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직 캐슬’에서 노는 무니와 친구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공식 스틸컷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디즈니월드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이뤄질 것만 같은 디즈니월드의 건너편에서 살아가는 무니와 핼리가 마주한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들이 겪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사회가 미국 저소득층 홈리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제시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월트디즈니사가 1965년 진행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일대 디즈니월드 건설 프로젝트명이다. 디즈니월드 개장과 함께 주변에 자연스레 관광객들을 겨냥한 저렴한 모텔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2007년 금융위기로 디즈니월드를 찾는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모텔촌을 찾는 관광객도 줄어들었다. 대신 남겨진 모텔들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거리로 떠밀려온 저소득층 홈리스들이 장기 투숙하는 임시 거처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때쯤 홈리스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실시한 보조금 정책의 이름 또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핼리와 무니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공식 스틸컷
천진난만함 속에 그려진 현실
무니와 핼리 모녀는 디즈니월드 외곽에 위치한 보라색 모텔, ‘매직 캐슬’에 장기 투숙 중이다. 천진난만한 무니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좋은 평범한 아이다. 엄마 핼리도 무니의 애정에 호응해주지만 충분한 보살핌을 주진 못한다. 대신 무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과 함께 남의 차를 향해 침을 뱉고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하고 달아나는 등의 장난을 일삼으며 하루를 보낸다.
핼리는 ‘매직 캐슬’에 함께 사는 이웃 애슐리의 딸이자 무니의 친구인 스쿠티를 돌봐주는 대신 애슐리가 종업원으로 일하는 음식점에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는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지만 비참한 현실에 짓눌린 핼리는 애슐리가 일할 동안 방 안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아이들을 위험한 환경에 방치해둔다.
핼리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복지센터를 찾지만 필요한 근로 시간을 채우지 못해 보조금 수령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무니가 스쿠티와 함께 빈집에 화재를 일으킨 사건을 계기로 애슐리와도 관계가 멀어진 핼리는 생계를 유지하고자 불법으로 향수를 판매하지만, 그마저도 경비원에 의해 제지당하고 만다. 방세도 내지 못하고 무니의 배고픔을 지켜만 볼 수 없던 핼리가 선택한 것은 성매매였다.
모텔 지배인 바비는 무직인 핼리가 갑자기 밀린 방세를 지불하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바비는 핼리가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매매를 그만두게 모텔 내 새로운 사람을 방에 들이는 것을 금지한다. 그날 이후 돈 벌 수단이 사라진 핼리는 자존심을 굽히고 애슐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성매매 사이트에 올라온 핼리의 사진을 발견한 애슐리는 핼리를 모욕하며 내쫓는다. 화가 난 핼리는 애슐리를 폭행하고 애슐리는 복수를 위해 핼리를 경찰에 신고한다. 다음날, 애슐리의 신고를 받은 경찰과 아동보호국이 조사를 위해 핼리 모녀의 방 안에 들이닥친다.
아동보호국은 핼리에게 양육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무니를 위탁 가정에 보내기로 한다. 핼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무니는 울며 반항한다. 무니는 아동보호국 직원을 피해 디즈니월드로 무작정 달려간다. 평생 디즈니월드 근처에 살았지만 차마 쳐다보지 못했던 디즈니월드의 진정한 ‘매직 캐슬’에 마침내 당도하게 된 것이다.

무니를 지켜보는 바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공식 스틸컷
따뜻하지만 무력한 바비의 시선
바비는 모텔을 운영하기 위해 남들에게 냉정해야 하지만 모녀가 처한 상황을 외면하지 못한다. 밀린 월세를 눈감아 주기도 하고 모텔 주변을 서성이는 성범죄자로부터 무니를 보호하기도 한다. 핼리가 성매매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의 비밀이 모텔에 퍼지지 않게 숨겨주기도한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모녀를 지켜보는 바비는 관객의 시선을 대신한다. 이웃이 위험에 빠졌다는 조바심에 도움을 주는 모습 등 바비가 선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그의 도움이 이웃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못했다. 그의 행동은 당장의 상황을 수습할 뿐, 문제의 반복을 막진 못했다.
책임의 방향성
핼리의 양육 방식은 보호와 방임의 경계에 있다. 그러나 핼리의 양육 방식이 오롯이 그의 책임이라 섣부르게 비난할 수 없다. 핼리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최대한 무니에게 사랑을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의 한계에 핼리는 양육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핼리도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님을 알지만 궁핍한 현실은 그를 ‘나쁜 엄마’로 남겨둔다.
국가는 핼리와 무니에게 실질적인 도움 대신 좌절감만을 안긴다. 핼리는 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핼리는 구걸하거나 남이 알아서 도움을 주지 않는 이상 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가의 복지 체계는 누구를 위해 구축된 것이냐는 물음만 남길 뿐이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무니와 스쿠티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공식 스틸컷
대상화되지 않은 빈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빈곤을 관객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핼리와 무니 모녀의 삶을 대상화하지 않는 시선은 관객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응시해 모순된 사회 구조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은 관객이 핼리와 무니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맹목적인 동정은 오히려 그들에 대한 결례다. 핼리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치열히 삶을 이어가려 발버둥 치며, 무니는 결코 풍요롭지 못할지라도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 환상의 성 ‘매직 캐슬’ 밖 사람들의 삶도 행복한 동화가 되기 위해선 동정보다는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