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사례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문애준 상임대표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 한 것입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 A씨는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동네의 산부인과에서 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통보를 들어야 했다. A씨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은 차로 2시간 거리였다. A씨는 검진을 받을 때마다 차로 왕복 4시간을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도 검진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진료의자의 각도가 A씨의 신체에 맞게 조절되지 않아 다른 기구에서 임시로 검진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은 임신·출산·양육의 전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A씨의 경험은 지금도 장애여성 대부분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문애준 상임대표는 “저출산이 문제라며 여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장애여성의 출산은 어느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장애여성 산모, 그들은 어떤 차별을 감내하고 있을까. <서울대저널>에서 장애여성의 출산 실태와 그 지원제도를 파헤쳐봤다.
장애여성에겐 주어지지 않는 출산을 결정할 권리
장애여성의 출산율은 2018년 기준 0.83%에 불과하다. 이렇게 낮은 출산율의 배경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장애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 장애여성 산모의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유전에 대한 막연한 우려로 장애 여성의 가족과 의료진이 낙태를 권유하거나 강제불임수술을 행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여성의 가족과 의사가 입을 맞추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러 들어간 장애여성에게 출산 후 불임시술을 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낙태를 피하더라도 장애여성은 임신과정에서 매 순간 장벽을 경험한다. 우선 의료진과의 소통부터가 어렵다. 장애여성의 출산에 특화된 의료진이 드물어 장애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 여성의 몸에 대해 정보가 필요하면 산모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산모가 아닌 보호자와 소통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몸임에도 임신 상황에 대해 말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의료적 지식이 부족한 지적장애인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출산할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것에도 제약이 따른다. 장애여성은 고위험산모로 분류되기 때문에 가까운 동네 산부인과가 아닌 종합병원 등의 상급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 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비장애여성의 상급의료기관 이용 비율은 15.5% 인데 반해, 장애여성의 이용 비율은 25.7%에 달했다. 그렇다보니 상급의료기관이 없는 소도시에 거주하는 장애여성들은 산부인과 검진을 받을 때마다 장시간 이동을 감수해야 한다.

장애여성을 고위험산모로 분류하는 것은 제왕절개와 같은 수술이나 입원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장애여성 산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권유한다. 수술을 받을 확률이 높은 탓에 장애여성의 평균 출산 비용은 비장애여성보다 높다. 2018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여성의 출산 비용은 약 192만원으로, 비장애여성의 비용보다 평균 15만원 높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서해정 부연구위원의 논문 「여성장애인 모성권 보장 방안」에 따르면 장애여성은 낮은 교육수준과 경제활동참가율 탓에 출산비용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
무사히 출산을 하더라도 산후조리의 어려움이 남아있다. 장애여성은 장애로 인해 출산 후 몸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큰데도 산후조리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16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장애여성 산모의 80%가 가족에게 의존해 산후조리를 받았다. 산후조리원·산후도우미를 이용한 산모는 18.8%에 불과했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여성이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에는 비용 문제가 크지만, 산후조리 프로그램 자체가 비장애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여성이 산후조리원에서 자신의 신체에 적합한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산지원제도마저 열악한 장애여성
장애여성 산모를 위한 지원제도가 존재하긴 하지만,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보건복지부는 여성장애인이 출산이나 유산·사산할 경우 100만원을 지원 해주는 ‘여성장애인 출산비용 지원사업’ 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기준 지원제도에 신청하지 못한 장애여성 산모는 전체의 15%에 달했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여성은 임신이나 출산지원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며 장애여성의 낮은 정보접근성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 산부인과 이용이 어려운 장애여성을 위한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제도는 고위험 분만, 진료 접근성 등 장애여성이 출산 시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사업이다. 사업 시행 병원으로 지정된 산부인과는 장애친화적 시설과 인력을 구축하게 된다. 2022년 현재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총 8곳으로, 서울, 부산, 광주 등에 위치해 있다. 여기다 4곳을 추가 모집해 전국 12곳으로 늘어날 예정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숫자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수가 너무 적으니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9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친화 산부인과의 한해평균 이용자는 100명도 채 넘지 못했다.

2022년 현재 장애친화산부인과는 서울, 부산, 광주, 울산, 경기, 청주, 전주, 구미 총 8곳에 소재한다. 추가모집이 예정된 4곳을 합하면 총 12곳이다.
장애친화 산부인과의 진료 편의성도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2019년 6곳의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대상으로 한 보건복지부의 현장점검 결과, 침대형 휠체어, 전동식 수술대, 휠체어 체중계 등 장애여성 진료에 필수적인 의료장비를 모두 설치한 산부인과는 없었다. 이 장비들이 없으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서 기구에 올라가는 등의 불편을 겪어야 한다. 청각장애여성 산모가 이용할 수 있는 수화통역사 서비스가 있는 병원이 거의 없어 필담 진료 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진료 내용에 있어 장애여성 산모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거나 장애유형별 매뉴얼을 두는 경우도 한 곳에 불과했다.
