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사람의 어울림, 관악수목원

물들어가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관악산의 깊은 산자락으로 발걸음하다보면 짙은 나무색 칠이 된 관악수목원 대문이 나온다. 그 문을 열면 계절마다 새로운 식물이 움트는 관악수목원이 펼쳐진다. 관악수목원은 1,554ha의 규모로 1,158개의 보유종을 지니며, 1967년 교육과 연구를 위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수목원이다. 잘 꾸며진 정원보다는 오래된 숲과 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관악수목원에서, 전시원과 시설물을 관리하는 송정섭 주무관, 유승아 코디네이터, 신민하 코디네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설명 시작. 관악수목원 교육관리동 내부 모습이다. 선반 위에 다양한 화분이 열을 맞춰 놓여있다. 사진 설명 끝.

관악수목원 교육관리동 내부 모습

SJ 관악수목원에서 맡고 있는 직무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송정섭 주무관 (송) 저는 전시원 및 시설물 관리를 하고 있어요. 수목원에 있는 식물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죠. 

신민하 코디네이터 (신) 관악수목원에 방문객을 관리하는 일을 해요. 교재원* 관리도 맡고 있어요.

유승아 코디네이터 (유) 수목원에 피는 꽃의 사진을 촬영하고, 배경화면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식물 세밀화도 그리고, 관악수목원 홈페이지에서 연재되는 ‘식물 이야기’ 글도 쓰고요.

*교재원: 교과서에 수록된 식물을 식재‧관리하는 교육용 전시 식물의 영역. 식용식물 관찰과 체험을 통해 식물에 대한 관심도를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SJ 매일 식물과 함께하고, 식물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시네요. 식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일 것 같아요. 수목원 일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미국에 잠깐 살았어요. 그때 사람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한국에 돌아가서 꼭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안양시에서 ‘수목원 숲 해설’ 봉사자를 모집했어요. 그 봉사가 정말 저와 잘 맞더라고요. 저는 꽤나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자연은 제가 싫증을 낼 수 없게 해요. 자연은 정말 변화하지 않는 듯이 매일, 매시간, 매순간마다 변하거든요. 그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 흥미로웠어요. 꾸준히 하게 된 데는 아버지가 임업을 하셨다는 개인사도 한몫했겠지만요.

 특별한 건 없었어요. 성장배경은 식물과 관련 없었지만, 집에 앉아있지 않고 산, 들, 강에 가서 곤충도 잡고 맨손으로 물고기도 잡던 아이였어요. 잡고, 키우는 활동을 좋아하니 항상 몸과 마음이 산과 멀리 있지는 않았고요. 대학에서 식물 관련 학과를 전공하다 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무에 대해 배우고, 수목원에도 오게 됐네요. 살아있는 나무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학교 직원이라는 특성상 인사이동으로 본교, 농대 부속기관 등에 발령받을 때도 있지만, 숲에 들어와 있을 때의 편안함을 느껴보니 계속 이 일을 찾게 되더라고요. 저의 첫 직장생활이고 또 나무에 관련된 일을 하니까 수목원이 편하기도 해요.

 서울에서 책 가지고 배운 사람에게 제일 부러운 사람이죠 (하하).

약 30년 전에 귀농하신 부모님 영향으로 농사를 짓는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텃밭 가꾸기, 씨앗 농사 등을 했죠. 사람마다 식물을 대할 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가 달랐어요. 식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 ‘수목원전문가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학교 수목원에서 일하면 좀 더 체계적으로 식물을 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관악수목원과 함께하게 됐어요.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식물 이력 관리가 잘되고 있어서, 배우려고 한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더라고요. 

SJ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식물의 특성이 있나요? ‘사람보다 낫다’ 싶거나요. 

항상 그 자리에 변치 않고 있어 준다는 거요. 제가 5년 동안은 밖에 나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복귀했거든요. 그 시간 동안 식물은 모든 사람을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더라고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다면요. 아, 관심을 안 주면 이 친구들도 아프다는 건 사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하게 느껴요. 한 자리에 계속 있는 게 사람에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정말 있는 힘껏 사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사람은 8월의 햇빛을 견딜 수 없어서 시원한 곳으로 피해 가는데, 식물은 그 자리에서 햇빛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요. 물론 가끔 말라 죽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다는 거랄까요. 내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있어주는 거요. 말이 없어서 좋기도 해요. 저는 세밀화를 그리는 업무도 하는데, 식물의 모습은 그려도 사람은 그리지 않아요. 몇몇 분들이 와서 자기를 그려달라고 하면 “말하는 사람은 안 그려요”라고 하죠. 종종 식물을 바라보며 제 주관대로 이야기를 건네곤 하지만요. 

