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어떻게 보셨나요?

젠더갈등으로 국한되지 않던 다양한 청년들

  지난 3월 9일, 20대 대선이라는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줬다. 정치권은 20대 남성에게 ‘이대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줬고, 언론은 ‘이대남’이 청년의 전부인 양 ‘이대남’을 연일 호명하며 청년 문제를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20대 여성은 대선 막바지에 가서야 ‘이대녀’라 불리며, ‘이대남’의 적으로 그려졌다. ‘이대남’·‘이대녀’로 불린 청년들은 대선 과정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서울대저널>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 청년 8명에게 20대 대선에 대해 물어봤다.

dd88b0a2b951c1bb8a42aa9750f06c77.png

청년들이 대선 후보를 결정하기까지

  참여자들의 지지후보 결정 기준은 각자 달랐지만, 후보자의 능력, 태도, 현 정권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사항들을 비교해보며 최종 지지후보를 결정했다는 답변이 지배적이었다. 5명의 참여자가 후보자의 능력을 주 고려사항으로 꼽았지만, 능력을 판단한 기준은 참여자마다 달랐다. 최시아(가명) 씨는 후보자의 정치 경험을 통해 대선 공약의 실행 여부를 점쳤다. 경기도 주민인 최 씨는 “경기도에서 먼저 시행되던 청년 기본소득이나 청년 면접수당 등에 정책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재명 후보가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의 높은 공약 이행률을 보이던 것도 후보자 선택의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참여자의 관심 분야에 대한 후보자의 지식수준이 기준이 됐다고 밝힌 참여자도 있었다. 박석훈(가명) 씨는 “대한민국 경제가 뒤처지지 않도록 미래의 경제 트렌드에 촉을 세워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후보를 뽑았다. 세부적인 공약보다 미래 산업에 대한 후보자의 인지 수준이 어떠한지를 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지식수준을 통해 판단한 후보자의 정책적 소신도 기준이 됐다. 하경석(가명) 씨는 한 경제컨텐츠 유튜브에서의 인터뷰가 지지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하 씨는 “이재명 후보는 ‘주식 왕개미’ 수준으로 손해를 본 경험을 설명하기도 했고, 주식을 포함해 경제를 어떻게 끌어나갈지에 대해 비전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경우 모르는 것이 많았다. 경제문제 해결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주요한 임무인데, 경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 대통령이 돼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개선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자가 보인 태도가 기준이 됐다는 참여자들도 많았다. 류성일(가명) 씨는 “토론에서 자신의 소신과 공약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상대 후보자를 깎아내리기만 하는 모습에 피로감을 느꼈다”며 양당 후보를 뽑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참여자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후보자들이 보인 태도도 많은 이들이 꼽은 기준이었다. 정지석(가명) 씨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비롯해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는 후보자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최시아 씨 역시 “인권이란 가치에 친화적인지, 후보자의 전반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고 결정했다”고 답했다. 허혜진(가명) 씨는 “(여성 인권에 반하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공연히 공약으로 내놓는 윤석열 후보를 막기 위한 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참여자가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도 투표 기준으로 작용했다. 송기환(가명) 씨는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너무 올랐고, 중국으로 대하는 외교적 태도가 소극적이었다”며 “정권 교체를 가장 주요한 선택기준으로 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참여자들이 꼽은 선택 기준은 다양했지만, 대부분의 참여자가 최우선시한 것은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이었다. 박석훈 씨는 “심상정 후보를 뽑는 건 표를 버리는 것이라 생각해서 이재명과 윤석열 둘 중 하나를 무조건 고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고, 하경석 씨 역시 “사표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선 가능성을 점쳐 두 거대양당 후보만을 선택지에 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당선 가능성과 관계없이 군소정당 후보를 택한 이도 있었다. 류성일(가명) 씨는 “대선 과정을 보면서 주요 후보들에 대한 호감이 사라졌다”며 “사표가 되더라도 심상정 후보를 뽑았다”고 답했다. 정지석(가명) 씨는 “미래의 기후위기는 무시한 채 무한정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후보에 표를 줬다”고 밝혔다.

