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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콘텐츠 플랫폼과 문화산업의 동행

  날이 갈수록 문화콘텐츠를 향한 관심이 커지며 문화산업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콘텐츠의 풍부함과 접근성이 화두가 되면서 대부분의 문화산업이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과 결합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이란 빅데이터, 네트워크 등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문화콘텐츠를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제는 유명한 영화나 음악은 물론 옆집 중학생이 쓴 소설, 크로아티아 2부리그 축구팀의 경기까지 플랫폼과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든 만나볼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풍부한 콘텐츠와 뛰어난 접근성으로 인해 플랫폼의 영향력이 극심히 커져 이용자와 창작자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플랫폼과 함께하는 대중문화 경험은 언제나 아늑할 수 있을까? 플랫폼과 문화산업의 건강한 동행을 꿈꾸며,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현황과 특성을 살펴봤다.

사진 설명 시작. 디즈니 플러스의 광고 사진. 미키 마우스, 스타워즈, 마블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한 공간에 서있다. 사진 설명 끝.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들 ⓒ디즈니 플러스

플랫폼, 대중문화의 승강장

  플랫폼은 승객들이 기차를 타고 내릴 때 사용하는 승강장을 일컫는 용어다. 문화산업에서 플랫폼은 이용자가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문화콘텐츠와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과거부터 플랫폼은 TV, 극장, 서점, 라디오 등 여러 형태로 존재했다. 오늘날 전성기를 맞이한 플랫폼은 OTT, 웹툰, 스트리밍 등의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으로, 과거의 플랫폼과는 공급과정상에 차이점이 있다.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콘텐츠 수급과 유통 등의 공급 과정이 이뤄지는 이전 플랫폼과 달리,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은 온라인 중심으로 공급된다. 온라인 중심의 공급과정은 플랫폼에 확장성과 접근성의 특성을 제공한다. 뉴미디어 브랜드 ‘씨로켓’ 김경달 대표는 “온라인 중심의 플랫폼은 공급 과정상 제한이 적어 더 많은 이용자에게 비교적 쉽고 자유롭게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플랫폼의 양적, 질적인 성장에 기여한다. 김경달 대표는 “빅데이터, AI, 네트워크 서비스 등 디지털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그것들을 핵심 기술로 이용하는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의 플랫폼 기업은 성장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직접 개발하며 관련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 미디어미래연구소 이찬구 미디어커머스 부문장은 “플랫폼 산업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높은 확장성과 접근성을 얻을 수 있었다”며 플랫폼 산업의 성장과 디지털 기술의 정적인 관계를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사용률과 관련한 인포그래픽. OTT 서비스 이용률은 2019년 41.0%에서 2021년 81.7%로 증가했다. 극장 관객수는 같은 기간 동안 2억 2천 6백만 명에서 6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웹툰 이용 시간이 증가했다고 밝힌 이는 전체의 79.4%였다. 사진 설명 끝.
▲코로나19 이후 플랫폼 이용률 변화 

ⓒ강다겸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생활의 주요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도 플랫폼의 성장에 기여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세대별 OTT 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41.0%였던 OTT 서비스 이용률은 2년만인 2021년에 81.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극장 관객 수는 2억 2천 6백만 명에서 6천만 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1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웹툰 이용 시간이 증가한 만화·웹툰 이용자가 전체 이용자의 79.4%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는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콘서트가 쿠팡플레이를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됐다. 오프라인 문화생활 중 하나였던 콘서트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된 것이다. 김경달 대표는 “뛰어난 편리성과 접근성을 가진 플랫폼은 코로나19 상황인 현재 비대면 문화 활동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이 변화를 설명했다. 플랫폼이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 확산을 통해 문화산업에서 점점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플랫폼 이용의 명과 암

  플랫폼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대중문화 속에서 이용자와 노동자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 많은 이용자는 플랫폼 덕분에 자신의 문화생활이 편리해졌다고 말한다. A씨는 “등하굣길이나 화장실에서도 OTT를 보는 등 자투리 시간이 나면 보고 싶던 영화나 드라마를 조금씩 감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하는 B씨는 “과거에는 시차로 인해 보고 싶은 경기를 생중계로 보기도 어렵고, 재방송을 시간 맞춰 챙겨 보는 일도 번거로웠다”며 “스포츠 중계 플랫폼은 내가 편한 시간에, 보고 싶은 장면만 골라 볼 수 있어서 편하다”고 밝혔다.

