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넓어지고 연결되기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만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이 말한다. 당장 기획회의만 해도, 다른 분들의 기사 계획 발제 때마다 이런저런 피드백을 잔뜩 말해놓고서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다음에는 꼭 말 적게 해야지…’라며 꼭 후회하곤 했다. 그런 다짐만 지금까지 한 열 번은 한 것 같다.

  175호 기획회의에서도 말하기에 대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기자수첩’을 쓰고 싶다고 했다. ‘기자’가 아닌데 기자수첩을 쓸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디자이너가 쓰는 글에는 무슨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까. 왠지 나의 디자인 철학을 멋들어지게 써야 할 것 같지만 슬프게도 그런 것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고백하자면 편집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을 다룰 수 있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좌우지간 예쁜 게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이 ‘예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내 의견이 맞다고 열심히 우겼는데 상대가 제안한 방향이 결과적으로는 더 예쁘고 좋아서 머쓱하게 꼬리를 내린 적도 많다.

  지난 174호에서는 ‘서울대저널, 묻다’ 코너와 ‘필름通’ 코너의 레이아웃을 조금 과감히 바꿨다. 뭐든 원칙에 따라 맞추는 걸 좋아해서 한번 정해진 것은 웬만하면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데, 다른 기자들의 의견에 따라 변화를 꾀한 새 레이아웃은 무척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트럭을 타고 학내 배포대에 새로 나온 174호를 꽂아넣으며 앞으로는 좀 더 이것저것 시도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이런 교훈을 잊고 다음 호에는 또 고집을 부릴지도, 처음 그대로의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그런 순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스며드는 순간, 나의 세상이 타인을 통해서 조금씩 흔들리고 또 연결되는 찰나. 생각해 보면 저널에서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내가 몰랐던 어떤 주제를 다른 이가 가져오면 그것을 다 같이 귀 기울여 듣고, 거기에 여럿의 의견이 겹겹이 쌓여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을 함께 느끼는 순간.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고 반가워하거나, 같은 순간에 얼굴을 찡그리고 같은 순간에 감탄하면서 느끼는 연결돼있다는 감각. 그런 것들이 조금씩 모여서 나의 세상이 아주 조금씩 넓어졌다. 어쩌면 나는 그런 공동체에 발을 담그고 싶어서 저널에 들어오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저널의 글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중요하고 필요한 주제들을 적절한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글들이 쓰이기까지 모두가 들인 정성과 마음이 떠올라서일 때도 있고, 가끔은 그저 기사가 많이 읽혀서 저널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조금 맹목적인 마음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건 언론인으로서는 부적절한 태도일 테다. 그렇지만 나는 디자이너(겸 홍보 담당자)니까, 그 이름 뒤에 숨어서 욕심을 내본다. 많이 읽고 또 관심 가져주세요. 더 예쁘게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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