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대체불가능성

튜링 테스트: AI의 사랑 고백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몇 세기간 제기돼온 의문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2040년 즈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지를 것이라 예측한다.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기계는 더 복잡한 일을 수행하고, 더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튜링 테스트: AI의 사랑 고백』展은 기술문명 속에서 인간이 맞게 될 변화를 예측하고, 기계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영역을 모색한다.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도래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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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열 「머시니멀 브루탈레」

  전시는 그간 서로 대척점에 놓여있는 것으로 인식돼온 유기체와 기계가 융합돼감을 보여준다. 임동열 작가의 「머시니멀 브루탈레」는 오토바이 구조를 동물의 신체로 치환한 조형 작품이다. 기계의 몸통은 동물의 뼈대로, 내연기관와 끈은 혈관으로 묘사했다. 작가는 유기체와 기계를 동일한 구조로 표현함으로써 기계의 유기체화, 유기체의 기계화를 표현한다.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은 신체 능력의 비약적 변화를 낳았다. 청력을 증폭시키는 인공와우가 그 사례다. 어릴 적 의료 사고로 청력을 잃은 후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사용해온 홍세진 작가는 인공와우로 들리는 소리들을 회화로 표현한다. 장치를 거친 소리는 기계음이 섞여 이전과 다른 세계를 선사한다. 「도형 풍경」 연작은 유기체와 사물, 비정형의 이미지와 도식적 형상을 같은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기계음과 자연음의 뒤섞임을 표현한다. 기계로 변화된 감각을 반영해 그려낸 새로운 풍경은 기술문명이 야기할 무한한 변화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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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진 「도형」

기계의 전경화, 인간의 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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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영 「거인의 집」

  하지만 기술문명이 인간에게 늘 긍정적인 영향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덕영 작가의 「초미래 도시」가 그려내는 세계는 거대한 기계에 점령됐다. 모든 건물이 전선으로 촘촘히 연결된 흑백의 도시는 인적 없이 황량하다. 이 작가의 「거인의 집」에서는 머리 없는 인간이 목에 무수한 전선이 연결된 채 폐기된 도시를 헤맨다. 인간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구조물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폐기된 도시에서 무력하게 전선만을 손에 꼭 쥐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전선과 얽힌 채 널브러져 있는 파이프들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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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 「신체가 있는 부품도」

  이재석 작가의 「신체가 있는 부품도」는 기계 부품들을 인간의 위에 배치함으로써 기술문명에서의 가치의 위계를 형상화한다. 붉게 녹이 슨 부품들이 인간을 가려 그 자세와 표정을 관찰할 수가 없다. 가려진 인간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콘트라포스토는 서양 회화에서 대칭적 조화와 이상적인 구도를 의미한다. 기계가 전경, 인간이 배경이 되며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자세가 화면에서 밀려난 구성은 기계 문명에서 인간과 기계의 위계가 전복된 현실을 투영한다.

쓸모없음의 대체불가능성

  인간보다 신속하고 오류의 위험이 적은 기계는 생산성의 측면에서 인간을 능가한다. 기술 문명 이후, 본래 인간이 수행하던 수많은 역할이 기계로 대체됐다. 인간은 이제 ‘나의 존재가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낼 수 없다.

  자동차 공장의 로봇팔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 대표적 예다. 전보경 작가의 「zero: 오류의 동작」은 로봇팔의 움직임을 모방한 무용을 담아낸 영상 작품이다. 작가는 퍼포머들에게 로봇팔의 움직임을 그린 드로잉을 제시하고, 이를 재해석한 안무를 의뢰한다. 퍼포머들은 로봇팔의 연속적인 직선 운동을 모방하지만, 그 효율성을 모방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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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경 「zero: 오류의 동작」

  퍼포머들이 만들어낸 동작은 생산성의 측면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매번 완벽한 동작을 해내는 기계와 달리 퍼포머들의 동작은 매 시행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팔의 각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동작들 간의 텀이 길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불규칙성과 오류는 동작의 지연과 비효율을 가져오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요소다. 자막으로 등장하는 ‘스스로 선택에 의한 위반은 실패가 아니라 가능성이 된다’는 문구는 인간만이 갖는 유연성과 변화 가능성을 말한다. 전보경 작가는 ‘쓸모없음’이야말로 인간이기에 실현 가능한 가치임을 역설한다.

  『튜링 테스트: AI의 사랑 고백』展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기술문명은 인간의 삶과 세계를 다방면으로 향상시키는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전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상상한다. 하지만 인간이 완전히 대체되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기계는 끝내 인간의 ‘쓸모없음’만은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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