  플랫폼 덕분에 향유할 수 있는 문화생활의 종류가 풍성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C씨는 “플랫폼의 작품 추천 서비스를 통해 존재 여부를 몰랐던 작품을 알게 되고, 다른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접하면서 이전보다 취향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만화방을 운영 중인 정석도 씨는 “종이 만화를 보던 과거에 비해 웹툰이 주류가 되며 전보다 작품의 양이 늘고 다양한 작화와 연출이 등장했다”며 웹툰으로 인해 만화 창작 시장도 확대됐다고 언급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휘하려는 창작자에게 플랫폼은 기회의 장이다. 영화배급사 ‘엣나인필름’을 퇴사한 후 독립영화를 제작 중인 이지영 감독은 “플랫폼은 유명한 기존 작품 수급에 매달리기보다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품들을 최대한 빠르고 많이 수급하려는 추세에 있다”며 “이를 위해 플랫폼은 새롭고 시의성 있는 아이디어를 어필하는 젊은 창작자에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 등의 웹툰 플랫폼 역시 해마다 대규모 공모전을 통해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김경달 대표는 “플랫폼에서는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수급되기 때문에 가장 ‘지금’에 가까운 이용자의 욕구를 반영한 콘텐츠가 이용자의 이목을 끌기 유리하다”며 “문화 창작에서 창작자의 경력보다는 그가 얼마나 새롭고 젊은 아이디어를 가졌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플랫폼에 소속돼 창작 활동을 수행한 이들은 플랫폼 내 노동환경을 긍정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국내 최대 스포츠 중계 플랫폼에서 캐스터로 활동했던 K씨는 “해외 경기를 주로 중계하다 보니 새벽에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계 직전에 플랫폼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일정 변경을 통보받는 경우가 잦아 체력적으로 부담이 매우 컸다”고 밝혔다. 웹툰작가노동조합 하신아 사무국장은 “플랫폼 산업의 활성화로 창작자들의 일자리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창작자 수가 훨씬 많다”며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고용을 희망하는 창작자가 많다 보니 플랫폼 기업은 창작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에는 26개 웹툰 플랫폼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근로계약서상 불공정약관을 시정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할 것을 지시받은 바 있다.

  창작자들이 플랫폼에서 받는 대우와 고용 안정성 역시 좋지 않다. K씨는 “중계를 위해선 자료 준비, 경기 현장 방문 등 해야 할 것이 많은데 플랫폼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나 경비를 지원받지 못한 적이 많다”며 “혼자서 밤새 준비해 중계해도 건당 15만 원 정도를 받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계가 많아 봐야 주 3~4회인데, 생계를 위해선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플랫폼에 고용됐음에도 프리랜서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던 경험을 토로했다. 하신아 사무국장 역시 “플랫폼은 창작자와 정당한 계약서를 작성하길 꺼리고, 그러다 보니 플랫폼이 임의로 계약을 갑자기 중단해도 창작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플랫폼과 문화산업이 만났을 때

  플랫폼과 대중문화의 동행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히 플랫폼의 특수성이 낳을 문제들에 주목한다. 플랫폼의 가장 큰 특수성은 그것이 다른 서비스보다 강한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란 특정 서비스의 수요자가 늘어날수록 그 서비스의 가치가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양대 평화연구소 김수철 교수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서비스일수록 수요자를 늘리는 것에만 몰두하게 되고, 자연스레 독점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강한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플랫폼의 독점 문제가 문화계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플랫폼의 독점 문제는 문화산업의 특수성인 문화콘텐츠의 자산화와 맞물리며 더욱 심화된다. 플랫폼의 주요 상품인 문화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 한번 생산·소유하면 추가적인 생산 비용 없이도 계속 수익을 만들 수 있기에 문화콘텐츠는 자산화된다. 김수철 교수는 “문화콘텐츠가 자산화되며 플랫폼 간의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경쟁 역시 심화된다”며 “문화콘텐츠의 자산화가 네트워크 효과와 맞물리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플랫폼이 독점적 지위를 얻기 쉬운 승자독식 구조가 공고화된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스포티비의 광고가 보인다. 2022-23 시즌 UCL, UEL, UECL의 주요 경기를 독점 생중계한다는 내용이다. 사진 설명 끝.
▲스포티비의 중계권 독점 ⓒ스포티비

