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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적분학2 교재의 연습문제 완전풀이집을 혼자서 만

드는 기행을 저질렀다. 이것 하나로 동료 조교들, 이름 모를 관악의 수및연 수강생들 모두에게 유명해지고 말았다.

  2014년 여름학기 출석부를 받은 날이었다. 계절학기 수학 및 연습 1(줄여서 수및연1)인 만큼, 출석부에는 재수강생들이 가득했다. 어느 학생이 재수강생이라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이 학생이 과거 최소한 한 번 수및연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고 C+ 이하의 학점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수학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수학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수학은 무척 어려우면서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그 중요성이 지겨울 정도로 강조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수학 바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물며 예전에 수및연을 듣다가 못 버텨서 드랍을 했었거나 C 이하의 성적을 받았던 재수강생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학 바보들이 가득한 반의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모두 미적분학 따위는 잘해낼 수 있는 인재들입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조교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사실 여러 학기 간 수및연 수업을 진행하면서 진짜 바보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바보라고 믿고 있는 불쌍한 학생들은 많았다. 나는 학생들이 흔히 갖고 있는 이 ‘바보의 굴레’에서의 탈출을 도와주는 것이 강의조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몇 번의 수업으로 내가 바보를 똑똑한 학생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보가 사실은 자신이 바보인 줄로만 아는 똑똑한 학생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런 학생에게는 수학이 어렵고 끔찍한 과목은 아님을 온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수업에 성실히, 즐겁게, 열정적으로 임하며 흥미를 북돋워 주면, 학생들은 스스로 안고 있던 두려움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차츰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지만, 주어진 여백이 부족한 것이 무척 아쉽다.

  어쨌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종강 이후 학생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몇 통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내용이 비슷했다: ‘조교님께서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저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수학을 못했었지만, 조교님 덕분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즉, 바로 그 바보의 굴레에서 탈출한 학생들이었다! 조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당신들은 수학을 못했었던 적도, 바보였던 적도 없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바보의 굴레에서 벗어나, 두려움 뒤에 가려진 자신의 힘을 조금 늦게 발견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대학교에서는 바보들의 수학 수업이 수없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바보들 중에 진짜 바보는 없다. 바보의 굴레만이 있을 뿐. 오늘도 학생들을 죄고 있는 바보의 굴레를 하나라도 더 떨쳐낼 수 있도록 나는 노력할 것이다.

하승우(수리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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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는 수리과학부 08. 대학원에 진학하자마자 수리과학부 우수조교가 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최우수조교가 되었다. 테뉴어 조교가 어울린다는 평가와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름 대신‘ 조교왕’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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