20대에 붙여진 새 이름, ‘이대남’·‘이대녀’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연일 20대 청년을 ‘이대남’과 ‘이대녀’로 호명했다. 20대는 이 별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먼저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이대남’과 ‘이대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참여자 각자가 생각하는 ‘이대남’·‘이대녀’의 구체적 의미는 상이했지만, ‘이대남’에 대한 설명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자주 등장했다. 류성일(가명) 씨는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을 싫어한다’는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남성”이 ‘이대남’이라고 봤다. 송기환 씨는 “처음엔 윤석열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이대남’을 형성하는) 도화선이 됐다”며 “그것만 가지고 싸울 수는 없으니 점점 문재인 정부의 여성 정책에 대한 반감까지 이야기하는 집단으로 의미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대남’과 ‘이대녀’가 피해의식을 가진 집단이라 설명하는 참여자도 있었다. 허혜진 씨는 “역차별을 당한다는 생각과 그에 대한 반감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환호하는 ‘이대남’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박석훈 씨는 “‘이대남’과 ‘이대녀’ 모두 자신이 이 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이대남’은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힘들어하는 이들이라면, ‘이대녀’는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 힘들어한다. 여성할당제에 고통받는다고 느끼는 20대 남성과 유리천장에 힘들어하는 20대 여성들로 대표된다”고 덧붙였다.

  참여자들은 ‘이대남’은 비교적 쉽게 정의내렸지만, ‘이대녀’를 설명해내는 것은 어려워했다. 허혜진 씨는 “‘이대녀’를 설명하는 가치는 ‘이대남’이 갖는 반페미니즘 정서에 반대하는 의미만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이대남’이 있으면 당연히 이대녀도 있겠지만, ‘이대녀’라는 말은 거의 못 들어봤다”고 말했다.

794664383e6700cdae621794ce154594.png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이름을 호명한 기사 제목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이름이 청년에게 붙여졌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지만, 그 이름이 자신을 잘 담아내고 있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정지석 씨는 “‘이대남’이라는 이름은 나를 모래 한 톨도 담아내지 못한다”고 말하며 “20대 스스로 우리의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이대남’·‘이대녀’라는 갈라치기 프레임에 놀아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조혜은(가명) 씨 역시 “주변만 봐도 정치성향이 모두 다르다”며 “성별만으로 청년을 구분해내는 ‘이대남’·‘이대녀’ 프레임은 많은 이들을 설명해내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이대남’·‘이대녀’ 프레임에 본인이 속한다고 답한 참여자도 있었지만, 프레이밍 자체에 대해선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허혜진 씨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반대했고 이재명 후보를 뽑았으니 결과만으로 보면 나는 ‘이대녀’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이대남’·‘이대녀’ 프레이밍은 지극히 단순하고 납작한 이름”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 상의 ‘이대남’이 과대 대표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기환 씨는 “여가부 폐지에 환호하는 ‘이대남’들이 SNS나 커뮤니티, 뉴스 댓글 같은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 눈에 잘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대남’이 20대 청년 전부를 대변해내지 못함을 지적했다.

  정치권이 ‘이대남’과 ‘이대녀’를 호명한 이유에 대해 참여자들은 모두 정치권이 표심을 얻기 위했던 것이라 평가했다. 류성일 씨는 “특정 집단을 집중적으로 노린 건 정치권이 그 집단이 결속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며 “(프레이밍이) 20대를 도구화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이 기존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허혜진 씨는 “우리 사회가 성별을 기준으로 나뉠 만큼 서로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상황”이었다며 “정치권이 대선 결과를 위해 갈등을 공략하기 적절했던 시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최시아 씨는 “‘이대남’ 프레이밍으로 인해 20대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는 논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략적 프레이밍하에 실제 20대의 요구는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청년은 젠더 갈등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남성 청년에게 ‘이대남’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20대 남성은 여성할당제·여성가족부 폐지에만 환호하는 이들이 됐다. ‘이대녀’라는 이름에 20대 여성 역시 젠더 갈등 문제에만 선택적 분노를 보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청년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문제가 젠더 갈등만으로 국한된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저널>이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청년들은 젠더 갈등에 머무르지않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b6e6b5a4b98791b5c68ecafaddf3d46a.png

참여자가 관심을 가진 사회적 문제

  부동산 문제를 포함한 주거 문제는 많은 참여자들에게서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고민거리였다. 하경석 씨는 “당장은 아니지만 10년만 지나도 결혼을 하고 집을 사야한다”며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니 청년주거와 관련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 문제 역시 많은 이들이 꼽은 고민거리였다. 조혜은 씨는 “곧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취업 문제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시아 씨는 “채용 전제형 인턴에 들어갔음에도 채용 전환이 되지 않아 상실감에 빠진 지인들을 많이 봤다”며 청년 취업 문제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음을 전했다.