  플랫폼의 콘텐츠 독점이 가시화되며 이용자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C씨는 “플랫폼마다 독점하는 작품들이 있다 보니, 보고 싶은 작품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고 적지 않은 비용을 플랫폼마다 내야 한다”며 오히려 전보다 불편해진 점이 많음을 토로했다. 이찬구 부문장은 “여러 플랫폼에 내야 하는 비용의 합이 이용자의 지급 의사 금액보다 높아지며, 대중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오히려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중계 플랫폼 스포티비를 이용 중인 B씨는 “중계 영상의 화질이 너무 안 좋다는 비판이 몇 년 동안 계속 나오는데도 아무런 개선의 의지가 없다”며 “스포티비에서 국내의 해외축구 중계권을 독점하고 있다 보니 해외축구를 보려면 화질이 안 좋아도 계속 구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플랫폼 간 독점 경쟁은 창작자들의 노동환경을 담보로 한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이수경 지회장은 “플랫폼의 콘텐츠 독점에 들어가는 비용은 결국 창작자가 받아야 할 수익에서 나온다”며 “창작자와 독점 계약을 맺은 뒤 작품 홍보를 이유로 막대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하신아 사무국장은 “콘텐츠 독점으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창작자는 지나친 업무량을 강요받곤 한다”며 플랫폼 간 독점 경쟁으로 인해 창작자들의 노동환경 문제 역시 심화됨을 밝혔다.

플랫폼과 문화산업,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문화산업의 플랫폼화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플랫폼 산업이 연평균 19.0%씩 성장하며 연극, 뮤지컬 등 아직 플랫폼화가 이뤄지지 않은 문화콘텐츠들까지 완전히 플랫폼화될 것이라 예상한다. 가히 모든 문화생활이 플랫폼화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플랫폼화를 피할 수 없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용자들은 플랫폼이 자신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B씨는 “다른 건 괜찮아도 영상의 화질, 네트워크 연결만은 개선해달라고 플랫폼에 항상 의견을 전달하지만 조금도 바뀐 것이 없다”며 “플랫폼은 문제 상황을 인지조차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달 대표는 “독점 경쟁이 과열되면서 플랫폼들이 신규 이용자 유입에만 몰두하고 기존 이용자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며 플랫폼과 이용자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모습을 꼬집었다.

사진 설명 시작. 왼쪽에는 웹툰 《독립일기》 작가가 독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을 올린 모습이, 오른 쪽에는 왓챠가 트위터를 통해 구독자들의 수요를 파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사진 설명 끝.
▲(좌)작가가 독자의 질문에 직접 답하는 모습 (우)SNS를 통해 플랫폼과 구독자가 소통하는 모습 ⓒ네이버웹툰

  플랫폼은 플랫폼 내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해 이용자와의 소통을 활성화한다. 네이버웹툰은 작가나 담당 직원이 이용자가 작품이나 서비스 품질에 관해 작성한 댓글에 공개적으로 답변하며 이용자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의지를 보여줬다. 왓챠는 이용자가 사용자 게시판이나 SNS를 통해 보고 싶은 콘텐츠를 알리면, 해당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취한다. 김경달 대표는 “플랫폼이 온라인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용자와의 쌍방향적 소통 구조를 구축한다면, 이용자의 만족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작자들은 플랫폼으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하신아 사무국장은 “도움을 요청하는 창작자들은 물론, 부당한 노동환경에 놓여 혼자 고민하는 창작자들까지 모두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매일같이 애쓰는 단체들, 노동운동가들이 많다”며 창작자 간의 연대 상황을 강조했다. 전직 스포츠캐스터 K씨는 “플랫폼에서 퇴사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동료들이 여전히 많다고 들었다”며 “플랫폼상의 노동 문제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동료, 더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서로 힘을 모아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과 문화산업의 동행이 시작되고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플랫폼이 문화생활을 지탱하는 안전한 승강장이 될지, 문화산업을 좀먹는 악덕 중개상이 될지 우리 모두 함께 주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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