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 자취방을 찾아 헤매는 대학생, 함께 거주하고 있으나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은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성소수자 동거 가구. 주거복지 정책의 수혜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의 어려움은 오르는 집값과 부족한 전세 매물 문제와 맞물려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살 곳’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주거권 논의도 활발해져만 가는데, 여전히 그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의 주거복지 정책에서 비혼 동거 가구와 청년 1인 가구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집 사고 싶다면 결혼해라?
법적인 혼인 절차 없이 동거로 가구를 구성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성소수자 동거 가구처럼 법적으로 혼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의 여러 이유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비혼 동거 가구가 있다. 이들은 생계를 함께 하는 한 가구지만, 모두 국가가 제공하는 주거복지 정책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현재의 민법 제 799조는 혼인과 혈연에 기초한 관계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비혼 동거 가구는 주택청약과 대출, 주거 계약 등 주거 전반의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혼인 기간 5년 이내의 무주택가구 구성원이 신청할 수 있는 신혼부부 주택청약 특별공급 역시 비혼 동거 가구는 신청할 수 없다.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았기에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일반 주택청약의 경우도 비혼 동거 가구는 불이익을 받는다. 주택청약은 무주택으로 지낸 기간, 부양가족의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라 가점을 받아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청약 신청자와 같은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세대원만을 부양가족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결국 동일한 등본에 기재될 수 없는 비혼 동거 가구의 구성원은 부양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가점을 기대할 수 없다.
주거비 지원을 위한 대출 우대 정책에서도 비혼 동거 가구는 소외된다. 신혼부부 전용 전세자금 대출이 그 예다. 최대 2.1%의 대출금리로 시중 은행과 비교해 매우 낮은 편인 신혼부부 전용 전세자금 대출은 혼인 기간 7년 이내 또는 3개월 이내 결혼예정자를 자격 요건으로 두고 있다.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 가구는 신청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파트너와 함께 3년째 동거 중인 레즈비언 A씨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신청이라도 해보고 싶다”며 “동거인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법이 정하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많은 주거복지 정책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비혼 동거 실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과반수(50.5%)가 동거로 인해 주택청약이나 주거비 대출 등의 주거지원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비혼 동거 가구는 주거에서의 일상적 차별 역시 감내할 수밖에 없다. 법을 통해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공동명의로 주거 계약을 할 수 없다. 비혼 동거 가구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명의로 주거를 계약해 동거한다. 공동명의 계약은 결혼한 부부나 혈연관계에만 허락되지만,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리관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주인은 비혼 동거 가구의 공동명의 전‧월세 계약을 꺼린다.
불가능한 공동명의 계약은 임차인이 사망했을 때 문제로 불거진다. 현재로선 임차인이 사망할 경우 임차권은 사망자의 혈연 가족에게 넘어간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아왔더라도 상속인의 결정에 따라 한순간에 살 곳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계약기간 동안 거주지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임차인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단순 동거인’이라는 불안정한 이름 앞에서는 보호되지 않는다.
결혼하려는 청년만 지원받을 수 있다고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9세 이하의 청년 1인 가구는 134만 3천 가구에 달한다. 5년 전과 비교해 53.9% 늘어난 셈이다. 나날이 증가하는 청년 1인 가구의 요구에 호응하며, 정부 역시 청년층 대상의 주거복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청년층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거주지를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이나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청년정책 전문가들은 ‘청년 대상의 공공임대주택이지만 1인 가구로서 계속 살아가려는 청년은 제대로 지원받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민달팽이유니온 김솔아 대표는 “현재의 청년 공공임대주택 제도에서 청년은 ‘혼인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는 경로에 놓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1인 가구를 독립된 가구 주체가 아닌, 혼인 후엔 사라질 잠정적인 가구 형태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인식은 국토부가 마련한 주거복지 로드맵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토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청년 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마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모든 청년 1인 가구가 결혼할 것임을 가정하는 주거복지 로드맵은 청년 대상의 공공임대주택에서도 적용된다. 공공임대주택인 청년 행복주택, 청년 매입임대(SH), 역세권 청년주택에서 1인 가구의 최장 거주기간은 모두, 최초 2년에 최대 2회의 재계약을 합쳐 6년이다. 대학교 4년에서 군대 2년을 합쳐 산정한 기간이다. 이에 김솔아 대표는 “이 같은 정책은 ‘6년 뒤에는 결혼하겠지’라고 전제를 하고 청년 주거복지 정책을 고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최장 6년의 거주기간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청년 매입임대의 경우 신청 당시 대학생이던 신청자가 졸업하거나, 취업 준비생이 취업을 하는 경우 재계약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그치는 거주지 제공은 불안정한 청년 가구의 주거를 제대로 개선하지도 못한다. 2020년 주거실태 조사 결과 청년 가구의 82.2%는 현재 주택에서 거주하는 기간이 2년 이내로, 평균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치를 보였다. 