식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 편안함을 즐기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람과 있기 힘들어서 식물이 더 좋을 때도 있고요.

사진 설명 시작. 좀작살나무의 열매 모습이다. 작살나무보다 톱니가 시작되는 중심이 좀 더 뻗어있어서 ‘좀’작살나무다. 사진 설명 끝.

좀작살나무. 작살나무보다 톱니가 시작되는 중심이 좀 더 뻗어있어서 ‘좀’작살나무다.

SJ 관악수목원 홈페이지 식물 이야기 코너에 매달 식물의 아름다움에 관한 짧은 글이 올라와요. 식물이 가지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코디네이터의 업무는 자연과 식물의 일을 기록하는 거예요. 카메라를 들고 일주일에 두 번은 시간을 내서 수목원에 있는 친구들의 사진을 찍죠. 그 사진에는 그날의 날씨, 기온, 습도, 그리고 제 기분까지 들어가요. 카메라로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부도 되고, 애정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요. 확대를 하는 만큼 좀 더 다가갈 수 있고,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니까요.

딱 봤을 때 ‘예쁘다’,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얘가 되게 제멋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예요. 저는 겨울에 산책하다가 잡초나 다 말라있는 사초를 꺾어서 다발을 만들기도 해요. 잘 다듬어진 애들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자기 생긴 대로 잘 살고 있는 애들을 보면 참 예쁘거든요. 스케치를 하면 그 제멋대로의 아름다움이 더 잘 보여요. 이 친구가 다른 풀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려면 자세히 봐야 하는데, 스케치를 하면 그럴 수밖에 없거든요. ‘이 친구의 특징은 암술, 수술의 기본적인 형태, 특별한 돌기, 털이구나. 그렇게 하나하나가 다 예쁘구나’라 느껴요.

SJ 일을 하실 때 식물의 여러 특성 중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이 친구가 잘 자라고 있나’가 가장 궁금하죠. 매번 생사 확인을 먼저 하는 것 같아요. 수목원에 없는 종을 늘리기 위해서 채집을 해오고, 이곳에 심고, 그 친구가 살아나서 움을 트는 것을 항상 지켜봐요. 움을 트고 나서도 딱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번식하면 또 뿌듯하고요. 움을 텄는데 오히려 개체 수가 줄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면 이 친구의 환경에서 잘못된 점은 없는지 들여다보죠. 이 친구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생각하고 있어요. 

제 일은 사진 찍고, 배경화면을 만들고, 식물 이야기 코너에 글 작성하고,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거예요. 제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외부로 나가 나무들을 보여주는 일이죠. 그러다 보니 이 식물에 대한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가끔은 배경화면에 대한 답글도 와요. “비가 오는데 꽃 사진 봐서 좋았어요”, “기다렸어요” 이런 말 들으면 정말 좋죠. 매달 배경화면은 달이 바뀌기 전 주에 가장 화려하게 피려는 꽃을 골라요. 혹시 이 배경화면을 보고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든 사람이 오셨을 때, 가장 예쁘게 볼 수 있는 것으로요. 사실 초점이 잘 맞은 사진을 고르기도 하죠.

사진 설명 시작. 2010년 곤파스에 의해 쓰러진 중앙로의 나무를 대체해서 심어진 마가목의 모습. 열매가 무성히 달려있다. 사진 설명 끝.

마가목 열매가 아름드리 피어있다. 곤파스 때 쓰러진 나무를 대신해서 심어졌다.

SJ 수목원에 계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저희끼리의 대화가 특이하다는 점이려나요. 관찰원 관리하다가 떨어진 꽃이나 사슴벌레를 들고 오기도 하고, “날씨가 이렇더니 올해는 늦게 피네”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 다들 기다리는 꽃이 피었을 때, 다 같이 즐거워하기도 해요.