‘장애친화’ 산부인과가 장애친화적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연간 분만 실적이 100건 이상인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에서 지정된다. 필요한 의료시설과 인력은 선정 지원금을 통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구축한다. 문제는 지원금이 일회적인데다 가, 장애친화 산부인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친화 산부인과가 장애친화적 역량을 강화할 예산도, 관심도 부족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여성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출산지원제도를 이용하기도 어렵다. 건강관리 사가 출산가정을 방문해 산모의 산후 회복과 신생아 양육을 돕도록 하는 산모 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이 일례다. 2018년 기준 해당 사업의 장애여성 이용률은 63%에 그쳤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정보 접근성의 한계도 큰 이유지만,장애여성에 특화된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장애인도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신청 자체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애여성의 산후 회복에는 비장애여성보다 많은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임이 고려되지 않을 거라 짐작해 이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열등한 자’로 여겨진 인구, 장애여성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가 유전될 거라는 우려에 장애여성의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장애여성 출산지원 제도에 대한 논의 자체를 가로막는다고 강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현숙 객원교수는 이러한 인식의 이면엔 ‘열등한 사람’의 출산을 억제해야한다는 논리가 있다고 봤다. 소 교수는 “20세기 전반을 걸쳐 ‘인류의 질 향상’을 위해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된 이들의 출산은 억제돼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졌고, 장애인 역시 열등한 자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실제로 ‘열등한 자’의 출산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과거 유전병으로 잘못 알려졌던 한센병 환자를 소록도에 강제 수용하고 생식 능력을 없애 는 단종수술을 행한 것이 그 사례다. 한 센인 부부가 동거를 하려면 한센병을 가진 아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목 으로 단종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소현숙 객원교수는 “한센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역시 같은 일을 겪어야 했다”며 “1990년대, 2000년대 초까지 장애인 시설에 서의 낙태나 불임시술은 공공연히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에게 불임시술을 강제할 수 있던 것은 모자보건법을 통해서였다. 모자보건법은 가임기여성과 영유아의 건강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안이다. 1999년까지 모자보건법에는 ‘의사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환의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임수술을 행하는 것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조항(제9조)이 있었다. 소현숙 교수는 “국가가 법령을 통해 장애인 불임시술을 강제해옴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불임시술이 사회적 관행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도 장애 여성의 출산권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여성의 낙태는 법으로 금지되지만, 장애여성의 낙태는 예외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은 허용된다. 소현숙 교수는 “(모자보건법 14조는) 낙태가 완전히 금지됐던 시기부터 있던 조항”이라며 “장애여성 낙태를 법적으로 조장하는 꼴”이라 비판했다. 장애인의 재생산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치판단이 법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2019년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음에 따라 모자보건법 개정이 예고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모자보건법 14조가 삭제될 것이라 보고 있다.
소현숙 교수는 모자보건법 14조가 폐지된다 하더라도 산전진단 풍조라는 벽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산전진단은 태아가 태어나기 전 질병 및 장애 유무를 판단하는 진단이다. 소 교수는 “진단을 해서 태아의 장애를 아는데도 출산을 하면 ‘왜 애를 낳았냐’,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사회적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장애 태아를 낙태하는 것이 당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적장애 중 하나인 다운증후군 태아의 최대 50%는 산전진단이 보편화된 후 낙태됐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소현숙 교수는 “과거 장애인에게 불임시술을 하거나 낙태를 강요하던 것이 지금은 산전 검사 풍조로 옮겨 간 것”이라며 “장애인의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재생산할 권리를 상상하기 위해
장애학 전문가들은 장애여성의 출산권 보장을 위해 모자보건법 개정과 장애여성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소현숙 교수는 “‘열등한 자’를 배제할 수 있다는 우생학적 인식이 일반적으로 깔려있었기에 장애인의 낙태를 허용하는 법 조항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장애여성을 성과 재생산의 주체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여성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성적인 존재로만 취급된다”며 “장애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인식 안에서 비로소 출산할 권리가 이야기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여성도 성적 욕망과 재생산의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이므로 출산을 둘러싼 이들의 선택 역시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다.
다중적 차별을 겪는 장애여성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애준 상임대표는 “장애여성은 여성이자 장애인으로서 이중적인 차별을 경험한다”며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를 방문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분리될 수 없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여성의 출산권 보장을 위해선 임신·출산 과정에 국한되지 않는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이 논의돼야한다는 의미다.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으로서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으면 장애여성의 출산을 지원하는 제도는 허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장애학 전문가들은 한 사회가 특정 집단의 재생산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그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보는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장애여성의 출산에 가해져온 차별적 시선이 거둬질 때, 장애인이 겪는 배제의 경험이 수면 위에서 논의될 때, 지금껏 가려져 온 장애여성의 어머니 될 권리도 비로소 지켜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