 있다. 이원복 대표는 “요즘 편의점에서도 김밥, 도시락 등의 간편식, 비건 파스타, 햄버거 등 채식 메뉴가 생기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나, 그것이 식당에서 직접 조리되어 나오는 완전한 끼니로 보기는 어렵다”며 “비채식 메뉴와 동등한 수준에서 채식을 온전한 한끼 식사로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채식인들이 밖에서 끼니를 때울 때 간편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접 조리해 나오는 채식 학식이 채식인들이 건강하게 식사를 챙길 수 있게 해준다는 얘기다.
채식을 위한 현실적인 걸음들
채식을 요구하는 학내 단체와 구성원들은 한 끼 식사로 채식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비지모는 2017년부터 ‘서울대에서 채식인으로 살아남기’ SNS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독서 세미나, 비건 캠프 등 동물권과 채식인 권리 보장 사업을 수행했다. 다양성위원회는 2017년 10월 10일부터 3일 동안 채식, 할랄, 음식 알러지에 대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다양한 식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성위원회와 비지모가 함께 진행한 채식 홍보 행사
이후 2020년 2학기 다양성위원회 학생인턴십 3기로 선발된 팀 아보카도는 서울대학교 내 채식 환경 조사 및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팀 아보카도는 이후 다양성위원회 소속 동아리 스누비건으로 발전해 현재도 학내 채식권 보장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학내 채식권 보장 운동은 채식 식당이나 코너 개설과 같은 큰 변화뿐만 아니라 채식 보장을 위한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개선 방안을 요구해 왔다. 다양성위원회 배유경 전문위원은 “식재료 정보 제공, 메뉴 다양화 등 당장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찾아서 변화시켜나가는 작은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리 과정에서의 작은 실천으로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화여대 비거니즘 지향 동아리 솔찬의 운영진 주하(가명) 씨는 “반찬이나 국 등을 조리할 때 동물성 재료를 넣기 전에 미리 채식인의 몫을 빼주는 배려도 가능할 것”라며 “조리와 배식을 담당하는 분들 모두 채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재료 표시와 음식 설명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건 학생들도 학내 채식권 보장을 위해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우선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서울대에서 채식인으로 살아가기’ 소속 B씨는 “완전한 채식 보장은 어렵더라도 식물성 반찬을 제공하는 옵션이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대 정보센터 식당에서는 일반 비빔밥에서 동물성 재료를 제외하는 옵션을 통해 채식 비빔밥을 제공하고 있다. 채식 전문 식당 개설, 채식 코너 확대 등 거창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채식에 대한 기본적인 감수성을 공유하는 작은 발걸음을 중시한 시도다.
일각에서는 ‘부족한 수요에 따른 어려움’이라는 말의 되풀이 대신, 채식 수요를 파악하고 접근성을 낮출 실제적인 노력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지모 김현지 전 회장은 “수요가 적어서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만큼 채식 인구 조사의 시도가 존재했는지 모르겠다”며 “제대로 된 수요조사를 통해 학내 채식 인구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채식 식재료 이용, 메뉴 다양화로 채식 수요를 증대해 학내 채식 인프라를 전반적으로 확대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식 학식 메뉴의 다양화를 통해 접근성을 낮춰 수요를 증대시키고, 자연스럽게 채식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체 식사에서 실질적인 선택지의 다양성은 채식인과 비채식인의 경계를 짓지 않는 대학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배유경 전문위원은 “채식권을 소수자의 권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채식주의자에게도 다양한 식사의 선택지가 필요함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스누비건 유라 씨는 “채식을 체험할 우연한 기회가 필요하다”며 “채식과 비채식의 경계 대신 모두 그저 자기가 원하는 한 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솔찬 운영진 늘품(가명) 씨도 “채식이 특수한 옵션이 아니고 당연한 것일 때,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 또한 특이한 취급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식사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공동체의 분위기를 중시했다. 스누비건 최지원 대표(경제 19)는 “타인과 식사 시 채식인임을 굳이 밝혀서 메뉴를 조정할 필요 없이 채식인과 비채식인 모두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돼 있다면 편한 것을 넘어서 위로를 받는다”며 공동체 내 채식권 보장의 의의를 설명했다.
배유경 전문위원은 감골식당의 재운영이 채식 논의의 종결이 아님을 강조했다. 배 전문위원은 “권리가 보장됐다는 것이 완결된 상태라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제도와 실질적인 운영은 별개 사안으로, 운영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문제다”고 당부했다. 급격한 변화를 이룰 수 없더라도, 감수성을 통해 작은 개선들을 시행한다면 어느새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끼니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채식으로만 이뤄진 학식’이 아닌, ‘학식 안의 채식’을 통해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