2010년 태풍 ‘곤파스’ 때 가장 큰 피해를 겪었어요. 안양시 쪽으로 태풍이 지나갔는데 어마어마하게 나무들이 많이 쓰러졌죠. 밤에 태풍이 불고 아침에 출근했는데 쓰러진 나무들에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정말 TV에 나오는 열대 밀림처럼 중앙로가 가로막혀있었으니까요. 사람 손이 무서운 게 치우니까 또 치워지긴 했지만, 허전한 마음도 있었어요. 당시 소장님께서 채집해온 나무들이 수십 년이 지나 그만큼 컸던 건데, 태풍 한 번에 쓰러져버렸으니까요. 본인 손으로 심으셨는데 본인 손으로 베고 나간다고 속상함을 웃음으로 드러내시더라고요. 지금에는 그 자리에 마가목을 심었어요.

SJ 무엇이든 간에 유독 더 눈길이 가는 것들이 있잖아요. 수목원 내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식물이 있다면요?

지금 꼽아보자면, 등칡이요. 등칡은 낙엽 덩굴식물인데, 꼬부라지며 자라길래 대를 세워줬어요. 작년에 세 줄기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그중 두 개가 뿌리째 잘려있더라고요. 하나는 중간에 잘려서 밑동만 남았고요. 잘린 흔적을 보니 사람의 손을 탔던 것 같아서 화가 났어요. 올해 다행히 그 한 줄기가 다시 살아나와서 각 잎을 내고 있어요. 

등칡은 정말 여러 번 채집해왔는데 살리기가 어려웠어요. 작은 개체를 데리고 와서 처음부터 키워도 환경이 안 맞는 것인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잘 자라니 다행이죠.

신 다른 수목원에 있는 등칡은 정말 잘 자라더라고요. 체력이 좋던데요.

SJ 관악수목원은 이름 그대로 관악산 근처에 있어요. 수목원 운영에 있어서 위치에 따른 장단점은 없나요?

생각보다는 단점이 많은 것 같아요. 관악수목원은 사립 수목원과 다르게 원예종보다는 자연원종을 들여오고 아름답게 꾸민다기보다 종을 증식하고 보존하는 데 초점이 있어요. 식물 종 보전을 위해 어느 정도 통제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죠. 관악산이 등산으로 유명한 산이다 보니 수목원으로 하산하는 길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그러니 관리상의 어려움도 생기고요. 등산객은 하산길에 철마다 다양한 꽃을 구경할 수 있으니 방문하지만, 일부 무분별한 분이 있긴 해요. 식물도 식물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말이에요. 

포천 국립수목원도 그 안에 자연림이 넓게 있지만,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서 주변 산길로의 방문을 통제할 수 있더라고요. 

아,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관악산 기슭에 인접해있다 보니 상수도도 안 들어오고, 도심 속의 외지 같을 때가 있어요. 요즘은 웬만하면 전화가 터지는데 당장 이 건물 지하만 가도 전화가 안 되고요. 

사진 설명 시작. 대잔디원에 위치한 철쭉이다. 한 곳에 심어놓아 봄이면 아름드리 꽃이 핀다. 사진 설명 끝.

대잔디원에 위치한 철쭉. 잎사귀가 꽃 모양 같은 점에서, 흔히 아는 산철쭉과 다르다. 한 곳에 모아 심어놓은 것이 묘미다.

SJ 앞으로 관악수목원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좋겠나요?

관악수목원은 학교 수목원이니, 기본적으로 식물종 보전에 중점을 두었어요. 그런데 요즘 지자체에서는 지역주민과의 교류를 위해 계속 개방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죠. 하지만 무분별하게 개방을 하면 식물이 남아나지 않아요. “이건 봄나물이네”, “이건 약초네”하고 캐가고, 꽃이 피면 꽃이 예쁘다고 꺾어가고요. 시민의식이 많이 증진되긴 했지만, 식물에 대해 무지하신 분들도 여전히 계시잖아요. 무분별한 개방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킬 수 있는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지켰으면 좋겠어요. 이곳이 학생들에게, 그리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교육관리동 앞에 벽오동 한 그루가 있어요. 앞으로 적어도 한 그루라도, 벽오동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방문해도 ‘맞아, 여기는 벽오동이 있던 자리였어’ 생각할 수 있도록요. 그렇게 식물이 자기의 자리에 남아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줬으면 좋겠어요. 이곳은 이 자리를 지키고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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