  자신을 대학 비진학자라 밝힌 정지석 씨는 청년 문제 중 대학 비진학자의 사회적 고립에 가장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정 씨는 “대학진학률이 70%가 넘는 학력·학벌주의 사회에서 대학 비진학자는 청소년에서 벗어나는 순간 소속집단이 사라진다”며 “내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할 공간이 없다보니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환경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주요한 문제로 꼽은 참여자들도있었다. 하경석 씨는 “자신이 어느 지역에서 왔고 어떤 계층인지에 따라 살고 있는 환경이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며 “경제적 격차, 교육 격차뿐만 아니라 지역 간의 격차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시아 씨는 “지역 불균형 문제에도 관심이 있다보니 관련 공약들도 많이 찾아봤다”고 설명했다. 송기환 씨는 “수도권에 살았다면 청년 공약들을 관심있게 살펴봤을 것 같다. 지방은 후순위로 밀릴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서 청년 공약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청년 공약 역시 수도권 중심으로 기획됐다는 지적이다.

  한편 젠더 갈등이 주요한 문제라 답한 참여자도 많았다. 류성일 씨는 “주변에서 느끼기에 젠더 갈등이 가장 심한 것 같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남녀가) 서로를 배척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허혜진 씨는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사안이 공약으로 나오고 이행이 될 정도로 사람들이 젠더 문제를 역차별로 인식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며 “페미니즘이나 여성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청년들이 양분화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하경석 씨는 “젠더 간이나 세대 간에서 서로를 혐오하고 있는게 느껴진다”며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에 과도한 의미가 부여됐다고 본 참여자도 있었다. 하경석 씨는 “주변의 20대 남성들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좋아하기는 했다”고 말하면서도 “주변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을 긍정적으로 본 남성들이 있었지만 지지 후보를 선택하기까지 여러 사항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60% 남성 청년이 젠더 갈등 문제만으로 지지후보를 결정했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의미다.

20대 대선이 청년들에게 남긴 것

  <서울대저널>이 만나본 청년들은 이번 대선이 다사다난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20대 대선은 청년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청년들에게 이번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하경석 씨는 “이번 대선에서는 누가 이기든 정치의 실패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선을 통해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는, 누가 당선되든 절반의 국민은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하 씨의 설명이다. 득표율만을 바라보며 이용한 혐오 정서에 국민 통합의 목적은 도외시됐다는 얘기다. 최시아 씨 역시 “이번 대선에선 갈등만이 공론장에 오를 수 있었다”며 “국민의 민주주의적 선택에 심각한 우를 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언론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송기환 씨는 “정치권이 ‘이대남’·‘이대녀’라는 이름을 만드니 기자들도 자극적인 이름들을 그대로 쓰면서 싸움을 부추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혐오정치를 만들어내는 데 언론의 무비판적 보도 역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참여자 대부분은 20대 대선에서의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 안에서의 희망과 기대를 걸어보는 청년들도 있었다. 청년에 대한 정치권의 주목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허혜진 씨는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이름 아래서라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나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허 씨는 “지금까지의 여성 정책은 출산 정책이나 결혼 정책에 불과했다”며 “‘이대녀’라는 이름을 통해 20대 여성을 정치적 집단으로 본다면 유의미한 공약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하경석 씨 역시 “여러 문제가 많던 대선이었지만 20대 청년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는 했다”고 평했다.

  <서울대저널>이 만나본 청년들은 대선후보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이대남’·‘이대녀’ 프레이밍에 대한 생각, 관심을 갖는 사회적 문제까지 모두 상이했다. 20대를 ‘이대남’과 ‘이대녀’, 두 부류로만 나눠보던 정치권과 언론의 시각이 어긋난 것이다. 이제 청년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수면 위로 떠올려야 할 때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영동 가는 길

Next Post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릇, '이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