안정적인 거주지를 얻을 만큼 경제적으로 자립한 청년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이에 김솔아 대표는 “최소한 청년이 돈을 모아 전세금을 마련하는 등 온전한 경제 주체로 자리 잡는 기간을 산정해 거주기간을 설정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청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선, 청년 가구의 불안정한 주거 현실을 주거복지 정책에 반영하는 동시에, 청년 1인 가구를 독립된 경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청년의 임대주택 거주를 일시적으로 보는 주거복지정책은 임대주택의 면적에도 반영돼있다. 현재 청년층은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주택 중 15~20㎡의 주택에만 입주할 수 있다. 10평 남짓의 원룸 크기다. 이에 청년정책 전문가들은 청년 1인 가구가 ‘곧 가족을 이룰 예정인 개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의 거주 공간 역시 한시적인 이용 공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청년 1인 가구를 하나의 온전한 가구 형태로 고려하지 않는 주거복지 정책에 피해를 입는 건 청년들이다. 김솔아 대표는 “청년층이 정책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 청년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형태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창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결과”라며 결혼을 중심으로 고안된 주거복지 정책을 비판했다. 지금의 정책 방향성은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가족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고소득 직종을 가지거나, 두 남녀가 결혼하면서 대출을 받아야만 비로소 주거 안정 시스템에 포함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주거권을 보장받기 위해 나의 상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개인의 주거권을 보장해주지 못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청년 1인 가구 지원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서울시는 올해 초 “2026년까지 역세권 청년주택과 청년 매입임대 주택을 합쳐 약 7만 가구를 공급하고, 청년층의 요구를 반영해 거주기간 연장, 평수 다양화 등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결혼에서 벗어난 주거권 담론을 향해
미비한 주거복지정책은 비혼 동거 가구와 청년 1인 가구의 장기적인 주거 문제로 이어진다. 김솔아 대표는 “1인 가구 형태를 유지할 청년 1인 가구는 장차 중장년·노년 1인 가구가 된다”며 “중장년 1인 가구가 돼도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면, 이들은 더 철저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주거복지 정책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주거권에서 소외된 청년층의 성장으로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연령층이 더 확대된다는 것이다. 비혼 동거 가구 또한 주택 구매와 대출에서 겪는 어려움이 장기적인 주거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적인 주거 문제를 막기 위해선 다양한 가구의 특성에 맞춘 주거복지가 요구된다. 서울여성가족재단 김영정 연구위원은 “주거복지 정책 범위를 확장해 가족의 형태로 인해 소외당하는 사례를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가구의 형태를 반영한 주거복지를 제공해 주거 정책에서의 소외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거 불안정성을 겪는 이유를 가구 형태별로 분석하고, 당사자에게서 직접 주거에 대한 요구를 듣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방법이 될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거복지 정책 범위를 넓히는 것에 앞서,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한 주거복지 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한 움직임 속에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있다. 김영정 연구위원은 “혈연관계를 갖거나 혼인을 해야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주거복지정책 개편은 불가능하다”며 “민법에서의 가족 개념을 다시 고민해 비혼 동거 가구의 생활동반자 지위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활동반자법에 따르면 동거 가구에게 결혼, 생활동반자, 등록 없는 단순 동거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지고, 파트너는 단순 동거인을 넘어 동반자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생활동반자법의 적용은 비단 비혼 동거 가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김솔아 대표는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다면 혼인‧혈연 외의 새로운 형태의 관계도 성립되면서, 비혼 동거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법적 제도 안에 편입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생활동반자법이 비혼 동거 가구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가구들을 주거복지정책에 편입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힘을 얻기 위해선 가구의 형태가 차별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사회에 결혼한 이성 부부 외에도 다양하게 가구를 구성해나가는 이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포괄하는 주거복지정책에 대한 요구가 사회 전체에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 수준은 아직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에게 다양한 가족구성원 보장을 위한 법률 개정을 권고했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고,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통해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률’이라는 인식에 갇혀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A씨는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는 할지, 이뤄진다고 해도 통과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며 “사회 전반에서 ‘결혼’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 사회의 가구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1인 가구나 비혼 동거 가구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혼인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주거복지정책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대한 움직임은 미진하고, 여전히 청년에게는 6년의 거주기한과 10평 남짓의 공공주택만이 허락된다. 혼인과 혈연을 기반으로 한 ‘정상적인’ 가족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과 정책, 그리고 사회적 인식이 발맞춰 변화할 때, 비로소 소외됐던 이들의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